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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 무속의례의 신화수용 연구
- 한국, 일본, 인도의 疫神을 중심으로 -
<목 차>
Ⅰ. 서론
Ⅱ. 마을과 신앙
Ⅲ. 제의 절차와 신화
Ⅳ. 신화의 서사구조
Ⅴ. 무속 의례와 신화
Ⅵ. 결론
【요 약】
무속의례에서는 신을 부르고 놀리고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례에 등장하는 무속 신의 세계에도 구조와 질서가 있으며, 신들의 상호관계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굿과 일본의 가구라, 인도의 떼이얌은 모두 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마을 공동체 의례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러한 무속의례에서는 반드시 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온갖 신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성격과 직능을 무당들은 노래와 춤으로 드러낸다.
굿이나 가구라,떼이얌 의례를 할 때 사제인 무당은 많은 신들을 부른다.
그 신들은 성격이 아주 다양하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무속의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공동체의 기원을 하는 의례를 중심으로 살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마을의 당이나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들을 위한 거리가 많다.
이것은 굿이나 가구라가 모든 신들을 위한 잔치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세 나라의 무속의례가 연희되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성격이 포악하고 나쁜 신들이 무속의례에는 반드시 있으며, 의례를 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 신의 신격을 통해서 기원하는 것은 모두 질병을 없애 달라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악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의례의 시간은 대부분이 의례가 절정에 달했을 때 쯤이다.
부정을 물리고 제장을 깨끗이 한 후에 위계가 높은 신들을 먼저 모시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는 사원에서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을 위한 떼이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악신인 뿌띠야바가바띠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차이는 무속의례의 전승과정과 무속의례에 대한 그 나라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무속은 그 나라 민족 문화의 형성과 전개에 근간이 되어 온 뿌리깊은 신앙일 것이며.
민족의 다양성과 함께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양상을 달리 한다.
무속의례는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터전 곧 그 현장의 생활방식과 현장에 남아있는 삶의 족적인
것이다.
민족마다 지니고 있는 생활양식 및 환경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정신이 무속의례 속에 드러나며, 나라마다 다양하게 투영되고 있다.
무속의례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신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무속의례가 연희되는 장소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Ⅰ. 서론
민속 문화의 한 양상인 무속의례는 인간이 신과 소통하는 절차이다.
무속의례의 사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 매체로, 인간 삶의 세계에서 하늘이나 땅이나 모든 곳에 있는 신을 노래하고 춤춘다.
그들은 하늘과 땅에 기둥을 세워 서로 소통하게 한다.
무속의례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은 모두 전통예술이다.
무속의례의 제 절차는 무용, 음악,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모체로 연구될 만큼 일종의 종합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무속의례는 각각 독특하고 다양한 형태로 연희되고 전승되었다.
또한 무속은 고대의 부족 또는 부족연맹의 종교로 자리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종교라는 점을 들어 기층문화로 다루고 있다.
본 연구는 ‘아시아지역 무속의례에서 연희된 춤 조사․연구(- 한국, 중국, 일본, 인도를 중심으로 -)’라는 과제로
3년의 연구 기간을 갖고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되었다.
무속의례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신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무속의례가 연희되는 장소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무속의례의 본질을 밝히고, 나아가 아시아 지역 무속의례의 비교연구를 통해 무속의례의 원형을 찾으려고 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아시아 지역의 의례는 다음과 같다.
지금도 동해안 지역에서 활발하게 연희되고 있는 한국의 ‘동해안별신굿’과 일본 미야자키켄의 ‘시이바 가구라’,
인도의 케랄라 주에서 행해지는 ‘떼이얌’이다. 이들 의례는 무속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 공동체 의례의 성격이 짙다.
무속의례에서는 신을 부르고 놀리고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례에 등장하는 무속 신의 세계에도 구조와 질서가 있으며, 신들의 상호관계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굿이나 가구라, 떼이얌 의례를 할 때 사제인 무당은 많은 신들을 부른다.
그 신들은 성격이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동해안별신굿에서 연희되는 손님신1), 다케노에다오가구라의 스사노미고도2), 인도 떼이얌의
1) 천연두신을 높여서 이르는 말인데, ‘마마손님’, ‘마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뿌띠야 바가바띠는 모두 성격이 포악하고 사나운 신이다. 疫神3)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보고, 의례를 연희하는 과정에서 신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대상으로 한 무속의례는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했다.
일본 시이바 지역의 가구라나 인도 께랄라의 떼이얌은 절차나 내용에 있어서 기존에 연구된 바가 많이 없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현장을 찾아 조사한 것을 기준으로 하였다.4)
Ⅱ. 마을과 신앙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무속의례를 하는 마을이 많이 사라졌다.
바닷가를 제외하고는 남은 곳이 별로 없다.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어패류를 비롯하여 조기잡이와 멸치잡이 등의 어로 생활을 해온 어민들은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흉어가 계속될 때도 있고 험한 바다에서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바다에 생명을
2) 스사노미고토는 ‘하야스사노오미고토(速須佐之男命) 또는 스사노오미고토(素戔嗚尊)’ 라고도 한다.
3) 역신(疫神)은 ‘나쁜신(악신)’이라고 규정지을 수도 있다. 질병과 관련된 신들이 대부분 성격이 나쁘다는 말이다. 나쁘다고 하여 귀(鬼)와는 다르다고 본다.
귀(鬼)는 신으로 좌정하지는 못했으나 신(神)은 어떤 형태로든지 신직을 받았다.
한국의 손님신은 원래 질병인 마마를 다스리는 신직을 갖고 있었고, 일본의 스사노미고토는 신의 자식으로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함께 태어나 지하를 다스리는 신직이 있었으며, 인도의 뿌띠야 바가바띠는 악독한
행동의 결과로 신이 되었다.
4)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대상으로 삼았던 아시아 지역은 한국과 일본 및 중국, 인도였다.
이 논문에서는 중국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중국의 나희는 두차례의 현장조사를 했으나 나희 연희에서 역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걸고 배를 부리는 이들에게는 바다에서의 무사고와 풍어가 가장 큰 소망이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가 마을마다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행해져 왔다. 별신굿은 주로 어촌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요와 다산을 빌기 위해 무당들을
청해서 벌이기 때문에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3차 년도에 현장조사를 했던 곳은 동해안의 남부 지역인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마을의 별신굿이다.
일광면의 6개 마을(일광면 소속 -학리, 칠암, 이천, 기장읍 소속- 공수, 두하, 대변)에서는 매년 돌아가면서 굿을 한다.
굿을 하는 목적은 6년 동안 고생한 별신을 (한 마을에서는 6년에 한번 씩 돌아가면서 굿을 하는 셈이 된다) 위로하고 대접하고 동네의 풍년과 안녕을 비는 것이다.
이천마을의 경우 마을의 풍어제를 위해서 3월초에 여러 기관에 공문을 보내어 협조를 요청하고 기금 마련을 했다고 한다.
별신굿을 행하는 동해안 마을에는 각각 자기네들이 요구하는 거리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각자 자기 마을에는 몇 년에 한 번씩,언제 쯤에, 몇 거리의 굿을 하는 지가 오랜 전통으로 전해져내려 오고 있다.
이웃 마을의 굿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 신이 마을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절차를 밟아 다르게 굿을 해야 한다고 믿는
그들 나름의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다.
현장조사를 한 이천마을에서는 굿을 하지 않는 해에도 매년 1월과 6월에 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당 제사는 네 개의 당 중에서 상당과 부인당을 함께 지내고, 외당과 장군당 제사를 함께 지낸다.
당에서 모시는 가장 중요한 신은 골맥이신 즉 마을의 조상신이다.
장군당의 경우는 바람을 다스리는 신을 모신다고 했다.
다른 당의 경우는 내력이 없으나 장군당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마을의 어떤 노인이 꿈을 꾸었는데 마을 어귀에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다음 날 꿈에서 깬 노인이 마을 어귀에 나가 보니 꿈에서 본 그 자리에 돌이 있어서 마을에 갖다 두었더니 바닷
바람도 줄고 불이 나도 불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을 짓고 돌을 쌓아두면서 마을에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에 전하는 당1)의 유래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을에서 주로 모시는 신격은 결국 골맥이신이 조상신이 되는
셈이 된다.
대부분의 동해안별신굿은 마을에 먼저 들어와서 터를 잡은 마을 단위의 수호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하였고, 죽어서는 자신이 일군 마을과 후손들을 돌보는 조상신이 된 존재들이다.
동해안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골맥이’ 또는 ‘골맥이신’이라고 한다.
골맥이신은 대부분의 마을에서 먼저 돌아가신 조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가구라는 카무쿠라(神座:신이 내려와서 머무는 곳)로 신을 맞아들여 그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가구라의 어원이 가무쿠라에서 왔다고 보는 이도 있다.2)
모든 가구라는 카무구라(神座)를 만들어 신을 강림시키고 사제(司祭)가 자신의 몸 속으로 신을 맞아들임으로써 인간이 신으로 변한다. 가구라는 가무쿠라(神座)에 신이 머물도록 하고, 신께 바치는 음악과 춤이 중심이 된다. 가구라 연희 현장에서는 신이 언제 어디에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3)
그래서 가구라와 관련된 신의 종류는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戶部民夫
1) 당은 장군당과 상당, 외당과 부인당이 있는데, 당 제사는 네 개의 당 중에서 상당과 부인당을 함께 지내고,
외당과 장군당 제사를 함께 지낸다. 상당은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와 터를 잡은 조상을 모시고 있고, 부인당은
그 조상의 부인을 모시고 있다. 장군당은 바람과 불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고 있으며, 외당은 나머지 조상신들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2) 本田安次, 「祭と神樂」, 日本の古典藝能 第一卷 神樂平凡社, 1969. 59쪽.
