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자사랑
십자가를 안테나로!
지난 연초 아주 추웠던 날 저녁에 저의 모친이 계시는 요양원 같은 방에 계셨던 104세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불효자클럽(남보원 즉 남자 보호자 위원회) 아저씨들과 문상을 갔다가 장례식장에서 뜻밖에도 저의 고등학교 동창 K군을 만났습니다. K군은 깜짝 놀라며 제게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자네가 이곳에 왠일이야?”하며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저와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기 어릴 때 할머니가 무척 자기를 사랑했었다고 할머니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저도 “최근 요양원에서 수년 간 모친 식사수발을 들면서 어릴 적에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만 받기만 했었지 한번도 외할머니의 식사수발을 못했던 것이 몹시 아쉬웠는데 같은 방에 계시는 자네 할머니의 식사수발을 가끔 해드리면서 자네 할머니를 통해 마치 천국에 계시는 나의 외할머니에게 보답해드리는 것 같아 나도 무척 기뻤다네....”하며 저도 저의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그 친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참고로 지난 2003년에 쓴 저의 글과 최근 개봉된 일본영화 '토일렛'과 이라크 영화 ‘바빌론의 아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외할머니에 관한 추억들>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저의 외할머니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느님 아버지’보다 ’하느님 할머니’가 더 자연스럽고 와닿는답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지요... 저희 외할머니는 성 우세영 알렉시오의 직계자손으로서 무척 신심이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저희 7남매를 사랑과 희생으로 잘 길러주신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1. 할무이요, 왜 하필이면 내만 깨우능교?
할머니께서는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미사를 가셨습니다. 그런데 혼자 성당에 가시지 않으시고 저희 중에 늘 한명을 대동하고 가시려고 새벽녘에 아직도 저희들이 곤히 잠들어있는 방에 오셔서 "애들아, 성당가자!"라고 하시면 저희는 서로 성당에 안가려고 마치 미꾸라지가 숨듯이 이불 속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이불 속에 손을 쑥 넣으신 할머니 손에 늘 잡혀나오는 것은 항상 저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할무이요, 왜 하필이면 내만 깨우능교?(할머니, 왜 하필이면 저만 깨우십니까?"하고 불평하며 성당에 가게 되어 결국 새벽미사 복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2. 구세주이신 할머니
어릴 때 매일 밤마다 저희는 술취하신 아버지의 훈화를 무릎을 꿇고 앉아 듣고 자야했는데 그때마다 저희들이 불렀던 성가는 "구세주, 빨리 오사~"였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할머니께서 저희 옆에 앉으시며, "아범아, 이젠 됐다. 그만하고 애들을 재우려므나.", 그러면 아버님께서, "아이, 장모님이 왜 오셨어요? 이제 곧 재우겠어요."하시며, 곧 "해산!"을 시키셨습니다.
3. 기도서가 잘 안보인단다...
할머니는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저희에게 늘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애들아, 이 기도의 글씨가 작아 잘 안보이니 좀 읽어다오." 그러면 저희가 마지못해 읽어드리면 "이것도..., 저것도..."하시며 결국 조과, 만과를 함께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4. 예수, 마리아, 요셉!
할머니는 가끔 침을 맞으셨는데 그 통증을 참으시면서 늘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저희도 옆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마치 우리가 침을 맞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예수, 마리아, 요셉!"을 합창하곤 하였답니다. 그후 저도 힘들고 아플 때,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5. 희생적인 할머니
할머니는 저희 7남매를 위해 늘 헌신적이셨습니다. 예를 들면 과일을 먹을 때도 항상 당신은 껍질만 드시고 저희에겐 항상 맛있는 부분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먼저 하늘나라에 간 동생 마태오가 길에서 과일껍질을 주워 "할머니, 이거 먹어..."하며 주시자, "그래, 마태오야, 네가 제일 착하구나."하며 쓰다듬어주시기도 했었답니다.
6. 아, 아, 할머니...
