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라는 2012년 임진년, 이 의미 있는 새해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꿈을 위해 달리고 있는 두 젊은이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격투기 국민남매라 할 수 있는 UFC의 ‘코리안 좀비’ 정찬성과 더 칸의 대표 여성 파이터 임수정이다. 올해 흑룡처럼 비상하겠다는 꿈을 꾸며 달리고 있는 두 선수의 삶과 꿈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 보자.
'파이팅 뷰티' vs '코리안 좀비'. 인터뷰를 위해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앉았다. (사진 : 도현석 작가) |
Round 1. 격투가로서의 삶
필자: 반갑다. 일단 ‘격투기 국민남매’란 호칭이 어떤가?
정찬성: 사실 형제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웃음) (옆에 있던 임수정은 진지하게 정찬성의 목을 조르려 한다.)
필자: 새해를 맞아 네이버 매거진 S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성&여성 격투가인 두 분의 삶과 꿈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나누어보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일단 둘의 어린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정찬성: 지극히 평범했다. 공부만 못했을 뿐 특별한 것 없었다. 초등학교 때 짱이었다는 것 정도? (웃음)
임수정: (정말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정말? (곧바로 웃으며) 에이, 근데 사실 초딩들 싸움이래봤자 어느 한 쪽 코피 나거나 울면 끝나는 거잖아.
정찬성: (웃으며) 맞아 누나. 어쨌든 짱이긴 했는데 중학교에 가니 키가 크지를 않아 계속 졌다. 하지만 지더라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근성은 있었다. ‘내가 그래도 초딩 때는 짱이었는데.’란 중딩의 자존심이었다고 할까? (웃음) 그렇게 싸움을 자주 하긴 했어도 지금처럼 격투기 선수로서 살 줄 은 꿈에도 몰랐다.
임수정: 나 역시 굉장히 평범했는데, 다른 여자애들과 다른 점이었다면 한 살 많은 오빠와 늘 어울리며 축구나 야구 등을 늘 따라했다는 것이다. 남자애들이 보통 하는 모든 활동을 같이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자: 오,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운동 신경이 있었으니까 오빠가 소위 ‘끼워 준’ 것 아니겠는가?
임수정: 음, 운동 신경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뛰는 건 잘 했다. 단거리는 잘 못했고, 장거리에서 강점을 보였다. 중학교 때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해 3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수십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상품으로 준다는 얘기에 혹해 교내 마라톤 대회에 출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땐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문화상품권을 위해. (웃음)
필자: 하하, 그렇게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인생을 바꾼 격투기를 만나게 된 건 언제인가?
정찬성: 고등학교 1학년 때 킥복싱에 입문했을 때다. 실전에 가장 가까운 게 킥복싱인 것 같아 친구와 함께 체육관을 찾았다.
임수정: 난 고등학교 2학년 말 때 킥복싱 도장을 찾았다. 영원한 스승인 이기섭 관장님의 체육관이었다.
필자: 둘 다 좀 재능이 있었나? 시작하자마자 선수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정찬성: 아니다. 관장님께 칭찬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시합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느새 시합에 나가 이겼고, 어느새 사람들이 날 선수라 부르고 코치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웃음)
임수정: 처음에 이기섭 관장님은 내게 잘하긴 하는데 선수로 뛸 만한 재목은 아니니 지도자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엄청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난 특히 스파링을 할 때 마음이 약해 상대를 잘 못 때렸다. 그래서 스파링 시간이 무섭기까지 했다. 상대를 때린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래서 관장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에 결국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필자: 격투기를 시작한 후의 학창시절은 어땠나?
정찬성: 난 고 2 때 공부를 완전히 포기했다. 격투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포기했다는 게 좋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전의 난 아예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였다. 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 지도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운동 때문에 삶의 목표가 생겼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운동을 한 후 비로소 대학교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운동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서. 그래서 대학을 이종격투기 학과로 진학했다.
임수정: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는 하지만 뭔가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게 사실일 건데, 나도 그랬다. 그런데, 찬성이처럼 나 또한 운동을 하게 된 후 목표가 생겼다. 학교에 다니며 운동을 한 번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용인대학교까지 오게 된 것 같다.
