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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업이 가장 먼저 움직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에 이은 양국 간의 장관급 협상으로 높아진 우크라이나전 종전 기대감에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몸을 풀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자국 정부의 제재에 발맞춰 러시아를 빠져나왔으니, 전쟁이 끝나면 다시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도망간 서방 기업'(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제1 부총리의 2024년 9월 10일 현지 언론 인터뷰)이 다시 들어가겠다며 문을 두드린다고 쉽게 열릴까?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10년 전인 2014년 크림반도 합병후, 자국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와 기업들의 대거 탈출 등으로 시장 전체가 한순간에 뒤틀리는 혼돈 상황을 거친 뒤 서방 기업들이 재진출하기 까지의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21일 돌아오는 서방 기업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단속에 나선 이유다.
푸틴 대통령. 지난해 말 국민과의 대화 모습/사진출처:크렘린.ru
rbc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래기술포럼'(Форум будущих технологий)에서 서방 기업의 러시아 복귀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서방 기업들의 철수 후) 그동안 얻은 러시아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서방 기업들의 복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틀 안에서 국내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또 국내 기업이 그동안 받았던 특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달라"면서 "그 기준에 따라 복귀하는 서방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에 부과된 서방의 각종 제재가 국내 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위하면서 "러시아 기업은 국내 과학자들에게 더 의지하고, 지원받고 있으며, 어떤 분야의 기술은 외국 기술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 실례로 핵추진 쇄빙선과 지난해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를 들었다. 러시아는 핵추진 쇄빙선으로 북극 개발을 선도하고 있으며, '오레슈니크'의 탄두는 태양 표면의 온도를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서방 기업의 러시아 탈출을 막기 위해 현지 자산 매각 원칙및 정부 기여금 제도 등 각종 대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해 왔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세상을 실감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철수하려는 서방 기업의 자산 매각을 어렵게 하기 위해 매각 시 50% 할인과 최소 15%의 출국세(exit tax) 부과 등 각종 규제안을 마련한 바 있다.
◇180도 달라진 러시아 정부 각료들의 발언
산업 통상 부문 러시아 부총리들의 발언은 더욱 엄중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산업통상부 장관을 맡았던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제1 부총리는 21일 "서방 기업의 복귀를 사례 별로 엄격히 따져보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기업들과 (복귀)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일부 회사가 철수 시 '환매'(바이백·buy-back) 옵션을 계약에 포함시켰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그 조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만투로프 러시아 제1 부총리/텔레그램 캡처
알렉산드르 노박 부총리도 이날 타스 통신에 "러시아 시장에서 이미 서방 기업들의 자리를 차지한 국내 기업들을 대체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복귀)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 기업과 투자자의 복귀는 러시아에게 유리한 조건으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석이 된 틈새 시장 중 상당수는 이미 러시아 제조업체나 (중국과 같은) 우호국의 파트너가 차지하고 있다"며 "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부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러시아는 핵심 산업 분야에서 기술의 선두국가로 향하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방 기업의 복귀 가능성은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러 장관급 회담을 계기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리야드 회담에 참석한 미국 월스트리트의 펀드 매너저 출신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 대표의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
트미트리예프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석유기업 등 미국의 일부 기업이 이르면 2025년에 러시아 시장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많은 시장 부문이 다른 (우호국) 기업들로 채워진 만큼, 미국 기업들의 복귀가 실제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복귀가 늦어지면 더 손해?'라는 말이다.
미-러 리야드 협상에 참여한 키릴 드미트리예프 직접투자기금 대표/사진출처:크렘린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에서 철수한 미국 기업의 손실이 3천240억 달러(약 466조4천억원)에 이른다"며 "미국 대표단도 이 규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IT 및 미디어 산업 분야 손실이 1천230억 달러, '소비자 및 헬스케어' 산업이 940억 달러로, 손실 규모 1, 2위를 차지했다는 게 드미트리예프 대표의 주장이다.
NYT는 드미트리예프 대표가 미국의 손실에 관한 자료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회담 후 지정학·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러시아 외무부는 양국이 에너지, 우주탐사 등 경제 협력 재개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러시아 시장으로의 복귀 조건은
리야드 회담장의 이같은 분위기는 러시아에서도 서방 기업 복귀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트럼프-푸틴 대통령 간의 12일 전화 통화로 서방 기업들의 러시아 복귀가 거론되던 차였다.
rbc에 따르면 파벨 류린 러시아 쇼핑센터연합(STC) 부회장은 자라(Zara)와 마시모 두티(Massimo Dutti), 베르쉬카(Bershka)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스페인 기업 인디텍스(Inditex) 측과 러시아 시장 복귀에 관한 비공식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그러나 스웨덴의 H&M는 러시아에 다시 진출할 의향이 없다고 그는 전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금융시장 위원회의 아나톨리 악사코프 위원장은 국제결제시스템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다고 17일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국제결제카드인 미르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시장 복귀가 만만치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러시아 복귀 논의는 성급하다"며 "아직 접촉이 없다"고 밝혔다.
