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의 나라에 이식된 새로운 종교 / 박정은
캐나다불교에 대한 소고
1. 시작하며: ‘빨간 머리 앤’의 고장
캐나다 동부 끝에 자리한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州)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배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여름이 되면 주도(州都)인 샬럿타운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차게 북적이는데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0년대 후반부터 대만 관광객 수가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 관광청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에 연간 58명이었던 대만 관광객이 2010년대 후반에는 3,065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관광지에서 쓴 비용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만 관광객들에게 관광은 부수적일 뿐, 섬을 찾는 진짜 목적은 바로 종교 행사 참여, 그것도 불교 행사 참석이라는 것이다. 대만의 불교단체인 푸지(福智, Bliss and Wisdom)가 2008년 승려 공동체 겸 교육시설을 캐나다의 유서 깊은 이 섬에 세웠고, 무려 450여 명의 비구니들과 500여 명의 비구들이 현재 수행 중이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까지 여름마다 대학교 시설을 대여하여 대규모 불교 행사를 연 것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다른 캐나다 지역보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보수적 지역이다. 캐나다의 많은 대도시 및 중소도시가 이민 인구의 증가로 인해 종교의 다각화와 더불어 기독교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를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일랜드계와 스코틀랜드계 주민들이 주축을 이루는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는 16만의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300여 개가 되는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 교회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대만의 한 불교단체가 보수적인 백인 중심 지역사회에 터를 잡고 비구니 공동체 및 교육 기관인 호지묘음불학원(護持妙音佛學院, Great Wisdom Buddhist Institute)과 비구 기관인 대각불학원(大覺佛學院, Great Enlightenment Buddhist Institute Society)을 세웠고, 현재도 서서히 규모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굳이 불교 시설을 캐나다에 세운 이유에 대해 푸지(福智) 관계자는 캐나다의 ‘다양성과 종교적 자유’ 때문이라고 한 불교 잡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푸지가 아무 연고 없는 캐나다에 불교 시설을 설립하게 된 기저에는, 캐나다가 국가 정책으로 표방하고 있는 다양성 즉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다문화주의는 캐나다 곳곳에서 부지런히 성장 중인 불교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문화주의는 캐나다불교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주원인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다문화주의를 키워드로 삼아 캐나다불교에 대해 포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캐나다불교의 출발은 이민자의 역사에서
여론조사 기관인 앵거스 레이드(Angus Reid)의 2009년 종교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불교가 기독교에 이어 호감도 2위를 차지했다. 57%의 캐나다인이 불교에 대한 호감도를 표시한 것이다. 캐나다에서 불교는 이처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호감도가 높은 종교가 되었고 현재 캐나다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불교사원과 명상센터 등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하지만 캐나다불교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불교도나 불교학자는 드물 것이다. 캐나다에는 다양한 형태의 불교가 존재한다. 하지만 과연 캐나다 내의 불교‘들’(‘Buddhisms’ in Canada)을 캐나다불교(Canadian Buddhism)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캐나다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맥길대학교의 빅터 호리 교수 등 캐나다 학계의 대표적인 불교학자들 또한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불교의 역사는 불교 전파와 맥락을 같이한다. 고대 인도 아쇼까 왕의 포교사 파견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각 나라의 불교사는 포교사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도 종교인 불교가 포교사의 노력으로 낯선 나라에 뿌리를 내려 고대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또한 그 나라 전통문화 및 관습과 어우러지면서 수백 년에 걸쳐 한 나라의 대표적인 종교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캐나다불교는 어떠한가?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자 파견된 포교사들의 노력에서 시작되었을까? 또는 동양의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 불교학자들의 시도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캐나다의 문화 및 사회와 잘 융합되어 성장해 왔는가?
캐나다불교의 역사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고단한 발자취에서 시작된다. 19세기 후반 금광 사업과 철도 사업이 성황을 이루자 캐나다 기업들은 부족한 노동력 수급 방안을 태평양 건너 아시아로부터 찾게 되었다. 1858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프레이저강 주변에 자리 잡은 중국 노동자들이 바로 최초의 동양계 이민자들이다. 1880년대 캐나다 동부와 서부를 잇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라는 이름의 대규모 건설 사업이 시작되자 이민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1891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 이민자 수는 약 9천여 명에 달했다.
