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38) - 가난한 지게꾼의 아낌없는 베풂
황금물결의 들판을 갈무리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부산한 오후, 산책 중 도리깨질에 열심인 촌로 곁으로 다가갔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농촌에 머물 때 서툰 지게질과 도리깨질 하던 옛날을 회상하며 자연스레 옮겨간 발걸음, 도리깨를 건네받아 한 두 차례 깻단을 내리치며 농촌시절의 추억을 되새겼다. 거름통을 메고 가다 엎질러 낭패를 당한 일, 면사무소에서 배급 받은 밀가루가 힘에 부쳐 한 포 내려놓고 가까스로 지고 온 일들이 떠오른다. 농사에 소질이 없던 소년은 다음 해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이후로 지게를 지는 일 등과 작별하였다.
도리깨질하는 촌로, 벼를 벤 논에는 비둘기들이 떼로 몰려 먹이를 찾는다
며칠 전 정기 구독하는 월간 잡지 샘터(11월호)를 읽다가 수십 년간 지게질로 생계를 잇는 산골 촌부의 기사를 읽고 크게 부끄러웠다. 그 내용은 이렇다.
‘마지막 설악산 지게꾼의 아낌없는 사랑
한창때엔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던 길이련만 등산로 초입에 들어선 뒤에도 지게꾼 임기종(62) 씨의 얼굴엔 좀처럼 흥이 비치지 않는다.
“설악산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열여섯 살 때부터 예순 두 살이 된 지금까지 지게질을 하고 있으니 지금도 설악산 골짜기며 봉우리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해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비선대(600미터)까지는 열다섯 번, 그보다 훨씬 먼 흔들바위(3,7킬로미터)까지도 하루 대여섯 번을 왕복하며 짐을 나른 걸요.”
평생을 지게질로 버틴 산골 촌부, 이빨도 성한 것 없이 빠졌다
우연히 마주친 어느 암자 스님에게 며칠 후 짐 나르는 일을 도와달라는 예약까지 받아놓고도 임 씨의 얼굴엔 여간해 수심이 가시질 않는다. 그게 다 일감이 없는 걱정이다. 한때 삼사십 명을 헤아리던 지게꾼들이 가뭇없이 사리진 지금, 설악산엔 요즘 마지막 남은 지게꾼 하나 건사할 정도의 일거리도 찾기 힘들다. 이 나이 지긋한 지게꾼을 고정적으로 불러주는 데는 매달 초하루, 초사흘 제를 지내는 울산바위 계조암 한 곳 뿐이다.
“80킬로 넘는 짐을 지고 계조암까지 2킬로미터 남짓한 산길을 오르는데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려요. 짐삯은 예나 지금이나 40킬로 기준 2만 원으로 정해져 있어 따로 흥정할 것도 없습니다. 그마저도 지게 일이 없으니 평소엔 건물 철거 현장에 막일을 나가기도 하는데 일거리가 많지 않아 집에서 노는 날이 부지기수예요.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집안도 어렵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머슴살이부터 목공소, 자전거포, 철공소 점원, 목욕탕 때밀이… 배운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몸만 성하면 할 수 있는 지게꾼 일을 소개받은 덕에 늦게나마 장가도 가고 아들도 낳고 그랬죠. 아들한테 장애만 없었어도 좋았겠지만 그것도 다 타고난 팔자인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설악산은 한 해 약 300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라 지게꾼이 많던 곳이다. 휴게소에서 등산객들에게 파는 생수, 막걸리, 얼음, 간식거리를 비롯해 120킬로그램이 넘는 업소용 냉장고나 40킬로그램들이 가스통, 수행자들이 먹을 쌀가마니까지 인력으로 져 날라야 했던 그때를 임씨 역시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로 기억할 뿐이다. 숱하게 넘어지고 깨져가며 배운 지게질이었다.
임기종 씨는 현재 보증금 180만원, 월 임대료 8만 원 짜리 허름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정신지체에 언어장애, 거동까지 불편한 아내와 단 둘이 산다. 16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 58킬로그램에 불과한 단구의 지게꾼에겐 정신연령이 예닐곱 살 정도인 아내와 그보다 더 심각한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이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은 오래 전에 장애인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올해 서른여섯, 다 자란 10대 아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된 그는 결국 강릉에 있는 장애인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고 지금껏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살았다. 아니 어쩌면 아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깨우치게 됐으니 전화위복이었을지도 모른다. 25년 넘게 숙제처럼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있는 그만의 특별한 자선활동이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들을 그곳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나만 편하게 살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어서 그냥 못 오겠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와 과자를 잔뜩 사서 트럭에 싣고 시설로 되돌아갔더니 같이 있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내 것을 나누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진다는 걸 말입니다.”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죄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수입의 90퍼센트를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결코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금껏 자선활동에 쓴 비용이 1억여 원을 넘었지만 아들을 향한 속죄의 마음은 가슴 속에 묵은 빚으로 쌓여만 갔다. 그의 한 달 수입은 70만 원.
“있는 사람들은 손에 움켜쥐고 내놓을 줄을 모르고,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물질이 안 따라줘서 못하는 게 봉사인 것 같아요, 남들은 이해 못한다지만 나는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오랜 세월 말없이 그를 지켜본 설악산은 뭐라고 위로해 주었을까. 가슴 한편에 옹이처럼 박힌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지난 주말(10월 20~21일) 고향에 다녀오던 길에 광주에 들러 30여년 출석한 교회를 찾았다. 교우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담소를 나누고 식사도 같이한 후 조그만 선물도 안긴다. 요양원 안에 있는 작은 교회는 해마다 명절을 맞아 인근의 기초생활 보호대상자 수백 명에게 간단한 선물을 전달한다. 금년 추석 선물은 고소한 참기름과 볶음깨 한 세트, 도움을 받는데 익숙한 시설의 어른들도 이웃에 베풀 수 있음을 실천하고자 시작한 것을 수십 년 째 이어오는 전통이다.
고소한 참기름과 볶음깨, 우리네 삶도 참기름처럼 매끄럽고 깨소금 쏟아져라
성서는 이렇게 교훈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언 19장 17절)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꾸어준 설악산 지게꾼 임기준 씨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