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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17
요단을 건너갑시다. / 안효관 목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리는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슴 설레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곧 광야 생활 40년을 끝내고, 그렇게도 그리고 기다렸던 약속의 땅 가나안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하면서 40년 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약속의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 40년! 말이 40년이지 그 40년은 보통 긴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나그네로 살아가야 했던 세월이었습니다. 천막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숱한 사막을 가로질러 왔습니다. 낮에는 머리 위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이고, 사막의 모래는 태양에 데워져서 제대로 신발 하나 신지 못한 백성들의 발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낮이면 그렇게 뜨거웠던 사막이 밤이면 무척이나 춥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60만이 넘는 떠돌이들을 좋아할 민족이 없었습니다. 곳곳에 대적들이 그들의 앞길을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방 민족들과 전쟁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생활을 40년 동안이나 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는 하셨지만,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광야 생활은 한마디로 ‘죽도록 고생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불평도 많았고, 원망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유혹되기도 했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모세를 원망하다가, 그러면서 하나님을 채찍을 맞기도 하고···.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광야 40년의 생활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고생고생 하면서도 모세를 따라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한 가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 희망만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애굽으로 되돌아가버렸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기진맥진하여 다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대한 희망이 그들로 하여금 불평하면서도, 죽도록 고생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 단계만 넘어서면 그렇게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에 부풀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생각만 하면 너무 기뻐서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가슴 설레게 만든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지금 자기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이 그것입니다. 요단강은 얕은 냇물을 건너듯 그렇게 쉽게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홍해와 같이 크지는 않다 하더라도, 건너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여호수아 3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의 위치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요단강 앞에 가슴 설레며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위치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흔히 광야의 생활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의 여정이 광야 생활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요단강 앞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단을 건너기는 건너야 하는데, 건너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고 힘들어 보이는 상황이 우리의 지금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의 현실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여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은 안겨주었지만 날이 갈수록 실망하는 백성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정치에 민족의 내일을 걸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희망하던 가나안 땅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언약의 희망이 분명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그리고 우리 앞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 어떤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희망을 안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온갖 장애물을 건너가서 그 희망을 안고 기쁨의 찬양을 드릴 날이 곧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가정이나 사업의 문제에 요단강처럼 큰 장애물이 있어서 몹시도 힘들어하시는 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그 장애물을 건너가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커다란 요단강이 있어서, 넘실대는 홍수로 우리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 있는 희망을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현실이 커다란 장애물이 되어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번영과 행복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로 성장하는데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와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우리들과 우리 민족의 앞날을 희망 중에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반드시 건너가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삶의 장애물도 반드시 건너야만 합니다. 신앙에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도 건너야 합니다. 우리 민족을 힘들게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요단강도 반드시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방법과 우리의 힘으로 건너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방법, 우리의 지혜, 우리의 경험으로는 건널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과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요단을 건너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먼저 건너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갈 준비는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이렇게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2:24)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몰려온다는 소식을 접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겁에 질려 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정탐꾼들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3장 1절 이하에 보면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싯딤에서 요단강 앞으로 장소를 옮겨왔습니다. 가나안 땅이 훨씬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단 앞에서 3일을 머무르게 한 다음 요단강을 건너갈 준비를 하게 합니다. 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기사를 행하셔서 이 요단을 건너게 하실 테인데, 하나님께서 그 큰 기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준비하라’ 그런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적은 그들에게 베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여호수아 7장에 나와 있는 아이성 침공 실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성을 침공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큰 성읍 여리고를 점령한 후이기 때문에, ‘작은 성쯤이야 별로 어렵지 않게 점령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스라엘의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한 이유는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더렵혀진 이스라엘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영혼이 깨끗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을 쓰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오늘날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회개운동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IMF 이후에 교계에서 줄곧 외쳐지던 말이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성결하게, 깨끗하게 양심적으로 살자는 운동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부정과 불법이 더 이상이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 그래서 깨끗한 사회가 되도록 우리들의 역사 인식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대접받고, 깨끗한 사람이 존경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정직하게 살고, 우리가 먼저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사회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지 상관없이 돈만 많이 벌면 대접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깨끗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까지 깨끗해져야 합니다. 저 위에서부터 우리 서민들이 사는 구석구석에까지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정결한 마음을 갖도록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위해서 미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고 공의롭게 살도록 하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깨끗하게 살 때에 하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먼저 깨끗한 양심과 영혼을 가지고 살겠다는 성결 선언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하고, 예수 믿는 사업가가 기업 윤리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깨끗한 상도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교사들이 먼저 깨끗해져서 아이들을 깨끗한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예수 믿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는 장애물을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요단강을 건너려면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장서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장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언약궤 뒤를 따라가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궤’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요단강을 건너가시겠다는 뜻입니다.
‘언약궤가 앞장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라 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하던 동안에도 언약궤는 항상 이스라엘 진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지난 40년 광야생활 동안 그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너희 삶에 중심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사막에서 목말라 죽고, 뜨거운 기운에 태워져 죽고, 사나운 맹수와 적군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아라.’ 그게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백성들은 따라가야 합니다. 언약궤가 큰 물결이 출렁이는 요단강 깊은 쪽을 향해 가더라도 백성들은 그리로 따라가야 합니다.
