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내 친구는 말만 하고 행동이 없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친구는 최소한의 자기 책임도 하지 않고 남의 덕을 보려는 사람을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쁜 사람으로 본다. 남을 위해 베풀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용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돈을 더 쓰거나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의 눈으로 보면 나는 기준 미달인데 왜 나를 싫어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 놀아줘서 그런가?
남을 위해 작은 봉사는 하되 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가 나는 좋다.
심도학사의 벗나무 전지하러 그와 같이 가서 오전 동안 일을 했다. 심은지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제법 굵어 길을 막을 정도로 컸다. 앞으로 5년만 더 지나면 벗꽃이 정말 이쁘겠다. 그렇게 몇십년 지나면 나무는 점점 크고 선생님도 나도 가겠지. 심도학사 주변에 온갖 나무를 심는 길선생님이 다시 보였다.
석도현 화가 전시회에 다시 갔다. 석화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부인 봄봄님,
사고로 30대에 한쪽 눈을 다쳤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는 석화가.
그들이 내가저수지 옆에서 봄봄 국수집을 하며 정답게 사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와 나는 자주 그 집에 간다.
사람은 가난하다고 불행하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석화가 부부를 보면 늘 소박한 행복이 느껴진다. 석화가의 그림은 밋밋할 정도로 너무도 평화롭다. 그림 몇점이 팔렸는데 이웃사촌 한 분은 형편이 넉넉지도 않은데 그림을 샀다. 나는그림 살 형편은 안되고 그림 산 분에게 밥 한끼 대접할 수는 있다.
6일
조은산님이 식사 대접한다고 해 길선생님과 외포리에 새로 생긴 방랑식객 임지호님이 하는 호정이라는 식당에 갔다. 음식이 좀 비싸긴 했는데 정갈하다. 식사후 임사장과 한 시간여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지가 밥이다등 여러 책을 쓰신 임사장의 요리 철학과 그림 얘기를 들었다.
음식은 기다림과 그리움이란다. 간장이든 된장이든 김치든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 먹는 맛을 아는 것이 우리 음식이고 아기 때 엄마 젖을 빨고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기억하며 어머니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맛을 찾는 그리움으로 자신은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작업실에 가니 수백점의 그림이 있다. 따로 누구에게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다는데 뉴욬 전시회를 비롯해 20여회 개인전시회를 했다고 한다. 그림이 박진화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놀랐다. 불교와 무속에 관심이 많다 하고 뭔가 체험한 얘기를 하셔 앞으로 또 뵙기로 했다.
산마을고 야학
금년 마지막 강의라고 풍물시장 닭집에서 튀긴 토종닭 한마리 사갔다.
오늘의 주제는 잘사는 것. Well being, Well living,
잘사는 겻이 뭔지 자유토론을 했다. 아이들 말이 산마을고에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얘기는 많이 듣는데 실제로 뭘 하고 먹고 살지에 대한 대비는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세상에 먹고 사는 일처럼 중요한 건 없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 사는 것처럼 불쌍한 인생도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폭 넓은 독서와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후에 직업 준비를 해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 중 동엽이는 이미 몇개의 요리사 자격증을 땄고 민서는 제빵 자격증을 땄고 용우는 강화의 목수 양선생에게 목공 개인지도를 받고 있다.
아이들의 꿈과 고민을 들으며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한학기 나랑 공부하고 고맙다며 뭔가 쪽지에 한마디씩 적어 주어 읽어보니 한학기 즐거웠다며 내년에도 꼭 오시란다. 아이들에게 너무 아첨하며 가르친 것인가? 선생님이 좋다며 포옹하는 아이도 있어 흐뭇했다. 이 나이에 이런 복을 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7일
어제부터 청문회 한다고 재벌들이 줄줄이 나와 국회위원들의 호통을 듣고 있는 걸 보니 통쾌하기도 하고 그들의 하나마나한 답변을 듣고 있자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60억원 재산이 8조로 늘었는데도 세금은 거의 내지 않은 삼성그룹 이재용. 최순실 딸에게 말도 사주고 대통령과 독대해 수백억 바치고 청탁도 하고 국민연금 담당자와 만나 몇천억원 이익을 챙기고도 자기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이들에게는 그리도 인색한 재벌총수. 이런 사실이 밝혀져도 그런 자를 구속하지도 않는 나라. 이게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나라인가? 우리는 언제쯤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자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하나 쫓아내봐야 도로 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