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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에 관심을
성경본문: 잠언 9: 9-10
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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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 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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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엄청난 정보와 지식이 쌓여가고는 있으나 사람답게 살게 하는 지혜는 점점 희박해집니다. 그 결과는 청소년들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엉뚱한 것에 쫓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우리 세계의 허탈과 좌절의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계속 쌓여 가는 엄청난 정보와 지식은 어린 심령들을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리 떼어놓고 있습니다.
잠언서는 지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삶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요즈음의 말로 올바른 삶의 방향성이요 삶의 올바른 시각입니다.
잠언 8장 7절 이하에 보면 지혜란 "진리를 말하며 ... 악을 미워하고 ... 정직히 행하는 것"등 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라고 알려줍니다.
지혜의 근본이란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그 원리를 잠언의 본문은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삶의 올바른 방향이 설정된다는 말입니다. 이 지혜가 다름 아닌 삶의 마스터-키 즉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오늘의 세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마스터 키를 지식인들이, 전문가들이 못 가진 이유입니다. 각계 각층의 지식은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어서 지식인들은 계속 배출되고 있는데 반하여 지혜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점점 없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지식의 경쟁은 너무도 세찹니다. 최근에 와서 정보와 전산학(컴퓨터)의 발전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과학, 의료 등등 각 분야에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고 있고 또 기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인류가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까지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어림없는 환상입니다.
위험은 교육열이 높아지고 지식의 경쟁이 세차면 세찰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점점 약해지는데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저리 가라 해놓고, 컴퓨터만 두드리고 있으니! 그래서 문제가 풀릴까요?
부모들이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이유와 또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초등학교 5, 6학년생을 대상으로 질문을 4가지로 좁혀서 해보았습니다:
1) 삶의 수단으로서 좋은 직장 직업 가지고 돈 많이 벌고 잘 살려고 공부한다.
2) 생각과 판단을 옳게 하게 하려고 공부한다.
3) 도덕적, 사회적 행동을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4) 삶의 철학, 삶의 시각, 삶의 방향을 심어 주려고 공부한다.
그 대답을 보면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목적이나 자녀들이 공부하는 목적이 주로
1)쪽에 있었습니다.
2)쪽은 약간이고
3)이나
4)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축적된 지식이 엄청나고 또한 그것을 배운 많은 지식인들이 배출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엮어 가는 세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환멸하고 좌절하는 이유가 나변에 있을까요? 그것은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저들에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시각과 방향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배우는 자들의 문제점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지능과 성격과의 분리입니다.
다른 말로 과학적 사고와 도덕적 행동과의 다름입니다. 머리가 좋고 명석하다는 것과 착하고 선하다는 것과는 같지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지능이 매우 높으면서도 인격이 아주 비뚤어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는 잘 하는데 도덕적 행동은 엉망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의 대부분이 지능 즉 아이큐가 높습니다. 머리가 밝기에 악을 꾀하는 수단도 비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식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입니다.
현금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의 비리 사건 등등에서 그 예들을 자주 봅니다. 서양의 모 감독이 "모든 과학 연구소를 한 세대나 두 세대 동안 폐쇄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다이너마이트를, 핵을 방향 감각이 없고 올바른 세계관이 없는 과학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온 인류가 전멸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차라리 과학연구소의 문을 닫고 과학자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배워주고 그리고 연구소 문을 열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모럴, 즉 도덕의 발전 없는 과학의 발전은 세계와 인류의 파멸을 더 재촉할 뿐입니다. 체코의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지금의 위기는 우주, 자연, 존재와 우리의 삶 그 모두가 창조주의 의지에 의한 피조물이라는 인식을 결여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창조주의 뜻을 담은 지능 없이는 세계의 종말이 재촉될 뿐입니다.
오늘날 배우는 자들의 문제는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을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즉 마음의 훈련을 거의 무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대 사건들이 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의 깊은 마음속에 도사렸던 것이 겉으로 분출하는 것입니다. 남이 볼 수 없게 속으로 간직했던 이기적인 욕망들이 겉으로 나타날 때, 세상을 온통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한 개인 속에 잠재해 있던 돈에의 욕망, 권력에의 욕망 등이 무서운 범죄를 일으킵니다. 세계 1, 2차 전쟁도, 남북의 분단도, 6. 25전쟁도, 광주사건도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세계를 올바르게 세워가려 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조금이라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남에서 가능합니다. 자녀들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질 때 그의 마음은 올바로 섭니다.
