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한국영화 다시 보기
- Reviewing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in 1950s and 1960s-
김소희 Kim Shjee / 영화평론가 Film Critic
1950~60년대는 흔히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우선 이전 시기, 즉 한국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1920년대 무렵부터 해방과 6.25에 이르는 시기의 영화들이 거의 필름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간접적인 원인 외에도 이때 한국영화사를 대표할 만한 거장들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한국적인 영화 미학의 원형이 수립되었으며 다양한 장르들이 선보임으로써 명실공히 한국영화사의 황금기를 이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글은 영상자료원에 필름이 소장된 1950~60년대의 우리 영화 가운데 필자가 접할 수 있었던 소수의 작품들을 스케치하는 가벼운 에세이가 될 것이다.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이만희 등 한국영화사의 4대가로 불리는 감독들의 대표작 외에도 그다지 흔히 언급되지 않는 몇몇 영화를 포함시켰다.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은 드물게 남아 있는 1940년대 영화라는 희소성 면에서 우선적인 가치가 있다. 1950~60년대 영화들이 6.25 전쟁과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평지풍파를 겪은 한국 사회를 다각도로 반영함으로써 동시대 영화의 출발점을 이룬다면 이 작품은 그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한국적 감성을 뛰어난 기량으로 포착함으로써 이제는 사라진 한 시대를 우리 눈 앞에 생생히 재현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1950~60년대 영화의 정체성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전거가 된다.
어머니의 사정으로 인해 절에 맡겨진 소년과 그 아이를 양자로 입양하고 싶어하는 젊은 미망인(최은희)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아이를 되찾고 싶어하는 생모, 소년을 엄하게 훈육하려는 주지승의 심리적 갈등을 깨끗하고 차분하게 풀어냈다. 그 감정적인 깨끗함 때문에 오늘날의 영화가 얼마나 폭력과 섹스, 물신주의, 정서적 황폐함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되비춰 준다. 일본의 동보영화사에서 수업한 윤용규 감독의 데뷔작으로서 동보조의 느낌이 살아 있는 섬세한 여성 멜로드라마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법/상징계와 대립하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을 수 있다.
<양산도>(김기영, 1955)는 김기영 감독의 초기작으로서 언뜻 보기에 매우 고졸한 느낌을 준다. 반면 감독 본인은 자신의 대표작으로서 리메이크해 보고 싶은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사가인 이영일은 이를 두고 <양산도>가 김기영 고유의 스타일을 창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서북 지방에 내려오는 민담을 소재로 한 <양산도>는 지방의 권력자가 신분이 낮은 젊은 여성을 성적으로 탐하려 하고 여성이 이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춘향전과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또다른 양반 남성에 의해 구원되는 춘향전과 달리 <양산도>는 민중의 집단적 저항, 기괴하면서도 힘찬 판타지를 포함하는 결말 때문에 매우 이질적인 작품이다. 김기영의 영화 세계가 멜로드라마에서 리얼리즘으로, 다시 표현주의로 변화했다고 보는 이영일의 논지에 따르면 <양산도>는 멜로드라마에서 표현주의에 이르는 전체 궤적을 예시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리얼리즘 영화를 위주로 정전의 계보를 만들고 숭배하는 연구 방법론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한국영화사 연구에 있어서 아직은 불철저한 개념임을 알게 해주는 또다른 작품으로 <돈>(김소동, 1958)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영일이 <아리랑>(1957, 나운규 타계 20년 기념), <오 내 고향>(1959)과 함께 김소동의 향토물 3부작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1950년대 말의 농촌 사회의 문제를 절실하게 다루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풍속관행과 심상, 몸의 움직임 등을 핍진하게 재현함으로써 리얼리즘의 영토 안에 향토성 즉 로컬리즘이라는 새로운 변주를 형성시켰다.
시골농부 봉수(김승호)가 사기 고리대금업자인 억조(최남현)에게 노름빚을 지게 되자 유일한 재산인 송아지까지 팔게 되지만 서울에 가서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다시 이 돈마저 사기를 당한다는 내용이다. 1950년대 후반의 전후 한국 리얼리즘에 소재와 주제를 제공한 것은 대부분 사회적 빈곤이었는데 이 영화는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극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 놓고 있다.
여기서 화폐는 하나의 페티쉬(물신)로 작용한다. 영화에서 봉수는 돈? 물건? 이윤이 붙은 돈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익숙하지 않으며 이것을 매우 신기하게 여긴다. 이를 통해 근대화된 서울이 아직 전근대적인 생산관계와 사회적 정서에 잠겨 있는 시골에 대해 화폐를 매개로 한 수탈관계(사기와 폭력을 동반하는)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 내부에 있는 전근대적 생산관계의 모순이 도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결탁하면서 농촌 내부에 이중의 짐을 지우는 존재라는 사실도 아울러 묘사된다.
