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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2월 3일 화요일
[(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 또는
[백] 성 안스가리오 주교
말씀의 초대
다윗은 압살이 죽었다는 전갈에 깊은 충격을 받고 목 놓아 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해 주시고,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신다(복음).
제1독서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그 무렵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중심 주제로 삼습니다. 독서에서는 죄인의 죽음조차 바라시지 않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복음에서는 그 자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자유롭게 흘러넘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알아차리시거나 승낙하시기 전, 오직 믿음 하나로 은총을 체험하는 복음 속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표징입니다.
특히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받으리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간 여인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배웁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설명되고, 내가 이해하고 납득이 되기에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내 뜻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인지를 말이지요. 이렇게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이라면, 주님께서는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그렇게도 신뢰하는데, 좋으신 하느님께서 어찌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겠습니까? 실제로 오늘 복음에서도, 먼저 은총으로 병이 나은 다음에야, 주님께서는 누가 당신에게 손을 대었는지 물으십니다.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 ‘선은총 후판단’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이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의 협조자로서 주님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저에게는 이득입니다.’는 마음으로 나를 내어놓는 믿음 말입니다.(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그때 우리의 고통은 춤으로 바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피정 센터를 운영하면서, 사목자로서 이런 꿈도 꾸고 저런 꿈도 꾸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요즘 와서 작은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가장 가슴 아픈 사람들을 동반하는 작은 모임을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어떤 일일까요? 여러 사연을 소개할 수 있겠지만, 가장 가슴 미어지는 일은 아무래도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겠지요. 특히 어린 자식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처럼 슬프고 끔찍한 일이 다시 또 있을까요?
‘차라리 내가 먼저 떠났으면...’ ‘차라리 날 먼저 데려가시지 않고...’ 이런 마음이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그랬습니다. 그는 지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막힌 벽 앞에 서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 열두 살 짜리 딸이 지금 생사의 기로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아버지에게 누군가가 예수님이란 분에 대해서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야이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회당장이라는 신분도 체면도 다 잊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분 앞에 도착하자 마자 즉시 예수님께 간곡히 청합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달려오느라 기진맥진한 아버지를 눈여겨보십니다. 아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그의 믿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아직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한참 낮았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의 기적가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든지 다 현존하시는 멀티 플레이어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현장에 가지 않으셔도 원격치유가 가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회당장이었기에 예수님을 향해 집요하게 같이 가달라고 졸라대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졸라대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였습니다. 늑장 부리다가는 딸과는 영영 이별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 간절히 부탁한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한 회당장 야이로였지만, 그의 간절한 눈망울과 그의 찢어지는 가슴을 예수님께서는 차마 외면하실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그러나 때는 예수님 공생활의 절정기, 주님께서 걸어가시는 길목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와 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하혈하는 여인을 만나 또 다시 시간이 지체됩니다. 딸의 아버지는 마음이 급해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마침내 회당장의 집에 도착해보니, 이거 어쩔 것입니까? 딸이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목빠져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목숨이 끊어진 딸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십니다. 울며 애통해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호통도 치십니다.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이 일으키시며 외치십니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견뎌 나가고 있지만,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큰 슬픔에 잠겨있지만, 오늘 비록 우리가 이렇게 큰 십자가에 허덕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큰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눈물은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춤으로 바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수잔 앤더슨이란 여인이 눈 수술을 받다 실명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하구려." 그 충격적인 말을 듣고 수잔은 남편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출근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에 타면 눈치 못 채게 함께 타 뒷자리에 앉아서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길에는 혹시라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도와주려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마음을 어머니의 마음에 비유해서 표현했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이런 하느님이시니 사랑의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을 등지고 떠나가더라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눈길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가 홀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강건하게 되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멀어진 느낌을 주실 뿐입니다. 몸으로 느끼지 못해도, 눈으로 보지 못해도 믿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오래된 무덤이 있습니다. 그중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항하였습니다.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다윗은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 울었습니다. 압살롬의 무덤은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예수님의 무덤 제대가 있습니다. 그 무덤 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었던 회당장의 야이로의 딸을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일어나라)’ 죽었던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근심 때문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거짓된 자아는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26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처럼 ‘탈리타쿰’ 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짓에서 진실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탈리타쿰’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손길>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 5,23)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르 5,28)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마르 5,41)
당신께서
나에게
오시는
손길에는
사랑이 가득
내가
당신께
가는
손길에는
믿음이 가득
당신과
내가
만나는
손길에는
희망이 가득
오늘의 성인
성 블라시오(Blaise)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세바스테(Sebaste)
활동연도 : +316년경
같은이름 : 블라시우스, 블라씨오, 블라씨우스
8세기에 로마(Roma)의 성 클레멘스(Clemens) 성당에서 성 블라시우스(Blasius, 또는 블라시오)의 전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에 따르면 성 블라시우스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세바스테의 주교였으며, 로마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총독인 아그리콜라우스(Agricolaus)에 의해 붙잡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부유한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젊은 나이에 주교로 선출되었다고도 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는 초기에 은수자가 되었는데, 병자들을 치유하고 또 야생 동물들을 보살펴 주는 것을 목격한 어떤 사냥꾼에 의하여 총독 아그리콜라우스에게 끌려가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주교가 되었으며 어떻게 활동하였는지를 밝혀줄 역사적 자료들은 거의 없다. 다만 8세기부터 블라시우스에 대한 공경이 동방과 서방 교회에 두루 퍼졌다. 성 블라시우스 축일에는 인후를 축성하는 예절이 전해오는데, 이는 그분이 목에 생선뼈가 걸려 사경을 헤매는 한 소년을 기적적으로 치료한 사실에 근거하며, 이 예식에서 초 두 자루를 사용하는 것은 그 소년의 모친이 옥에 갇힌 그에게 음식과 초를 가져다 준 사실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온다.
