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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人 永川李氏 (有庸配) 墓表銘 숙인 영천이씨 묘표 (영조47년경인1770년수갈)
예안 현감 이연이 진응에게 말하기를, 예안현서 송라산 아래 수묘동에 국초 사직김공 휘 유용의 묘소가 있고, 공의 묘소 5리 거리 사천산 해좌원에 그 배위 이씨부인의 묘소가 있으니 모두 각 조로 모셨다. 나와 현감은 모두 외예손이다. 묘역이 오래되어 황폐해질까 두려우니 이두 묘소에 표석을 세우자고 상의하고 현감은 사직공의 묘명을 스스로 서술하고, 나는 부인의 표석을 이미 갖추고 성사를 하려 하니 자네 역시 외예손이니 모름지기 이일을 대강 기록하라 하니 진응이 어찌 감히 사양하리요. 삼가 살피건데,
부인의 본은 영천이요, 신라 평장사 문한의 후예로 고조는 이부시랑 휘 송여이며, 증조는 주부 휘 충이며, 조부는 군기소윤 휘 헌이며, 아버지의 휘는 파인데, 문과 의흥 현감이며, 증손 효절공 휘 현보가 귀히 되어 증이조참의라. 부인께서 김씨에 출가하니 판한성부윤 휘 성일, 생원덕부 진도군사 휘 도생, 신천부사 휘 지로는 그 윗대 4세이다. 부인은 아들이 없고, 딸 둘을 두었는데, 맏딸은 판서 이계양 이요, 다음은 통찬 김홍 이다.
이계양의 아들에는 진사 식, 참판 우요, 녀에 김만신, 김신이다. 둘째 김 홍의 아들은 만일 이요, 녀는 현감 김 정몽, 사인 박 숭부, 이 훈 ,김 자연 ,판결사 권수익이다.
증현손 이하는 다 기록치 못한다. 다만 현저한 분만 기록해보면 대사헌 이해(온계), 문순공 이황(퇴계), 도사 이열도 (우암,백송파), 도정 이초노, 장령 이래, 지사 김집, 좌랑 김시주, 사예 조정융(매호 조우인子, 이열도의 외손자), 판서 이지익, 장령 이찬한, 사예 이희무, 문순공 권상하, 판서 권상유, 부윤 이정명, 헌납 곽만적, 함평군홍교리 김세흠, 한림 김세호, 정언 김창석, 정언 박희민, 참의 유승현(용와), 부사 김시빈, 부윤 권영, 판서 권혁, 해흥 군강, 해춘 군영, 해운 군연, 해청 군경, 해봉 군린, 해영 도정담, 헌납 곽진순, 지평 박성옥, 지평 이급, 승지 이영휘, 문학 이영록, 참판 조명익, 정랑 곽성제, 집의 이동태, 교리 이명훈, 지평 이우규, 대사간 이세택, 사서 이세진, 참의 이세사, 참판 이세태, 감사 정옥, 판사 황인검, 감사 김치양, 정언 이상주, 검열 류의는 이식(李식)의 후예이고,
도사 조광익, 부윤 오운, 검열 정비, 감사 이명익(반초당), 자의 정도응(우복 정경세孫), 우윤 김혜, 한림 류세명, 감사 김성구, 정언 송병하, 판서 민진후, 좌의정 민진원, 현감 이문표, 승지 이동표, 수찬 김여건, 좌랑 김만주, 부사 권선동, 돈령 송요경, 지중추 송요화, 장령 민악수, 대사헌 민우수, 참판 민형수, 부윤 민통수, 좌참찬 이제, 찰방 이제겸, 좌랑 김경필, 찬선 송명흠, 제주 김원행, 우의정 민백상, 참의 민백순, 참판 민백흥, 판서 원경하, 문학 최수범, 참의 이제원, 참판 조영진, 판서 이은, 안사 이미, 정언 김방, 정언 김위, 응교 송지연, 판서 원인손, 감사 원의손, 교리 김이헌, 교리 김이소, 교리 민종열, 정언 조창규, 고리 김문순, 흥은부위정 재화는 이우의 후예이고,
첨정 안제, 사간 안력석, 대사간 남천한, 좌승지 남천택, 좌랑 남천상, 참의 안복준은 이계양의 차녀 김신의 후예이고, 부사 박 승간, 대사간 박 승임, 감사 김 중청, 참의 이 지, 지평 김 주우, 좌랑 권 후, 부사 이 상언, 좌랑 박 충기, 응교 양 만용, 지평 이 적의, 수찬 권 두경, 정언 권 두기, 사간 박 홍준은 김만일의 후예요.
승지 이헌묵은 박승부의 후예이고, 교리 권운, 참판 조목, 부사 금업, 목사 금계는 권수익의 후예요.
이우의 증손녀는 문장공 정경세에게 출가하였고, 문장공의 녀는 문정공 송준길이고, 문정공의 녀는 여흥부원군 민유중이니 이분이 바로 아조 인현왕후를 낳으신 분이다. 오호라 부인의 세대가 멀고 오래되어 생졸사행은 상고할 수 없으니, 오직 빛나는 음덕이 외손에게 까지 끼침이 전하여 영호남의 의관거실이 대개가 부인의 외손들로서 많은 명현석보가 배출되어 세상에 빛나는 망족으로 서로 우러러 보고 있다. 또한 태어 나심이 성대하여 중국의 빛이 되었으니 그 권인이 깊으면 흐름이 멀다는 것을 가히 이에 징빙하리로다. 이현감은 송문정공의 외현손으로 부인에게는 10세 후손으로서 이 고을의 현감이 되어 기 백년을 지나도록 이루지 못한 일을 능히 잘 이루었으니 그 추원의 정성을 가히 공경할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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