<피아골>(이강천, 1955)은 반공영화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산 속에 고립된 빨치산 패잔병들의 비인간성과 지리멸렬함, 그룹 내부에 있는 지식인의 회의적인 시선을 다룬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와 캐릭터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관습적이고 진부하다. 그러나 이같은 패러다임이 수십 년 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한 시대의 요구에 얼마나 탁월하게 부응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반공영화는 흔히 정치성이 강해서 영화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반공영화의 역사를 찬찬히 살핀다면 의외로 흥미로운 범주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공영화는 남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설파하고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한다는 단순 논리의 이면에서, 남북한 공히 동족을 향해 총질했다는 심리적 갈등과 죄의식을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북한을 신경질적으로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족 의식을 강조함으로써(그 유명한 형과 아우 관계의 비유!) 역설적으로 남북한이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계속 상기시켰던 것 같다. 반공영화는 또한 <운명의 손>(한형모, 1954)에서 보는 것처럼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필름 누아르와 결합되기도 했으며 작가의 문제의식과 기량에 따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1963)과 같은 뛰어난 반전영화로 돌변하기도 했다.
<지옥화>(신상옥, 1958)나 <하녀>(김기영, 1960)가 양공주와 식모를 팜므 파탈로 만들면서 남성들의 상상력 속에 들어 있는 여성상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면 <마부>(강대진, 1961)는 반대편에 있는 또 하나의 극단을 담고 있다. 이 시기에 나온 주요 작품들에서 김진규, 김승호, 문정숙, 최은희, 황정순과 같은 배우들이 제각각 중요한 이미지들을 창조하면서 반복적으로 변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마부>는 김승호-황정순의 캐릭터를 전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에 속한다.
말을 끌고 다니며 짐을 나르는 마부(김승호)는 사연 많은 2남 2녀를 데리고 사는 홀아비이다. 큰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주리라는 기대 하나로 사는 그에게 마주(馬主) 집에서 일하는 수원댁(황정순)의 은근한 정이 큰 위로가 된다. 가난하고 선량한 마부에게 온갖 우환이 닥치지만 큰아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수원댁의 도움으로 말까지 소유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아름다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
김승호가 주연한 일련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근대화의 과정에서 도태되고 권위를 잃은 서민 가장이지만 그 아들이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아버지의 상실감은 보상된다. 여기서 수원댁은 두 남성의 성공을 정서적으로 보조해 주는 어머니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려받은 논밭뙈기와 곗돈까지 털어서 마부네 가족을 돕는다. 아버지에서 장남으로 계승되는 가족의 성공을 갈망했던 이 시기의 남성들이 품고 있던 가여운 소망이 아니었을까.
“김승호와 콤비로 서민물의 올드 퀸으로 군림하면서 표현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 황정순은 <육체의 고백>(조긍하, 1964)에 이르면 카리스마 넘치는 모성 가장으로까지 변신한다. <마부>에 대해 한국영화 연구자인 김소영은 근대화/서구화/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인 1960년대 수도 서울의 변화 과정을 민속지적으로 기록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춘향전은 오늘날까지 이십여 차례에 걸쳐 거듭 영화로 만들어지고 그때마다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 중에 백미는 <성춘향>(신상옥, 1961)이다. 이 영화는 늘 같은 해에 동시에 제작된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비교된다. <춘향전>이 <성춘향>에 비해 훨씬 정교한 고증과 우아한 분위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으면서 두 감독의 운명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두 감독이 각자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는 첫 장면에서부터 확연하게 구별된다. 신상옥의 <성춘향>은 광한루에서 놀던 이도령이 방자와 수행 사령들에게 “상하의 구별을 다 치우고 함께 놀자”며 자상하게 술을 권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했다. 반면 홍성기의 <춘향전>은 이도령을 다재다능하지만 권위적인 엘리트주의자로 묘사해 나갔다. 대중들은 민주적인(!) 이도령을 택했다.
신상옥은 또한 변사또와 춘향의 대립이 어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신상옥이 만들어낸 춘향은 역대의 모든 춘향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면서 도도한 성깔을 지녔다. 단순히 수절이라는 봉건적 이데올로기에 목숨 거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권력과 남성권력이 한 몸에 결합된 변학도에게 의식적이고 단호하게 저항하는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이 때문에 옥에 갇힌 춘향이 마치 잔다르크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향단을 비롯한 민중적인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정서와 연대감에 대해서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이는 1960년 4.19를 정점으로 하는 민주주의 혁명 시대에 걸맞는 것이었다.
가부장적이고 부도덕한 권력에 온 몸으로 저항한 여성에게 당대의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으며, <성춘향>은 이후에 나온 춘향 관련 영화에 뼈대와 상상력을 제공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비디오가 아니라 필름으로 보면, 대가의 작품치고는 범작이라는 오해에 휩싸여 있던 이 작품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1950~60년대 영화들이 가르쳐 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4.19와 5.16은 단순히 정치적인 권력 다툼이 아니라 해방 이후 새로운 한국을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 집단적으로 공감되고 있던 두 가지 서로 다른 소망이 겉으로 표현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1960년 전후에 나온 영화들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 4.19 시대의 기운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쌀>(신상옥, 1963)은 5.16적인 근대화 노선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뚜렷하게 표시한 경우다.