‘언약궤가 앞장섰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방법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내 생각과 내 방법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겠다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시간에 의해서 이루어져 갈 뿐입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보다 앞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다급한 마음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우리가 앞장서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요단강물을 멈추어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뿐이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멈추게 하는데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도 그랬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4:13-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홍해를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장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하면서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고 할 때에는 항상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물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다리려 하지 않고 먼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목말라 죽을 지경이 되면 당연히 그들에게 물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목말라 죽게 만드시려고 광야로 인도해 오셨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전에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해 주시길 기다려보지도 않고 원망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절대로 앞서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혹 하나님의 방법보다 앞장서지는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방법보다 너무 뒤쳐져 살아오지는 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삶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열정이 하나님의 발걸음보다 빨랐다면, 속도를 줄이고 하나님 뒤로 가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 요단강으로 들어갔다는 것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철저하게 하나님 뒤에 서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아가심으로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모든 장애물들을 잘 건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요단을 건너려면 넘쳐흐르는 요단강 물로 들어가야 합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는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를 통해서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길을 내놓으시고 그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달랐습니다. 홍해처럼 갈라놓고 그 다음에 ‘요단강을 건너가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15절 말씀 보니까 여전히 요단강은 거세게 흐르고 있습니다. 흐르고 있는 그 요단강을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게 될 때에야 거세게 흐르던 요단강물이 멈추어 섰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시기를 모맥을 거두는 시기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에는 요단강 물이 가장 많이 불어나 강 둔치를 넘었습니다. 지난 주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만, 여러분, 장마가 무서운 것이 뭐냐면 홍수피해입니다. 평소에는 잔잔하게 흐르던 강이나 냇가에 엄청나게 불어난 물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줍니다. 장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다리 상판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올라 무섭게 흐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곧 둑을 붕괴시키고 밀려올 것만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바로 그 시기에도 그랬습니다.
팔레스틴 땅에 보리를 거두는 시기는 요즘 태양력으로 하면 4,5월경에 해당됩니다. 그 시기에는 요단강의 발원지인 헬몬산에 겨울 내내 쌓인 들이 녹아내리는데다가,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늦은 비’라는 봄비가 많이 내려서 강이나 하천은 1년 중에 최고의 수위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단강 상류인 갈릴리 호수도 최고의 수위에 오르게 되고, 요단강은 크게 강물이 불어서 보통 그 깊이가 3-4m에 이르고 넓이도 약 30m 이상 된다는 것입니다.
3-4m 깊이에 폭이 30m가 넘는 강물이 거세게 흐르는 그 요단강은 보기만 해도 겁이 날 지경입니다. 그러나 8절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요단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고 명령하십니다. 넘쳐흐르는 요단강물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강물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길이 열립니다. 15-16절 말씀에 보니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섭게 흘러내리던 요단강물 안으로 들어설 때, 홍해가 갈라져 육지로 변한 길이 열린 것처럼 그런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여준 기적적인 방법입니다.
앞뒤를 재는 인간적인 계산이나 경험에 의하면 지금 요단강물에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을 앞세울 때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을 가지고는 언제 어떻게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려운 현실이 우리 앞에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요단강에 들어가라’ 그러시면 과감하게 들어가는 결단력 있는 신앙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문제 속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들어가야 합니다. 발이 잠길 때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깊이 들어가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에스겔 47장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때로는 무릎에 차오를 때까지 들어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허리에 잠길 때까지 들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앞에 거세게 흐르고 있는 요단강은 절대로 멈춰 서지 않습니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들어가라 말씀하실 때 과감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무섭게 흐르는 요단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목사만 제사장입니까?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가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야 할 제사장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의 문제라는 요단강으로 들어가 주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들어가야 내 문제가 풀어집니다. 내가 들어가야 내 삶에 꼬인 문제들이 풀어집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겠지 하고 뒷짐만 지고 앉아 있으면 내 앞에 있는 요단강을 건너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요단을 건너라”는 말씀 속에는 미래를 확신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넘쳐흐르는 요단강에 빠뜨려 죽게 하시기 위해서 건너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요단을 건너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단을 건너가라”는 말씀은 곧 ‘요단을 건너가면 그 약속의 땅을 너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장애물,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들, 우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고민된 일들, 풀려지기를 원하는 가정의 문제나 사업의 문제, 이 모든 것이 오늘 우리가 건너야 할 요단강입니다. 그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인생의 요단강을 내 힘이나 내 생각으로 건너려고 하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너가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모습을 갖추시고, 우리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뒤를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리고 모험이라 생각되더라도 과감한 신앙의 결단을 가지고 행동하는 믿음을 통하여 요단강에 들어가셔서, 그 요단강을 건너가시기 바랍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약속의 땅 가나안이 주어집니다. 우리 앞에 있는 커다란 장애물과 문제를 건너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요단강이든지 다 건너가시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