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추억
케네스강 (글무늬 문학사랑회)
어릴적에 나는 겨울이 되면 작은 형과 함께 언 손을 호호 불며 썰매를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동구 앞 넓은 논바닥, 꽁꽁 언 빙판으로 나가서 신나게 썰매를 탔다. 썰매는 널빤지와 철사줄과 대못, 망치와 펜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잡고 얼음판을 쓱쓱 밀어주는 대못박힌 손잡이 두 개가 있어야 한다. 널빤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얼음판을 지치며 달리는 일은 신나고 스릴이 있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나는 자연히 농촌 사람들의 생활습성에 젖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하는 수칙이었다.아버지는 평생을 국민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셨지만 농사일에도 뛰어난 지식을 갖고 계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쌀, 보리, 콩, 팥, 밀은 기본이고 감자, 고구마, 조, 옥수수, 호박, 참깨, 머위 등도 심으셨다. 마당 주위와 뒷산엔 감나무와 밤나무, 대추, 앵두, 포도까지 심으셨다.
햇볕에 반짝이는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중에 유난히 많은 것은 감이었다. 감 중에서도 나는 특히 단감을 좋해 했다. 봄에 노란 감꽃이 땅에 수북이 떨어지면 동네아이들이 그걸 주워먹기 위해 우리 집 마당으로 몰려들곤 하였다. 감꽃을 한 주먹씩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오래된 높은 감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했다.
겨울에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어머니가 해 주시는 동지팥죽이었다. 동글동글한 새알은 붉은 팥죽 속에서 말랑말랑했다. 때로는 살짝 얼은 얼음을 걷어내고 팥죽을 먹기도 했다. 청년시절 나의 미국인 친구를 시골 집으로 데려 왔는데 어머니가 동지팥죽을 내놓으니 너무 잘 먹어서 가족들이 모두 놀란 적이 있다.
긴 겨울 저녁에 간혹 출출할 때는 땅 속에 묻어둔 고구마와 무우를 꺼내서 깎아먹는 재미도 좋았다. 가을 추수할 때가 농촌에서는 가장 바쁜 때다.
품앗이라고 하는 오랜 관습에 따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을 도와 주었다. 우리는 그 제도를 놉 이라 불렀는데, 아마도 그 어원은 노비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매년 추수 후에는 기와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헌 지붕을 걷어내고 노란 새 볏단으로 지붕을 얹어야 하는데 시골에서는 그것이 큰 연중행사중의 하나이다.
봄이 되어 논에 모를 심는 일은 그야말로 천하지대본이다. 남자들이 물이 흥건한 논에 못 단을 듬성 듬성 던져넣으면 양쪽에서 못대를 잡고 모를 심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젊은 여인들은 갓난아이들을 데려와서 논두렁에 앉아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거나 잠을 재우기도 했다. 모 심을 때 나이 지긋한 여인들은 노랫가락을 합창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렇게 해야 일이 훨씬 수월하단다.
제일 신나는 시간은 샛거리가 나올 때이다. 남자들은 샛거리와 함께 시원한 막걸리를 몇잔씩 돌린다. 샛거리보다 는점심시간이 더 신나는 시간이다. 집에 있는 아이들도 모두 불러 함께 밥을 먹는다.
여름철에는 매미를 잡기도 하고, 논에 나가서 미꾸라지와 고동, 개구리를 잡기도 하였다. 그때는 개구리가 온 논에 와글와글 하였다. 요즘은 논에 개구리가 없다는데 아마 농약때문이 아닌가 한다.
음력 대보름이 되면 동구앞에 싸리나무 등으로 달집을 짓는데, 그동안 날렸던 연들을 꼭대기에 얹고 서로 달밤에 처들어가서함 불을 싸지르느라 이웃동네 아이들과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옆동네에 처들어가 그 동네 달집을 먼저 불 싸 지르면 승자가 되는것이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싸움이 크게 번져 몇몇 아이들은 코피가 터지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꿈을 많이 꾸었다. 어른들은 키 크려고 그런 꿈을 꾼다고 하였는데, 하여튼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유난히 많이 꾸었다, 사방 어둑어둑한 꿈속에서 혼자 이 산 저 산으로 훨훨 날아다니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정말 무서웠다.
농촌마을 새벽에 이집저집에서 닭들이 울면 어머니는 어느새 일어나서 많은 식구들의 밥을 하시 느라 보리방아를 찧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낮이면 뒷산의 붕엉이 소리도 '부엉부엉' 한가로웠다. 돼지와 닭도 길렀다. 외삼촌이 가끔씩 오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마른 오징어를 많이 가져오셔서 참 좋았다. 오실때 마다 내 공책을 보면서 공부 잘한다고 칭찬하시며 그 중 한 권을 우리 외사촌들에게 보여준다고 가져 가곤 하셨다.
나는 농촌의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이를 즐기고 살았다. 하지만 나의 손주들은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에 노출되어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를 통해 다양한 게임과 온라인 활동에 참여하고 놀이를 즐긴다. 또한 실내에서 주로 TV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과 같은 놀이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손주들이 할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보는 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