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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1:15~19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24. 10. 27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입니다.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31일은 무슨 날일까요? 미국에서는 할로윈 데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잊혀진 계절’을 생각합니다. 이날 제일 바쁜 사람은 가수 이용입니다. 이용의 날입니다. 이용가치가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날은 종교개혁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가 당시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전통과 관습으로 변질된 가톨릭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신앙개혁 운동을 일으킨 날입니다.
이날 비텐베르그대학의 교수인 마르틴 루터는 학교 정문에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밝히려는 소망으로 아래와 같이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성명서에 관해서 대학 안에서 토론하고자 합니다. 토론 장소에 참석할 수 있는 분은 문서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토론을 제안하고 토론할 내용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잘못된 것이 한 두 개도 아니라 95개입니다. 95개나 되는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은 당시의 교회가 그만큼 부패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상태임을 알게 합니다. 오죽했으면 95개나 지적하면서 토론하자고 했겠습니까?
개혁의 '혁'은 '가죽 혁'입니다. 혁신이란 말을 씁니다만 개혁은 '가죽을 벗어내다, 껍질을 벗다. 굳은살을 도려내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종교개혁은 혁명과도 같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중세시대의 교황의 권세는 황제의 권세보다 높았기 때문에 그 권세에 도전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목숨의 위협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가 황제 앞에서 그동안 쓴 책이나 글을 철회할 수 있는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Here I stand.” “나는 여기서 한 발걸음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갈래 길에서 함께 간 친구가 루터인 척 변장하고 가다가 살해당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아마 그 시작은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교회구성원인 목사와 장로와 성도, 즉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는 곧 우리의 책임이요,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개혁의 대상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입니다. “내 탓이오.”라고 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에 제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멀리서 오면 양과 염소를 끌고 올 수 없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와서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서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내 것 사라고, 더 싸게 주겠다고 흥정하게 되고 환전상도 생기게 되고 성전 안에까지 밀고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던 성전이 마치 시장과 같이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채찍을 만들어 양과 비둘기를 내쫒으시고 환전상을 엎으셨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은 당시 이들의 잘못된 행위를 보시고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내쫓으시고 둘러엎으시고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개혁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뒤엎고 새롭게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개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다시 새롭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소위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여 세련되지 못한 우리의 스타일을 개혁해야 합니까? 교회 안에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를 도입하여 변화를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세상보다 앞서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개혁입니까? 사실 우리에게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도리어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개혁입니다. 교회의 개혁은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을 고치는 것이며, 잃어버린 본질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며, 본연의 사명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복이 곧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면대로 짓고 있는가를 따지고 잘못 되었다면 다시 헐어서라도 그대로 지어야 하듯이 우리가 성경에 비추어 성경대로 짓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이 공장을 지을 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77년 8월 중 상당한 자금을 들여 공정률 80%에 달하던 건물의 부실을 발견하고 서슴없이 폭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국의 백년대계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은 폭파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폭제다”
1.우리는 먼저 복음 진리에 대한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이 복음 되고 진리가 진리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정하신 것은 죄 값은 사망이기에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양과 소가 대신 죽게 되었다는 상징과 예표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 없는 어린 양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우리 위해 대신 죽음을 당하여 죄를 속할 것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약의 모든 제사가 예수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입니다. 율법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 받는 진리는 새로운 법, 곧 믿음의 법입니다. 이전에는 행위의 법, 의식이었다면 이제는 믿음의 법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새로운 법이요, 곧 복음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구약의 예법을 따르려 하고 자기의 선행을 앞세워 구원받으려는 거짓교리로 은혜와 믿음의 법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구원, 이것이 진리입니다. 엡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루터가 목숨을 걸고 개혁을 부르짖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의 로마 카톨릭은 인간의 선행의 분량대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영혼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죽은 자들을 위해서도 헌금을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두려움과 의무감에 짓눌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쁘고 행복해야 할 예배가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배가 형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드림이 어린아이처럼 아버지 앞에 나아가 기뻐하며 뛰노는 것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며느리가 시부모 앞에 나가는 것처럼 야단맞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가 두려운 종교의식으로 변절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점점 진리에서 벗어났습니다. 복음에서 벗어났습니다. 세상과 연합하여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잘못된 것도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고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고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한 것입니다. 복음 진리를 회복하려고 싸웠던 것입니다. 이 싸움을 우리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 곧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아무나 물건 가지고 다니는 자들을 허락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씀은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주인의 명령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내 집, 곧 하나님의 집이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나의 주인, 나의 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왕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주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주인 되어 주님을 손님으로, 종업원으로 대접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 성전 안을 정결케 하시고 제 자리를 찾게 한 것처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계실 자리도 제 자리를 찾아 드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 곧 성전이라 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도 주인의 자리, 중심에 앉으시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주인되심, 이것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3. 교회가 교회되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의 존재 목적, 교회의 사명,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구원, 즉 전도의 사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가치는 아이나 노인이나 병든 자나 건강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야 쓰임에 따라 가치를 달리 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금 연봉 150억을 받는 손흥민이나 여러분이나 영혼의 가치는 동일합니다. 어린아이의 영혼도 동일합니다. 연봉은 몇 백 배 차이가 나지만 영혼의 가치는 동일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이 영혼을 구원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 마28: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교회가 이 명령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명령을 놓은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이곳이 곧 땅 끝이라 생각하고 이 지역에서,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만민, 즉 누구나 와서 기도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당은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민족,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누구나(만민) 와서 기도할 수 있는 집이자 누구를(만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가 끊이지 않는 교회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4. 끝으로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 처음 행위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계2장 1절 이하에서 에베소교회가 책망 받은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변한 것입니다. 주님 위해 살겠다는 그 마음, 주님 사랑만 있으면,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다던 마음이 어느새 변질되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하던 고백이 변질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보다 세상 명예와 권세와 재물과 영광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살펴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한 대로 우리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려면 처음 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했습니다. 촛대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더 귀하게 쓰임 받도록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500년 전에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어도 그것이 완성되거나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개혁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개혁이 계속되려면 우리의 정신이, 열정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바로 따르겠다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각오와 결단으로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함께 세워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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