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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함께 기도하자!' 하였고 우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데즈먼드 투투(Desmond Mpilo Tutu), 노벨평화상 수상자 & 남아공 성공회 대주교
'절기'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어떠한 의미있는 사건과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즉,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교회에서는 여러 절기들을 논의하고 제정하여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지키고 있는 절기 중에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기독교 정신에 합당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과연 이것이 교회의 절기로서 적합한지 의구심이 드는 절기들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추악한 미국인들의 명절입니다.
왜일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패권을 장악한 이들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진실을 왜곡시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만을
남기며 기득권의 지배논리를 타당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교회사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하나님과 마음 합한자'(사도행전 13:22)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부정적인
면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 합한자 였지만 동시에
살인자였고 (사무엘하 11:14-27)
분륜을 저지른 분륜남이었으며 (사무엘하 11:2-5)
인구조사를 감행함으로서 백성들을 죽인 어리석은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하 24:10-15)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의 트랜드처럼 자리잡은 것이 '긍정의 힘', '긍정의 말', '긍정적인 생각'
입니다. 물론 이것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만 평가할 순 없겠지만 성경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두 가지 모두를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한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모두를 봐야합니다.
어느 한 쪽만 취사 선택하여 그것만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신앙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인물과 무수한 사건에 대하여
좋은 점은 모델로, 좋지 않은 점은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교회에서 지켜오던 절기인 추수감사절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추수감사절은 우리가 지킬만한 절기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추수감사절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1620년경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메이플라워(Mayflower)
라는 배에 오르게 됩니다.
기나긴 항해 끝에 배에 탔던 절반의 인원이 죽게되는 고난을 겪으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미국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의 플리머스(Plymouth)였습니다.
겨겨우 살아남은 청교도들은 혹독한 겨울과 기아를 이겨내고 교회를 세우며 농사를 짓고 첫해 추수한
농산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디언들과의 교류가 있었고 서로
우호적 관계를 맺음으로 감사와 평화의 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교회가 이를 기념하고 기릴만한 절기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추수감사절의 이면에는 지배층었던 백인들에 의해 왜곡된 엄청난 비극이 숨겨져있습니다.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것처럼
안정적인 기반이 갖춰지게 된 청교도들은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수 많은 유럽인들은
인디언들이 살고있는 땅에 눈독을 들이고 강제로 땅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약탈' 그 자체였습니다.
순순히 자신의 삶의 터전을 내놓을리 없는 인디언들은 강하게 저항하였고 이에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발달된 총구와 화력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규모면이나 방법적인 면에서도 대대적인 학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는 이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고유 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지만 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도인'으로 착각했던 유럽인들의 무지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때문에 어떤이들은 이 단어의 의미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뜻이 내포
되어있다고 생각하여 좋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제 멋대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약탈하며 학살을 저지른 백인들
이들 대부분의 종교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기독교'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을 당시 초창기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았던
청교도들은 이를 앞장서거나 지지하거나 혹은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슨
미신을 따르는 이교도와 같은 인디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땅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죠 결국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병원균을 원주민들에게
옮기게 되는데 이는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면역력이 없었던 수 많은 원주민들이 죽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살과 전염병 가운데 살아남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정해 놓은 '인디언 거주지'
로 강제 이송을 당하게 되고 이 구역을 벗어나거나 허가없이 백인들 지역에 들어오면 처벌을 받도록
하는 치욕스럽고 차별적인 정책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만행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기독교인들은 매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러쉬모어 산'(Mount Rushmore)으로 알고 있는
미국 사우스다코다(South Dakota) 주에 있는 대통령의 얼굴들입니다.
좌로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루즈벨트, 에브라함 링컨 순서로 원래 이곳은
'블랙 힐즈'(Black Hills)라고 불리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던 성산이었습니다.
대대로 원주민이 성스럽게 여기던 성산에다가 백인들은 자신들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대통령의
얼굴을 새겨 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미국 대통령들은 가끔씩 위대한 신앙인으로 포장되어 교회의 설교시간에도 언급되는
인물들이지만 이들 중 단 한명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약탈과 학살에 대하여 반성과 성찰을 했던 인물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링컨 대통령은 흑인 노예해방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적대적
입장을 취였고 그가 군복무 시절 인디언 토벌대에서 활약한 사실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산발적으로 지켜오던 추수감사절이 정식으로
미국의 국경일이 된것은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 의해서입니다.
