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했던 1952년 이태리 UN 군 참전우표-증정시트에러(색도빠짐)
아래의 흥미우표는 1952년에 발행된 UN군 참전 기념우표중 이태리군의 참전을 기념하는 우표의 증정시트 에러(국기의 초록색 색도빠짐)입니다.. 사실 이태리군은 16개국의 병력파견국은 아니었고, 5개국의 의료지원단 지원국(노르웨이, 인도, 스웨덴, 덴마크,이태리)중에 하나 였지요.. 800명의 의료지원단중 이태리에선 74명을 파견했었습니다.. 1951년 10월16일 그들을 태우고 이태리의 나폴리를 떠난 배는 부산항에 한달뒤인 1951년 11월16일에 도착한 후, 의료지원 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적은 인원의 파견 같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전후 사회복구에 한창 고생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당시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국가로서 전쟁국의 실상에서 정말로 필요한 의료지원을 결정하고, 의료 지원단을 보내준 것은 참 감사할 일 인것 같습니다....

참전군 기념우표는 1951년 9월 15일에 처음 병력지원국 16개국의 참전을 기념하기위해 각 2종씩 발행 (총 32장) 했다가, 5개 의료지원국의 참전을 기념하여 1951년 10월 25일에 5개국, 각 2종을 발행하여 전체가 42장의 series 를 갖는 당시로는 대단한 기념우표의 발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리의 국기가 잘못 도안된 것을 알고 다시 3차로 1952년 2월10일에 (신)이태리 참전우표를 발행하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총 21개국(구/신 이태리, 44종))...이러한 엄청난 종류의 기념우표발행은, 당시 참전군인들중 상당수가 우취(우표수집 및 연구)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등의 우취선진국 군인들의 진지한 요구가 있었고, 이를 우리 정부가 흔쾌히 수락 한 것이지요....^^ 혹시, 전시때 자신들의 나라국기가 그려진 기념우표를 손에 들고, 고향의 친지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 듯한 참전군인들이 미소들이 보이나요?... ^^
이때 위의 모양의 증정용 시트(창구판매용이 아니고 증정용)도 별도로 발행하여, 정부요인 및 외교사절들에게 증정을 하였답니다.... 위의 증정용시트는 그렇게 발행되었던 신이태리 증정시트에서 국기에 있던 초록색 색도가 빠진 에러시트입니다...귀한 편에 속하는 것 중에 하나죠...^^

윗 그림의 증정시트는 신이태리 증정시트의 발행 전에 있는 구이태리.... 국기도안이 잘못되서 발행된 처음발행때(1951년 10월25일)의 문제의 증정시트입니다.... 국기도안에 왕관이 있죠... 사실 이 국기는 전장에 참여하여 용맹을 떨치던 이탈리아왕국의 해군기(Royal Marine) 였지요...이태리의 국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왕관이 빠진 첫 번째(맨 윗그림)그림의 이태리국기를 도안으로 하여 (신)이태리 참전 우표로 발행하였고요...
그런데 문제는 재발행된 이 신 이태리국기(왕관빠진)도 사실상 이탈리아왕국의 국기지, 당시 이탈리아 공화국의 국기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1946년 6월19일 이후로 이탈리아는 공화국이 되었고, 공식 국기는 윗 그림에 있듯이 십자가 모양의 방패도 없다는 것이지요...^^ 1951년 10월 25일 처음 발행된 의료지원단 참전기념우표의 이태리 국기는 이탈리아왕국의 해군기였고, 이어서 수정해서 1952년 2월10일에 부리나케 재발행한 신 이태리우표의 국기는1946년 6월 18일까지만 사용되었던 이탈리아왕국의 국기였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고 우표는 다시 발행해야되고.. 처음이 잘못되었다니.. 놀란 마음에 서둘러 다시 찍은 우표의 국기마저 참전국 이탈리아 공화국의 국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큰 문제 제기는 없었던 것 같더군요... 일단 그래도 다시 찍은 것이 군대국기가 아니고, 1946년 까지의 나라(이탈리아왕국)의 국기였기도 한 셈이고.. 또, 국기그림의 오류라는 같은 이유 때문에 3 번씩 이나 같은나라의 우표를 재발행한다는 명분도 갖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아무튼 1951년 혹은 1952년 당시에는 분명 이태리국기는 위의 그림과 같이 왕관도 없고 십자가 방패도 없는 공화국 국기가 이태리 국기 였다는 것입니다... 전시라는 상황과.. 감사의 뜻의 조급한 재발행, 또 이태린 병력 파견국이 아니고, 74명의 의료지원단만 파견한 의료지원국이었다는 사실등등이... 이 오류를 덮고 간 것 같네요.. 정말 마음이 급했던 것 같네요....^^