필자: 하지만 격투기 선수를 진로로 택한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특히 무명 시절엔 다들 정말 배고프고 가난한데, 주위 사람들은 대학을 가든 취업을 하든 뭔가 안정적인 인생을 사는 걸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럴 때 힘들지 않았나?
임수정: 당연하다. 특히 여자 격투기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다. 남자들이 활동하는 UFC나 K-1 같은 큰 무대가 없지 않나. 경기가 잡히면 훈련 때문에 다 잊을 수 있지만, 끝난 후에는 그 다음에 대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정찬성: 당연히 주위 사람들을 보면 불안해지곤 했다. 특히 친구들이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 (웃음)
필자: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격투기 선수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곤 한다. 작은 대회사에서 지급하는 파이트 머니로 일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도 어려운데, 운동도 챙겨서 해야 하니까. 무명 시절엔 생활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
정찬성: 뭐, 말도 못 한다. 난 완전 거지였다. (웃음) 체육관에서 먹고 자고, 우리 팀 하동진 감독님 댁에서 며칠 자다가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가, 정 안될 때는 텐트 치고 자고.(웃음)
하지만 솔직히 그런 건 힘든 게 아니다. 돈 못 벌고 배고픈 건 괜찮다. 격투기 선수로서 제일 힘든 건 다름 아닌 부상이다. 이제까지 무릎, 허리, 목, 손목 등 안 다친 곳이 없는데, 다친 후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가 제일 힘들다. 특히 센고쿠 시합 당시 무릎 부상을 당했을 때가 최악이었다. 당시 한 달 동안 꼼짝 못하고 쉬어야 했는데, 그 전에는 그렇게 운동을 오래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방 안에서 혼자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라 계속 자신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한 달이 지나고 다시 운동을 조심스럽게 시작해 3주 정도 훈련하고 또 다른 시합에 정신없이 출전했었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랬는지 싶다.
임수정: 난 코를 다쳐 수술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특히 코를 수술하던 순간의 고통,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수술 후 집에서 누워 있는 것도 힘들었다. 물도 잘 못 마셔서 누운 상태에서 물통에 빨대를 꽂아 먹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콧구멍 속에 박아놓았던 솜을 내가 직접 빼버렸는데, 시원하긴 했는데 빼는 과정이 너무 아파서 한쪽 솜을 뺀 다음 ‘왜 콧구멍이 두 개인거야! 이걸 또 해야 되다니!’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조금 상태가 좋아져 누워서 TV를 보는데 갑자기 격투기 중계가 나왔다. TV 속 링을 보는 순간 너무나 오싹했다.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저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이제 선수 생활은 끝인가?’라 자문하며 눈물을 흘렸다.
물론 이젠 다 나았지만, 슬프게도 얼굴이 많이 변했다. 신경 안 쓰려 해도 자꾸 쓰인다. 운동할 때는 생각이 안 나는데, 오늘처럼 사진 촬영이 있으면 너무 신경이 쓰인다. 격투기 선수로서 짊어져야 할 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정찬성: 코리안 탑 팀의 하동진 감독님, 전찬열 대표님 그리고 (서)두원이 형, (정)부경이 형 등 팀 동료들 덕분이다. 그분들은 내가 아무 것도 없었던, 아무 것도 아니었던 시절부터 나와 함께 했다. 시합에 져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때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날 믿어주었던 그들 때문이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임수정: 사실 부상만큼 날 힘들게 하는 게 여성격투기의 열악한 현실이다. 체육관에서 내가 사범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남자 회원들을 가르칠 때 가끔 느끼는 ‘여자한테 뭘 배워?’ 식의 느낌, 정말 비참하다. 그렇게 선수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그런 분위기엔 주눅이 들곤 한다. 그래서 한 남자 관원이 그런 불성실한 태도를 상당히 심하게 보였던 어느 날 관장님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관장님 말씀을 듣고 느낀 게 많았다. “나는 두 손이 없는 장애인인데도 한다. 그런데 두 손이 있는 네가 여자라고 못할게 뭐 있냐. 너 자신에게 절대 한계를 그어선 안 된다.” 정말 내 인생에 큰 의미를 주셨던 말씀이었다. 그런 관장님이 안 계셨다면 절대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 어쨌든 둘 다 모든 역경을 딛고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격투가 자리에 당당히 올랐다. 특히 정찬성 선수는 미국에서 완전 인생역전을 이루지 않았나?
