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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23(주일) 예레미야 7:16~28 ‘내 목소리를 들으라’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부모님이든, 친구든, 혹은 스승이든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누군가의 목소리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곤 합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히딩크 감독이 던진 한마디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지성을 바꾼 한마디'라며 그의 자서전을 발췌한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박지성은 자서전에서 지난 2002년 1월 미국에서 열린 북중미 골드컵을 회상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며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박지성은 지금 같은 전국구 스타가 아닌 갓 선발된 무명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심한 박지성에게 히딩크 감독이 나타나 영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영문을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자 통역관은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라며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전했다고 한다.
얼떨떨해진 박지성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히딩크 감독은 뒤돌아 나가버렸다. 이에 대해 박지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면서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는 심정을 밝혔다.
특히 박지성 스스로도 내세울 것은 정신력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어릴 적 술에 취한 축구부 감독이 팔굽혀펴기 지시하곤 힁허케 가버렸을 때도 감독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발이라는 악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극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에 대해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님의 칭찬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며 "월드컵 내내 감독님이 던진 그 한 마디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고 히딩크 감독의 한마디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밝혔다.
저도 충대 대학원 재학당시 담임목사님의 말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학생이던 저를 부르시더니 “형제님, 혹시 목회자 될 생각은 없으신가요?”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목사님은 너무 힘드시고 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목사님은 제가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자질에 대해서 5~6가지로 말씀해 주셨고,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해보겠습니다”라고 했고,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응답받아 결국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충대 대학원에 자퇴서를 내고 총신대신학대학원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도 그렇게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어떨까요?
배우이자 집사인 권오중 배우가 작년 다니엘 기도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그의 어린시절은 가정의 불화와 아버지의 도박, 술 문제로 인해 평안과는 거리가 먼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곤 했고,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그는 성정하면서 친구들과 술과 음란한 행동에 빠졌고, 청년시절에도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예수님을 없었다고 고백하며 단지 종교적인 행위로 교회에 참석했을 뿐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의 작은 변화는 모태신앙을 가진 아내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시기도 교회를 다니고, 교회 직분을 맡고 있었지만, 예배시간에도 딴짓을 하고 주일에도 술을 마시는 등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헌신과 기도로 조금씩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권오중 집사의 아들 혁준이나 출생후 극히 희귀한 유전자질환(MIC1)으로 판명된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을 병이라고 하여 극심한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장모님이 준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0년에 극적인 신앙의 전환점이 왔는데, 그의 아내가 마음의 병을 앓게 되고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아내의 병을 통해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살려주세요”를 반복하며 기도했고, 이 기도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오중아, 사랑한다.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음성이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라며 자신의 간증을 이어갔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23절)라고 강력히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거나,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일 때 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나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혹은 듣고도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목소리를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죄는 우상숭배입니다(20~25절).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아주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 20:4-6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 1계명은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입니다.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버렸죠.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다른 신을 찾았습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 너는 다른 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2계명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몇 가지 말씀하시는데요.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너를 위하여 하나님 대신 무슨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우상을 만들면 안 되는 사람이고 말씀합니다. 또한 “창조자 하나님을 피조물의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하늘이나 땅이나 물속에 있는 것들은 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주를 피조물의 형상으로 만들어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슨 형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든지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습니다. 무슨 형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을 제한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형상이 있는 곳에 가야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형상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안 계시니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디에서든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하나님을 무슨 형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무슨 형상이거나, 동식물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우상에 계속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 우상을 무슨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의지합니다. 그 앞에서 빌지요,
그러면서 점점 더 그 우상에 매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우상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입니다.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시115:4-7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사46:9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도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그러니 우상숭배는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인 지식이 없고 모르니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이런 헛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16절)고 명령하십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백성을 위해 중보하도록 요청하시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너무 크고 반복되어 더 이상 용서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조차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18절에서는 그들이 "하늘의 여왕"(아세라 또는 바벨론의 여신 이슈타르)에게 제물을 바치고, 가족 전체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는 불을 피우며, 어머니는 가루를 반죽하여 우상에게 과자를 만드는 모습은 가정 전체가 우상숭배에 연루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와 헌신을 다른 신에게 바치며,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떠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질투하십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심히 싫어하십니다.
엄마 아빠가 옆에 서 있는데, 자녀가 다른 사람 붙잡고 ‘엄마 아빠’하면서 매달린다면...
남편이 옆에 멀쩡하게 서 있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서 ‘여보 사랑해’ 그런다면...
