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이 품은 맑은 샘물 - 기림사
세상살이가 어수선하고 팍팍할 땐 기림사(祇林寺)로 가자. 그곳에 가면 메마르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달고 시원한 샘물이 있다. 눈 밝은 지혜를 갖게 해준다는 명안수(明眼水),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화정수(華井水), 최고의 차 맛을 내게 하는 감로수(甘露水), 물맛이 하도 좋아 까마귀가 쪼아 먹었다는 오탁수(嗚啄水), 천하무적의 장군이 된다고 하는 장군수(將軍水)가 있다.
아침저녁 쏟아져 나오는 갑갑한 뉴스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요즘 기림사의 그 샘물 한 바가지, 벌컥벌컥 시원히 들이켜고 싶은 심정이다.
↑ 전설 속의 기림사 샘물
↑ 범종각과 배롱나무
↑ 약사전
↑ 천불전
↑ 진남루
↑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
↑ 대적광전의 삼존불
↑ 단청이 바랜 대적광전
↑ 고색창연한 기림사
↑ 사천왕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 아래 자리한 기림사는 깊고 고요한 절이다. 숱한 관광객들이 쉼 없이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는 불국사와 많이 다르다. 한때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만큼 오랜 연륜과 당당함을 자랑하는 규모임에도 기림사는 깊고 고요한 절집이다. 절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고요하다. 느린 발걸음으로 조용히 절집을 돌아보다 불쑥 고갤 내미는 다람쥐의 출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신라 초기 천축국의 사문 광유 성인이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기림사는 처음에는 '임정사(林井寺)'라 불리다가 후일 원효 스님이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본디 이름인 임정사는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있는 우물'이라는 뜻이니 기림사의 샘물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인 듯하다.
사천왕문을 지나자마자 우물 하나가 보인다. 올겨울 추위가 얼마나 매서웠던지 봄이 머잖은 지금껏 꽁꽁 얼어붙었다. 이 우물은 기림사의 오종수 중 어떤 샘물일까? 등산복 차림을 한 행인이 오탁수라고 일러 준다.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그 샘물인 모양이다. 그런데 지나가던 또 다른 이가 말참견을 한다. 기림사엔 이젠 오종수가 남아 있지 않고 감로수와 화정수만이 있단다.
기개가 뛰어난 장군을 길러낸다는 장군수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막아버려 물길이 끊긴 지 오래 됐다고 한다. 그 말을 뒷받침해주는 게 바로 보이는 진남루라는 건물이라고. 이름은 누각이지만 누각처럼 생기지 않고 맞배지붕을 한 큰 건물이다.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킨다.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전략요충지로서 경주지역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 사원이었다. 이때 이 진남루는 승군의 지휘소로 썼던 건물이다.
진남루 뒤쪽에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기림사 본전인 대적광전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은 후 최근까지 여덟 차례나 다시 지었다는 대적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배흘림기둥에다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단아함과 함께 웅장함을 갖춘 건물로 삼존불을 모신 내부는 넓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와 함께 정교하고 화려한 꽃창살 문양은 대적광전을 화려하게도 보이게 한다.
늙은 반송 아래 서서 절집을 휘 둘러본다. 단청이 퇴색해 느낌이 더욱 고색창연한 대적광전과 진남루를 비롯해 약사전·관음전·응진전·명부전·삼천불전·삼성각·매월당사당·성보박물관까지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발길은 이리저리로 흩어진다. 손 천 개와 눈 천 개, 얼굴 열한 개를 지닌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으로 발길을 옮기고, 옻칠을 입힌 종이부처님인 건칠보살좌상을 보기 위해 박물관으로, 블상 3,000개를 모신 삼천불전으로도 걸음을 옮긴다.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우물가로 향한다. 주변은 꽝꽝 얼어붙었으나 돌거북의 입에서는 멈추지 않고 샘물이 솟고 있다. 이 샘물이 까마귀도 반했다는 그 오탁수든, 눈 밝은 지혜를 갖게 해준다는 명안수든 따지지 않고 한 바가지 가득 받아 단숨에 들이킨다. 속이 얼얼할 만큼 차가운 물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잠시 어수선한 세상사가 저만큼 물러난다.
* 가는요령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에서 경주로 진입하되 시내로 들어가지 말고 4번 국도 감포 쪽으로 간다.
추령터널 지나 고개 내려가다가 14번 지방도 포항·골굴사·기림사 이정표가 보이는 안동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4km 들어가면 기림사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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