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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게시판 스크랩 1620.09.16 영국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 영국 출발
정성기 추천 0 조회 126 14.02.14 14: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620.09.16  영국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Mayflower) 영국 출발

 

 

 

 

 

 

1620.12.21   미국 도착 :  http://blog.daum.net/gjkyemovie/11354752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미국 건국의 선조?
메이플라워호, 네덜란드에 살던 35명의 청교도 등 102명을 태운 채 영국 플리머스 항구 떠나(1620.09.16)
-매일신문, 2011-09-16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3216&yy=2011

 

 

 

1607년 104명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밟는다. 신대륙에 이주해 온 최초의 유럽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건국사에 기억되지 않는다.

 

부랑아, 범죄자, 빈민들이기 때문. 대신 미국 건국의 선조 자리는 13년 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도착한 청교도 순례자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가 차지한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이야말로 자유`신앙`개척이라는 미국 건국 이념과 부합하는 캐릭터들이었다.

 

1620년 오늘 메이플라워호는 네덜란드에 살던 35명의 청교도 등 102명을 태운 채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떠난다, 청교도들의 신대륙행에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당시 네덜란드는 종교활동이 자유로왔기 때문. 네덜란드 말이 서툴러 생계가 곤란하던 청교도들이 개척 노동자 모집 소식을 듣고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실은 것이다.

 

66일 간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혹독한 추위와 괴혈병으로 승객 중 절반이 죽는다. 기아에서 그들을 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다. 원주민들은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주고 평화 협정도 체결한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백인들의 개척사가 원주민 잔혹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매일신문

 

 

 

 

메이플라워[ Mayflower ]

식민지 미국 역사에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를 태우고 영국을 떠나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에 도착한 배의 이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항해하는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버나드 그리블이 그린 그림

 

이들은 1620년 뉴잉글랜드에 최초로 식민지를 세웠다. 배의 원래 모습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해양고고학자들은 무게 약 180t 정도에 길이 27m인 횡범선(橫帆船)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필그림 가운데 일부는 ' 스피드웰호'를 타고 네덜란드에서 왔다. 이 배는 '메이플라워호'보다는 작은 배로, 메이플라워호가 8월 15일 잉글랜드의 사우샘프턴에서 첫 출항을 했을 때 같이 출발했다. 그러나 스피드웰호가 항해를 견디어내지 못하고 2번씩이나 항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결국 1개월 뒤 메이플라워호가 스피드웰호의 승객과 물자 일부를 싣고 단독으로 항해에 오르게 되었다. 이 배의 승선한 사람들 가운데 유명한 인물로 윌리엄 브래퍼드와 마일스 스탠디시 선장이 있다.

 

' 런던의 모험가들'이라는 영국 상인들에게서 전세로 빌린 메이플라워호는 거센 바다와 폭풍으로 인해 정착허가를 받은 버지니아 지역에 도착하지 못했다. 대신 66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21일 현재 매사추세츠의 프로빈스타운이 된 케이프코드에 일단 상륙했다가 성탄절 다음날 102명의 정착민들을 플리머스 지역 근처에 내려놓았다. 이 배는 이듬해 4월까지 항구에 계속 정박해 있다가 영국을 향해 떠났다. 영국은 1957년에 이 역사적인 메이플라워호의 항해를 기념해 메이플라워호의 복제품을 만들었으며, 이 배는 53일간의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에 도착했다.

 

 

 

필그림 파더스[ Pilgrim Fathers ]

미국 역사에 있어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구 식민지가 된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1620).

 

메이플라워호 갑판 아래에서 메이플라워 서약에 서명하고 있는 필그림 파더스(1620. 11. 11), 카버, 윈스턴, 앨든, 마일스 스탠디시, 하우랜드, 브래드포드, 앨러턴, 풀러를 비롯한 사람들이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102명의 정착민 중에서 35명이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일찍이 네덜란드의 레이덴으로 피신했던 영국 분리주의 교회 성원(청교도 급진파)이었다.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찾고자 했던 이들 분리주의자들은 아메리카로의 '순례'(pilgrimage)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런던의 한 주식회사와 협상을 했다. 메이플라워에 승선해 아메리카까지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 중에서 2/3가량은 이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비분리주의자였는데 존 올든과 마일스 스탠디시 등이 그들이었다. 이 최초의 정착민들은 처음에는 '올드 카머스'로 불렸다가 나중에는 '포어파더스'로 불렸으며 '필그림 파더스'[巡禮始祖]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들이 도착한 지 2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이것은 '순례자'로서 네덜란드를 떠났던 '성인들'에 대해 언급한 총독 윌리엄 브래드퍼드의 원고가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1820년에 행해진 200주년 기념식에서 웅변가 다니엘 웹스터가 필그림 파더스란 용어를 사용했고 그후에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메이플라워 서약[ ―― 誓約, Mayflower Compact ]

1620년 11월 21일(구력 11. 11)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메이플라워호'의 승선자들 가운데 41명의 남성들이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에 상륙하기에 앞서 조인한 문서.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있는 메이플라워 2호(Mayflower II)의 복제 선박

 

이 서약은 일부 승선자들이 일행에서 이탈해 자기들 뜻대로 정착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루어졌다. 메이플라워 서약에 따라 서명자들은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 통일체로 결속되었으며, 뒤에 어떠한 법률과 규정이 제정되든지 이를 모두 따르기로 약속했다. 이것은 헌정문서는 아니었으며, 다만 통상적인 교회의 신앙서약(covenant)을 세속적인 상황에 적용한 것으로 뒤에 플리머스 식민지 정부의 토대가 되었다.

 

 

 

/네이트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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