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부산수필문학상 작가상 심사평
최승호론
투철한 생사관, 도전과 의지의 삶
심사위원장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은 일상을 보다 윤기 있는 터치를 통해 그 빛깔과 체취를 더함으로써 새로운 감동을 발아시키는 작업이다. 수필의 윤기는 문학언어를 사용해서 화려하게 윤색을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느냐 하는 점과 인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따뜻한 눈을 갖느냐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최승호에 있어서 수필을 쓰는 일은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모색의 일환이다. 그는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영원히 기억될 무엇인가를 위해 열정을 바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무엇인가를 자기 이상으로 사랑한다. 최승호가 열정을 가지고 달려온 인생을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으로 멋지게 풀어내었다. 인생 50대에 잡은 문학에 심취하면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구축된 삶의 실상이다.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강한 의식의 주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몰입시켜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최승호도 마찬가지다. 40대까지 정치에 손을 대어 7전 8기로 도전했지만, 시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50대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섯 권의 책을 내고, 행복한 노후을 대비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가치 있는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은 어느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수필 안에는 최승호의 압축된 삶의 진한 영혼이 서려 있다. 그 영혼을 만나기 위해 최승호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작가는 버킷리스트를 통해 자신만의 행복론을 갖고, 재창조하며, 그 순수와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문학을 사랑하고자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인연이라는 끈을 통해 남과 나를 하나로 묶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그것은 애착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에 의지해 자기를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끝없는 방황을 계속한다. 그 둥지의 실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열렬히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최승호에게 그 대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소박하게 건강관리, 노후자금, 예쁜 집을 갖는 것이다. 작가가 작은 공간을 고집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는 ”1층에는 좋아하는 분재와 난 종류 그리고 수석들, 2층에는 모아 두었던 각종 사진, 기록물, 상패, 상장. 물품, 서적, 기념품들을 전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깊이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위기의 삶을 창조적으로 전환해야겠다고 피력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튼튼한 삶을 더 튼튼히 다지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간화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최승호가 60대를 맞아 세상에 내어 놓는 ‘버킷리스트’가 그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가리라 믿는다. 이제 삶의 바다에 낚시 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지는 최승호의 노후가 웰빙에서 웰다임으로 이어질 것 같다. 이 수필은 극복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문학을 통해 삶의 위기 극복을 향한 날갯짓을 시도한 것이 결정타였다. 인간의 여러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나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통해서 헤어 나오려는 몸짓이다. 바로 자연의 섭리에는 순응만 있는 게 아니다. 이겨내라는 ‘도전’에 따르는 것도 삶에 대한 순리다. 그가 이 수필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도전’요, ‘의지’다.
산다는 것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원심력과 그것과 대치되는 구심력의 절묘한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줄다리기의 위험한 연속행위와 갈등 속에서 오랜 시달림과 방황 끝에 마침내 구심력을 향해서 돌아오는 동작구조, 그 회귀행위의 근저에는 스스로 낮추고 한없이 겸허해진 자아가 자리 잡게 된다. 그 겸허한 모습은 자신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진수이며 삶의 영롱한 에센스가 될 것이다. 이 수필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한한 원심적 탄력 속에서 가까이 존재하는 일상의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영역이며 우리의 지친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이 수필을 읽고 나면, 거친 열정의 파도를 넘어 우리의 영혼이 가장 낮은 자제로 임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투철한 생사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생을 살 수 있다. 그러하기에 올바른 삶, 소망하는 일들을 실천해보고 싶다.’는 자신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필에는 삶의 자리에서, 유한한 생 자체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생활 속의 깨달음을 진리로 연결하는 그의 여유에 찬 삶이 주는 감동은 안식의 문학이라는 수필 고유의 특성을 전해준다. 독자와의 공감대 확보를 위해 결말부 ‘이 세상에 ‘점’ 하나 찍고 나는 간다.‘는 의미화도 멋지다.
나의 버킷리스트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에 관하여 늘 고민해왔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평생 한 번쯤 계획에 있어 소망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버킷리스트라 한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요. 존재의 부정이며 일체가 끝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
죽음에는 허무감이 따르고 공포감과 절망감이 따른다. 죽음은 예외 없이 누구나 찾아오고 예고 없이 우리를 엄습한다. 죽음을 심각하게 느낄 때 우리의 생은 엄숙해지고 깊어진다. 투철한 생사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생을 살 수 있다. 그러하기에 올바른 삶, 소망하는 일들을 실천해보고 싶다.
2007년 영화 ≪버킷리스트≫를 통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대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주인공은 버킷리스트 목록을 작성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로 인하여 여러 수단과 분야에 모티브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느덧 60년 생을 바라보면서 많은 회한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왜 이리 못했을까? 아쉬움이 든다. 지난날에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한 인생을 일구어 왔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아닌 것도 있었다.
연령에 따라 계속 꿈들이 바뀌고 새로운 꿈을 가지곤 했다. 10대에는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되고 싶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체력을 위해 달리기 연습도 하고, 저녁에는 마당에서 복싱연습도 하곤 했다. 달리기도 잘하고 운동에 재능이 있어 무엇이든지 하면 대성할 수 있어 보였다. 축구 선수나 복싱 챔피언이나 다 하고 싶었다.
20대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가가 꿈이었다. 조그마한 가게를 오픈하고 유통회사를 만들어 열심히 돈을 벌었다. 뜨거운 열정과 용기가 있었다. 밤낮으로 돈을 벌기 위해 뛰었다.
30대에서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었다.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다.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40대에서도 계속 정치의 길을 걸었다. 모든 것을 다 걸고 거침없이 달려왔다. 7전 8기 정신으로 넘어지고 쓰러져도 오뚝이 정신으로 일어섰다. 참으로 모진 도전의 연속이었다.
50대에서야 정신을 차렸다. 차리고 보니 알몸뚱이만 남았다. 찐한 눈물이 모여 바다가 되었다. 이젠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면서 문학에 흠뿍 젖었다. 문학인으로서 책을 5권이나 출판하고, 문학단체 회장을 하면서 보람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인생이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60대에 접어들었다.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버킷리스트에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인생을 정말로 향기롭게 살아가고자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히 실천해야 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것을 해야 할 가장 매력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목표를 향한 의지와 행동력을 배가할 것이다.
우선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고령화시기에 백세 이상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와 무기이기 때문이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 말씀에도 나와 있다.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노후자금 마련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과 골프운동을 하기 위해서라도 자금이 필요하다. 꼬마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소주 한잔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직은 경제적인 활동이 가능한 나이이기에 부지런히 벌어 저축해야겠다.
마지막으로는 이쁜 집을 만들고 싶다. 조그마한 연못이 있어 물고기가 있고 정원에는 사계절에 피는 꽃들과 채소를 가꾸고, 마당에는 닭과 강아지를 기르고, 1층에는 좋아하는 분재와 난 종류 그리고 수석들, 2층에는 모아 두었던 각종 사진, 기록물, 상패, 상장. 물품, 서적, 기념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고서는 시를 쓰고 음악을 감상하고 조용히 삶을 마감할 것이다.
낡은 책상 위에 아주 작은 유언장을 남긴다. 이 세상에 ‘점’ 하나 찍고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