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종(15장)-하나님은 사울이 자신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는데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옛 원수인 아말렉을 철저하게 진멸하는 일이었다(신 25:17-19/출 17:16- 이하). 그러나 사울은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보관해 두었으며, 아각 왕을 죽이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울이 한 일을 사무엘에게 알렸고, 마음에 근심이 된 선지자는 밤새 기도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에게로 나아갔을 때 왕은 그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말했다. 바로 그 때 사울의 죄가 그를 드러내었다. 동물들이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다. 사울은 한 번 더 핑계를 대었다. “그들(백성)이 동물들을 남겨 두었으며 우리(그와 지도자들)는 남은 자들을 진멸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사무엘은 거절당한 왕에게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다. 사울은 초기의 겸손을 잃었다(9:21). 그리고 교만해지고 불순종하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에 반역하였으며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의 불순종을 변상하려고 하였다(21-23절). 그는 행동과는 다른 말을 했으며(15:13), 자백하는 대신 핑계를 대었고(15:15/15:21), 순종하는 대신 제사를 드렸다(22절). 그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문책하는 데 빨랐으나 자기 자신의 죄를 직면하여 판단하기는 꺼려했다.
사무엘이 사울을 떠나려 할 때에 왕은 그의 죄를 고백하였으나 그 고백이 선지자에게 감명을 주지는 못하였다(24-27절). 참된 고백은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고백이란 죄를 뉘우치고 참으로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 사무엘이 돌아서자 사울은 그의 옷을 붙잡았으므로 찢어졌다. 그러자 사무엘은 이것을 왕국이 찢겨져 다른 사람에게(다윗) 주실 것에 대한 예언으로 삼았다. 30절은 사울이 하나님보다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는 좋은 평판을 원하였으나 참된 성품을 원하지는 않았다.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아각을 죽였다. 그러나 이것이 사무엘과 함께. 행한 마지막 일이 되었다. 사울은 그의 가장 좋은 친구를 잃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고, 왕국을 잃었다. 그 후부터는 어두움의 나날이었고 버림을 받은 험난한 길이었으며 그가 죽이기를 거부하였던 그 아말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삼하 1:13)."
삼상 16:1-13
▣ 다윗과 골리앗-사무엘상 16-17장-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의 생애를 공부하는 데 들어섰다. 사울이 육신적인 생활의 상징이라면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영적인 생활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다윗도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이지만 사울과는 달리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구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다윗의 초기 생활을 그린 세 장면을 볼 수 있다.
1. 순종하는 아들(16:1-13)
“내가 사울을 버렸노라.“ 이 얼마나 숙연한 선언인가! 이러한 거절은 아직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 땅의 왕으로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거절을 당하고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접을 받을 수 있으나,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사울이 너무도 위험한 인물이었으므로 사무엘은 베들레헴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한 계획을 궁리해 내야만 했다. 사울의 맹렬한 시기심에 대해서는 22장 18-19절에 한 예가 나와 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도착하여 잔치에 그들을 초대했을 때 다윗은 그곳에 있지 않았고, 양을 돌보며 들에 있었다. 우리는 다윗의 순종과 겸손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 가족의 막내“로서 미미한 위치에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와 여호와께 충실하였다. 다윗의 생애는 마태복음 25장 21절을 예증한다. 그는 종으로 시작하여 왕이 되었다. 몇 마리 양에 충성을 다하자 전체 나라를 물려 받았다. 그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알았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기쁨을 주셨다. 이 사람과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비교해 보라. 그는 지도자로 출발하여 종이 되었고, 많은 것으로 출발하여 가난하게 끝내었으며 기쁨으로 출발하여 노예로 끝을 맺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은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비결을 요약해 주고 있으며 이것이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증명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상기시켰을 때는 사무엘이 육신의 재능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려는 순간이었다(잠 4:23 참조). 들에서 호출을 받고 다윗이 나타나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검지 않았으며 피부가 희었고 머리칼은 붉었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헌신적인 마음은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여덟번째 아들이었으며 여덟이란 수는 새로운 출발의 수이다. 기름이 그에게 부어지자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다윗이나 그의 가족은 그 날 있었던 기름부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사무엘은 물론 적절한 때에 다윗에게 그것을 설명했을 것이다."
삼상 16:14-23
2. 겸손한 종(16:14-23)
참으로 비극적인 대조이다. 성령이 다윗에게 임하였고 사울에게서는 떠났다. 하나님은 악령이 사울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고 그는 때때로 미친 사람같았다(18:10/19:9 참조).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의 종은 능숙한 악사를 초청하여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사울의 종들이 원인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고 증세를 치료하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사울의 죄악된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왕은 그 후에 “기분이 좋아졌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평화였을 것이다. 종들은 사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권고했어야 마땅하다.
다윗은 바로 사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들 중의 하나가 그를 추천하였다. 우리는 이미 다윗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선전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고 계셨다(잠 22:29/잠 18:16/벧전 5:6 참조). 너무도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날 자신의 가정에서 사소한 일들로 자신을 먼저 입증해 보이지 못하고 영원한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려 한다. 다윗은 궁전으로 왔으며 즉각적으로 인기있는 사람이 되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음을 알았다면 그 젊은이를 즉각 살해했을 것은 물론이다. 사울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다윗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며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그를 추격하였다.
다윗은 계속적으로 궁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17장 15절은 “그러나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먹이기 위하여 사울을 떠나 돌아갔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필요할 때 궁정에 초청을 받았으나 가정에서의 자기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얼마나 겸손한가 ! 재능있는 젊은이이며, 왕이 되도록 선택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양을 돌보며 종으로서 일하고 있다 !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