3) 上田正昭, 「祭と神樂」, 日本の古典藝能 第一卷 神樂平凡社, 1969. 60쪽.
는 325명의 신을 그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4) 이들 신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고 나타나서 상황에 따라 성격도 자유롭게 변한다고 했다.
즉 산에 살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신, 바다 저편으로 부터 와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신, 나무와 숲에
숨어사는 신, 부엌에서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신 등 일본인이 생각하는 신들은 생활과 장소의 구별이 없이 어느 곳에나 있으며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디든지 붙어서 갖가지 현상을 보여준다고 믿고 있다
조사대상으로 삼은 지역은 일본 큐슈 미야자키켄 시바손 오오가와치다케노에다오히아테(日本 九州 宮崎縣 推葉村 大河內 獄之枝尾日当)에 자리잡고 있는 다케노에다오 진자(神社)에서 행해진 가구라이다.
일본 큐슈 미야자끼켄의 시이바 가구라는 마을에 따라 곡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맨 얼굴에 토리모노5)를 들고
추는 춤이 중심이 되고, 가면춤이 동반되면서 밤새도록 거행된다. 처음에 아따오꼬시, 미꼬우야 등과 같은 거리에서는 춤이 없고 노래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시이바에는 다카치호와 메라에는 없는 시이바 만의 독특한 창행이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창행은 신의 내력이나 춤 도구의 유래를 창하는 것
4) 戶部民夫, 八百萬神들, 新紀元社, 1997.
5) 토리모노춤이란 신대 역할을 하는 특정 물건을 들고 추는 춤이다. 토리모노는 방울, 부채, 나뭇가지, 창, 고헤이, 활, 검 등과 같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건을 주로 사용한다.
토리모노를 들고 춤을 추면서 신을 청하는데, 원래는 토리모노춤이란 것이 춤을 동반하지 않고 토리모노만을
흔드는 의식이었다.
지금 전승되고 있는 토리모노춤의 춤사위는 무녀춤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카구라에서는 원래 가면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지금 전해지는 카구라의 가면은 다른 예능에서 행해지는 가면춤의 요소를 수용한 것들이다.
가면춤은 토리모노춤을 추고 나서 주로 하는데, 내용으로 볼 때 토리모노춤은 신을 맞아들이려는 의도이고, 가면춤은 지상으로 내려온 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그 위력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특정 물건을 손에 들고 춤을 추는 ‘토리모노춤(採物舞)’과 가면춤으로 이루어지는 ‘이즈모카구라(出雲神樂)’라고 한다.
인데, 헤이안 시대 유행한 신의 노래가 불려졌다.
시이바 마을의 중심지인 가미시이바(上椎葉)에서 택시를 타고 국도 265호선을 약 25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미미노가와(耳川)라는 강이 나온다.
강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 다케노에다오 히아테이다.
다케노에다오 신사는 다케노에다오 지구의 히아테(12가구), 히조에(9가구), 우수끼마타(12가구) 세 마을6)에서 모시는 신사이다.
마을 사람들은 축산과 임업으로 생활을 하는데 버섯 재배가 전체 수입의 약80 %를 차지하고 있다.
쇼와43년(1968년)까지는 민가가 가구라야도(神樂宿)7)였으며 세 마을이 돌아가면서 행해왔다.
각각의 마을에는 좌역(座役)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책임지고 가구라야도(神樂宿)를 확보한다.
거주하는 성씨는 나까세(中瀨)와 시이바(椎葉)가 반 반씩인데 히조에에 오다상(小田)과 가이상(甲斐)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시이바와 나까세 집안이다.
시이바의 다께노에다오 마을에서는 후토타마노미고토(太玉命)라는 신을 모시고 있다.
예전에는 헤이타다이묘우진(平田大明神)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6) 다케노에다오에는 3개의 마을(슈락:集落)이 있다.
히아테와 히조에와 우스키마타이다.
이들 세 마을은 히아테에 있는 진자를 공동으로 모시고 있는데, 히아테와 히조에는 가구라를 함께하나 우스키마타는 따로 독립해서 가구라를 한다.
히조에와 히아테 마을의 사람들은 가구라에 참석을 하지만 우스키마타 마을 사람들은 가구라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진자는 세 마을이 같이 쓰지만 우스키마타는 가구라를 독립해서 따로 한다고 한다.
진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히아테 마을이다. 히아테는 햇볓이 따라다닌다는 뜻이고, 히조에는 늘 응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히아테 마을을 바라보기 위해 반대쪽인 히조에 마을에 갔을 때 한낮인데도 온통 그늘져서
굉장히 추웠다.
그러나 히아테 마을은 아주 따뜻하고 포근했다.
히조에 에서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야 했다.〔12월10일 다케노에다오 (히아테) 마을 인터뷰 - 시이바 미야꼬 (椎葉 宮子, 여자 56세〕
7) 가구라를 연희하는 장소를 말한다. 예전에는 민가에서 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마을의 신사에서 한다.
시이바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온 나쓰 다히하찌 라는 사람이 10대 정도의 대를 이어 이곳에서 지낸 후에 나스현번(겐바)라는 사람에게 아들이 4명 있었는데 장남이 左近, 차남이 彈正, 3남이 將監, 4남이 九郞衛門이었다.
이렇게 가계를 이어가며 야스노이리무네다까라는 사람이 선조라는 것을 알고 선조를 위해 천하에 자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형제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장남과 4남이 협력해서 시이바산의 오자끼 성을 공략하여 자기적으로 만들었다.
그 때 다께노에다오에는 다른 집안이 몇몇 있었고 작은 논도 있었다.
거기에 깃발을 세우고 진을 쳤는데 그때가 텐셔 4년 (1576년)10월 길일이었다.
이것을 기념하여 헤이타다이묘우진(平田大明神)이라고 하고 신으로 모시고 마을 수호신으로 삼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차남은 무까이야마 성에 3남은 신문성에 들어가고 장남은 남은 형제와 함께 시이바의 가장 중심되는 곳에서
시이바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 후 장남과 차남 3남이 시이바산 전체를 통치하게 되었는데 1616년 2월에 무까이야마성에서 13명의 무리들이
일어나서 차남의 혈통을 끊어버렸다.
1619년 7월에 도쿠가와 막부는 평정을 위해 군사를 파견하고 내란을 평정하여 시이바산을 막부에서 통치하게
되었다.그래서 아소신궁의 간누시가 이곳을 다스리게 되었다.
1658년 히토요시반스로가 지배를 하게 되었고 명치유신을 맞이 하였다.
相良氏가 지배하게 되어 교호 5년부터 궁규 3년에 걸쳐서 다께노에다오는 인길청전신사의 명령에 의해 간누시의 면허장을 받았다.
히토요시기오미 신사에서 얻은 것이다. 면허장을 얻기 우해 신사를 보호하고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구라를 전수하려고 노력하여 현대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신은 후토다마노미고토이다. 옛 명칭으로는 헤타다이노에다오였는데 명치4년에 다께노에다오
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장품으로는 거울 2개(직경이 12리이며 풀과 흐르는 물이 그려진 것이다.),신상이 1개인데 남무하찌만다이보사찌(南無八幡大菩薩)이라고 쓰여져 있다. ‘天正四年丙子十月吉日’이라고 적혀 있다. (쇼와 50년(1985) 12
8) 신사의 배전에 있는 액자에 적힌 내용이다.
월 씀, 編者 中瀨 元年, 記 山田 初次)
마을의 신사에 후토다마노미고토신을 모셔 두고 가구라도 신사에서한다.
가구라를 하는 종류는 두 가지가 있었다.
시메의 대제와 평제인데, 대제는 3년에 한 번씩 해왔다. 요즘은 가구라의 보존을 위해서 매년 시메의 대제를 한다고 했다.9)
인도는 복잡한 나라이다.
인도 민족은 2천 개가 넘는 방언과 고유한 문자로 표기되는 325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방마다 고유의 사회인종적 구성과 언어, 기후, 지리, 농업, 산업 들의 특색이 뚜렷하다.
각 지방에는 고유하고 독특한 신화와 신념체계가 있으며 마을에서 숭배하는 남녀신의 이름도 갖고 있다.
인도의 남부에 위치한 께랄라(Kerala)주는 아라비아해(Arabian sea)해안을 따라 평균 30 -40마일의 폭으로 길게 350마일 정도 뻗어있다.
인도 남부 께랄라 지역에서 행해지는 떼이얌 의례는 온갖 종류의 위험과 공포에서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각종 고통과 질병을 없애주고 치료해 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조사대상으로 삼은 께랄라주의 북단에 위치한 까누르(Kannur)지역은 면적이 약 41만 ㎢이고, 인구는 50여만 명(1999년 통계)이다.
‘떼이얌’은 드라비다 문화에 불교, 바라문교, 자이나교 등의 종교가 한데 어울려 케랄라 특유의 힌두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드라비다 소수 민족의 종교에 바라문교 문화가 섞인 마을 굿이다.
