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시인들|강병길
맞춤 가구 외
여섯 달 전에 집수리 마친
그 집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수리하면서 설치한 싱크대를
사용할 사람이 있으면 떼어가도 좋다는 연락이었다
어머니는 세 달 전에 작고하셨고
집도 철거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서
쓰실만한 분에게 드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겨우 세 달 밖에 사용하지 못했으나
참 좋아하셨다는 감회도 덧붙였다
훌쩍거림과 웃음이 섞인 통화가 이어졌다
나는 제법 솔로몬의 답신을 보내드려야 해서
맞춤 가구는 그 집의 옷과 같아서
다른 집의 체형에는 맞지 않는다고
그 옷은 그만큼만 입었어도
할 일을 다 했노라고
반려의 이유를 말씀드렸다
새 싱크대를 선물 헸던 딸의 마음과
어머니의 기쁨이 맞춤 맞았던
포근한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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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 순두부집
간판 가게 김사장과 만나면
간판의 수명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물론 간판의 내구성이 아니라
사용시한에 대한 이야기인데
대략 구 할은
짐작대로 진행되는 편이다
의뢰인과 몇 마디 나누어보면
도배장이도 대충 느낌이 온다
식구들 입맛이나 맞춘다고
덜컥 간판을 단 순두부집
싼 재료로 판갈이만 해준 간판집 사장과
싼 벽지로 색깔만 바꾼 지업사 사장이
개업 답례로 순두부를 먹었다
입장이 바뀐 손님으로
둘이 앉아
둘만이 앉아
퍽 오랫동안
퍽 어색하게
섬처럼 떠다니는 순두부를
아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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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길
2011년 시집 『도배일기』를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도배일기』, 『소리가 다른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