상이군인 용(신영균)은 가난하고 척박한 마을을 옥토로 바꾸어 놓겠다는 결심으로 산을 뚫고 강물을 끌어들이는 대공사에 착수한다. 때마침 4.19가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자 농민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정부에 지원을 호소하는데 말만 번지르르 할 뿐 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 5.16으로 들어선 정부는 제까닥 다이너마이트와 군인들을 보내 한 방에 바위를 날려 버린다. <쌀>은 경제적으로 자립해 보겠다는 농민들의 처절한 투쟁에 공감하고 지원해 주는 인간적이고 유능하고 강력한 정부에 대한 소망을 피력한 영화인 셈이다.
군사정부 주도 아래 영화법이 개정된 다음에 만들어졌으므로 시류에 편승하는 측면도 없지 않겠으나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신상옥 감독의 정치적 입장 자체가 당대 관객들로부터 일정한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같은 해에 김기영 감독은 우화적이고 원시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고려장>(1963)을 통해 5.16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면 견고해진 군사정권 체제가 사회심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4.19 시대의 영화들이 간직하고 있던 자신감과 활력 대신 이 시기에 나온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딘가 병적이고 비극적인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정소영, 1968)은 이 같은 경향을 대표하는 멜로드라마다. 이른바 작가주의 색채가 강한 영화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귀로>(이만희, 1967)의 주인공들 역시 심각한 무기력과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전쟁 중에 하반신 불구가 된 소설가 최동우(김진규)는 14년째 휠체어에 의지한 채 생활하고 있는데 그의 소설이 신문에 연재됨에 따라 아내(문정숙)가 인천의 집과 서울의 신문사 사이를 기차로 오가며 원고를 전달한다. 이윽고 아내는 젊은 기자와 사랑에 빠지고 이를 눈치 챈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면서도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집을 떠나려던 아내는 막상 남편이 눈앞에 보이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한다.
심리 스릴러의 기법이 가미된 이 세련된 멜로드라마는 여성의 신체에 아로새겨진 한국적 근대성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잘 보여준다. <귀로>는 또한 여자의 심리적인 방황선을 따라가는 동안 메트로폴리스로 변해가기 시작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상세히 보여준다. 서울역과 광장, 육교, 재즈바 등은 그녀의 욕망이 풀어헤쳐질 수 있도록 근대적인 자유의 공기를 전해 준다. 기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체와 욕망에 대한 관심은 근대성이 가져다 준 새롭고 해방적인 가치이지만 이것은 전 시대의 가치관과 윤리에 부딪혀 억압되고 왜곡된다. 화해 불가능한 충돌은 끝내 그녀 자신의 자살로 이어진다.
신상옥의 초기작 가운데 <꿈>(1955)은 현실과 분리된 일종의 초현실 세계 속에서 설화적인 인생관과 이상적인 미의식을 피력하는 작품 계열의 단초를 이룬다. 이영일에 따르면 이 같은 설화적 세계가 사극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1960년대에 접어들어 원숙한 작가의식과 뛰어난 영화적 테크닉으로 숙성되면서 신상옥의 미학을 대변할 만한 일련의 작품들로 꽃을 피웠다.
<꿈>(1967)은 감독 자신의 리메이크 작이다. 절에서 수도 중이던 조신(신영균)은 지역 태수의 딸 달례(김혜정)를 우연히 만난 뒤 정념을 이기지 못하여 방황한다. 욕망이 거세된 세계에 살던 조신이 달례라는 대상 a를 추구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를 이룬다면, 후반부는 획득된 욕망을 지키려는 집착이 초래하는 갈등을 다룬다. 이 같은 내용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는 조신의 일장춘몽처럼 인생도 한바탕의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피력하는 장치다. 구조적으로 복잡하지만 이 구조 자체가 인간과 우주에 대한 한국적인 인식론에 다름 아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광수의 소설을 오영진이 각색한 것으로,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달라던 수로부인 모티브 등 한국 신화의 원형적 세계를 드러낸다.
이상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1950~60년대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통해 당대 사회를 의미있게 반영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영화사를 연구하는 일은 한국영화 미학의 출발점을 살피고 영상이라는 사료에 담긴 근대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검토하는 길이기도 하다.
영화사 연구의 첫 번째 단계이자 필수 과정은 두말할 나위 없이 보존된 필름을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상자료원은 절대적인 보물 창고인데, 영상자료원 측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리라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필름 아카이브의 출범 자체가 역사적으로 뒤늦었던 데서 오는 자료의 결락, 소장 필름의 보존 가치를 높이고 국내외에 대중화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의 부족이라는 난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뜻있는 기관과 개인이 하루빨리 서둘러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된다.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사회적 자각이 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