대다수 중국 이민자들의 종교는 불교였다. 캐나다의 첫 불교인은 바로 중국 이민자들인 셈이다. 하지만 중국 이민자들은 가족 중심이 아니라 남성 노동자들로 구성되었기에 법회를 준비한다거나 사원을 창건할 세심한 손길이 부족했다. 또한 인종차별 등이 심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들은 눈에 뜨이는 종교 활동은 아예 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정도가 심해, 1875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정부는 중국인 선거권을 박탈하였다. 캐나다 연방 정부 또한 1923년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 이민 배척법을 공포했다. 중국 이민자 수는 많았어도 그들의 종교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의 첫 불교인이 중국 이민자들이었다면, 첫 불교사원은 일본 이민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본 이민자들이 첫발을 디딘 곳은 중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태평양 연안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밴쿠버였다. 1880년대 후반부터 정토진종 신자들이 가정 법회를 열었으며 1905년 일본 교토의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서 밴쿠버로 승려를 파견했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 일본 이민자들은 힘을 합쳐 밴쿠버에 정토진종 사원을 창건하였다. 이것이 캐나다의 첫 불교사원이다. 이후 정토진종은 캐나다에서 꾸준히 도약해 왔으며 현재 캐나다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불교 종파로 큰 영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일본 이민자들 또한 타국에서의 역경의 시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인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캐나다 정부는 1942년 전쟁조치법을 제정하여 일본 이민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법에 따라 대부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캐나다 중부 앨버타주로 강제 이주를 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버타주로의 강제 이주는 캐나다 중부로 불교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앨버타주는 캐나다의 불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초교파주의를 지향하는 불교기관인 캐나다국제불교재단(International Buddhist Foundation of Canada)과 국제불교도우협회(International Buddhist Friends Association)가 앨버타주의 중점 도시들인 캘거리와 에드먼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캘거리대학교는 불교학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앨버타주를 기점으로 하여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다시 토론토와 퀘벡 등의 동부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불교는 캐나다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한편 한인 이민자의 역사는 중국 이민자들 및 일본 이민자들의 역사에 비해 짧고 불교 전파에 대한 영향력 또한 미미하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인 유학생들이 캐나다로 건너왔지만, 이들 대부분은 캐나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유학을 온 경우였고 주로 토론토를 중심으로 거주했다. 따라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었기에 결국 교회 중심으로 종교 생활을 하였다. 이후 한인 교회가 교민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등의 아시아계 이민 사회가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고국의 문화와 전통을 끈끈하게 보존하는 데 반해, 한인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그 역할을 선점했기에 불교는 구석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참고로 정확한 공식적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캐나다에 온 한인 승려는 삼우 스님일 것으로 추정된다. 삼우 스님은 1968년 몬트리올에 도착한 후 1971년 토론토에 정착하여 선련사(禪蓮寺)를 창건했다. 삼우 스님 이외에도 조계종의 광옥 스님이 1976년 토론토에 불광사(佛光寺)를 창건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한편 광역 밴쿠버에는 태응 스님이 통도사 분원인 서광사(西光寺)를 1993년에 건립했고 2002년 캐나다 최초로 한국 전통 목조 건축 양식으로 대웅전을 지었다.
3. 다문화주의와 캐나다불교 인구 증가
1901년 캐나다 인구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전체 인구 5,371,315명 중 불교 신도 수는 10,407명이고, 이 중 10,027명이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거주했다. 앞서 서술했듯이 이들 대부분은 철도 사업 인력으로 투입된 중국 및 일본 이민자들이다. 캐나다불교 인구는 이후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불교 인구 증가의 첫 번째 요인으로 1970년을 전후로 한, 캐나다의 이민 정책 변경 및 다문화주의 정책 신설을 꼽을 수 있다. 1967년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 선정 방식을 크게 변경했다. 1967년 이전에는 인종별로 이민자 수를 정하는 쿼터제였기에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전체 이민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캐나다 정부는 유럽 이민자들을 선호하였기에 이민 정책에서부터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주의를 드러냈다. 그런데 1967년부터 이민 제도가 쿼터제에서 점수 방식으로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점수 방식은 인종에 상관없이 나이, 학력, 경력, 언어 능력 등등에 따라 점수를 매겨 이민자들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민 점수제 도입 이후, 동양인들이 유럽계 사람들과 인종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경쟁하였고 그 결과 동양 이민자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동양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불교인이었기에 동양 이민자 급증은 불교인의 증가를 의미했다. 1961년 11,611명이었던 불교 인구는 1971년에 16,175명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1981년 51,955명, 1991년 163,415명, 2001년에는 300,345명으로 급증하게 되었다.