아내가 옆에 멀쩡하게 서 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를 안고 ‘여보 사랑해’ 그런다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가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경고하십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일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입니다. 그 죄 값을 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부모의 우상숭배는 자녀를 망하게 무너뜨리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해를 입히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었습니다. 19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상숭배가 결국 그들 자신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국 20절에서 ‘불’처럼 임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섬겼던 하늘의 여왕과 똑같은 신을 섬기지는 않을지라도, 돈, 명예, 성공, 쾌락, 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할 때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골3: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엡5:5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입니다.
탐심을 갖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무엇을 탐하는 사람이 곧 우상 숭배자입니다.
무엇에 탐심을 갖는가요? 무엇에 욕심을 갖는가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욕심을 부리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 욕심을 부립니다.
사람이 탐심을 품으면 그 탐심이 나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탐심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주인노릇을 합니다. 즉 욕심을 부리는 것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하나님 보다 그게 더 좋고, 하나님 보다 그것을 더 의지하게 되면, 그게 바로 내가 섬기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 그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자손 대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보증을 서십니다.
자손대대로 복되게 하는 부모는 하나님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부모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섬기는 우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돈 우상이다. 많은 사람이 돈 우상을 숭배한다.
돈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모른다.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그래서 돈을 좋아한다. 돈을 사랑한다. 더 많은 돈을 갖고자 탐심을 부린다. 문제가 생긴다.
돈이 우상이 된다. 돈에 의해 인생이 좌우된다. 돈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 돈을 따라서 살아간다. 악한 길이라도. 딤전6:10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
돈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기 어렵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옛날부터 돈은 강한 우상이었다.
- 외모 우상을 섬기는 사람도 많아진다.
외모가 경쟁력이다. 외모가 실력이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한다. 외모를 위해서 다이어트를 한다. 전에는 젊은 여성들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외모에 매달리는 일이 많다. 외모 우상숭배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쾌락을 우상 숭배자도 많다. 수많은 성폭행, 성추행, 성매매... 홍수처럼 밀려온다.
직장이 우상이 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 같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 들이 얼마나 매달리는가?
자녀의 성공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다른 건 다 뒷전이다. 오로지 자녀교육이다. 그 우상인 자녀가 어느 날 부모를 싫어한다. 부모를 거부한다. 불행이다.
노후준비가 우상이지는 않을까? 노후우상 숭배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탐심의 우상을 아무리 숭배해도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은 밑 빠진 독과 같이 채워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딤전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아굴의 기도이다.
잠30:8-9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러했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분께 예배하는 삶입니다. 적용)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킬만한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큐티인묵상간증][연민에 무너진 나, 이성수]
조상신을 잘 섬겨야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굳게 믿으신 저의 어머니는 가문의 모든 제사를 도맡아 지내셨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기독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오직 돈을 많이 벌러 성공하는 게 목표였기에 믿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개업의가 되어 많은 돈을 벌었고,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바람을 피우며 두 집 살림을 차렸습니다. 10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저에게 교회와 부부 소그룹 모임에 같이 나가면 용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아내의 도움으로 신앙생활하며 모든 공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어떻게든 저의 죄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자 믿음이 자라나 마침내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시골에 계시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니 죄송한 마음과 연민이 올라와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절은 하지 않았는데,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파하려면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에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입관 전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되니 또다시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장례 인도자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십시오” 할 때 저도 모르게 절하고 말았습니다(26절). 잠시 후 ‘아, 지금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은 유다 백성처럼 연민으로 절하여 주님의 노를 일으켰던 것입니다(18절)
최고의 효도는 복음을 전해드리는 것인데, 아버지를 천국 소망도 없이 떠나시게 한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이제는 어머니께 복음을 전하여 어버지 기일에 함께 추모예배를 드리게 되길 소원합니다.
적용하기) 관계가 소원한 형님께 제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며 교회로 초대하겠습니다. 아버지 기일에 가정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겠습니다.
2.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21~2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결국 불순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울에게 불순종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23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은 제사를 드리려고 양들을 살려 가져왔다는 말에 정곡을 찔러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정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하나님은 사람들을 왕으로 다스리시길 원하시는 분으로서 순종을 원하십니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순종이며, 그의 종으로 세우신 왕에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지 제사가 아닙니다.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나다이다.’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가 진실로 죄를 발견하였다면 자신의 얼마나 불순종하는 죄인인가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변명거리를 찾는데 급급했고 이번에는 백성들 핑계를 대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것은 백성을 두려워했기때문이라고 백성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런 말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며, 왕으로서는 더욱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진실한 회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주체성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사울은 자신을 위해서 회개해야 할 때에 자신의 본질의 죄인됨을 인해서 깊이 회개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사무엘에게 죄를 사하고 함께 돌아가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화] 잘 듣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1. 주의 깊게 듣는다
잘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휴대폰을 만지거나 주변을 바라보지 않고, 눈을 맞추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그들의 집중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2. 말을 가로채지 않는다
대화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충분히 갖도록 기다리며, 이야기가 끝난 뒤에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달합니다.