현지 경제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만투로프 제1부총리는 21일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티타늄을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 보잉에 판매할 수 있다"며 소위 '희토류'의 거래 가능성도 암시했다. 보잉은 3년 전 '티타늄 밸리'(러시아의 티타늄 제1차 가공 단지)에서 철수하면서, 러시아산 티타늄 구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동시에 에어버스와 보잉사의 엔진을 생산하는 영국 기업 롤스로이스도 러시아 철수를 선언했다.
만투로프 부총리는 그러나 "보잉사로부터 항공기의 러시아 판매에 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고,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보잉사가 우리(러시아)에게 다시 항공기를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고 확인했다.
보잉 등 서방의 주요 기업들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후 러시아 시장에서 대거 철수했다. 자국이 설정한 각종 대러 제재의 위험을 피하고 국제적 평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철수한 기업은 560여개사로 추정된다.
이들 기업의 시장 복귀에 대한 러시아 측의 견제 심리도 포착된다.
러시아 산업및 기업가연합(RSPP, 우리의 한국경제인연합 격)의 알렉산드르 쇼힌 회장은 18일 '세금관련 포럼'에서 "철수한 외국 기업의 시장 복귀 조건은 '바이 백 옵션)'이 명시된 법적 문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수 시 복귀를 전제로 한 바이백 조건 등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면 복귀가 쉽지만, 돌아올 생각이 없이 떠난 경우 복귀는 힘들다는 것.
그는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며 "많은 외국 기업들이 복귀 가능성을 전제로 러시아 시장을 떠났다"며 "옵션 계획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면, 이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제작사의 경우, 르노와 닛산은 '6년 내 매각한 자산을 재매입한다'는 옵션 계약을, 현대차는 '2년 내 공장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단 것으로 전해졌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그같은 옵션없이 러시아측에 넘겼다.
쇼힌 회장은 "맥도날드의 경우처럼 회사가 떠나고, 브랜드를 바꿨을 경우, 이미 다른 기업이 틈새 시장을 차지하고 있으며 회사 이미지도 나빠 20년, 30년 전의 사업 전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간판을 내리는 맥도날드/텔레그램 캡처
맥도날드 간판을 내린 자리에 들어선 러시아 패스트푸트 채널 푸쿠스 이 토츠카/사진출처:프쿠스 이 토츠카
◇ 르노, 폭스바겐 등 외국 자동차 브랜드 복귀는?
관심이 가장 높은 곳은 역시 자동차 제조업 분야다.
안톤 알리하노프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은 "외국 자동차 회사가 떠난 후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발전 기회를 얻었으며, 이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측에 매각한 브랜드의 반환 요구가 있을 시, 그 진행 과정을 꼼꼼히 챙기고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 발발 전까지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 외국 브랜드는 현대 기아차를 비롯해 독일의 벤츠와 BMW, 폭스바겐, 프랑스의 르노, 일본의 도요타 등이었다. 이들 브랜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러시아 시장을 빠져나갔다.
'모스크비치'로 간판을 바꿔단 '르노 러시아' 공장의 모습/사진출처: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블로그
특히 러시아 국민차 '라다'를 생산하는 아브토바즈의 최대 주주였던 르노는 2022년 5월 러시아 사업과 아브토바즈 지분 약 68%를 2루블(약 32원)에 넘겼다. 당시 자산 가치는 22억유로(약 3조3092억원). 다만 6년 이내에 아브토바즈 지분을 다시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을 달았다. 르노는 전쟁 이전에 매출의 10분의 1을 러시아에서 벌어들였으며, 다른 서방 기업들보다 훨씬 많은 4만5천명의 직원을 현지에서 채용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르노 러시아'의 모스크바 자동차 공장은 '모스크비치'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르노의 루카 데 메오CEO대표는 20일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회견에서 러시아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를 따라잡기보다 미래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기업인이다.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면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말하는 미래는 유럽연합(EU)의 CO2배출 기준을 충족시키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출시 등이다.
'모스크비치' 간판이 다시 '르노 러시아'로 바뀔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르노 자산을 인수한 주체 격인 모스크바시의 세르게이 소뱌닌 시장은 21일 르노의 복귀 가능성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또 르노의 티에리 피에통 최고재무책임자도 '아브토바즈의 (옵션) 조항'이 발동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봤다. 만투로프 제1 부총리도 '조건부 거래'에 방점을 찍었다.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시장을 떠난 독일의 폭스바겐은 어떨까?