이민 정책 변경과 더불어 캐나다 정부는 1971년 다문화주의 정책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공공연하게 시행되었던 인종차별주의를 줄이고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포용하여 캐나다 대중들에게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이 정책의 주목적이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뿐만 아니라 보존, 발전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어서 캐나다는 1988년 다문화주의법(Canadian Multiculturalism Act)을 공포했다. 다양한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개인은 고국의 문화를 보존할 권리를 지니며 인종을 기반으로 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공정하고 평등한 캐나다 사회를 만들고 사회 통합을 이룬다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원칙이다. 캐나다가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를 입법화한 것이다.
다문화주의를 정책적으로 이끌기 위해 캐나다 정부는 1993년 문화유산부(Ministry of Canadian Heritage)를 만들었다. 이 부서는 이민자들의 민족문화 보존을 지원하고 있다. 많은 이민자들의 종교인 불교 또한 다문화 보존 대상에 포함되었고 따라서 불교사원은 종교 시설이기보다는 일종의 문화 시설로 인식되곤 한다.
점수제 이민 방식과 다문화주의 정책은 결국 캐나다라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결정한 핵심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두 정책은 현재까지도 유지 중이며, 공정과 평등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성과 상호 소통을 우선시하는 캐나다 사회를 만든 중요 정책이 되었다. 이는 또한 결과적으로 캐나다불교 인구 증가를 이끈 첫 번째 요인이 되었다.
캐나다불교 인구 증가의 두 번째 요인으로 아시아 여러 국가의 내전 및 정국 혼란을 들 수 있다. 베트남전쟁, 캄보디아의 집단학살, 중국의 티베트 점령 등으로 인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자 캐나다는 이들을 적극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970년대 후반 캐나다 정부는 6만 명에 달하는 동남아시아 난민을 받아들였고, 이들 난민의 60%가 불교인이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해 중국 이민자들 또한 급증하여 1990년대 후반 중국 이민자들은 6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아시아 내의 정국 혼란으로 인해 많은 난민과 이민자들이 캐나다를 미래의 땅으로 택했고, 이들의 대규모 유입으로 인해 캐나다의 불교 인구는 더욱 증가했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1년 인구조사를 보면 캐나다의 불교 인구는 366,830명으로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한다. 불교가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시크교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종교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캐나다의 주류 종교는 기독교이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며 그중 천주교가 전체 인구의 38.7%를 차지한다.
20세기 말 불교 인구수가 급증하여 1991년 163,415명(전체 인구수의 0.6%)과 2001년 300,345명(전체 인구수의 1%)이었던 것에 비해, 2011년의 인구조사를 보면 불교 인구는 366,830명으로 10년 전보다 조금 더 증가했을 뿐이다. 꾸준히 아시아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종교의 다각화로 인해 다른 종교인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민 3세, 4세 등의 후손 세대들이 선대 세대와는 달리 부모의 종교인 불교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불교는 이민자의 종교로 시작했기에 결국 2000년대 불교 인구 정체는 이민자 불교의 한계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수메르 불교 프로젝트
캐나다의 불교 인구 수는 10년 주기로 이루어지는 캐나다 정부 인구조사를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조사는 전체적인 종교 인구수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종파나 수행 방식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불교 현황에 대해서 구체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2013년 수메르출판사의 캐나다 불교기관 조사보고서를 들 수 있다. 수도 오타와에 본사를 둔 수메르출판사가 토론토대학교와 공동으로 2011년과 2012년에 캐나다의 불교기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고 2013년 불교 학술지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온라인 사이트(www.canadianbuddhism.info)를 만들어 불교기관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 장에서는 수메르출판사의 불교기관 조사 사업을 ‘수메르 프로젝트’라고 호칭하겠다. 또한 수메르출판사의 대표 존 네그루(John Negru)가 발표한 논문 〈캐나다 불교단체 설문조사 하이라이트(Highlights from the Survey of Canadian Buddhist Organizations)〉(Journal of Global Buddhism 14, 2013)에 기초하여 캐나다불교의 현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수메르 프로젝트는 캐나다 전 지역의 불교사원과 단체에 설문지를 돌려 조사한, 캐나다 최초의 민간 불교 조사 프로젝트이다. 캐나다에는 진정한 의미의 초교파적 불교단체가 없을뿐더러, 종교를 개인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불교기관 조사를 누구도 시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수메르 프로젝트는 현재 캐나다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수메르 프로젝트에 따르면 2012년 캐나다의 불교기관은 총 483개이다. 이 숫자는 사원이나 명상센터 및 불교 민간단체 등, 동양인 불교기관과 서양인 불교기관을 망라하여 캐나다 내의 모든 불교기관을 포함한 숫자이다. 주(州)별로 살펴보면 불교 인구가 가장 많은 주는 온타리오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퀘백주 순이었으며 이는 곧 주별 인구수에 비례함을 보여준다.