즉 바라바티라고 부르는 여신을 비롯하여 차문디 모르띠 등 당에 모신 신을 위해 주로 굿을 하면서도 신령이나 웅, 조상, 동물, 뱀, 거목 따위도 숭배하고 있다. 떼이얌은 마을에 따라 1년에 한두 번 또는 몇 년에 한 번, 심지어
는 60년에 한 번씩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동해안 별신굿과 비슷하다.
떼이얌 의례가 고통을 없애주고 질병을 치료해준다고 믿게 된 것
9) 渡辺伸夫, 推葉神樂調査報告書, 第三集, 推葉村敎育委員會, 昭和58년.
은 떼이얌 의례의 액터(Acter)10)들의 초월적인 능력 때문이다.
떼이얌의례 액터들은 종종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고함을 지르며 기적같은 일을 하기도 하고, 영웅들이나 할 수 있는 재주를 보여주며 신령(神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초월적인 능력으로 떼이얌 의례 액터는 마을의 분쟁이나 회의의 조정관 역할과 질병의 치료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까누르를 중심으로 말라바르 지역에는 450여 종류의 떼이얌 의례가 있다.
떼이얌 의례의 기본적인 내용은 같은데, 계층과 지역에 따라 의상이나 춤동작, 공수의 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까누르 지역의 떼이얌 의례의 특징은 인간과 신들이 화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민들은 떼이얌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서로간의 친목과 지역의 대동단결을 도모한다.
인도 남부 까누르 지역에서 떼이얌 의례을 연행하는 사원은 크게 두종류가 있다.
카유(kanu -말라얄람어) 와 카스트란(kshetran -산스크리스어)이 그것이다.
카유(kanu)는 들이나 광장, 산 등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사당 지어 떼이얌 의례을 하는 사원이다.
이 사원은 대개 규모가 작은 마을에 있다.
카스트란(kshetran)은 아리안족이 침입한 이후 생긴 사원으로, 사람이 많으 사는 큰 마을에 있다.
카유사원과는 달리 건축물이 따로 있으며, 카유사원이 커지면 카스트란사원과 같은 사원이 된다고 한다.11)
까누르 지역의 떼이얌의례는 대부분 카유사원에서 연행된다고 한다.
조사대상으로 삼은 인도 남부 께랄라주(Kelala) 까누르(kannur)지역의 포유르(poyyur)사원은 카유사원이었다.
이사원은 건립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10) 떼이얌 의례를 진행하는 사람을
떼이얌 액터라 했다. (현지 전문가 라주(Narippattan Raju, 43세) 인터뷰-라주는 캘리컷대학(University of Calicut)을 졸업하고 현재 떼이얌의례를 비롯한 인도 민속의 공연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 현지 인터뷰는 대부분 라주에게 했다)
11) 현지 인터뷰 내용.
카야라람(Kayaralam)지역에 네치꼬뜨(Nechikkoth)라는 아주 영예로운 집안이 있었다.
이 집안의 우두머리인 네취꼬뜨 카라나바(NechikkothKaaranavar, Kaaranavar는: 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
혹은 집안의 우두머리) 락타챠문디(Raktachaamundi)12)라는 여신의 신도였다.
하루는 그가 인근 마을 마일리(Mayyil)의 체루파자쉬 바가바띠 케스트람(Cherupazhassi Bhagavati Kshetram)
사원로 떼이얌의례를 구경하기 위해 갔다. 그
러나 그는 그곳에서 잘 대접받지 못했고 상처까지 입게 되어, 화가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는 집에 도착하여 자신의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우산을 집의 안마당에 내려놓고 씻으려고 목욕탕으로 들어
갔다. 목욕탕에서 나와 일산(日傘)을 집안에 두기 위해 집어 들어 올리려 했는데, 일산을 들 수 가 없었다.
여러 번 일산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13)
당황한 카나라바(Kaaranavar)는 무당을 불러 의례를 행했다. 의례를 마친 무당은 뿌띠야 바가바띠(Puthiya
Bhagavati)라는 신이 사원에서부터 카나라바(Kaaranavar)와 함께 일산을 쓰고 돌아온 것을 알아냈다.
무당은 또한 뿌띠야 바가바띠의 모든 보조신들이 함께 이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무당은 바가바띠(Bhagavati)가 이곳에 사원을 지을 것을 명령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카라나바(Kaaranavar)는 그 여신을 위한 사원을 지었고 바가바띠와 그녀의 모든 보조 신들을 사원 안의 특별한 신사(神舍)에 모셨다.
그리고 많은 제물을 신들에게 바치고 의례를 행했다.
그 이후 매년 떼이얌 의례를 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Poyyur 사원에서 모시는 주요 신격은 뿌띠야 바가바띠(PuthiyaBhagavati)와 비란 (Veeran), 락타챠문디(Raktachaamundi) 등이 있다.
뿌띠야 바가바띠가 신격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빌바푸람(Villvaapuram)이라는 저택에서 여섯 명의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이 뿌띠야 바가
12) 락타챠문디는(Raktachaamundi)는 여신 칼리(Kaali)의 화신이다.
13) 일산(日傘)을 들 수 없는 것은 신이 새로운 신당을 만들기 위해서 이동해 온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일산은 인도에서 일상적인 생활도구 중의 하나이다.
바띠이었다.
그녀는 모든 형제들에게 애완동물처럼 사람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자라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는데 하루는 비란(Veeran)14)이 목욕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비란은 그녀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난폭해졌고, 마침내 비란을 죽여 버렸다.
비란이 죽자 세상은 그녀와 등을 돌렸고, 그녀의 남자 형제들도 그녀를 비난했다.
화가 난 뿌띠야 바가바띠는 모든 형제들을 죽이고는 자신은 불속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
그녀의 놀라운 행동으로 사람들은 그녀가 죽고 난 뒤에, 그녀를 여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여신을 마을의 구원자로 여기게 되었다.15)
조사 대상으로 삼은 지역의 마을 신앙을 정리해보면, 한국의 동해안별신굿을 연희했던 이천마을에서는 골맥이
신을 모시고 있고, 일본 가구라를 행하는 다께노에다오 마을에서는 헤이타다이묘우진 (平田大明神)을 모시고
있으며, 떼이얌 의례를 하는 인도의 까누르 지역 뽀유르사원에서는 뿌띠야 바가바띠(Puthiya Bhagavati)를 모시고 있다.
Ⅲ. 제의 절차16)와 신화
무속의례에서 연희되는 거리의 내용은 즉흥적이며, 정교하게 짜여지
14) 영웅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15) 인도의 카나라주에서는 뿌띠야 바가바띠와 같이 용감한 행동을 한 인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라주의 증언.
16) 제의 절차는 한국의 굿에서는 ‘거리’ 혹은 ‘석’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행사차제(行事次第)’ 혹은 ‘연목(演目)’ 이라 한다. 인도의 경우는 분명하게 절차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떼임얌 액터(무당)들의 말에
의하면 춤동작이나 분장과 의상으로 절차의 내용이 구분된다고 했다.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 편의상 절차 내용의 구분에 관한 용어는 ‘거리’로 하기로 하겠다.
지 못한 단순한 ‘사건들’의 전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17)
그래서 무속의례는 자칫 일관된 구조와 정연한 논리가 미약한 난삽한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의의 절차는 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제의의 절차를 분석하여 신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는 살필 수 있다.
동해안 별신굿을 주최하는 마을에서는 각기 고유의 고정된 별신굿의 기본틀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전체 굿거리의 숫자와 그 구체적 명칭 그리고 진행순서가 포함된다.
이 기본틀이 언제나 고정적이고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고, 실제 별신굿이 진행될 때에는 전체 굿거리의 숫자나 그 구체적 명칭 그리고 진행순서 등에 차이가 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기본틀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18)와, 실제 굿을 진행하는 무당들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변수는 참여한 무녀의 숫자와 그들이 구연할 수 있는 굿거리이다.
동해안 이천 마을에서는 굿이 6일 동안 연희되었다. 동해안 북부 지역에서는 3일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남부에서는 일주일씩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로 연행된 굿거리를 보면 같은 내용의 거리가 두 번씩 반복되고 있다.19) 실제로 연행된 굿거리는 다음과 같다.20)
17) 무속의 굿을 포함한 전통적인 아시아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6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은 플롯의 매끈한 전개를 결하고 있으며, 오로지 플롯과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에피소드적이다. 일부 특정한 에피소
드만을 극화시켜서 현실의 묘사와 연출을 통해 극적인 환상을 부각시키는 서양 연극의 재연성과는 다르다. (드로시 B 샤이머,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본 아시아 연극」, 연극평론 제 13호, 1970년 겨울, 34쪽)
18) 이번 굿에서도 마을에 새로 소방도로가 나면서 말들이 많아서 원래는 계획하지 않았던 굿거리인 ‘토지신거리’를 마을 이장의 요구에 의하여 첨가시키기도 했다.
19) 동해안 별신굿 거리들이 그 자체의 전체적 구성에 있어서 정연한 논리성이 다른 지방의 굿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
굿을 시작한 첫 날에는 사방에 있는 모든 신을 굿 당으로 모시기 위해서 마을의 산과 당이 있는 곳을 다니면서
굿거리를 했다.21)
굿을 시작한 지 2일 째부터 바닷가에 차려진 굿 당 안에서는 다음의 순서로 굿이 진행되었다.
크게 내당굿과 외당굿으로 나누어 연희하였다.