이후 토머스 제퍼슨 때에 잠시 폐지되었다가 에브라함 링컨 때에 남북전쟁 이후 화합을 위한 정치적인
수단으로 다시금 국경일로 선포되고 1941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에 이르러 매월 11월 네번째
주의 목요일로 지정하게 된것이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한 지금까지의 역사를 극단적인 예로 이렇게 비유해 보겠습니다.
조선시대 한국 땅에 조선 사람들이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일본 사람들이 침략해 들어옵니다.
한국에 쳐들어온 일본 사람들은 여기가 중국 땅(?)인줄 알고 '조선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제 멋대로 '짱깨'라고 비하하여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조선 사람들은 어린 아이부터 임산부까지 다 죽여버립니다.
더불어 전염병까지 퍼트리고 경복궁이니 광화문이니 전부 불살라서 없애버립니다. 살아남은 조선인은
조센진 거주지역 또는 짱깨 거주지역을 정해 놓고 강화도 같은 섬이나 경상도 혹은 전라도 변두리에
모두 몰아놓고 밖으로 나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종교인 신도(神道)를 조선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거부하면 죽이거나 불이익을 줍니다.
또한 한반도 전국 각지에 신도의 예배당이라 할 수 있는 신사(神社)를 세워놓고 매년 추수 때가 되면
자신들 신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로 신사참배를 드립니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런 일이 만약 우리가 당한 일이라면
이것이 우리가 체험하고 겪었던 일이었다면 과연 어떨까요?
이런 일이 실제로 미국 땅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의식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는
민족적인 트라우마가 되었고 뼈속 깊이까지 사뭍힌 한 맺힌 날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975년 부터 매년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반(反)추수감사절 행사를 열고
과거 백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무참히 죽임당한 조상들을 추모하며
"추수 감사절이 아니라! 추수강탈절이다!"라고 적힌 플랜카드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민낯이자 본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추수감사절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초창기 청교도들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자는 취지는 이제 교회 안에서만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하고 성탄절 처럼 본래 의미는 퇴색되어버린 세속화, 상업화된 놀고 먹는날
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또한 11월 넷째주 목요일의 다음날인 금요일에는 주말과 맞물려 연휴 기간으로 쉬는 곳이 많습니다.
특히 이 기간은 연말인데다가 한 해 미국에서 가장 소비가 많은 날이여서 미국에서는 이 날을
'검은 금요일'(Black Friday)로 부르며 본격적인 성탄절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모든 소매 업체들은 파격 세일을 하여 매출을 올리고 2013년에는 이 날 하루에만 10조원에
이르는 돈을 소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언제부터 지키게 되었을까요?
한국교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수감사절을 논의하게된 것은 1904년경 부터입니다. 다만 미국과 다른점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고난을 겪었던 청교도들이 추수에 대한 감사를 드린 것과는 달리 한국교회의
감사 취지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풍요가 아닌 영적구원에 대한 감사를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 제정 논의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같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문제에 대해 한국인 목회자 중 어느 누구도 미국 선교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의제기 하였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후에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 날짜를 미국 선교사가 입국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선교사 입국일에 맞추어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하게 됩니다.
때문에 이전까지 공적인 교회 절기로서 특별한 감사의 날을 제정하여 지켜오고 있지 않던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을 제정하는 과정에 있어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지켜지게됩니다.
근래에 이르러 일부의 교회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추수감사절을 '한가위'의 일정과 맞추어
10월로 앞당기거나 또는 수요일이 아닌 주일로 변경하고 성경적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 구약의 절기인
'맥추감사절'을 차용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과 방식으로 감사절을 지켜오고 있으며 어떤 교회의 경우는
아예 미국식 전례를 거부하고자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한가위 감사절'이나
'추석감사절'과 같은 독자적인 한국식 명칭을 사용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추수'에 감사하십니까?
농작물 수확에 대한 감사가 마음속으로 부터 우러나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계십니까?