불교 종파별로 살펴보면 전체 기관 중, 대승불교가 186개소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금강승(Vajrayana)불교가 137개소, 남방 상좌부 즉 테라와다(Theravada)불교가 84개소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흥미롭게도 티베트 이민자 수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이민자 수에 비해 상당히 적은 것에 비해 금강승불교 기관이 캐나다에서 큰 영향력을 보인다. 이는 달라이 라마 등에 대한 호의적 시선으로 인해, 티베트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캐나다 토박이 서양인들 사이에서 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승불교 중에서는 베트남불교 시설(71개소)이 중국 사찰(64개소)이나 일본계 불교 시설 (64개소)보다 다소 많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일본 정토진종 등의 정토신앙 전통이 가장 많은 기관 수를 보유하고 있다. 조계종 소속 사찰을 포함한 한국불교 기관 수는 18개소에 이른다.
수메르 프로젝트가 밝힌 캐나다 불교기관의 주요 활동은 명상, 피정, 토론회 활동, 염불, 경전 연구 등 다섯 가지이다. 이런 활동들은 캐나다의 불교인들이 전통적 수행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한편으로 다종교 간 협력이나 지역사회 참여 활동 등은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명상에서는 불교 종파 간의 다양한 명상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테라와다불교가 대승불교의 대표적 명상 방법인 좌선을 명상 방법 중 하나로 쓰고 있고, 대승불교 기관에서도 테라와다불교의 위빠사나(Vipassana) 명상법을 수행 방식에 포함시키고 있다.
많은 불교기관에서 캐나다 공식 언어인 영어 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이민자 불교사원에서는 영어나 프랑스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캐나다 다문화주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이중 언어(영어와 프랑스어) 사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국 언어만을 사용한다는 것은, 다문화주의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다문화주의의 주요 정책을 외면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불교기관에 적을 두고 정기적으로 참석한다는 신도 또는 회원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 단위가 더 많았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비율은 다른 연령층 비해 눈에 띄게 적었다. 남녀 비율에서는 여성 회원들이 남성 회원들보다 훨씬 많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환경 단체 등의 민간 기관 또는 지역사회와의 협력 및 연계 여부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불교기관들이 현재 어떠한 협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불교학계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불교기관의 이러한 무관심은 대다수 불교기관이 배타적이고 고립적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메르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가보면 불교기관의 분류가 국가, 종파, 수행 방법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즉 불교의 각 기관의 정체성이 이민자들의 본국에 따라, 또는 불교 종파나 수행 방법 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캐나다에 초교파적 불교단체가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수메르 프로젝트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계 이민자 중심의 불교기관은 이민자들의 정착과 고유 전통문화 보존에 힘을 쏟는 반면에, 타 불교기관 간의 또는 타 민간 기관이나 지역사회와의 협력 및 교류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하에서 다양한 문화 전통을 가진 불교가 보존되고 발전하도록 지원받고 있지만, 막상 불교기관들은 다른 문화와는 교류를 꺼리고 자신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머무는 듯한 모습이다.
5. 두 개의 불교: 이민자 불교와 비이민자 불교
그렇다면 캐나다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만 불교사원을 찾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수메르 프로젝트는 불교기관 중심의 조사인지라 정확하게 비이민자 그룹 즉 서양인 불교 인구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인들 중에도 불교 신자가 존재한다. 이민자 불교 또는 민족 불교(ethnic Buddhism)와 대비하여 서양인 중심의 불교를 서양인 불교, 비아시아 종교, 또는 비이민자 종교라고 학계에서는 부른다.