내당굿은 굿 2일 째 시작되었는데, 내당굿으로서 1. 문굿(양중과 무당이 합당을 하여 굿의 시작을 알린다.)→ 2. 가망거리( 마을의 조상신을 모신다)→ 3. 세존거리(세존을 모시고 마을의 자손을 축원한다)→ 4. 제석거리(2월 영동할머니를 위한 내용이다)→ 5. 군웅거리(장수거리와 성격이비슷한데, 영험한 장군들을 모신다)→ 6. 성조거리(마을의 번영과 개인의 사업을 위하여 축원한다)가 연희되었다.
굿 3일째에는 7. 천왕거리(천왕님을 모셔놓고 축원한다)→ 8. 부인거리(부인네들을 위하여 축원한다)→ 9. 손님거리(마마신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없애 달라고 축원한다)→ 10. 황제거리(농사의 신을 모시고 풍농을 빈다)→11. 대왕거리(마을의 재수와 안녕을 빈다)→ 12. 걸립거리(걸립할머니의 삶을 구송하고, 마을의 안녕을 바란다)를 연희했다.
굿 4일째에는13. 대신거리(무당들이 모시는 온갖 신들을 모신다)를 하고 나서 외당굿을 했다. 1. 외당가망거리 (내당굿의 가망거리와 내용은 같다)→ 2.세존거리(마을 자손의 사업 성공을 빈다)→ 3. 심청거리 (심청이야기
를 구송하며, 뱃사람들의 무사고를 기원한다)→ 4. 제석거리(내당굿의 제석거리와 같다) 를 했다.
굿 5일 째에는 5. 산신령거리(산신령을 모시고 재수와 축원을 빈다)→ 6. 토지신거리(마을의 지신을 불러 평안
을 축원한다)→ 7. 용왕거리(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용왕에게 무사고를 빈다)→ 8. 천왕거리(천왕님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은 동해안 별신굿이 세습무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제의성보다는 오락성이 강하다는 특징과 그대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0) 2005년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마을 바닷가에 차려진 굿당에서 연희되었다.
21) 당맞이굿 : 제주집→ 산 위(천신)→ 외당→ 장군당→ 부인당→ 상당(본당)
사이비 종교에 대해 비판한다)→ 9. 장수거리(장군님을 모시는 거리이며, ‘놋동이굿’ 이라고도 한다)를 했으며,
마지막 날인 굿 6일째에는 대잡이(마을의 일들을 어떻게 하면 되는 지 신들에게 묻는다)를 한 후에10. 월래거리(모든 조상들을 불러서 대접한다. 특히 조상 중에서 객사를 했거나 돌아가신 날짜를 모르는 사람들이 따로 상을 차려서 내온다)→ 11. 영산맞이(이운맞이라고도 하며, 모든 고혼들을 극락세계로 모시는 거리로서 불교적 색채가 짙다.
꽃노래, 뱃노래, 등노래가 이어진다)→12. 퇴송(거리굿이라고도 한다. 모든 잡귀신들에게 술과 밥을대접하여 보낸다)동해안별신굿에서 손님신의 내력을 풀어내는 손님굿은 굿이 진행되는 6일간의 기간 중에서 3일 째인 내당굿의 아홉 번 째 거리에서 연희 되었다.
구경꾼이 많은 점심 식사 후의 오후 시간이었다. 굿거리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서는 온갖 신들을 불러서 놀리는 오신(娛神)에 해당된다.22)
손님신은 천연두신을 높여서 일컫는 것인데 마마손님신이라고도 한다.
인간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로부터의 화를 면하기 위해 인간들이 두려워하면서 모시게 된 신이다. 그런데 모셔둔 신격을 보면 격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가망신부터 모셔놓고 제석신을 비롯한 다른 신들을 모셔왔다. 한창 굿이 무르익었을 무렵에 인간에게 결코 득이 되지는 않지만 신으로 좌정한 손님신을 모셔서 위로
하고 질병을 없애달라는 원을 담아내고 있다.
일본 다께노에다오 가구라23)는 33거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24)시기텐25)(신도식 제의)이 있었고, 1. 미야가구라 (宮神樂천
22) 오신(娛神)은 모셔온 신들을 즐겁게 놀린다는 뜻이다. 화려한 말과 노래와 춤으로 신의 위업을 찬양하고 권위를 받들어서 신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23) 2003년 12월 6일 오후4시부터 12월 7일 오전 11시까지
24) ‘*’ 표시를 해놓은 것은 정식 거리에 들어 가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할애하여 연희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내용 설명을 하였다.
25) 가구라 연희 전에 신사의 벽에 붙어있는 거리 내용이며, 그것을 기준으로
축의 모든 신들을 맞이하는 춤)→ 2. 다이진가구라(大神神樂:신맞이 춤)→ 3. 시메다테(注繩立:신이 오시는 길을 여는 시메 세우기)→ 4. 시메쇼교(注繩の唱行:시메를 칭송하는 춤과 창행)→ 5. 야도가리(宿狩:여행객이 잠자리를 구하는 문답)→ 6. 시메호메(注繩譽:시메에 신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춤)→ 7. 시메히끼기진(注繩引鬼神:기진과 공무(供舞)의춤, 시메를 당기는 춤 )*中休み(중간 휴식)→ 8. 미꼬우야호메(御高屋譽:미꼬우야(御高屋)를 칭송하는 창행)→ 9. 안나가(安永:풍농을 기원하는 춤) *고도모가구라(子供神樂:아이들의 춤)26)→ 10. 이찌가구라(一神樂:일본 왕실의 조상으로 여기는 태양신 아미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맞이하는 춤) *간죠제가구라(願成就:기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는 춤)→ 11. 히라테시끼삼바(平手式三番:일월성신을 맞이하는 춤)→12. 몬노가구라(紋神樂: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을 표현하는 춤)→ 13. 이나리가구라(稻荷神樂:풍작과 풍농을 기원하는 춤)*시바이레(芝入神樂:자연재해를 나타내는 놀이)→ 14. 시바몬도(芝問答:시바고우진과 간누시와의 대화)→ 15. 호시사시(星指し:일월성신에게 기원하는 춤)→ 16.우찌기진(內鬼神:기진의 위력을 나타내는 가면춤)→ 17. 타지카라(手力:신화 내용에서 타지카라 신의 힘을 표현하는 가면춤)→ 18. 시바히끼(芝引き:사까끼를 뿌리내리게 하는 가면춤)→ 19. 도토리(戶取り:관객들을 즐겁게 놀리는 여흥의 가면춤)→ 20. 오끼에(御喜惠:바다의 신을 맞
는 춤 혹은 겨울이 온 것을 알리는 춤)→ 21. 우즈텐노(牛頭天皇:역병을 물리치는 춤)→ 22. 이세가구라(伊勢神樂: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위한 춤)→ 23. 이와또마이(岩戶舞: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동굴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표현하는 가면춤)→ 24. 다이진가구라(大神神樂:신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움을 나타내는 춤)→ 25. 간시이(神현장에서 가구라의 절차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확인하여 정리한 것이다.
26) 아이들이 춤을 추는 거리인데, 우찌기진 (內鬼神)과 간시이(神粹)를 어른들처럼 연희했다.
33 거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粹:칼을 숭배하는 춤)→ 26. 츠나몬도(綱入答:츠나고우진과 간누시와의 대화)→ 27. 도시노가미(年の神:망치를 들고 한 해의 복을 비는 춤)→28. 히노가미(火の神:불의 신이자 조왕신에게 바치는 춤)→ 29. 이리마시(入增: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땅을 굳게 하는 춤)→ *카가소히끼(がかそひき:줄당기기)→ 30. 쯔나기리(綱切:뱀을 자르기 위해 추는 춤)→ 31.쯔나누시(綱主:뱀이 잘 잘라졌음을 축원)→ 32. 미카사마이(御笠舞:시메를 거두기 전에 줄을 당기며 추는 춤)→ 33. 가미오꾸리(神送り:모든 신을 돌려보내는 창행)의 순서로 33거리이다.
보통 일본의 가구라는 33거리로 이루어진다.
일본의 가구라는 거리의 내용이 거의 대부분 춤으로 이루어진다.
창행을 하는 거리도 있으나 노래의 내용은 일본의 문헌신화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있는 신화 자료들이다.
21번 째 거리인 우즈텐노(牛頭天皇)는 다께노에다오 마을 사람들이 가구라에 대하여 정리해놓은 자료에 의하면 ‘옛날에 중국에서 역병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생명을잃었는데 우즈텐노(牛頭天皇)신27)이 나타나서 역병을 물리쳤다는 데서 기원한 거리라는 설명을 했다.28) 우즈텐노 거리에서는 신화를 구송하지는 않고 춤으로만 표현을 했기 때문에 누구를 내상으로 한 것인지는 오랫동안 가구라를 행해온 마을 사람들의 정보를 믿을 수 밖에 없다. 우즈텐노를 스사노미고토와 동일한 신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가장 난폭하고 성격이 사나운 신으로 믿고 있다.
역병을 물리치는 장면을 힘있게 표현하기 위해 고헤이를 격하게 흔들면서 춤을 춘다.
가구라 거리 중에서 산화의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27) 스사노미고도(素戔鳴尊)를 우즈텐노(牛頭天皇) 또는 우두대왕이라고 하며,일본 신화의 주역 중의 하나인 농업신, 冥府의 신, 난폭한 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사노미고도(素戔鳴尊)는 일본의 신화 체계 속에서도 부정적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다.