성녀 이아 (Ia)
활동년도 : +5세기경
신분 : 동정녀
지역 : 콜월(Cornwall)
같은 이름 : 아이브스
중세 후기의 전설에 의하면 성 에르쿠스(Ercus)의 자매인 성녀 이아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선교를 위해 성 핀가르(Fingar)와 성녀 피알라(Piala) 그리고 많은 수의 동료들과 함께 영국 남서부 콘월에 도착하여 헤일(Hayle) 강어귀에 정착하였다.
그녀가 바다를 건너 콘월에 도착하게 된 전설적인 내용에 따르면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가려고 출항 지점에 당도해보니 그들은 이미 출항한 후였다.
슬픔에 빠진 그녀는 하느님께 애원하며 도움을 간구하고는 물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 하나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잎이 점점 커져서 그녀를 능히 태울 수 있게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느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리며 그분께 더욱 굳은 신뢰심을 드리면서 기도하던 중 다른 일행이 당도한 해안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무사히 도착한 그녀는 그곳에 작은 은둔소를 짓고 여생을 고행과 기도 속에서 지냈다.
그래서 그곳을 후세 사람들은 포트 이아(Port Ia)라고 부르다가 16세기 후부터는 세인트 아이브스(Saint Ives)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전설은 또한 헤일 강어귀에서 순교한 콘월의 순교자들과 연결되었다. 그래서 콘월 지방에서는 그녀를 순교자로서 공경하고 있다.
성녀 베르부르가 (Werburga)
활동년도 : +700년경
신분 : 수녀원장
지역 : 체스터(Chester)
같은 이름: 베르브르가,워부르가,워브르가
성녀 베르부르가는 영국 머시아(Mercia)의 국왕 울프헤레(Wulfhere)와 성녀 에르멘질다(Ermengilda, 2월 13일)의 딸이다.
그녀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 지방의 여러 수도원과 관련이 있고, 링컨셔(Lincolnshire)의 트렉킹햄(Threckingham)에 있는 어느 수녀원에서 운명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무덤에서는 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덴마크인의 침략 때에는 그녀의 유해를 체스터(Chester)로 옮겨 이 지역이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헨리 8세 왕이 이를 파괴해버렸다고 한다.
성 안스카리오(Anschar)
신분 : 대주교, 선교사
활동지역 : 브레멘-함부르크(Bremen-Hamburg)
활동연도 : 801-865년
같은이름 : 안스가르, 안스가리오, 안스가리우스, 안스카르, 안스카리우스
프랑스 아미앵(Amiens) 근교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성 안스카리우스(Anscharius, 또는 안스카리오)는 5세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814년경 피카르디(Picardie)의 옛 코르비(Corbie) 수도원(베네딕토회)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826년에 그는 선교사로서 덴마크에 갔으나 스웨덴에 관한 관심이 더 커서 3년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829년에 스웨덴으로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새로운 코르비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832년에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4세(Gregorius IV)에 의해 함부르크의 주교로 축성되었고, 스칸디나비아 백성들과 슬라브인들을 돌보라는 교황의 명을 받았다. 845년에는 바이킹(Viking)의 침입으로 13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해오던 함부르크가 파괴되어 큰 좌절을 겪었고, 848년에는 브레멘 교구와 파괴된 함부르크 교구의 합병으로 브레멘-함부르크 대교구가 설립되면서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에 의해 초대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즉각적으로 다시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놀라운 정열로 선교 활동을 재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같은 성공의 그의 뛰어난 설교력, 엄격하고 거룩한 생활 그리고 수많은 기적의 힘이었다. 그러나 성 안스카리우스는 865년 2월 3일 브레멘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사후 그 모든 선교 사업들이 중단되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아직 그리스도교가 뿌리 내릴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 안스카리우스는 '북유럽의 사도'로 불리며, 스칸디나비아의 선교사이자 사도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안스가리우스(Ansgarius)로도 불린다.
복자 오도리코 (Odoric)
활동년도 : 1285-1331년
신분 : 수사
지역 : 포르데노네(Pordenone)
같은 이름 : 오데리코, 오데리쿠스, 오도리꼬, 오도리꾸스, 오도리쿠스, 오도리크, 오도릭
오도리쿠스(Odoricus, 또는 오도리코)는 이탈리아의 프리울리(Friuli)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Udine)에서 작은 형제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사명을 느낀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1321년경에 그는 서 인도에 상륙했고,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부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331년에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곳저곳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75년에 승인되었다. 그는 오데리쿠스(Odericus)로도 불린다.
복자 스테파노 벨레시니 (Stephen Bellesini)
활동년도 : 1774-1840년
신분 : 수사
지역같은 이름 : 스더, 스테파누스,
스테판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이탈리아 트렌티노(Trentino) 지방의 트렌토(Trento) 출신으로 16세 되던 해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로마(Roma)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하던 중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그의 공동체가 뿔뿔히 흩어지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개인적인 신심생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어린이들의 종교교육에 정성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그는 트렌티노 지방 모든 학교의 장학관으로 임명되어,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가 교황령에 의해 공동체 생활을 재개할 때까지 오로지 이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가 장학관의 직무을 떠날 때 거의 모든 시의원들이 극구 반대했지만, 자신의 성소에 따라 볼로냐로 가서 형제들과 재회하였다.
그 후 그는 로마 수도원의 수련장 등을 역임하였다.
몇 년 후 그는 제나차노(Genazzano)에 있는 유명한 착한 의견의 어머니 성당의 주임사제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콜레라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그 병에 전염되어 선종하고 말았다.
그는 1904년 12월 27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