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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78 성명: 원 혜 영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유명 사찰을 많이 다녔기 때문인지 누군가 나의 종교를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불교’라고 답하였습니다. 중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원효대사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 주시면서 ‘一切唯心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건방지게도 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을 하니 시어머니께서 불심이 아주 깊으신 불자셨습니다. 좋은 일을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돌리시고, 여러 군데의 절에 다니시며 법명까지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신의 며느리는 초파일에 어머님을 따라 절에 가도 절하는 예법이나 독경을 전혀 모르니 눈치껏 따라 한다고 마음 고생이 여간 심했던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책을 통해 먼저 배우는 습관 때문에 사찰 입문 관련 메뉴얼을 찾아보았으나 쉽지 않았고 열성도 부족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운수사 불교 대학 교재인 ‘아름다운 인연’을 그때 만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아주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될 때, 이를 이겨내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빌던지, 아예 그것에 욕심을 버려서 마음의 평화를 얻던지. 어찌 되었던 노력 없이 절에 가서 부처님께 빌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과 남편에게 큰 일이 있을 때나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어 드리고 싶었을 때는 기도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데 꼭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는 것만이 기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108배와 반야심경 사경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바램으로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바램이 사라지고, 욕심으로 인해 생겼던 불편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반야심경에는 ‘없을 無’ 자가 20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쓰다 보면 웬만하면 바램이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시는 다릅니다. ‘無’자만 적는다고, 없어진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큰 아이 고3 때는 남들 따라서 연고도 없는 절에 ‘수능 100일 기도’를 올리고 나서 낭패를 보았습니다. 집에서 108배와 사경을 하다가 한 번씩 절에 가면 뭘 모르니 눈치 보고 따라 하다가 바보 엄마라는 스트레스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이에게도 미안했습니다.
올해는 작은 아이가 고3입니다. 이번에는 친정 동네이고 어려서부터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운수사에다 ‘수능 100일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월에 남편과 운수사에 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운수사 불교대학 32기’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배우고 익히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신록이 아름다웠던 4월 대웅보전에서의 첫 수업은 약간의 두려움과 경건함, 그리고 꽃샘 추위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 떨렸습니다. 아인 합창단의 청아한 찬불가와 한글 천수경 덕에 거리감이 많이 줄어들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불자의 예절 및 기초 상식에 대해 배우고, 맘에 속속 와 닿는 주지 스님의 법문을 듣는 시간은 그 어떤 배움의 순간 보다 행복했습니다. 특히 휴식 시간 금강다회에서 준비해 주신 차를 마시면서 내다보는 신검당 밖의 아름다운 게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풍경은 일상에 지친 심신에 힘을 주었습니다.
자식에 대해 열성적이셨던 어머니 덕에 우리 4남매는 모든 학교에서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발우 공양 수업이 있던 날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결석을 하였습니다. 비록 개근상은 놓지만 어머니는 천만다행으로 완쾌되셔서 1주일 만에 퇴원하실 수 있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발우 공양 수업은 평소에 늘 해온 식사 때 ‘잔반 남기지 않기’의 실천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초파일 법우들과 함께 한 설거지 울력을 통해 진짜 운수사 신도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화명복지관 수업을 통해서는 나눔과 실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신청 시기를 놓쳐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게 된 영암 월출산 삼사 순례는 좋은 계절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 운영진의 세심한 배려와 완벽한 준비가 어우러진 감동 그 자체의 체험이었습니다. 도갑사와 무위사의 산새와 잘 어우러진 화려하지 않으면서 조용한 분위기와 잘 보존된 벽화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여서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가기 전에 여러 번 들어서 궁금했던 ‘우리 절’ 국신사는 심신의 힐링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현대식 마음 수련원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꼭 한 번 템플스테이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맛난 비빔밥과 수박, 차밭 산책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했지만 추첨 행사에서 끝까지 당첨되지 못한 귀한 행운(?)을 안았습니다. 다시금 ‘無’ 자를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졸업 여행은 기꺼이 가방을 들어주어 내 어깨의 짐을 내려준 남편과 함께여서 더욱 좋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후에 나는 남편과 같이 여행 다닐 수 있다.’에 O표 한 개를 그려봅니다.
이제 토요일 오후 신검당 창호 문 밖으로 보이는 녹음과 새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두 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들이 아쉽고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한 공부와 나 자신의 화두인 ‘無’에 대한 두드림이라 생각하며, 그 첫발을 내딛게 해 주신 유정 주지 스님과 운수사 불교대학 운영진에 감사드립니다.
내 나이 50의 봄은 운수사 불교대학과 함께여서 찬란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6월 32기 사무량심반 원혜영 |
첫댓글 아마도 32기 법우님들은 부처님께서 특별한 상을 주신거 같습니다.
어쩜 졸업 소감문들을 이리도 잘 쓰셨는지 댓글 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이 삶을,생을 살면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부처님과의
만남이야말로 그 자체가 휠링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깨닫게 하는
나누고, 베풀고, 두루하는 신행활동을 해보지 않고서야 어찌 설명이 될까 싶습니다.
좋은인연은 아름다운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으로 우리는 참 행복을 찾아가리라 믿습니다
졸업은 하였지만 시작은 지금부터일 것입니다.열심히 복 지으셔서 행복한 부처님 되십시요.()
거사님과 함께 매주 다정히 수업에 참여하시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부처님의 특별한 상인 듯 합니다.감사합니다.^^*
32기 여러 불자님들을 대표해서 소감문을 읽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편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수선회의 참선 수업에 참가했습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저희가 있음에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깜깜한 산 중의 운수사도 너무 좋았습니다.
구구절절 내용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거사님과 함께 수선회 가입에 축하합니다.
운치있는 운수사 좋은 도량에서 공부할 수 있음에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절에서 자주 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