28) 다께노에다오가구라를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나까세마모루(74세)와 시이바요리미(80세) 두 분을 모시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거리는 22번 거리인 이세가구라(伊勢神樂: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위한 춤)와 23번 거리인 이와또마이(岩戶舞: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동굴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표현하는 가면춤)이다.
이 거리 에서는 다른 거리에는 없는 창행의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고사기에 실려있는 일본의 신화의 내용을 가구라에서는 창행으로노래한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신에게 바칠 옷을 짜도록 시키고 있을때 하야스사노오미고토(速須佐之男命)는 건물의 용마루에 구멍을 내어 얼룩말의 가죽을 거꾸로 벗겨 떨어뜨렸다.
베 짜는 여인이 그것을 보고 놀라는 바람에 베틀에 음부가 찔려 죽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경작하는 논두렁을 부수고 그 논에 들어갈 물이 흐르는 개천을 메워버렸다.
그리고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천지의 신에게 햇빛을 바치면서 제사를 지내는 신전에 똥을 뿌리기도 했다.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는 하야스사노오미고토(速須佐之男命)의 난폭한 짓을 보고 두려워하며, 아메노이와야토(天石屋戶)라는 석굴의 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가 숨었다. 그러자 다카마노하라(高天原)는 모두 어두워졌고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葦原中國)도 완전히 암흑의 세계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항상 밤만 계속되었다. 모든 신들은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동굴에서 끌어내기 위하여 거울과 구슬 장식물을 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춤추고 노래 불렀다.
결국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바깥 일이 궁금해서 문을 열고 나오게 되었다.
신들은 아마테라스가 다시는 동굴 속에 숨지 못하도록 동굴 문앞에 구슬을 둘러 금기 지역으로 만든다.
세상은 다시 밝아졌고 신들은 의논하여 스사노미고토를 다카마가하라에서 영원히 추방시킨다.29)
이세가구라(伊勢神樂) 거리에서는 구우지가30) 창행을 하는데, 창행의
29) 박규태,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책세상, 2001, 29쪽.
내용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신화내용과 같으며 굿을 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표현된다.31)
이와또마이(岩戶舞)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을 가구라 춤으로 나타낸 것이다.
“돈도세 ……”라는 창행을 하면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에게 숨어있지 말고 재미있는 일이있으니 나와보라고 한다. 여기서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동굴문을 열고 나오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모든 신들은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동굴에서 끌어내기 위하여 거울과 구슬 장식물을 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춤추고 노래불렀다.
그러자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바깥 일이 궁금해서 문을 열고 나오게 되었다.
30) ‘구우지(宮司 또는 神官)’는 다른 지역에서는 ‘간누시’라고도 하는데, 가구라를 연희할 때 가장 중요한 거리를 담당하고 제의의 많은 부분을 주도적으로 하는 책임자이다. 이세가구라는 반드시 구우지가 하도록 되어 있으
며, 다른 사람들은 이세가구라의 춤을 배우지도 않는다고 한다.
31) 창행의 내용 중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이때 타치카라명신(手力明神)은 천축의 하코네산에 올라가 사카키 한 그루를 뿌리 채로 뽑아 내려와서 아마노이와도의 입구에 심고, 가지 윗부분에는 옥(玉)을 걸고 가운데에는
나이시도코로의 거울을 걸고 아랫 부분에는 푸른 누사(幣)와 흰 누사(幣)를 걸쳤다.
노리토(祝詞)는 카스가대명신(春日大明神)이, 춤은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 여덟명의 처녀들과 다섯명의 카구라 악사들이 북을 치고 방울을 울렸다.
누사는 흰 종이를 붙였다. 이때 아마테라스오오카미가 재밌다고 생각하며 동굴문을 조금 열고서는 그 모습을 보시게 됨으로서, 지금의 천하의 일본이 약간은 어스름한 달과도 같게 된다.
이때 미노구니(美濃國)에 있던 타치카라 대명신이 아마노이와도로 돌아와 백천팔만세(百千八万歲)의 힘을 내어서 동굴의 문을 뽑아 부수어서 미노(美濃)의 토카구시라는 곳에 떨어 뜨렸다. 이때 대명신의 얼굴과 거울의 표면의 빛이 서로 합쳐져서 흰 빛으로 되었다. 이때 부른 일종의 노래가 있다.
‘푸른 빛도는 사카키 가지를 꺽어서 꽂아 놓고, 춤을 추니 조금씩 열리는 동굴의문’” (渡辺伸夫, 推葉村敎育委員會 推葉神樂調査報告書, 第三集, 昭和58년(1983). 353쪽)
우즈텐노가 연희된 거리는 33거리 중에서 21번 째에 해당하며, 이세가구라는 22번 째, 이와또미아는 23번 째
거리이다.
시간적으로도 굿이 한창 무르익어서 관중들과 가구라꼬가 거의 하나가 되어 가구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우즈텐노와 이세가구라를 했다.
인도 까누르 지역의 뽀유르 사원32)에서 행한 떼이얌은33) 마을에서 주신으로 모시는 뿌띠야 바가바띠(Puttiya Bhagavati)를 중심으로 의례가 진행된다.
마을의 넓은 공터에 임시로 마련한 사원34)에는 세 명의 신(뿌띠야 바가바띠, 비라깔리, 바드라깔리)를 불러서 좌정시키는 푸자(Puja)를 시작으로 떼이얌 의례가 진행된다.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1. 푸자(Puja)→ 2. 뿌띠야 바가바띠 또땀(Puttiya BhagavatiTottam --Ucha Tottam)→ * 벨리챠파드(Velichappad: 힘을 주는 특별한 의식)→ 3. 비란 또땀(Veeran Tottam)→ 4. 뿌띠야 바가바띠 또땀(Puttiya Bhagavati Tottam--Andi Tottam)→ *벨리챠파드(Velichappad)→ 5. 비란 떼이얌 의례(Veeran Teyyam)→ 6. 비라 칼리
떼이얌 (Veera Kaali Teyyam)→ 7. 뿌띠야 바가바띠 떼이얌(Puttiya Bhagavati Teyyam)→ 8. 바뜨라깔리 떼이얌(BhadrakaaliTeyyam)→ 9. 멜라리 푸자(Meleli Puja)
푸자에서는 사원에 신을 좌정시키는 의식을 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신을 부르는 노래를 하면서 신을 모시는 장소를 바나나 잎을 깔아서 마련해 놓는다.
두 번째 절차인 뿌띠야 바가바띠 또땀(Puttiya Bhagavati32) Poyyur 사원(Sree Putha Puttya Bhagawati Sangam Poyyur PonyyilDist Kannur Kelala INDIA)
33) 2005년 1월 7일 오후 6시부터 1월 8일 오전 8시까지 연희하였다.
34) 들이나 광장, 산 등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사당지어 떼이얌 의례을 하는 사원인 카유 사원이다.
Tottam--Ucha Tottam)에서는 액터가 부띠야 바가와티의 히스토리를 구송한다.35)
이것은 뿌띠야 바가와티가 신이 된 내력을 밝힌 것이며,이 사원에서 모시는 신의 내력이기도 하다.36) 또땀은 현지 언어인 말라얄람어로 구송하는데 북을 반주로 하여 신의 노래를 외운다.
또땀을 할 때는 얼굴 분장은 하지 않고37) 간단한 의상만 입고 열심히 기도를하며 또땀을 외워서 신을 부른다. 절차에는 넣지 않았으나 떼이얌을 연희할 액터에게 힘을 주는 의식인 베시야바르(VELICHAPPAD)에서는 떼이얌을 연희할 떼이얌 액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사제가 춤을 춘다.38)
여기서 떼이얌 액터는 춤을 추지 않는다.
뿌띠야 바가바띠 또땀(Puttiya Bhagavati Tottam--Andi Tottam)은 네 번째 절차에서 한 번더 구송이 된다. 다른 사원에서는 모시는 신의 성격에 따라 또땀 대신에 베라땀이라는 춤을 바치는 곳도 있다.39) 뿌띠야 바가바띠 또땀을 처음 구송할 때와는 달리 두 번 째 또땀을 할 때는 떼이얌 액터가 사제에게서 받은 칼을 들고 마을 사람들과 떼이얌을 구경하는 모든 사람35) 떼이얌을 하기 전부터 뿌띠야 바가바띠를 구송하는 액터는 이 여신과 관련된 만트라(Mantras:주문)를 100,000번 이상 노래해야 한다.
36) 신화의 내용은 앞의 마을과 신앙에서 밝혔다.
37) 인도의 떼이얌 의례에서는 분장이 아주 중요하다.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하기 위하여 반듯하게 누워서 하는데, 아주 정교한 문양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
얼굴 분장이나 의상에는 붉은 색을 많이 쓴다. 신의 모습을 더욱 더 무시무시하고 괴이하게 표현하여 신의 현존을 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38) 떼이얌 의례를 하는 데는 신이 내린 상태에서 연희를 진행하는 떼이얌 액터가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굿의 무당에 해당한다. 또땀을 할 때 북을 치고 춤을 출 때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떼이얌 아티스트라고 하며, 무당의 보조자로 어시스트가 있다. 악사인 아티스트가 어시스터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사제는 무당은 아니지만 떼이얌을 연희할 때 제의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한국의 마을굿에서 제관과 비슷하다.
39) 히메노 미도리 지음, 신명숙 옮김, 예능의 인류학, 문화가족, 2004, 47쪽.