할머니는 상이군인이신 저희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당신 딸을 주셨지만 한번도 그것을 원망이나 후회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를 가끔 울리실 때도 말입니다. 고 3때 몸이 아파 휴학을 하던 시절 저는 밤마다 되풀이 되는 아버지의 집합과 기합을 피하기 위해 가출하여 동인천 부근의 오부자 식당에서 몇 개월간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통종합영어와 수2정석’만 싸들고 무작정 가출한 저는 당시 새마을 지도자 대회 등에 나가 성공사례를 발표하시던 아버지처럼의 자수성가를 꿈꾸며 하루하루 힘든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저를 겨우 찾아낸 작은 할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급히 서울로 가시다가, "식당에 주민등록증을 맡겨 놓고 왔다"는 저의 말을 듣고 저를 소사의 외삼촌댁에 잠시 맡기셨습니다. 당시 치매에 걸려 저를 거의 못알아보시는 외할머니방에 저를 들어가게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밖에서 문을 잠그고 급히 동인천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달동안의 피곤한 객지생활 탓인지 그냥 외할머니 곁에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한참 자다가 어떤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껴 눈을 떠보니, 할머니께서 제게 이불을 덮어주시고 묵주기도를 하시며 저를 환하게 웃으시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저도 모르게 마치 돌아온 탕아(루가15,11-32참조)가 아들을 눈이 빠져라하고 기다리던 아버지 품에 안긴 것처럼, "아, 아, 할머니"하고 할머니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후에도 몇 번의 가출(총 4번의 가출^^*)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때 저를 만난 후 며칠 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기도와 사랑의 눈길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또다시 외할머니 품에 안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 외할머니 우막달레나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아멘. 가브리엘통신
<영화 ‘토일렛’>
늘 같은 색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정적만이 감도는 미국의 모 연구실에 출근하여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레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고가 로봇모델을 수집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게 문제 많은 남매,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일본에서 온 외할머니가 짐(?)처럼 남겨진다. 설상가상 혼자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많은 가족들과의 예측 불가능한 동거가 시작된다.
한편 레이의 집안은둔형 외톨이인 형 모리는 공황장애로 피아노연주를 하면 구토를 하고 또 제멋대로인 여동생 리사의 막말로 인해 레이의 평온했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색까지 자기들과 다른 수상한 외할머니까지! 이러한 외할머니의 정체가 끝내 미심쩍은 레이는 몰래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수집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는데 그는 실수로 할머니의 머리카락 대신 여동생 리사의 머리카락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리사가 자기 여동생이 아니라는 걸 알고 놀라는데, 형 모리는 그에게 “리사가 아니라 오히려 네가 우리집에 입양된 거란다. 너의 친엄마가 죽고 네가 몹시 울고 있을 때 우리 엄마가 네게 로봇인형을 주었더니 안 울게 되었고 그때 네가 입양된 것이다...”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모리는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죽은 엄마가 사용하던 재봉틀을 배우게 되었고 첫작품인 치마를 만들어 직접 입고 피아노발표회에 출전하게 되고 리사도 외할머니의 출전비 지원도움으로 손기타 연주대회에 출전하며 차츰 착한(?) 여동생으로 변화되자 레이는 고가 로봇모델을 사는 대신 외할머니를 위한 고급 변기를 사게 된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레이가 어렵게 마련한 고급 변기를 한번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엄마가 계시는 하늘나라로 떠난다..
<영화 ‘바빌론의 아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라크 남부지역에 바스당에 끌려갔던 전쟁포로들이 아직도 생존해있다는 소식이 어느 날 전해지자, 12살 꼬마 아흐메드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12년 전 실종된 아빠를 찾아나서게 된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아빠를 만난 본 적 없고 할머니에게 양육된 아흐메드는 할머니와 함께 꿈에도 그리던 아빠를 찾는 여정이 정말 힘들기만 하다. 그런데 아흐메드가 좌절하지 않고 희망으로 할머니와 힘든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신화로 전해지던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볼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과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렵게 찾아가는 곳마다 시체발굴지만 있었고 또 폐허가 된 감옥에는 전쟁포로들이 한 명도 없자 할머니는 크게 낙담하여 손자 아흐메드를 데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발굴된 시신을 운반하는 긴 차량행렬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자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자 아흐메드에게 자신의 아들이자 그의 아빠 시신이라도 꼭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픈 몸을 이끌고 발길을 돌려 황량한 시체발굴지를 계속 전전하다 결국 트럭위에서 사랑하는 손자 아흐메드의 절규속에 숨을 거둔다...
<말씀에 접지하기; 2티모 1, 5>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