20세기 중반부터 캐나다의 많은 대학교에서 불교 과목을 교양 또는 전공과목으로 가르쳤으며 많은 캐나다인들이 티베트불교나 일본의 선불교에 크게 관심을 보이면서 서양인 불교 인구 또한 늘어갔다. 물론 대다수의 불교 과목은 불교철학이나 역사를 중점으로 하고 있기에 의례 또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이민자 불교와는 거리가 있다. 소수의 서양인 불교도들은 남걀 린포체(Namgyal Rinpoche, 1931~2003)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승가에 귀의하거나 티베트불교 사원이나 명상센터 등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보다 소극적이고 개인 중심으로 종교 생활을 한다. 2001년 캐나다 인구조사에 따르면 캐나다불교 인구 중에 24,000명 정도가 ‘백인’으로, 이들은 전체 불교 인구수의 6~9%를 차지했다. 광역 밴쿠버에 있는 80개 이상의 사원과 명상센터 중에서 티베트불교 사원이나 명상센터가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곳 시설에서는 동양인뿐만 아니라 서양인들 또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서양인 불교 신자가 전체 불교 인구 중에 비록 적게나마 차지하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서양인 불교 신자 수가 공식적인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많은 서양인 불교도들이 직접 사원이나 명상센터를 찾아 수행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통계적인 숫자에서는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노트르담대학교의 토마스 트위드(Thomas Tweed) 교수가 개인적 성향의 서양 불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재미있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침대 협탁 옆 불교인(nightstand Buddhist)”이라는 호칭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은 사원에 가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꺼리는 대신 침대 협탁 위에 불상을 놓는다든지 잠자기 전 침대에서 불교철학 서적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트위드 교수는 미국불교에 관한 책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지만, 캐나다의 경우에도 많은 비이민자 불교도들은 “침대 협탁 옆 불교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캐나다에는 두 종류의 불교가 있다. 동양계 이민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민자 불교가 한 축을 담당하고, 다른 한 축은 비록 소수이지만 서양인 불교 신자로 구성된 비이민자 불교이다. 이민자 불교는 19세기 중반 캐나다 서부에 노동 인력으로 투입된 중국 및 일본 이민자들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이들이 중부와 동부로 이동하면서 불교 또한 캐나다 전역에 퍼졌다. 노동자 신분이었던 이들 이민 1세대들은 점차 중산층으로 성공적인 신분 상승을 하였고, 이들의 후손들인 이민 2, 3세대들은 1세대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캐나다 주류 사회에 편입하게 되었다.
캐나다 이민자 불교 특성 중 몇 가지를 꼽자면 그중 하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소수의 사원들은 본국의 사원이나 교민들로부터 받은 경제적 지원을 기반으로 하여 대규모 사원을 운영하고 있다. 광역 밴쿠버의 리치먼드시에 있는 대만계 영암산사(靈巖山寺, Lingyen Mountain Temple)가 대표적 예이다. 영암산사는 리치먼드시 5번 고속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리치먼드시와 밴쿠버시를 잇는 5번 고속도로는 “천국행 고속도로(Highway to Heaven)”라는 별명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20년 전 리치먼드시는 5번 고속도로를 따라 토지를 정비하여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건설을 장려하였다. 낮은 땅값과 넓은 토지 이용에 매료되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사원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5번 고속도로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도로가 된 것이다. 특히 리치먼드시는 중국 이민자들 수가 다른 나라 이민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 이민 사회의 지원을 받아 이 도롯가에 영암산사가 1996년 대형 사원을 지었고 현재 만여 명의 신자를 두고 있다.
한편 많은 불교 시설은 재정적으로 열악하여 승려 1인이 운영하거나 재가 신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카리스마 있는 승려 또는 지도자에 의해 사원이 건립되고 운영되다가도 만약 이들이 다른 이유로 사원을 떠나거나 사망하게 되면 승려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던 지지자들 또한 떠나게 되어 사원의 존립조차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
앞서 수메르 프로젝트 장에서도 서술했듯이 이민자 불교의 두 번째 특징으로 배타적 성향을 들 수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캐나다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반면, 종교적으로는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철저히 보존 유지하는 데만 집중한다. 결국 타 문화와 타 종교에는 관심을 아예 두지 않는 배타적이고 고립적 성향을 갖는다. 이러한 특징은 불교사원 내 여성의 지위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민자 불교에서 여성 불교인의 수는 남성의 경우보다 월등히 많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승려 또는 지도자의 성별은 남성이 압도적이다. 즉 아시아 각국의 남성 중심적 또는 가부장적 문화가 불교사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기복 신앙적 믿음과 공덕 중심의 의례를 들 수 있다. 여전히 고국의 전통적 방식을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6. 맺으며: 제3의 불교는 있는가?