에게 축복을 주기도 했다. 또한 이 또땀을 할 때는 카지차(Kazicha)를 함께하는데, 코코넛의 수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의 축제이다.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악사들과 마을 사람들, 과일과 곡식을 든 마을의 남녀아이들의 행렬이 떼이얌 장소인 제장으로 길게 열을 지어 들어온다.
떼이얌 액터는 계속 북을 두드리며 뿌띠야바가바띠의 신화를 구송한다.
사제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제물을 받는 동작을 하고 나서 카지차 행렬을 이끌고 떼이얌 액터가 있는 제장의 중심으로 간다. 사제가 도착했을 때 떼이얌 액터는 신화의 구송을 멈추었다. 여기서 사제와 무당은 함께 만나서 춤을 추기도 하고 예를 행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꾸띠야땀(Kutiyaattam)이라고 한다.
떼이얌액터는 분장실로 퇴장을 하고 사제는 제장의 성소에서 불을 피우고 종을 흔들면서 의례를 한다.
제단 옆의 냄비에서 펄펄 끓고 있는 아팜을40) 건져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축원을 한 후에 성소 맞은 편에 있는 원로들에게 가서 또땀이 끝났음을 알리고 승인을 받은 후 성소 안으로 퇴장한다.
이 때 한 쪽 켠에서는 멜라리 짜달(Meieri chadal)을41) 위한 준비를 한다. 이렇게 쌓아올린 장작더미는 뿌띠야 바가바띠 떼이얌의례가 시작되면 불을 붙여 숯불더미를 만든다.42) 뿌띠야바가바띠떼이얌을 하기 전에 떼이얌액터는 많은
40) 쌀을 이용해서 만든 제물이다. 한국의 쌀 튀밥처럼 생긴 것도 있고, 좀 더 크게 만든 것도 있다.
쌀 튀밥처럼 생긴 것은 바바나 잎에 싸서 제장에 제물로 항상 두고 있다.
41) 뿌띠야 바가와띠 떼이얌을 할 때 벌겋게 달아오른 장작 잿더미 위를 뛰어넘는 의식을 말한다.
42) 이를 위해서는 직경 8피트 이상, 높이 10피트 이상의 장작더미를 준비하고, 장작에 불을 지피는데 이용되는 아리뜨리(Arithiri)라고 부르는 쌀 횃불을 만든다. 아리뜨리는 하얀 면으로 된 천에 1/2㎏ 정도의 쌀을 넣어꾸러미를 만들고, 이 꾸러미를 다른 면으로 된 천을 이용해 두껍게 만든후, 4-5시간 정도 기름에 담가둔다. 장작은 타마린드(Tamarind)와 챰파카(Champaka) 나무를 쪼개 만드는데, 이 장작은 사원의 대표자의 가족에게
시간을 할애하여 분장을 한다. 떼이얌에서는 분장과 의상이 아주 중요하다.43)
한국의 굿이나 중국 나희 일본 가구라의 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뿌띠야바가바띠에서는 떼이얌 액터와 사제는 춤을 추거나 의례에 해당하는 동작들을 한다.
떼이얌 액터와 다른 여섯 명의 액터들이 함께 숯으로 달구어진 장작더미가 타고 남은 숯불 위를 뛰어 다니는 의
식을 하는데, 이것은 떼이얌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신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도의 떼이얌에서는 뿌띠야바가바띠를 위해서 독립 된 거리를 세 번이나 따로 마련해서 연희한다.
또땀이 두 번 있고 떼이얌이 한번 있었다.
Ⅳ. 신화의 서사구조
이야기 내용을 통해서 신들이 지닌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무속의례를 통해 구송되는 이야기의 내용을 서사단락으로 구분하여 보면 다얻는다.
사원의 대표자는 나무를 자르고, 장작으로 다듬고,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는 일을 지시하고 감독을 한다.
이 장작더미는 멜라리(Meleri: 장작불)라고 한다.
장작더미가 준비가 되면 멜라리를 설치할 사원 안마당의 동북쪽 적당한 장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게, 그곳을 정결하게 만들기 위해 사제가 간단한 의식을 행한다.
의식이 끝나면 장작더미를 쌓아 올린다. 기름에 담가두었던 아리뜨리를 가운데 놓고 불을 피우기 용이하게 장작을 쌓아올린다.
43) 떼이얌을 하기 전에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분장을 하고 나면 보조자들이 거울을 주는데, 떼이얌 액터는 신의
모습을 한 자기 자신을 보면서 트랜스에 든다고 한다. 신의 위엄과 힘을 나타내는 적색 계통의 분장을 하고 의
상은 입에 에키루를 차고, 머리에는 탈라빠리 위에 바땀을 두르고 발목에도 바툼바디칸을 찬다. 허리에 양 끝네 심지가 달린 막대를 네 개를 꽂는다.
코코넛 잎으로 만든 치마를 입고 귀에도 울라꾸트로 장식하고 가슴위네 까지 잎으로 만든 올리요타를 입는다.
음과 같다.
1) 한국 손님굿 무가의 서사단락44)
(1) 손님네가 조선국으로 나왔다.
(2) 손님네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다 사공과 다투고 사공을 죽인다.
(3) 날이 저물어 노구할매 집에서 묵는다.
(4) 노구할매 부탁으로 김장자집 아들에게 복을 주기로 한다.
(5) 노구할매가 손님네를 대접하려고 김장자 집에 쌀을 꾸러 간다.
(6) 고약한 김장자가 거절하고 김장자 부인이 벌레섞인 싸래기를준다.
(7) 손님네가 김장자 아들에게 어머니로 변장하고 접근하여 병을준다.
(8) 김장자가 뉘우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9) 손님네가 병을 낫게 하자 김장자는 모른 척한다.
(10) 손님네가 괘씸하게 생각하고 김장자의 아들을 죽인다.
(11) 김장자는 정신 이상자 되어 집안이 다 망하고, 노구할매는 행복하게 잘 산다.
2) 일본가구라의 스사노미고토45)
(1) 이자나기카미가 외쪽 눈을 씼었을 때 태어난 신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이고, 코를 씼었을 때 태어난 신의 이름이 스사노미고
44) 굿 현장에서 손님굿 무가를 구송한 김동언 무녀의 서사무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45) 일본 시이바의 교육위원회에서 발간한 시이바가구라 조사보고서의 다께노에다오 가구라 창행의 내용을 번역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 신화의 내용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과 거의 같다. 주로 이세가구라와 이와또마이 거리에서 노래된 내용이다.
토이다.
(2) 스사노미고토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경작하는 논두렁을 부수고 개천을 메우고, 신전에 똥을 뿌리며 난폭하게 굴었다.
(3)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신에게 바칠 옷을 짜게 하고 있는데 스사노미고토가 방해하여 베짜는 여인이 죽었다.
(4)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자 세상이어두워졌다.
(5) 석굴 앞에 타지카라노가 숨어 있고, 신들이 모여 굿을 하면서크게 웃었다.
(6) 아마테라스가 궁금해서 문을 열자 타지카라노오가 끄집어냈고,세상은 밝아졌다.
(7) 신들은 스사노미고토를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하였다.
(8) 스사노미고토는 아들을 데리고 시라기국으로 내려와 소시모리에 도착했다.
(9) 추방된 스사노미고토는 음식을 관장하는 여신에게 먹을 것을 청했는데, 그녀가 코와 입과 엉덩이에서 음식을 꺼내주자 더럽다고 살해한다.
(10) 히강 상류에 사는 지신의 딸을 뱀의 위협에서 구해 주고 혼인한다.
3) 인도 떼이얌의 뿌띠야 바가바띠46)
(1) 빌바푸람(Villvaapuram)저택에 여섯 명의 형제와 여동생 뿌띠야 바가바띠가 살았다.
46) 뿌띠야바가바띠의 내력에 관한 것은 사원의 내력을 잘 알고 떼이얌액터로 활동하고 있는 마노즈(Manoz panickar, 27세)의 진술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2) 여자아이는 모든 형제들에게 애완동물처럼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3)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비란(Veeran)47)이 목욕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4) 비란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비란은 그녀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5) 그녀는 난폭해졌고, 마침내 비란을 죽여 버렸다.
(6) 비란이 죽자 세상은 등을 돌렸고, 오빠들도 그녀를 비난했다.
(7) 화가 나서 뿌띠야 바가바띠는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불속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
(8) 그녀의 놀라운 행동으로 사람들은 죽고 난 뒤에, 그녀를 여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9)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여신을 마을의 구원자로 여기게 되었다.48)
세 나라의 신격은 모두 성격이 무난하지 않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은 죽이고 일을 성취한다.
그들의 행동은 아주 과격하고 극단적이다.
손님신의 손님은 천연두의 별칭으로서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경외시하던 신이었다.
특히 전염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여 천연두가 유행하면 지역에 따라 두창 장승을 세워 병의 확산을 막는 등 민중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신이다.
일본의 경우 스사노미고토가 너무 난폭하게 굴어서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녀를 끌어내기 위해 굴 입
47) 비란은 용감한 영웅이다.
48) 인도의 카나라주에서는 뿌띠야 바가바띠와 같이 용감한 행동을 한 인물을신으로 숭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라주와의 인터뷰 내용)
구에서 거울과 구슬로 장식하여 춤을 추면서 시끄럽게 북을 치니까 태양신이 궁금해서 문을 살짝 열고 보다가 힘센 타지카라에게 끌려나 오게 되어 태양이 다시 떠서 밝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구라 즉신에게 바치는 굿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스사노미고토노는 굿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신화적 인물이기도 하다.
