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2) * 나그넷길 9
월미가 털보 곁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술을 따르자.
한 사내가 허허 웃고 나서 내뱉는다.
"이거 곰보 아니야"
"글쎄 곰보구먼. 어디 보자, 눈도 좀 사팔뜨기 같은데..."
다른 사내 하나가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또 한 사내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맞다구. 저봐, 사팔뜨기라구.
한쪽 볼때기는 사정없이 갈아뭉갰고...
이거 뭐 이런 암놈이 기어들어왔지"
털보의 잔에 술을 따르고 난 월미는 몹시 듣기가 싫었으나, 그런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잔을 입으로 가져가 우선 술로 목을 축이고 나서
털보가 졸개 셋을 보고 제법 위엄 있게 말한다.
"이 녀석들아, 흉년에 쌀밥 보리밥 가리게 됐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준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해"
그리고 월미에게 이른다.
"어서 이 녀석들 잔에도 술을 따러줘"
"예"
월미는 얼른 다시 술병을 들며 힐끗 털보를 쳐다본다.
조금 사팔뜨기인 눈에 살짝 고운 빛이 어린다.
세 사내들 잔에도 골고루 술을 따라주고 나서
월미는 다시 일어나 물러나려 한다.
"가만히 앉아있어"
털보가 꾹 누르듯이 말하자,
월미는 도로 그 자리에 얌전히 꿇어않는다.
"자, 오늘밤 기분 좋게 마시자구.
암식구가 하나 생겼으니..."
털보가 잔을 들어올리며 말하자,
"암식구라... 허허허..."
"암식구가 생겨서 오늘밤 신나겠는데..."
"암식구 하나에 숫식구가 넷이니 이거 어떻게 하지? 히히히..."
다른 세 사내들도 제각기 히히덕거리며 잔을 쳐든다.
건배를 하는 것이다.
그 '암식구'라는 말에 월미는 슬그머니 불안해진다.
암식구가 하나 늘었다는 말은 곧 자기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든지 기회를 보아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월미는
그러나 겉으로는 오히려 좋아하는 체 해야겠다 싶었다.
잠시 후 월미는,
"히히히 히히히..."
살짝 고개를 떨구고 나직히 웃으며 몸을 조금 꿈틀거린다.
털보의 한쪽 손이 덥석 엉덩이에 다가와 슬슬 주무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 손이 몹시 크고 거칠게 느껴진다.
"엉덩이가 제법 괜찮은데..."
"히히히..."
"어디 젖통을 좀 볼까"
그러면서 털보는 다른 한손으로 월미의 앞가슴을 헤친다.
월미는 그가 하는 대로 다소곳이 맡겨두고 있다.
월미의 젖봉우리 두 개가 드러나자 커다란 손바닥으로
덥석 덥석 덮쳐서 양쪽 다 주물럭거려 보고는
"한창 익어가는 중이군"하고 싱그레 웃는다.
"야- 젖통은 근사하다"
"젖통은 보리밥 아니고 쌀밥인데..."
"아직 아새끼가 안 빨았어. 보니까... 맞지? 허허허..."
술기가 꽤 거나해진 세 사내도 공연히 좋아서 야단이다.
월미는 헤쳐진 앞가슴을 여미려 한다.
"안돼. 그대로 있어. 보기 좋다는데 왜 집어넣으려고 그래"
한 사내가 나무라듯이 내뱉는다.
월미는 털보의 눈치를 힐끗 살핀다.
털보는 그저 히죽이 웃을 뿐이다.
그대로 있으라는 건지 여며도 된다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두령님, 어떻게 할까요?"
월미는 서슴없이 '두령님'이라고 부르며 묻는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구.
조금 있다가 어차피 옷을 다 벗을 건데 뭐"
"..."
"오늘부터 우리 암식구가 됐으니
숫식구들 말을 잘 들어야 된다구. 알겠지?"