오늘날 공부하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실험실 마음입니다. 매사를 자로 재보고 실험관에 넣어보고서야 믿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실험실 마음은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을 도외시합니다. 삶의 가장 고귀한 것들은 실험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름다운 삶, 예컨대 사랑, 우정, 기사도 정신, 희생, 신뢰 등등은 결코 과학적인 실험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인 증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세계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실제가 한 작은 인간의 머리에나 실험관에 잡힐 수가 없습니다.
머리가 커지면 신앙이 잘 안 들어간다고들 합니다. 옳습니다. 과학적인 사고 나 실험실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하나님 신앙을 깊이 심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아동부, 중고등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머리가 커지기 전에 예수님을 그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카톨릭은 자녀들을 10살 안에 신앙적으로 잡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빨리 그리고 먼저 갖도록 자녀들을 키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중심을 잘못 두고 있습니다.
우선 육적인 즐거움에 삶의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여가만 있으면 놀기를 꾀하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도취되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밥벌레" "술벌레" "재미벌레"라고 이름 붙일만한 사람들입니다. 주말만 되면 놀러 다니기가 바쁩니다. 그러니 선한 일 착한 일을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선한 사업을 위한 물질적 여유도 없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는 한푼 안 쓰면서, 여행에는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제 매를 맞을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즐기는데, 노는데 삶의 중심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쓸모 없는 인간들입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물질추구에 삶의 전체를 거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활동이 온통 돈 모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직업 자체, 사업 자체가 오직 물질을 더 쌓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여기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돈을 벌 목적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돕게되어 도움을 받게 되는 법인데, 처음부터 장사 속으로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들 때문에 기독교가 마치 무당 종교에서 보는 대로 기복신앙인들의 모임처럼 오해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교사들은 어린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지혜를 심어주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갖도록 함에서 삶의 방향, 삶의 자세를 올바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지식 이전에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선택 과목이 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택해도 되고 안 택해도 되는 선택 과목이 아니고 반드시 택해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어렸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인격을 만나게 함에서 한 생명의 일생은 아름답게 됩니다. 영원히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아니면 저주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머리와 인격이 따로 따로 놀지 않고 삶의 중심을 올바른 데 두고 사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지혜를 배워주는 데 있습니다. 외적인 것,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내적인 신앙의 차원을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빠를 수록 좋습니다. 어릴 수록 효과적입니다. 교회의 큰 지도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혜를 전수 받았습니다. 진젤돌프는 4살에 중생의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매튜 헨리도 어릴 적에 중생의 체험을 했습니다. 마음이 굳기 전에 믿음을 심어주고 지혜를 심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키워 놓으면 삶의 중심을 바른데 둘 수 있게 됩니다. 재미벌레, 밥벌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돈 돈 하면서 추하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육적인 욕망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식 위주로 자식들을 키우지 말고 지혜 위주로 키우십시다.
아직도 세상의 오락과 재미에만 정신을 팔고 교회 생활을 우습게 아는 자녀들이 있다면 더 굳어지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면 머지않아 부모를 원망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려고 애쓴 사람들 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까? 지혜를 전수 받은 후손들은 신앙의 부모님을 너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 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지식은 지혜 다음에 와야합니다. 물론 학식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큰 지도자가 됩니다. 자녀에게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지혜 있는 자녀들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영웅상으로 키울 거냐? 아니면 성자상으로 키울 것이냐? 가 문제입니다. 요즈음의 세상의 교육은 온통 영웅상을 만들어 보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등주의가 그것입니다. 박세리나 박찬호의 신드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웅상이란 세상의 지배자들이 꿈꾸는 인간상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성자상입니다. 즉 지배하는 마음이 아니라 남을 봉사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누가 더 큰가?" 서로 싸우면서 영웅이 되려는 제자에게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비록 세상적으로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지혜는 성자상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품에 안고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삶의 모범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인간상을 분명하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수송교회는 몇 년 전에 소자에 대한 관심을 표어로 하였고 다음에는 소자 중에 어린이들을 특별히 관심하는 뜻에서 표어를 "소년 소녀들을 품어주자"로 하였습니다. 좋은 반향을 일으켰었습니다. 본당 한복판에 쓰여진 표어를 보면서 교사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모두 매우 좋아했습니다. 전도운동도 어린이들과 소년 소녀들 쪽으로 잡고 노력하였습니다. 어린이의 영혼을 어른의 영혼과 똑 같이 귀하게 여기고 전도를 시작했는데 많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앞으로 4년후에는 우리 교회가 70주년을 맞는데 그 때를 전후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관을 세우는 일에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 소년소녀와 청년들이 마음놓고 놀고 대화하고 말씀을 배우는 공간이 장만되어야 합니다. 어린 한 생명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우리 교회가 열심히 하십시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