인도의 뿌띠야 바가바띠는 여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죽이고 오빠들까지 죽이는 악한 행위를 했으나 사람들은 그녀를 신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세 편의 신화가 지니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나타남 (顯現) ⇒ 살해(殺害) ⇒ 신격(神格)
Ⅴ. 무속 의례와 신화
신화와 제의는 ‘성스러운 언어’와 ‘성스러운 행위’로서 그 둘은 분리 된 채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고려되어야할 중추적인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신화가 인간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상징적 체계라면 제의는 그러한 의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재확인하는 표현이다.
신화와 제의는 서로 설명하고 묘사하면서, 신화는 신념적 차원에서 제의는 행위적 차원에서 소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49)
무속의례에서는 행위자를 중심으로 신념체계인 신화와 행위체계인 제의가 상보적으로 통합되는데, 이것이 단 한
번의 사건이나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단한 반복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반복행위는 주로 신화를 노래하는 것과 춤을 통한 재연
49) 최종성, 「무속의례의 구조이해를 위한 신화-제의 연구」 종교학연구, 서울대 종교학연구회, 1996.
이다. 결국 무속의례를 행하는 행위자를 중심으로 신화와 제의는 통합된다.
신화와 제의는 다 같이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서 인간존재나 자연존재의 변형을 위한 종교적 목표 달성에 기여하지만 칼날이 칼자루보다 도구적로 봐서 먼저 이루어진 것처럼 제의가 신화보다 먼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견해다. 제의의 우선성을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효율성의 개념에서 본다는 점이다.50)
그러나 신화든 제의든 어느 한 쪽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신화와 제의의 체제는 동일상황에 대한 싱징절차로서 문화의 연속성과 사회의 통합성을 지니게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51)
신화와 제의가 무속의례를 연희하는 행위자 즉 무당이나 떼이얌 액터나 가구라꼬에 의해서 표현되고 통합되어서, 제장을 형성하고 있는 참여자들에게까지 공유되면 거리의 흐름은 의미있는 것이 된다.
의례를 연희하는 행위자와 그것을 구경하며 동감하는 관객들 사이에는 공감된 신화와 제의의 통합체계가 존재하게 된다. 믿음에 따르는 교리나 이념을 통한 설득이나 이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의미의 상호 공감으로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굿에서는 신화적 사건의 현재화를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
인도의 떼이얌에서도 또땀 의례를 할 때는 신화의 이야기가 노래로 북소리와 어울려서 구송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본 의 가구라에서는 신화의 내용은 춤을 추는 가구라꼬보다는 좌역(座役)52)들이 앉아서 책을 보면서 북잽이와 함께 창행을 하는 경우가
50) Anthony F G Wallace, Religion an Anthropogical View, New York,Random House, 1966, pp. 102-7.
51) Clyde Kluckhohn, Myth and Ritual : A General Theory, Harper &Row, 1972, pp,92-105.
52) 좌역은 주로 가구라를 오랫동안 행해왔던 마을의 연장자들이다. 가구라가 진행되는 동안 창행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창행의 내용은 고어로 되어
사진1. 손님거리(한국)
많다.
창행의 내용이 대부분 구체적인 신화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보다는 신화 내용 중의 일부를 상징적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가구라에서는 창행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춤이 제의의 의미를 드러내는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면서 신의 위력을 표현하는 것이 중심이 되며 가구라꼬가 정해진 규칙대로 춤을 힘있게 잘 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라마다 무속의례를 행하는 행위자가 내면화한 의미의 표현은 다르다.
신화 구송이나 춤이라는 상징적인 절차를 통해 관객에게 의미가 전달된다.
상징은 곧 문화 혹은 집단 내에서 의미의 공감을 이루게 된다. 한국의 손님신과 일본의 스사노오와 인도의 뿌띠야바가와티는 모두 성격이 포악하고 사나운 신이다.
무당이 신의 모습과 성격을 풀어내는데 있어서, 한국의 경우는 손님거리에서 주로 창과 말로 표현한다(사진1).
손님굿 무가도 여러 지역의 굿에서 다양하게 구송되고 있기 때문에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손님굿 무가의 사설에도 많은 변이가 있었고 확장되거나 축소되기도 했지만 동해안 별신굿을 한 이천마을에서는 굿거리가 크게 외당굿과 외당굿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손님거리는 굿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내당굿에서 의례를 진행하였다. 무가의 내용으로 봐서는 손님신의 위력을 노래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무당은 손님신의 이야기를 말과 노래로 표현하면서 적당한 곳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슬픈 목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손님신이 지니고 있는 힘과 능력을 과시한다.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무있는 것이 많아서 그 마을의 오래된 노인들이 아니면 뜻을 이해하기 어려
운 경우도 많다. 또한 대부분이 시가의 형태로서 아주 상징적이다.
창행 북잽이와 좌역들의 창행이 중심이 되는 거리에서는 춤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관객은 이야기를 듣고 인물들의 갈등구조를 파악하게 된다. 무당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추는 춤은 이야기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당의 흥에 의해서 춤을 춘다. 사설을 구송하면서 굿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요를 삽입하기도 한고, 별비를 걷기 위해 노래 내용을 변용시키기도 한다.53)
동해안 지역의 무당들은 제의로서의 굿판보다는 놀이로서의 굿판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설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변용시켜서 무가를 구송하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보면, 손님네가 다녀간 뒤에 손님네에게 호의적이었던 노구할매가 편안하게 잘 살게 된다. 이것은 신을 잘 섬기는 인간이 잘 산다는 것이며, 신보다는 인간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은 스사노미고토의 위력을 직접 드러내는 데는 인색하다.
스사노미고토는 이세가구라와 이와또마이에서 하는 창행의 내용에 등장을 한다.
창행의 대본에 드러나 있는 내용은 황실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53) 사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아버지 욕심 때문에 귀한 자식 살리지도 못하고 ……김장자 죄가 많아 정신 이상되고 죽지 못해 살게 된다
어느 누구도 밥 한 술 안주고 문전 박대한다” 하고, “잠시 노구할매 집에 드가보자 노구할매 거동 보소 사우 외손녀 델다 키워 손님네 덕이로구나 내 손이야 어화 둥둥 내손이야 하늘 같이 높은 사랑하해같이 깊은 사랑사우 사랑은 장모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비라……”하면서 노래를 하니 마을 사람들이 무녀가 들고 있는 손님대에 별비를 묶는다.
마을 사람들이 김동언의 무가에 감동을 하고 굿판은 놀이판으로 되려고 한다.
무녀는 다시 각 도에서 손님굿하는 것을 구송하면서 굿판마다 손님을 모시는 것이 다르다고 노래한다. “…… 도야도야 경상도야 강원도 굿이 다르고 제주도 굿이 다르다 함경도 굿에서는 손님네 오셨지비 명태 막걸리 잡숫고 갔지비 제주도 굿에서는 할망손님 하르방 손님 ……” 하면서 각 도의 특징을 살려 손님네 모시는 모양을 노래한다. 강원도 부분에 가서는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경기도 무당 부르면서 청춘가가 이어진다.
굿판은 자연스럽게 놀이판이 된다.
사진3. 이와또마이(일본)
사진2. 우즈텐노(일본)
있다.
우즈텐노 거리(사진2)에서는 창행은 하지 않고 춤만 추는데, 마을 사람들은 춤의 내용이 스사노오의 힘을 드러내어 역병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본 가구라는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위한 의례라고 한다.
일본의 학자들은 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황실의 조상신으로 서술된 신화체계를 가졌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것에서 자신들의 문화가 가지는 독자성과 정체성을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여신의 이름이 ‘아마테
라스(天照)’인 것은 아마테루(アマテル)의 경어적 용법으로 문자 그대로 ‘천상의 세계를 비춘다’는 뜻이며 태양신에 어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54)
세상이 갑자기 컴컴해진 이유가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굴 안에 숨었기 때문에 그를 끌어내려고 악
기를 울리고 유인하는 의례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다께노에다오 가구라에서는 이와또마이로 표현된다(사진3). 이에 대해 일본학자 우에노(上田正昭)는 일식(日蝕)에 대한 주술설로 설명하면서, 가구라를 하는 계절인 음력 11월 (양력 12월)이 태양의 활력이 가장 쇠약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이러한 의례가 태양신의 활력을 부활시키는 주술이라고 밝히고 있다.55) 태양이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태양신의 활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약해지는 인간의 마음도 강하게 할 필요가 있
54) 松前健, 神話の系譜東京 滈書房, 1972. 58쪽.
55) 上田正昭, 日本の古典藝能 第一卷 神樂, 平凡社, 1969, 17쪽.
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구라를 연구하는 일본학자들은 진혼제(鎭魂祭)라고 했으며, 신의 주술을 통해서 선한 영혼을 움직여
사악한 영혼을 진압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56)
내용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된 가구라는 궁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궁중에서 가구라를 거행하던 초기에는 물론 제사 중심이었다. 궁중 내시소(內侍所)에서 미가구라(御神樂)가 처음 거행된 것은 1002년 무렵이다.
이것은 그때까지 집행되었던 궁정내 여러 제사의 악무들이 12월 좋은 날에 공경(公卿), 전상인(殿上人), 지하중(地下衆) 등에 의해 내시소 어전에서 집행된 것이다.