'추수'라는 개념은 과거 농경사회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산업화, 도시화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직업이 '농부'가 아닌
이상 최소한 동네 텃밭이라도 가꾸어 보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추수'라는 개념은 피부에 와닿지 않
는 개념입니다. 과거 인간의 주요생필 매개가 '농산물'이었다면 지금은 한 마디로 화폐인 '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름을 바꿔야 솔직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월급감사절? 또는 연봉감사절? 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돈'에 대한 표현을 왜 쓰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매년 추수감사절 때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설교시간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한 해동안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러나 이 멘트는 불과 한달만 지나면 송수영신예배 때 또 써먹는 멘트가 아닙니까?
추수감사절예배 때 드린 감사는 무엇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송구영신예배 때 드릴 감사는 또 무엇입니까?
모든 교회가 그런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빙자하여 수 많은 한국교회들이 대대적으로
헌금을 걷는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핵심은 '돈'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끔찍한 탐욕의 역사가 담긴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어느새 한국교회에 들어와 마치 전통인냥 자리잡게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추수감사'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성도들의 헌금걷는 날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좋은교회는 헌금의 입출금내역과 거래내역을 모든 성도들에게 공개하고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적잖은 교회들이 '돈 문제'에 있어 수 많은 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 헌금의 금액이 어느정도이며 그것이 누구의 의사에 의해 어떤 용도로 쓰여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단언컨데! 오늘날 다수의 한국교회 헌금운영 시스템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고 투명
하고 깨끗하지 못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성도들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 나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다"고 말씀
하는 분도 계시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러한 무관심적인 태도가 목회자의 타락을 충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반드시 고민해 보셔야합니다.
모두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극히 일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성도 중에는 폐휴지를 줍고, 어떤 성도는 비정규직으로 밤낮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고하여 모은 돈을
성도들은 여러가지 제목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 부활감사, 추수감사, 성탄감사, 송구영신감사, 건축헌금, 선교헌금 기타 등등 온갖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담아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린 그 헌금으로
어떤 목회자들은 '목회 활동 보조비'라는 명목으로 고급차를 구입해 끌고 다니며
성지순례와 선교지 방문, 해외집회라는 명목으로 관광에 가까운 해외여행을 하고 다닙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돈 문제'로 뉴스와 신문을 장식하는 삯꾼 목자들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물론 한국교회에는 돈 문제에 있어서 청렴하시고 깨끗하시며 훌륭하신 목회자 분들도 분명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탐욕적인 목회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추수'에 대한 감사가 있다면, 밥상 위에
놓여진 밥이 식탁 위에 오기까지 수고한 농부들에게 최소한의 고마움이 있다면
'추수'라는 단어를 예배앞에 붙이며 교회에 '추수감사예배'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는다고 한다면
지금, 한국의 농부들
쌀개방 문제로 인해 "못살겠다! 죽겠다! 도와달다!" 소리치고 통탄하며 하소연하는 한국의 농부들
이분들의 탄식 소리에 적어도 교회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외면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아픔을 교회가 돌아보고 위로해 드리고 손잡아 드리며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 때마다 한국교회의 수 많은 건물과 강대상은
농부들이 땀흘려 지은 농산물로 치장되고 장식되어 꾸며집니다.
그런데 그 농부들이 지금, 쌀 개방 문제로 인해 "못살겠다! 죽겠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아예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시위를 벌이는 농부들을 향하여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비난을 쏟아 붇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추수감사절이 단순히 미국의 추악한 역사가 담긴 절기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들을 반성하고, 성찰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우리 예수님의 피 뭍은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에 새긴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추수강탈절이다"
최민영 기자, 2005, 경향신문
"미국 추수감사절 기원의 진실","미국 추수감사절에 숨겨진 비극의 역사"
강희정, 2007, 뉴스M
"추수감사절 감사의 날인가 통곡의 날인가?","당신은 비극의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안맹호 북미 원주민 선교사, 2009, 뉴스M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James W. Loewen, 2010, 휴머니스트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강준만, 2013, 인물과 사상사
"장로교회사 전휘집(長老敎會事典彙集)"
Charles A. Clark 미국인 선교사 (한국명 '곽안련' 郭安連), 1918, S. A. Moffett
첫댓글 아 모르고 그 대열에서 열을 올렸군요 ㅜㅜ ㅠㅠ ㅜㅜ
좋은점은 모델로,좋지 않은 점은 반면교사로...
제대로 알고,
이제라도 돌이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