그래서 만약 4차(3번째 이태리 국기도안)로 다시 이태리 우표가 재발행되었다면 나올듯한 증정시트를 만들어 본 것이 위의 그림입니다... 이탈리아공화국의 정식 국기는 윗 그림과 같이 초록과 흰색 그리고 빨강색의 bar 로 만들어진 국기를 사용하고 있랍니다... 각각의 색은 그 순서서대로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고 하기도 하고, 이태리의 아름다운 국토(초록), 알프스의 눈, 정의 평화의 정신(흰색), 애국의 뜨거운 피(빨강)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윗 그림은 한국전 때 우리를 도와 참전한 참전국들과 우리와 교전한 교전국에 관한 자료입니다... 참전국중 16개 병력지원국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히딩크의 네덜란드, 2002 월드컴 4강으로 널리 알려진 형제국 터키뿐 아니라, 태국(타이), 이디오피아, 필리핀, 그리이스,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벨기에, 이디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보입니다....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봅니다... 우리에게 그들의 젊은 '피'로 그들의 삶을 내어준 사랑을 실천한 고마운 나라들입니다...^^..
특히 우리의 우방인 미국의 경우, 13만7천여명의 사상자(전사 및 실종등, 4만 5천여명)가 있었지요... 윗 그림 맨 왼쪽 위의 실체봉투는 미국 조오지아에 사는 친지가 부산(APO 59)에 있는 참전군인 Bruce A. Cumming 씨에게 1953년 12월1일에 보낸 편지의 뒷면입니다.... 수신인인 참전군인이 부산에 없어서.. 그를 찾느라 10여개 이상의 군사우체국을 전전했다는 증거로 보이는 소인(cancellation)들이 보입니다.. 마지막 소인은 1954년 1월12일 일본의 요코하마 도착인이군요.. 저끝에 있답니다.... 아마도 12월 1일에 보냈으니,., 추운 겨울을 맞고 있을 참전미군에게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던것 같네요...그리고 두장의 크리스마 씰(노래하는 아이)이 보입니다.. 전 이 두장의 크리스마스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옵니다....이역만리, 전혀 모르는 낯선 땅에, 낯선 사람들을 위해 온 그들의 추운겨울이 보이고.. 멀리서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이 두장의 크리스마스 씰에 묻어서 전해오는군요.....
몇 주전 우리는 6.25 를 보냈습니다.. 한국전 당시 아들과 같이 참전하고, 그 아들을 이 전쟁에서 잃은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편지에 있는 글이 생각이 납니다.... "...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낯 선땅, 낯선 곳에서, 고통당하는 낯선 사람들을 '벗'이라 부르며 내놓은 참전군인들의 삶에, 그들의 사랑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귀한 자료 잘 보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내용도 좋고 자료도 좋고 연구심이 대단합니다.
대단한 자료군요...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자료와 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글 잘 봅니다. 저렇게 연구하고 글을 써 보는 것 멋져보입니다. 저도 한분야에 대해서 연구하고 글 써보고 싶네요. 아직 실력은 멀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