"예, 두령님"
월미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도망칠 기회를 잡기위해서는 겉으로는
진짜로 한 패거리가 된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월미의 입에서 곧잘 '두령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털보는 기분이 좋은 듯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손을 위로 가져가 이번에는 뒷덜미와 등을 슬슬 쓰다듬어 주면서 제법 점잖은 어조로 지껄인다.
"우리하고 같이 사는 게 맹주 땅을 찾아가는 것보다 백배 낫다구. 맹주 땅이 어디라고 찾아 가려는 거야. 너무 멀어서 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간다 한들 오래비를 만나지도 못한다구.
설령 오래비를 만나게 된다 치더라도 오래비하고 뭐 할 거야.
애인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렇게 엉덩이도 벌어지고 젖통도 잘 익어가는데... 안 그래?"
그러자 취기가 오른 세 사내가
또 제각기 한 마리씩 떠들어 댄다.
"아무리 맹주 땅이지만 오래비하고 같이 살수는 없지"
"맞어. 그건 안되지"
"개라면 몰라도... 히히히..."
월미는 속으로 오라비를 찾아간다고 말한 게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 같아 후회가 된다. 도둑들의 말투로 봐서 애인을 찾아간다고 했더라면 어쩌면 보내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맹주 땅이지만 오라비하고 같이 살수는 없지'
'개라면 몰라도...'라는 말에 도둑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어서 개보다는 좀 나은가보다 싶다.
"자, 내가 한 잔 주지.
오늘부터 우리 암식구가 됐으니 한 잔 마셔봐"
털보가 불쑥 월미 앞으로 잔을 내민다.
월미는 얼른 그 잔을 받는다.
어찌나 서슴없는지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 같다.
실은 술을 좋아하는 터이라 그녀는 처음부터 입안에 침이 고이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서 월미는 꿀컥꿀컥 단숨에 한 잔을 다 비워 버린다. 무척이나 목이 마려웠다가 냉수를 한 그릇 마셔 치우는 것처럼 눈살 한 번 찌푸리질 않는다.
"아니 이거 이제 보니까 고래구나"
"야- 암고래가 한 마리 들어오다니..."
"술통을 더 큰놈으로 바꿔야 되는 거 아냐? 야단났는데... 허허허..."
세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떠들어 댄다.
털보도 뜻밖이라는 듯이 불쑥 묻는다.
"술을 언제 그렇게 배웠나?"
월미는 좀 무안한 듯 고개를 살짝 떨구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배운 일은 없다구요"
"배운 일이 없는데 그렇게 마신다면 타고난 고래구나.
오늘 처음 마시는 건 아니지?"
"예"
"술집에 있었나?"
술집에서 부엌일이나 하면서
곧잘 술을 입에 대본한 게 아닌가 싶은 모양이다.
"아니요"
"그럼 어디 있었어?"
"그저 남의 집에 있었어요"
서문경의 집에 있었다는 말은 여전히 안한다.
그들이 서문경을 모르는데도 말이다.
"어때, 한 잔 더할 거야?"
"아니요"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월미는 안되겠다 싶어서 사양을 한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참 떠들어대다가
털보가 일어나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좍-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뚝 선채 월미를 향해 내뱉는다.
"자, 우리 암식구, 이제 옷을 벗어"
월미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옷을 벗으라니,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대뜸 알겠는데,
옷을 벗는단 말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안벗고"
한 사내가 냅다 호통이다.
월미는 마지못해 아까부터 앞가슴을 헤치고 있는 윗옷을 부스럭 부스럭 벗어낸다. 그리고 또 머뭇거린다.
"속옷도 벗어"
"..."
"어서!"
도리 없이 내의도 벗는다.
그녀의 상체가 하얀 알몸으로 드러나자,
털보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 히죽이 웃으며 내려다본다.
사내는 또 호령이다.
"일어섯!"
앉아있던 월미는 순순히 일어선다.
"치마도 벗어"
"어머, 어떻게 여기서..."
월미는 애원을 하는 그런 눈길로 털보를 바라본다.
