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봉을 즐겨 찾는다.
도봉(道峰)을 오르면 욕계(慾界)에서 속계(俗界), 속계에서 선계(仙界)로 차츰 들어가는 기분이다.
공해를 벗어나 전철에서 내리면 선남선녀들의 총천연색 행렬이 빼곡히 도봉골로 밀려 드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우리 옛 성현들의 숭고한 얼과 학문의 도를 통해 삭막하고 얄팍해진 삶에 정신적 활력을 주고, 또한 각자 능력에 따라, 심신수련 등반하기에 도봉산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하룻길인 도봉은 성현들이 학문과 도를 연마하던 곳으로 산수와 풍광이 걸출한 자연이다. 영봉들의 정기를 받아 자연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음풍농월의 낭만을 즐기던 도봉, 도봉의 명칭은 성현들이 학문과 도를 연마하던 곳이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성현들이 이곳을 도봉이라 명명하고 고담준론(高談俊論)의 인생을 논하면서 시문담론 음풍농월(吟風弄月)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활기찬 활엽수와 지절 넘치는 상록수를 비롯한 기화요초, 다기다양의 수석, 수정(水晶)같은 계곡수, 장엄 신령한 영봉 등이 조화를 이룬 풍수상 사계(四季)의 절경이다.
우선 도봉 입구에 들어서면 활엽수가 많아 시원하다. 백운목(쪽동백나무),산목련,산수유, 특히 귀한 계수나무 등이 쭉쭉 뻗어 방문객에게 시원한 인상을 선사한다. 또한 도봉산에는 다른 산에서 보기 드문 귀한 야생초들이 많다. ‘개내음, 토끼풀, 겹달맞이꽃, 차즈기, 붉은서나물, 개쑥갓, 유홍초,’ 등 희귀한 야생초가 많아 유현함과 신비감을 준다.
우암 선생님의 도봉동문이란 암석문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저 자운, 만경, 선인 신장께서 호연지기(浩然之氣) 위용으로 대견하다 미소로 손짓한다. 성현들의 도향(道香)과 文香이 어우러진 골짜기의 소쇄한 5월 선풍이 정수리부터 찌릿찌릿 시원히 관장시킨다.
도봉산은 자상하면서 엄격하고, 온유하면서 우람하다.
포대능선과 도봉능선을 주능으로 하는 이 도봉왕국은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후 수 많은 애환과 전설 속에서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해 온 영혼의 산실이며 정신적 지주다. 이 거룩한 도봉산이 디지털 혁명의 물결로 세속화 되어 가고, 심지어 하산 먹거리 주점으로 변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성현들의 도량(道場)이면서, 산수를 희롱하던 시인묵객들의 숨결이 밴 골짜기는 방문객에게 엄숙한 산의 교훈을 묵시로 가르친다.
제일 먼저 도봉동에 들어가면 둥글넓적 회현암(灰玄岩)에 새겨진 우암 선생의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는 암석문(巖石문)이 우리를 경건하게 맞으니, 휘호 앞에서 대유(大儒) 송자(宋子)의 훈향을 느낀다. 우측으로 접어 들면 도봉광윤사 대웅전 가부좌 부처님이 구름처럼 밀려 드는 중생들의 안전 산행을 기원한다. 얼마 가다 우측으로 300미터 가노라면 부처님이 제일 처음 수도하셨다는 녹야원(鹿野苑)이 나타난다. 도봉 주천(主川)을 따라 올라 가면 천년 약수 도봉 석간수가 산행객들에게 감로수 선물한다.
모퉁이 돌아들면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비가 서 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일제 때 우리 민족의 저항과 서민들의 처절한 애환을 되새겨본다.
바로 아래에는 김병주 선생의 ‘북한산 찬가’라는 문학비가 서 있다. “나는 북한산과의 만남을 계기로 인생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내가 겪은 모든 굴욕은 내 스스로 사서 당한 굴욕이란 것을 알았다. 나의 좌절 나의 실패는 오로지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산을 생각한 후 알았다. 친구의 배신은 내가 먼저 배신했기 때문의 결과이고 애인의 변심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의 결과라는 것을 안 것도 북한산 상(上)에서이다.’ 나는 이 글이 너무 가슴에 닿아 오를 때마다 눈도장 찍는다.
우측으로 돌면 도봉서원(서울근교에 하나 남은 서원) 유도문(由道門)이 나타난다. 정암 조광조와 송시열 선생의 유학의 도를 후생들이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앞에서 성현의 가르침을 묵상한다.