폭스바겐은 현지 공장과 딜러(유통 대리점) 등과 법적 투쟁을 벌이다가 전쟁 발발 1년을 훌쩍 넘긴 2023년 5월 칼루가 공장 등 러시아 자산을 '아트 파이낸스'에 매각했다. 이후 'AGR Automotive Group'(이하 AGR 그룹)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이 법인의 대표(혹은 소유자)는 러시아에서 폭스바겐 자동차의 현지 조립및 유통 등을 맡아온 '아빌론(홀딩스)'의 사장을 지낸 안드레이 파블로비치다. 그는 2022년 12월 '아빌론' 사장을 그만두고 '아트 파이낸스'를 설립해 폭스바겐을 인수한 것이다.
AGR 그룹(AGR 홀딩)은 20일 러시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법인 'Dafetoo'와 '테넷'(Tenet) 브랜드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튿날(21일) 공장이 있는 칼루가주의 블라디슬라프 샤프샤 주지사가 '테넷 SUV' 새 모델을 텔레그램에 올렸다.
칼루가주 주자시가 소개한 테넷 SUV 자동차 모델/텔레그램 캡처
현지 매체는 새로운 모델이 중국의 '체리 SUV'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체리가 테넷으로 이름만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체리 자동차도 현재 칼루가 자동차 산업 단지에서 조립되고 있다.
샤프샤 주지사는 "새 자동차는 러시아의 여러 조건에 맞춰 특별 제작됐다"며 "안전을 신뢰할 수 있고, 편안하고, 앞선 기술이 적용됐다"고 강조했다.
AGR 홀딩 측은 올해 2분기 초부터 '테넷'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1단계에서는 대형 조립 방식으로, 2단계(3분기)에서는 부품 조립 방식으로 생산한다고 했다.
현지 언론이 "러시아와 중국의 자동차 산업 협력이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평가하는 걸 보면, 폭스바겐이 다시 이 공장을 차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폭스바겐은 바이백 옵션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칼루가 자동차 단지에 있는 'PSMA 루스'(ПСМА Рус)는 러시아 기업 '자동차 기술'(Автомобильные технологии)에 넘어갔는데, 현재 시트로엥과 중국 브랜드 '하발'이 조립되고 있다.
르노와 폭스바겐 등 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에 재진입하더라도, 그 사이에 자리를 잡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2023년부터 중국과의 협력으로 회복세로 접어든 상태다. 2023년에는 전년도 대비 약 20% 증가한 53만7천대의 승용차를 생산했다. 트럭 생산량은 16만8천대다.
러시아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4년 러시아의 신차 판매량은 전년도 대비 47% 증가한 155만1000대로, 2022년 대비 156% 늘어났다. 2025년 전망은 지난해 대비 약 10% 감소한 143만대 정도다. 고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폐차 비용 증가 등으로 차량 가격이 비싸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시장 복귀는 순탄할까?
현대자동차는 10년 전인 2014년 크림반도의 병합후 서방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가 러시아를 떠날 때 현지에 눌러 앉았다. 이때 얻은 러시아 소비자들의 신뢰로 최근 몇년 동안 러시아 시장을 선도하는 '국민 기업' 급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현대차도 이번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23년 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1만 루블(약 16만원)에 폭스바겐을 인수한 'AGR그룹'에 매각했다. 2년내 재매입 권한을 부여한 '바이백' 옵션을 걸었다. AGR그룹은 인수 직전 현대차 러시아 법인에서 오래 근무한 알렉세이 칼리체프 현대차 상무(러시아법인 사업 총괄)를 신임 CEO로 영입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차가 공장을 되살 때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후 AGR그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새로운 브랜드 '솔라리스'를 출시했다. 폭스바겐 공장에서 '테넷'을 출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솔라리스'는 현대·기아차 모델을, 테넷은 중국 체리 모델을 생산한다는 게 다르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생산되는 솔라리스 브랜드/사진출처:텔레그램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사진출처:현대차
현대차는 종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러시아 연방지식재산권국에 '현대'(HYUNDAI) 상표권을 재등록하는 등 시장 복귀를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다. 2007년 현지 법인을 시작으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는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 이듬해인 2011년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현지 맞춤형 소형차 '쏠라리스'와 해외수출용인 소형 SUV '크레타', 기아 '리오' 등이다. 2020년에는 연간 1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미국 GM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도 인수했다. 그 결과 현대차의 생산 규모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1년 기준 23만4천대까지 늘었다. 또 같은 해 기아와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외국차 브랜드 1, 2위에 올랐다.