정찬성: 미국 무대 데뷔전이었던 레너드 가르시아 전 당시 미국에서 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UFC나 WEC 관계자들이 다들 프로 의식이 투철하기 때문에 대우는 좋았지만, 날 대하는 태도는 굉장히 무심했다. 동양에서 온 한 원숭이로 보였던 것 같다. (웃음) 하지만 시합이 끝난 후 모든 사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이 세계 최고라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의 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니까 비로소 인정해 주는 걸 보고, 기분도 좋았지만 앞으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팬들도 많이 늘었고, 내 스스로도 좀 익숙해져서 더 싸우기가 편하다.
필자: 임수정 선수는 정찬성 선수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대한민국 대표 여성 격투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작년에는 일본에서 당한 억울한 사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더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그 당시 얘기를 우선 좀 해 달라.
임수정: 독일 시합을 다녀온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난 때였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지도 못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그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거절했지만, 그쪽에서 아무 것도 아닌 가벼운 촬영이라며 너무 부탁을 해서 결국 승낙을 하고 촬영 전날 일본으로 넘어갔다. 사전 미팅에서 그 방송 관계자들은 같이 출연하는 일본 코미디언들은 다들 방송을 잘 아는 베테랑들이니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다리 부상이 굉장히 심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얘기했더니, 계속 걱정하지 말고 가볍게 스파링하는 척만 하면 된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촬영 5분 전 갑자기 방송 관계자가 내게 오더니 스파링 중 상대 개그맨 얼굴을 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아무리 살살 한다고 해도 얼굴 공격을 아예 하지 말라니, 그것도 5분 전에 말을 바꾸어서.......일본의 격투단체인 슛복싱 관계자가 항의를 하자 조금 후 그러면 얼굴을 때리되 ‘살살 때리라’고 했다.
속으로 ‘아, 생각했던 것보다도 정말 살살해야겠구나. 힘 조절을 진짜 잘해야겠다.’며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링에 올랐는데, 영상에서 나온 대로 갑자기 거센 공격이 날아왔다. 공격이 날아오는 순간 ‘이건 진짜다.’란 생각이 들며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어 상대 킥을 막았는데, 이미 다쳤던 부위에 정확히 딱 부딪히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잠시 후 스톱 사인이 나왔고, 일본 슛복싱 관계자가 방송 관계자들에게 이건 약속과 너무 다르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사실 거기서 그만했어야 했는데 그놈의 오기가 문제였다. 다리의 고통을 애써 참으며 링 위에 서 있는데 ‘임수정, 너 이거밖에 안 돼?’란 자책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멍청한 자존심이었는데, 그 오기 때문에 계속 촬영을 진행했던 것 같다.
다 아시는 대로, 그 후 내 출연 장면은 여과 없이 모두 방영되었다. 오죽 심했으면 일본에 있는 내 친구가 보자마자 전화를 걸어 왜 그런 걸 찍었냐고 울먹였을까.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얘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일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필자: 당연히 많은 팬들이 함께 분노하며 임수정 선수를 응원했지만, 이런 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격투기 선수로서 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수정: 맞다. 많은 팬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너무 속상했다. 지난 십 년 동안 ‘격투기 챔피언 임수정’을 향해 달려왔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링 위에서 뭔가 당한 걸로 화제가 되다니, 너무 비참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 관련 기사가 너무 많이 올라오다 보니 결국 그전까지 내가 했던 경기 영상 및 소식들은 포털 사이트 검색에서 밀려나고 내 이름엔 ‘임수정 구타, 혹은 일본인 집단린치’ 등이 연관 검색어로 떴다. 인터넷을 하기 힘들었던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당시엔 길거리에서 누가 임수정 선수 아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얘기했다. 정말 힘들었다.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일본 선수에게 지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말들이 오갈지 무서웠다. 지면 “그것 봐, 저러니까 일본에서 맞고 오지.”란 얘기가 나올 거라 생각하니 잠도 오질 않았다. 시합에 관련된 내 기사가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황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은퇴 생각도 많이 했다.