캐나다에서 불교의 이미지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으로 대표되는 비폭력주의, 종교 간 대화와 화해, 영성 추구, 참여불교 등이 불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굳혀졌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교리주의와 서양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해 실망하면서 그 대체재로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영화 등의 대중매체가 대중의 요구에 맞추어 불교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몇몇 세계적 불교 지도자들의 인기와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불교의 이미지는 현실 속 이민자 불교의 기복신앙적, 배타적, 가부장적 모습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캐나다 내의 두 개의 불교 즉 이민자 불교와 비이민자 불교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에는 이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 차이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의 비구니 승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2008년 대만의 불교단체 푸지(福智)가 호지묘음불학원과 대각불학원을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에 건설했는데, 푸지의 창시자인 지창(日常, 1929~2004) 스님은 타계하기 직전 자신의 후계자로 중국 본토의 재가 신자 젠루(眞如)를 지목했다. 젠루가 차기 영적 지도자가 된 이후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묘한 정치적 기류가 생기게 되자 푸지는 젠루가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나라를 찾았고 결국 ‘종교적 자유’와 다문화주의를 우선시하는 캐나다를 선택한 것이었다.
대만계 비구니들과 수련생들이 섬에 들어왔을 때 주민들 사이의 첫 반응은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불교에 대한 호감이었을 것이다. 농촌 지역인 킹스 카운티(Kings County)에 자리 잡은 비구니 사원은 본국인 대만에서 그랬듯이 외부와는 단절한 채 수행과 교육에 몰두했다. 또한 캐나다의 다른 도시에 비해 땅값이 저렴한 장점을 이용하여 1,4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학원 확장과 기숙사 증축을 계획했고, 대규모의 토지 매입 허가 신청서를 지역 자치정부인 스리리버스타운(Three Rivers Town)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규모 땅을 한 단체가 독식하게 되는 것에 불안했던 지역 주민들은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시했고, 몇 차례의 회의를 걸친 후 2020년 9월 지역 정부는 결국 토지 매입 신청을 기각했다. 다문화주의를 정책적으로 표방하는 캐나다에서 이민자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이렇게 크게 겉으로 충돌한 것은 상당한 드문 일이다.
다문화주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 간의 소통과 협력을 기본으로 한다. 이민자 불교가 장벽을 조금 낮추고 캐나다의 다른 문화와도 소통 교류한다면, 그리고 비이민자 불교가 불교의 이상적인 모습만 추구하지 말고 생활 불교에 눈을 돌려 의례와 공덕 쌓기 등도 중요한 수행이 된다는 점을 수용한다면, 두 불교(two Buddhisms)의 화해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제3의 불교, 즉 캐나다불교(Canadian Buddhism)가 미래에는 나오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마지막으로 캐나다불교에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맥길대학교의 빅터 호리 교수 등 캐나다의 대표적 불교학자들이 쓴 《기러기: 캐나다의 불교(Wild Geese: Buddhism in Canada)》(2010)는 캐나다불교에 대한 학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아카디아대학교의 브루스 매튜스 교수가 편찬한 《캐나다의 불교: 서쪽의 다르마(Buddhism in Canada: Westward Dharma)》(2002)는 캐나다 각 주의 불교 현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캐나다 역사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마우로 페레시니(Mauro Peressini)는 불교 개종자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묶어서 《불교를 택하다: 캐나다인 8인의 인생 이야기(Choosing Buddhism: the Life Stories of Eight Canadians)》(2016)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 또한 캐나다불교를 생생히 이해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추천하는 바이다. ■
박정은 springjeong@gmail.com
강원대 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한국불교 전공 박사. 학위 논문은 식민지 시대 총독부 문서와 승려들의 호적 연구를 바탕으로 쓴 “Clerical Marriage and Buddhist Modernity in Early Twentienth-Century Korea”(2016)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과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대학교의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스캐처원대학교 세인트토마스모어칼리지(St. Thomas More College) 종교학과 전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