현재도 개인사업자들이 '병행수입' 형태로 현대차 기아를 판매하고 있다. 현대차의 유럽 전용 소형 SUV인 '베이온(Bayon)'의 등장도 현지에서 주목을 끌었다. 또 현지 자동차 전문매체 '자룰렘'(Зарулем, 운전대를 잡고)은 12일 새로운 기아 '스포티지 SUV'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소개하며 "시베리아 블라고베셴스크에서는 2023년형 스포티지를 328만9000 루블에 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러시아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브랜드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전쟁 기간 러시아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에 자동차 시장 재진출이 특히 어려울 것"이라며 "전쟁 전 10% 미만이었던 중국 업체들의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현재 50%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 분석기관 오토스탯(아브토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 판매된 신차(157만1천272대) 중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 '톱10' 에서 하발, 체리, 지리 등 중국 브랜드가 무려 8개를 차지했다.
◇ 러시아 시장에 재도전하는 KG모빌리티
러시아 시장을 노리는 또하나의 한국 브랜드는 KGM(KG모빌리티)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KG모빌리티는 오는 3월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준비중이다. 러시아 시장 판매를 위한 OТТС(러시아 인증)를 받은 상태로, 모든 모델에 5년 또는 10만㎞의 보증을 약속했다.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KGM은 3월 초 토레스와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 4개 모델의 현지 판매를 시작한다. 현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시연회도 성공리에 끝냈다.
KGM의 현지 공식 유통업체인 'REX-Motors'의 비탈리 오시포프는 19일 "올해 판매 목표를 2만대로 정했다"며 "일단 한국에서 자동차를 들여오되, 오는 9월까지 칼리닌그라드 공장 '아브토토르'에서 자동차 조립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판매는 토레스가 60%, 렉스턴 25%, 코란도 10%, 티볼리 5% 내외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40개의 현지 딜러로 시작해 올해 말까지 70개까지 늘릴 작정이다.
러시아 시장에 재도전하는 KG모빌리티의 티볼리/사진출처:KGM
가장 저렴한 모델인 티볼리 가격은 359만 루블(약 5,862만원)부터다. 자동차 전문 매체 자룰렘의 막심 카다코프 편집장은 "가격을 감안할 때, KGM의 시장 점유율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KGM의 전신인 쌍용자동차는 2005년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10년만에 철수했다. KGM은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선언하면서 옛 쌍용 브랜드 차량에 대한 애프터서비스(A/S)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지 KGM 서비스 담당 부서장인 예브게니 모르쉬킨은 "KGM의 모든 소유자(구 쌍용 포함)에게 필요한 예비 부품을 확보하고,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K-브랜드의 러시아 진출 전망은
러시아 생산기지의 가동을 중단한 삼성전자와 LG전자. 2008년 칼루가주에 공장을 세운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현지 생산했으나, 2022년 3월 부품 수급 등의 문제로 공장을 멈췄다.
LG전자도 2019년 말까지 루자공장과 러시아 법인 운영에 4억9천300만달러(약 7천90억원)를 투자했지만, 역시 2022년 8월 공장을 멈춰세웠다.
러시아 시장조사업체인 온라인 마켓 인텔리전스(OMI)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가장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 1위 자리를 차지했고, LG전자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중국과 튀르키예(터키) 등 우호국의 수입이 대폭 증가하면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큰폭으로 떨어졌다. 2023년 기준 러시아 가전 시장에서 중국, 터키, 벨라루스 기업의 점유율이 40% 이상을 기록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등장한 한국식 편의점. 현지 업체 '코레아나'(Koreana, 러시아어로는 Кореана)이 문을 연 편의점 'Ко24'다. 한국형 편의점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이미 개설된 바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문을 연 한국식 편의점 KO24/사진출처:KO24
블리다보스토크의 편의점 모습/바이러 자료사진
차이는 있다. KO24에는 한국 식품과 의류, 화장품 등 한국 상품을 판매하고, 한켠에는 카페(레스토랑, 좌석 20여개)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편의점에서는 한국의 즉석 라면과 시식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산 상품들도 판다.
코리아나 측은 K-팝 등 한국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감안해 체인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도 한국의 가공식품 등 아시아권 제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어 KO-24 체인점이 계속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지 궁금하다.
KO-24 체인점 창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라면과 만두 등 한국산 먹거리의 러시아 수입은 계속 늘고 있다. 현지 매체 브즈글랴드에 따르면 2024년 러시아의 한국산 국수와 만두 수입액은 3,010만 달러에 달해 20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