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어려서 부터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가 누구를 만나면 우리 언제 밥 한끼 먹자,
또는 만나서 술한잔 하자가 공통된 인사말이다.
정말 밥 한끼의 위력은 대단하다.
대화 속에 모르는 사람도 얘기하다보면 사돈의 팔촌 쯤 관계를 찾아낸다.
밥 한끼의 문화는 정말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름다운 풍습이다.
밥 한끼 먹고 나면 그렇게 어색하고 모르는 사이었어도 친밀해지고 정이 간다.
술 한 잔은 또 어떤가?
술 한잔 마셨다하면 순식간에 형님 아우가 된다.
술도 사회생활의 소통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이다.
얼마나 품위를 지키며 잘 마시느냐에 따라 출세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술이다.
그러나 만취는 금물이다.
만취하면 간땡이가 잔뜩 부어 사장님도 강아지 새끼로 보이면 패가망신한다...ㅎㅎ
오늘은 나의 존재가 그냥 평범한 주부로 살아 갈 번한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낸 사람.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봐주고, (독자들이 말하길)글을 명주실처럼 술술 뽑아내는 작가로 탄생하게 해 준
제천단양뉴스 대표님을 사우나 입구에서 만났다.
무지 반가운 분이라도 내 모습이 완벽했을 때 말이지, 민낯으로 만났을 때는 경우가 다르다.
하필 처음으로 화장하지 않은 민낯으로 만났다.
얼마 전 풍기 온천에 갔다가 화장품 가방을 두고 온 사건 이후라
또 두고 올까 하는 우려 때문에 아예 화장픔 가방을 안 가져갔다.
생기를 발하는 립스틱하고 눈썹 연필이라도 가져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목욕하고 차타고 집에 오면 되는데 하는 안일한 생각이 이렇게 난감한 지경이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준비된 삶을 살아야한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날지 모르니까 예쁘게 치장을 하고 사는 게 맞다.
한국 문화는 식사 때가 조금 덜되어도 누구든지 만나면 우리 식사나 하러가요? 기본 인사다.
점심 때가 다 되어가니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식당에서 만나자하고 가니 단체 예약 때문에 대부분 식탁엔 세팅이 되어 있었다.
한자리 있지만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다른 식당엘 가니 한적해서 좋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부들 여덟 명이 바로 우리 옆자리를 차지했다.
와~이건 수십 명의 단체손님보다, 군상들로 북적거리는 5일 장날보다 더 정신없이 시끄럽다.
뭐 피하려다 뭐 밟은 격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도 모임에 만나면 깔깔거리고 주변의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떠들어댈거라고 짐작해본다.
허긴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보따를 풀어놓으려니 오죽 할까. 그래도 나중에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먹는 내내 민낯이 마음에 걸린다.
호박에 수박만큼 예쁘게 줄만 그었다면 얼마나 당당하고 재미있고 좋은 자리인가.
그러나 다행인 것은 사우나하면서 1시간 반 퉁퉁 불리고 나와 봐줄만 하겠다는 생각에
서서히 위로가 되고 방전되기 시작한다.
대표님만 생각하면 정말 고맙고 고마운 나의 은인이다.
목숨을 구해준 것만 은인이 아니다.
쓰던 글도 그만둘 나이에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작가라는 대단한 자존감에 무게를 실어준 분이다.
생각하면 노후를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분이고, 나를 젊어지고 예쁘게 만들어 주신 분이다.
어디를 가든지 나를 알아봐 주고, 남편까지 알아봐주니 자연스럽게 품위 유지에 신경 쓴다.
마음이 행복하다보니 표정이 밝아지고 내가 예뻐지고 젊어진다.
아귀 수육과 술 한잔하면서 대표님은 오늘 우리 동네 두부를 찾으러가는 길에
들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한다.
우연히 우리를 만난 게 그렇게 신기하단다. 그 얼굴 표정, 사람 좋고 천진함 그 자체다.
대표님은 내 남편을 덕은 큰 형님이라며, 만나면 친 형님 만큼이나 좋아한다.
대표님 친구 분도 족보를 들추다 보니 남편 친구 친구의 조카다
언젠가 대표님이 술자리에 불러 한번 만난 적이 있으니 구면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대표님은 몇 번이나 "오늘 만난 것도 글로 쓰세요" 한다.
대표님을 처음 만났을 때, 만나고 바로 이튿날 군 사랑방과 동네방네 올라온 내 글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필진 모임이던 뭐라도 글로 쓰라고 하신다..ㅎㅎ
내 글이 독자들에게 술술 잘 읽혀진다는 이유이다.
이걸 뭘 글로 쓸 수 있나 했더니 컴퓨터 앞에 앉으니 신들린 것처럼 술술 막 써지더니
용량초과가 되도록 할 말이 많다...ㅎㅎ
나는 우리 아버지가 유산으로 뭐 물러 줄 게 없어 당뇨병을 물려줬나 하고 원망했다.
지금 생각하니 글쓰는 재주를 물려주어 지금 빛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우리 아부지 고맙습니다" 하고 절이라도 해야겠다.
대표님과 술을 대작하고 자리를 빛낸 대표님 지인 분께도 감사함을 전한다.
우연히 만나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장식한 그날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