3. 적절한 피드백을 준다
잘 듣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정말요?", "그랬군요." 같은 간단한 반응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이는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게 하고, 상대방이 계속해서 이야기할 동기를 부여합니다.
4. 조언을 강요하지 않는다
듣는 데 능숙한 사람은 요청받지 않은 조언을 자제합니다. 대신 상대방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거나, 조언이 필요한지 먼저 확인합니다.
5. 비언어적 신호를 활용한다
눈 맞춤, 미소, 고개 끄덕임과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격려합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은 상대방에게 큰 안정감을 줍니다. 출처: https://yjh1009.tistory.com/entry/인간관계에-능숙한-사람들의-특징-첫-번째-잘-듣는-능력 [워.라.블(워크&라이프 블로깅):티스토리]
[인용] 다윗은 성군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에 아주 민감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에게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음성을 정확하게 알아 들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단의 책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통회자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이 회복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살고, 들어야 열립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사랑하는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직관이 무디거나 마음이 굳어 있으면 심지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셔도, 못 알아 듣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둔감한 사람은, 돌뿌리를 오히려 걷어 차며 재수없다고 원망합니다. 자기의 자녀가 말을 안들고 반항함을 통하여서도,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서도, 나에게 닥친 질병을 통하여서도, 하는 일마다 막힘을 통하여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민감한 성도는 그 음성을 듣고 회백합니다. 우리는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동일하게 말하는 일들을 통하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하는 말들이 있다고 합시다. “주의 일에 힘쓰라. 기도 좀 하라. 새벽을 깨우라. 사명감당해라. 건강 조심해라” 우리는 그런 말들을 흘려듣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실수도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요즈음,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도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은 환상으로, 꿈으로도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위험성도 따를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잘못하면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예언은, 설교이며 하나님의 말씀(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왜 굳이 남을 통하여 말씀하시겠는가? 성령시대의 예언적 의미는, 말씀과 설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답답해할 때, 하나님도 답답해 하십니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할때, 하나님도 나에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시는 말씀을, 직관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듣는 일에 민감하게 집중해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습니다. 또한 목자는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양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십니다. 주님의 목소리와 음성을 듣는 일에 집중하고 민감할때, 목자와 양은 하나가 됩니다.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187#share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중요한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없이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는 일에 학습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날들을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에 투자해야 합니다. 큐티도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때마다 일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물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가 안 들리더라도, 또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든지, 환경을 통해서든지, 설교를 통해서든지, 꿈으로든지,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주의 음성이 전달되는데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음성을 듣기 전에, 항상 먼저 나의 죄를 살펴보고 회개 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구두 먼저 신고, 그 위에 양말을 신을 수는 없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험하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것 보다. 더 중요하고 황홀하고, 더 안전하고, 더 축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187#share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분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레위기에서 제사를 명하셨지만, 그것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순종이 따르지 않는 제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23절은 하나님의 핵심적인 명령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복된 삶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24절).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며,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25~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완악해졌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결국 진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28절).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산다면 결국 진리를 잃어버리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이 내게 주시는 은혜에 적용으로 응답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은미 케냐 선교사]
사람들은 왜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지 궁금해하고 이유를 알고 싶어한단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고 알려달라고 하는데, 내가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니란다. 처음에 그들은 내 음성을 들으면 순종하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들에게 알려주면 그들은 듣고 난 다음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을 바꾸곤 하지.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안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다는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내 음성을 들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 말을 온전하게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니라.
내 종이 내 음성을 잘 듣는 이유는 내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어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
그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고 나에게 있어 편한 종이라 부르는 것이라
내 말을 듣고 나서, 내 말에 순종할지, 순종하지 않을지를 저울질해보고 결정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그들 삶의 온전한 주님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라.
나는 그들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를 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너는 평생 내가 네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좌정하여 너를 인도하고, 내가 네게 원하는 말을 자유롭게 하도록 해주는 그런 종이 되어야 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은
나를 사랑하는 종이요,
내 목소리를 청종하기를 기뻐하는 종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겨지는 말씀은 순종하기를 망설이지 아니하는 종이라.
적용)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어떻게 힘쓰고 있습니까? 나의 생각과 고집으로 행하려는 형식적인 제사는 무엇입니까?
결 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요10:10). 바라기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주님의 길을 따르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