"부끄럽다 그거지? 좋아,
그럼 아랫도리는 벗겨주지.
제 손으로 벗기가 쑥스러울테니까"
"어머나, 싫어요. 여기서는..."
"싫긴 한 식구가 됐는데... 자, 벗겨"
털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사내는
서로 자기가 벗기려고 앞을 다투어 월미에게 달려든다.
흡사 굶주린 세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에게 덤벼드는 그런 꼴이다.
"아이고- 나 몰라-"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월미는
그만 그 자리에 바짝 웅크리고 앉는다.
그러나 세 사내를 당해낼 재간이 있을 턱이 없다.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다.
술기운이 올라 눈들이 번들거리는 세 수컷이
한 암컷의 아랫도리를 금세 홀랑 벗겨 버린다.
그 광경을 서서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던 털보는,
"햐- 괜찮은데..."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볼품없는 얼굴에 비해서
몸뚱어리는 눈이 번쩍 뜨일 지경이었던 것이다.
"두령님, 자 어서 개시를 하시지요.
그래야 우리도 맛을 보죠"
"맛이 그만이겠는데요. 히히히..."
"내가 두 번째로 맛볼까..."
세 사내도 월미의 미끈하고 허연 알몸을
만지작거리기까지 하면서 히히덕 거린다.
자, 그럼 여기서는 안되겠고... 저기 저 위로 옮기라구"
털보는 제단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세 사내는 알몸뚱이의 월미를 마치 무슨 물건인 듯 들어 제단 위로 운반해 간다. 이미 월미는 제 정신이 반은 나간 듯한 상태여서 그저 힘없는 비명과 함께 이따금 꿈틀거릴 따름이다.
제단 위에 내려놓자 그대로 누운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얼른 몸을 옆으로 틀어 아랫도리를 오므린다.
뒤따라 제단 위로 올라온 털보가,
"반듯이 눕히라구. 그래야 개시를 할 게 아니야"
하고 내뱉는다.
그러자 세 사내는 또 달려들어 옆으로 움츠리고 있는 월미의 알몸뚱이를 억지로 반듯하게 눕혀서 두 다리를 활짝 벌려 놓는다.
이미 체념을 한 듯 월미는 꼼짝을 안하고,
두 손으로 얼굴만 가린 채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다.
"됐어. 자, 너희들은 물러가. 가서 술을 마시고 있으라구"
세 사내가 술자리로 돌아가자,
털보는 자기의 아랫도리를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그리고 그녀를 덮친다.
애무고 뭐고 없이 대뜸 개시다.
도둑의 두목답다고나 할까,
그 물결이 거칠기 이를데 없다.
어느덧 월미도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털보의 허리를 두 팔로 휘감아 안고서 자기도 모르게 교성을 내지르고 있다.
그 광경을 세 사내가 술을 마시고 괴성을 지르기도 하며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또 제단의 정면 벽에 그려져 있는, 낡을 대로 낡아 희끄무레해진 공자상(孔子像)이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기도 했다.
그날 밤 월미는 그들 네 사내에게 수없이 겁탈을 당했다.
털보의 개시로부터 시작해서 처음엔 한 차례씩 순번이 있더니, 나중에는 제멋대로였다.
술을 마시다가는 생각이 나면 와서 짓이겨대곤 했다.
월미는 그만 나중에는 지칠 대로 지쳐 코에서 비린내가 쏟아질 지경이었다. 절로 눈물이 볼을 적셨다.
소리없이 흐느껴 울면서 월미는 속으로,
"도둑놈들은 별수 없이 도둑놈들이지, 이것들이 사람이여"
하고 치를 떨었다.
내왕이의 외숙인 그 남정네가 한 말이 생각나서였다.
'도둑들도 사람이란 말이야. 같은 처지의 딱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 그거야'라고 하던 말 말이다.
그리고 월미는 주막집에서 주모가
'도적떼에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볼장 다 보는 거라구'라고 한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바로 이런 신세가
볼장 다 본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