필자: 정말 힘들었다는 게 말 속에서 뼈저리게 느껴진다.
임수정: 아까 찬성이 얘기와 마찬가지로, 나도 소중한 내 주변 사람들이 챙겨줘서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관장님, 우리 칸 스포테인먼트 식구들, 체육관 동료들 등등. 다들 내가 인터넷을 아예 못 보게 하고, 그 사건과 관련된 얘기가 적어도 내 주변에서만큼은 절대 나오지 못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늘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마음이 비워지고,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경솔했구나. 신중해지자. 참 많이 배웠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들며 좀 괜찮아졌던 것 같다. 주변 분들이 안 계셨으면 아마 운동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런 격려와 사랑과 함께 날 일으켰던 건 이제까지 힘들게 해온 격투기를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내가 격투기 선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 해도 결국 내 인생의 큰 부분을 바친 일인데, ‘임수정 일본 예능논란’만 연관 검색어로 남길 수는 없지 않나. (웃음) 이대로 도망갈 순 없었다. 다행히 이번 경기 승리 영상이나 기사들이 일본 관련 기사들을 많이 밀어내 준 것 같아 안도하고 있다. (웃음)
Round 2. 격투가로서의 꿈
필자: 그러면 둘의 마음속에 있는 꿈, 특히 올해의 목표는 뭔가?
정찬성: 당연히 챔피언이 되는 게 올해 최대의 꿈이자 목표다. 꿈이 뭔가 저만치에 보이는,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자리까지 달려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시아 최초로 UFC 챔피언에 오른다는 것, 생각만 해도 너무 짜릿하다. 챔피언 조제 알도가 비록 완벽한 선수긴 하나, 나는 나대로의 강점이 있다. 만일 싸우게 되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이다.
임수정: 난 이제까지 항상 목표 자체를 내가 스스로 설정하며 살아왔다. 찬성이와는 조금 다르다. 여성 격투기 리그가 남자들의 그것과 달리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요즘 난 크로스핏에 빠져 있다. 크로스핏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로 일한 지 1년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사람들이 운동을 계속하며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신체 능력이 쭉쭉 발전하는 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좋은 선수이자 지도자로서 어떻게 내 자신을 믹스할 지 즐겁게 연구하며 살고 있다. 그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필자: 마지막으로, 두 분과 마찬가지로 작년에 있었던 모든 힘든 일들을 잊고 올해 새롭게 도약하려 하는 분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좀 부탁하고 싶다.
정찬성: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전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격투기를 하며 느낀 것은 진심을 담아 한 가지를 열심히 한다면 결국 보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단, 그 보답의 형태는 다 다르게 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UFC 진출로 그 노력의 보답을 받았고, (서)두원이 형, (정)부경이 형 등 똑같이 열심히 해 온 이쪽 동료들은 다 다른 형태로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한 가지에 집중한다면 결국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임수정: 2012년은 모두가 도전하는 한 해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도전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진짜 몸으로 움직이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요. ‘난 나이가 많아. 난 여자니까.’ 이런 식으로 한계를 긋지 마시고 일단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도전하고 후회해도 절대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 같이 도전하시죠.(웃음)
[돌발질문: 드래곤 볼 용신이 나오면 빌고 싶은 소원 세 가지는?]
정찬성: (싱글벙글 웃으며) 정말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네요. 생각해 본 적조차 없네요.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크로스핏 강남’ 짐이 아예 이 빌딩 전체로 확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임수정: (박장대소하며) 예, 저는 그 빌딩 안이 회원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네요. 확장만 되고 회원이 없으면 큰일이니까요.
필자: 자, 감사 멘트는 거기까지 하시고 (웃음)두 번째부터는 진지하게 말해주세요.
정찬성: 두 번째는 당연히 챔피언이 되는 거죠.
임수정: 음, 저는 저와 제 주위에 계신 사랑하는 분들이 다들 건강하고 행복해지시고, 돈 걱정 없이 잘 살게 되길!
필자: 자 그럼 마지막 세 번째는요?
정찬성: 대한민국 격투계의 부흥!
임수정: 아프고 가난한 아이들이 다 몸 건강히 운동할 수 있게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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