우암 등 성현들이 청류천변 암벽에 시문을 수놓으며 잡거니 권커니 담론 하던 침류대(枕流臺)에서는 계절 따라 시회(詩會)가 열렸단다. 침유대에 각인된 우암 선생의 친필 한시를 비롯해 많은 성현 묵객들의 시부(詩賦)가 전한다. <요장현송답잔원(聊將絃誦答潺湲) 제월광풍갱별전(齊月光風更別傳)(우암); 귀기울여 거문고와 노래를 읊조리니, 아름다운 계곡물이 답하네, 비갠 후 달빛은 더 아름답고 바람소리 시원히 불어 오누나. 이 시를 감상하며 옷깃을 여민다.
도봉서원(由道門) 옆 침류대에는 또 文曲 김수향 선생이 정암 선생의 고학덕을 기려 시경(詩經)에 나오는 ‘高山仰止’(학덕을 높은 산같이 우러른다) 라는 문필을 암석에 남겼다. 도 몇 발짜욱 옮기면 門詞洞(글마을문)이란 초서체 암석문이 옥수를 스치며 멋들어지다. 이 글을 보니 아마도 시인묵객들이 이 넓은 바위에 청류를 안주 삼아 시문(詩文)에 취해 날 가는 줄 몰랐으리라. 또 거북바위 쪽으로 오르노라면 절벽바위에 외 글자 휘호가 여러 개 새겨져 있는데 소백정놈 같은 누군가가 탁본한답시고 까맣게 만들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랴.
이처럼 수 많은 글들을 통해 성현들의 덕행을 감읍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도봉산이다.
침류대를 지나, 우측으로 후리후리한 굴참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로 삼림욕 하면서 오르노라면 천축사가 나온다. 천축사 지나자 급경사 해골바위가 암벽의 경종을 준다. 눈이 푹 파이고 이빨 앙상하고 이마가 반들반들 백색 페인트 칠한 것 같은 섬뜩한 해골이 딱 길을 막는다. 해골 명 거역한 무명의 잠든 한 줌 비석이 해골 무릅에 앉아 무상의 비애를 준다. 왕오천축국전을 생각하며 기진맥진 깔딱고개를 한참 기어 오르노라면 마당바위 실로암 생수가 반겨준다. 지친 거미들에게 감로수로 눈뿐 아니라 온 몸을 시원하게 채워주니 이것만으로도 도봉산행은 하나님의 선택된 축복이다.
공룡 발톱 살살 피해가며 철삭을 잡고 수직의 경사를 거미처럼 올라가 신선봉 만장봉 거쳐 자운봉 정상에 앉았다.
참새를 봉황으로 만드는 성소.
인자라야 허용되는 도량.
무장해제한 자라야 허락받는 자리,
보라 저 발 아개 즐비한 백기,
아 이 호연지기 그 누가 알랴.
이 자리 허락해주신 하나님과 도봉 신장께 감사한다. 도봉왕국의 영주 자운봉은 억겁의 침묵 속에 도봉 정기로 한양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신장이다.
자운봉 동북쪽은 포대능선이 사패능선 향해 뻗었고, 남서쪽은 도봉주능선이 우이능선으로 장중하게 뻗어 내려간다. 그 척추 능선으로 갈비능선이 보기 좋게 뻗어 내려간다. 칼바위 능선, 보문능선, 다락능선 망월능선, 사패능선, 오봉능선, 진달래능선 등이 봄이면 청룡능선 가을이면 백두산 호랑이, 겨울이면 백호 능선으로 장관을 이룬다.
도봉은 나무가 술을 마시지만 돌이 취하는 산이라 바위마다 개성 있는 기암이다. 도봉에 오면 남자는 여자가 되고프고 여자는 남자가 되고프다.
도봉산은 조화와 균형을 가장 잘 갖춘 산이다. 삼각산은 골산(骨山)이지만 도봉산은 골산이면서 육산(肉山),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이다. 바위 나무 돌 오솔길 물 등에 성현들의 문향(文香)과 도향(道香)이 짙게 밴 도봉. 안단테와 알레그로가 계절 따라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산이다. 도봉 왕국에 입산하면 누구나 도봉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는 행운을 얻는다.
江流石不轉 上善若山河 묵시로 주신 도봉 문사동이시여
도봉의 식솔로 허락해 주시고 자운 성지 초대객으로 허락하신 도봉신장께 감사한다.
다만,이 거룩한 도봉이 디지털 혁명의 물결로 세속화 되어 심지어 하산의 먹거리 주점으로 변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도봉의 영원한 주인은 도봉이다. 주인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탕아다. 식솔은 순종의 의무만 있지 권리는 없는 법.
도봉 왕국이 건재하는 한, 서울 아니, 대한은 도봉과 더물어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