초기에는 토리모노(採物)를 들고 노래를 불렀는데 춤은 없었다고 한다.57)
신께 바치는 노래가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신께 치는 음악을 제사 예능으로까지 확장시키면서 궁중에서는 여흥의 춤과 노래 일본의 대표적인 황실 신화의를 가구라에서 연희하면서 가구라의 연희형태를 정형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골 마을에까지 황실신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가구라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춤의 규칙도 정해져 있으며, 창행의 내용도 일본의 문헌신화에 바탕을 두고 지역마다 창행을 위한 책이 보급되어 의례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는 다르다. 전체가 아홉 번의 거리로 이루어져있는데 세 번의 거리에서 악신을 연희한다.
이것은 의례의 시간이나 비중으로 볼 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뿌띠야바가바띠 신을위해서 또땀은 두 번이 있고 떼이얌이 한번 들어 있다.
즉 세 개의 절차가 단독으로 진행된다. 떼이얌을 할 때는 또땀은 하지 않는다. 또땀에서는 뿌띠야 바가와띠의 히스토리를 노래로 구송하고(사진4), 떼이얌 의례에서는 화려한 분장과 아니를 머리 위에 쓰고 춤으로 신의 위력을 과시한다. 춤을 추고 난 뒤에는 칼과 방패를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장작불을 뛰어넘는다. 마을 사람들도 함께 숯불 위를 뛰어넘는다.
56) 上田正昭, 앞의 책, 13쪽.
57) 本田安次, 앞의 책, 78쪽-80쪽.
사진 5. 떼이얌(인도)
사진4. 또땀(인도)
58) 인도의 떼이얌에서는 신의 히스토리는 또땀으로 충분히 노래되지만 사람들은 그 노래에는 귀 귀울이지 않고, 떼이얌에서 신의 모습이 사납게 드러나는 것에 동참한다.
신을 닮은 분장과 함께 벌겋게 달구어진 돌위를 걷는데서 신의 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과 함께 그 힘에 동참을 한다.가까이 갈 수도 없을 만큼 뜨거운 돌 위를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뛰어다니는 것으로 신의 힘을 체험하는 것이다.
뿌띠야바가바띠를 하면서 숯불 위를 걸을 때는 액터의 분장과 의상도 아주 사납고 위험한 모습을 한다(사진5). 두 사람이 들기 힘들 정도의 무거운 관에 불꽃59)을 십여 개 달아서 머리 위에 관으로 쓰고, 코코넛으로 만든 치맛자락에도 횃불처럼 생긴 것을 길게 꽂은상태로 춤을 춘다.
액터는 분장과 의상과 춤58) 장작불은 떼이얌이 시작되고 나서 마당 한 가운데 장작을 높이 쌓아서 피워 놓았다. 뿌띠야바가바띠를 할 때 쯤이면 나무 장작은 거의 숯이 되어 있고 장작 밑에 있는 돌들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이것을 마을 사람들과 무당은 맨발로 뛰어넘는다.
59) 불꽃은 의례에서 아주 중요한데 등불은 푸자기간 내내 켜져 있다.
고대로 부터 인도에서는 불이 신 아그니(Agni)로 숭상되었고 신적인 에너지의 상징이 되었다.
불꽃을 통해서 신도들은 남녀신의 기운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이 불꽃과 접촉하는 것은 신의 장대함에 스스로를 조화시켜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불을 통해서 절대적인 신의에너지가 사람들이 만질 수 있 는 기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과 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스티븐 P. 아펜젤러하일러, 김홍옥 옮김. 인도, 신과의 만남, 다빈치출판, 2002, )
동작으로 통해서 ‘신이 내린’ 상태가 된다. 신이 내린 상태에서 공수와 축복을 한다.
남인도에는 악을 정복하고 질병을 고쳐주는 여성적임 힘을 지닌 신을 많이 숭배한다.60)
Ⅵ. 결론
무속은 민족 문화의 형성과 전개에 근간이 되어 온 뿌리 깊은 신앙일 것이며. 민족의 다양성과 함께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양상을 달리한다.
무속의례는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터전 곧 그 현장의 생활방식과 현장에 남아있는 삶의 족적인 것이다.
민족마다 지니고 있는 생활양식 및 환경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정신이 무속의례 속에 드러나며, 나라마다 다양하게 투영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굿과 일본의 가구라, 인도의 떼이얌은 모두 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마을 공동체 의례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러한 무속의례 일본의 대표적인 황실 신화의에서는 반드시 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온갖 신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성격과 직능을 무당들은 노래와 춤으로 드러낸다.
세 나라의 무속의례가 연희되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성격이 포악하고 나쁜 신들이 무속의례에는 반드시 있으며, 의례를 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다.61)
이들 신의 신격을 통해서 기원하는 것은 모두 질병을 없애 달라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惡神의 모습을 표현하는 의례의 시간은 대부분이 의례가 절정에 달했을 때 쯤이다. 부정을 물리고
60) 스티븐 P. 아펜젤러하일러, 김홍옥 옮김. 앞의 책, 57쪽.
61) 한국의 무당은 ‘창과 말과 춤’으로, 일본의 가구라꼬는 ‘창과 춤으로’, 인도의 떼이얌액터는 ‘창과 춤과 분장과 의상, 장작넘기 등의 위협적인 동작’으로 표현한다.
제장을 깨끗이 한 후에 위계가 높은 신들을 먼저 모시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조상신과 천신, 장군 신들을 모셔놓고 많은 축원을 하고 난 뒤에 연희되었다. 동해안별신굿에서는 별신굿을 하는 목적이 마을의 번영과 해상 안전을 비는 것이다.
마을에 있는 네 개의 당에 모셔진 신격도 결국은 조상신인 셈이며, 조상신과 함께 많은 신들을 불러서 모시고 춤과 노래로 신들에게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구한다.
그 가운데 손님신이 하나의 거리로 설정되어 손님신의 내력을 풀어내고, 신을 즐겁게 한다. 굿의 전체적인 구조로 보았을 때는 오신62),즉 신을 놀리는 부분에 해당한다.
일본의 가구라에서는 다께노에다오의 신사에 모시는 신이 있지만 가구라의 내용을 보면 신사에서 모시는 신과는 다르다.
일본의 황실에서 시작된 가구라의 전통에 맞게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주신으로하여 의례를 한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가장 괴롭혔던 신인 스사노미고토의 성격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내력을 풀어내는 창행에서 드러난다. 아마테라스의 신화를 중심으로 가구라가 진행되기 때문에 우즈텐노에서 직접 신화를 구송하지는 않으나 의례의 내용이나 춤의 성격으로 봐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가구라의 모든 제의는 태양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사노미고토같은 악신을 위한 거리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신화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봐서는 스사노미고토의 난폭한 행위를 계기로 하여 태양신이 숨었으며, 태양신을 끌어내기 위해 ‘이와또마이’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도의 경우는 좀 다르다. 마을의 신전에서 모시는 신인 뿌띠야바가바띠는 떼이얌 의례 중에 세 번이나 독립된
거리에서 표현한다.
두 번
62) 일반적으로 한국의 굿은 기본 구조가 ‘청신(請神-)오신(娛神)-송신(送神)’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또한 큰 굿 전체를 이루는 개별 굿거리 안에서도 ‘청신-오신- 송신’의 구조가 적용된다.
은 현지어인 말라얄람어로 신의 내력을 구송하는 또땀을 하고, 신의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무서운 분장을 한 후에 의상을 갖춰 입고 춤과 힘찬 동작으로 신의 형상을 드러낸다. 전체가 아홉 거리인데 세 거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떼이얌 의례가 마을에서 모시는 뿌띠야바가바띠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도 전역에서 모시는 신들 중에는 여신들이 많다.
인도에서 여신들의 경우는 생명을 재창조하기 위해 버럭 화를 내면서 모든 생명체들을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거나 남편의 몸을 깔아뭉개기도 한다. 악을 압도하려고 일부러 혐오스럽고 무시무시한 외양을 자처한다고 했다. 여신들의 이름과 특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우주적인 어머니요, 바가바띠(Bhagavati)로서 모든 존재들을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다.
사람들은 여신에게 가족의 건강과 복지를 기원하며 숭배한다. 또한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풍요와 번영을 신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바가바띠는 결국 개인의 풍요와 마을의 번영을 비는데 꼴 필요한 신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속의례를 할 때는 어느 나라든지 다양한 신들을 모신다.
대상으로 삼은 무속의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공동체의 기원을 하는 의례를 중심으로 살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마을의 당이나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들을 위한 거리가 많다.
이것은 굿이나 가구라가 모든 신들을 위한 잔치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인도의 경우는 사원에서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을 위한 떼이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악신인 뿌띠야바가바띠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차이는 무속의례의 전승과정과 무속의례에 대한 그 나라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손님신과 일본의 스사노오와 인도의 뿌띠야바가와티는 모두 성격이 포악하고 사나운 신이다.
무속의례에서 이러한 惡神을 모시는 것은 이들 신들이 지닌 성격의 포악함을 통하여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예고되지 않은 질병이나 운수 사나운 일들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惡神들이 지닌 힘으로 더 불행한 일들을 물리칠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지 악신이 비록 싫더라도 모시지 않으면 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에 의례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살이에서도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많다. 나쁜 행동 때문에 그 사람을 무시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까봐 두려워서 잘 대해주기도 한다.
무속의례에서 악신을 모시고 대접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논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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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정호
경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