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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총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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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천추총 전경. 천추총 뒤로 보이는 산이 압록강 건너의 북한땅입니다. |
천추무덤(千秋墓, 마선구무덤떼 1000호, MM 1000) / 형식 : 특대형 계단적석석광묘(階段積石石壙墓) / 규모 : 60×60×9m
마선구무덤떼 남쪽 끝 압록강 가에 있다. 일찍이 도굴 당했다. 1936년 조사한 기록이 있고 1979년 수리를 했고 금년에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부덤은 바른 네모꼴에 가깝고 계단은 3계단까지 확인되며 계단마다 5층으로 쌓았다.
무덤 둘레에 무덤을 보호하는 큰바위가 세워져 있다. 무덤 위에 자갈이 덮여 있고 회갈색 기와조각들이 널려 있다. 이 무덤에서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 “보고건곤상필(保固乾坤相畢)“ 같은 글자 쓰인 벽돌이 나왔다. 연꽃무늬 수막새와 8각형 주춧돌이 나왔다. 훼손이 심하다. 고국양왕의 능으로 보는 설이 있다. 출처 : 서길수/서경대 교수/2003년 12월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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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변에 좌측에 위치한 천추총 입구 전경. 평소 개방하는 곳이 아니어서 입구 출입문은 잠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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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관리인에게 연락한 후, 한참을 기다린 끝에 관리인의 와서 문을 열어주어서 한 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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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바라 본 천추총 원경 |
▲ 바깥 쪽으로 난 보도 블록길을 따라서 천추총 가까이 갑니다. |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칠성산 871호·천추총
장군총보다 더 크고 오래 된 왕릉 많아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집안시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무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1962년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안시 안 고구려 무덤은 무려 1만 2358 기나 됐습니다. 그런데 1997년 조사 때에는 6854 기만 남았습니다.
겨우 35 년 사이에 무덤의 절반 가량이 사라진 셈입니다. 집을 짓거나 땅을 개간하면서, 옛 무덤을 파헤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주요 무덤들이 지난 해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면서 무덤의 훼손은 줄고 있는 실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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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은 한 변의 길이가 85미터라고 합니다. 좌측의 큰 나무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
●무덤 지키는 수묘인 두고 관리
중국이 집안시 고구려 무덤들을 세계 유산으로 신청하면서 내놓은 목록에는 12 기의 무덤을 고구려 왕릉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흔히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장군총과 태왕릉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보다 크고 오래 전에 만들어진 고구려 왕릉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몇몇 무덤을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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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둘러서 천추총 가까이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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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 가까이 가 보니 무너진 무덤에 자갈들이 잔뜩하고 큰 석재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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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 앞쪽에 유리로 덮어 놓은 곳은 가이드가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
집안시 중심에 있는 국내성 서벽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칠성산 중턱에 커다란 무덤이 보입니다. 칠성산 871호로 불리는 이 무덤의 밑변 길이는 35 m로 장군총보다 큽니다. 국내성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치에 묻힌 것으로 보아 임금의 무덤일 텐데 누구의 것인지는 기록이 없어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칠성산 아래에는 또 이보다 큰 211호 무덤이 있습니다. 한 변의 길이가 무려 71 m로 거대하다는 태왕릉보다 훨씬 큽니다. 안타깝게도 이 무덤의 가운데 부분은 도굴된 것처럼 돌들이 파헤쳐졌습니다. 전문가들은 286년 모용 선비족이 도굴하려다 실패했던 서천왕의 무덤일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무덤 옆에는 무덤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의 흔적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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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은 이미 다 무너지고 자갈들로 덮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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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 중에서 모서리 부분에 일부 대형 호석과 석재들이 남아있는 모습 |
칠성산 211호 무덤 서쪽에는 천추총이 우뚝 서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천추총은 한 변의 길이가 85 m쯤 되는 고구려 최대의 무덤입니다. 천추총은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요. 1998년 필자가 천추총을 연구하러 갔을 적에는 주변에 민가가 꽤 많았는데, 지금은 주변이 깨끗이 정돈되어 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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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서리 정면에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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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으로 돌면서 바라 본 모습 |
무덤에는‘무덤이 오랜 세월 동안 영원히 튼튼하소서.’라는 뜻을 가진 ‘천추만세영고’라는 글자가 씌어진 벽돌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처럼 무덤이 영원히 튼튼하게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지키는 사람(수묘인)을 두고 관리하기도 했지요. 한편, 천추총 주변에서는 건물 터가 발견됐습니다. 아마도 수묘인이 생활했던 건물이거나 무덤에서 제사 지낼 때에 사용하던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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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으로 돌면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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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돌아 본 압록강 방향에 석재나 밑바닥에 조금 남아 있을 뿐 3면은 거의 허물어 진 모습입니다. |
●훼손된 무덤은 역사의 교훈으로
천추총보다 더 서쪽에 자리한 서대총은 고구려 무덤 가운데 가장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한 변의 길이가 55 m인 서대총은 높이가 7 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무덤도 한 가운데가 깊숙이 파헤쳐져서, 그 안에 돌들이 남쪽으로 약 20 m 정도 쏟아져 나와 있습니다. 만약 훼손되지 않았다면 무덤의 높이는 더 높았겠지요. 한눈에 보기에도 도굴범의 소행이 아니라, 군대 등을 동원한 대규모 도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무덤을 342년 모용 선비족에 의해 시신이 파헤쳐진 미천왕의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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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을 한 바퀴 돌아서 나오면서 장군총의 3배 가까이 컸을 천추총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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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피라밋이라는 장군총은 광개토대왕릉에 비해서 크기가 반만 합니다만, 천추총은 한 변의 길이가 85미터라고 합니다.
우측의 장군총과 태왕릉의 비교 그림으로 장군총의 3배 크기였을 천추총의 크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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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추총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멀리서 돌아 본 모습과 장군총과 태왕릉 크시 비교 그림(인터넷 사진) |
고구려 사람들은 칠성산 211호 무덤이나 서대총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 놓은 듯 합니다. 한편, 이 무덤들 외에도 압록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한 임강총을 비롯해 우산하 2110호ㆍ마선구 626호와 2110호 등은 태왕릉과 함께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기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 고구려 왕릉들이 이제 더 이상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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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지역과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벽돌이다. 태왕릉과 천추총에서 출토되었다.
각각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 영화구년삼월십일요동한현도태수령동리조(永和九年三月十日遼東韓玄-太守領-利造)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뜻은 '무덤이 천추만세토록 영구히 튼튼하라'와, '동진 모제9년에 요동·한·현도군을 관할하는 태수 동리가 만들다'이다. |
중국 집안 천추총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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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노란핀이 서대묘이며, 우측의 노란핀이 천추총입니다. 하단은 압록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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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중국 집안 권역이며, 노란선은 조중 국경인 압록강입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 위치를 구굴어스로 표시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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