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누카
마카비 가문(The Maccabees): 영웅인가, 광신도인가?
유대교 관습을 구한 영웅으로 찬양되었지만, 시리아 그리스인들에 의한 억압과 폐지로 인해 마카비 가문은 종교적 광신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카비 가문은 헬레니즘의 길을 선택한 동료 종교인들을 살해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불분명합니다. 이는 마카비서 상·하권(랍비들이 히브리어 성경에 포함시키지 않은 하누카 이야기와 관련된 책들)이 정치적·종교적 의도를 통해 굴절되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양측 해석 모두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며, 후대의 주석가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해석을 선택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반유대주의를 직접 경험한 독자들은 마타티아스(Mattathias)를 반유대주의 그리스 문명에 맞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충실한 영웅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반면, 시민자유주의자들은 마카비 가문을 덜 관대하게 평가하며, 그들이 동료 신자들의 시민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합니다.
헬레니즘(Hellenism)의 역할
마카비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헬레니즘의 역할에 대한 평가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사상과 뛰어난 운동 능력에 기반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지닌 이념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어, 헬레니즘은 시리아 그리스인들이 부유한 부르주아(bourgeoisie) 계층 사이에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헬레니즘을 받아들인 귀족 엘리트들은 그리스 폴리스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경제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동전 주조권, 국제 헬레니즘 행사 참여권, 그리고 도시 창립 통치자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은 통치자와 지역 경제 엘리트 사이의 실용적인 관계 그 이상을 포괄했습니다. 헬레니즘은 많은 이들이 미래의 길로 여기는 "계몽된" 세계관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헬레니즘의 도전에 맞서지 않는 민족들은 도태되었습니다. 헬레니즘이 미래의 흐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유대 지역에서는 헬레니즘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따라서 유대 사람들은 헬레니즘의 보편주의적 관점이 유대 조상의 종교와 그 하나님에게 위협이 되는지, 아니면 단순히 유대교 관습과 융합될 수 있는 더욱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개혁인가, 반란인가?
그렇다면 헬레니즘 정신으로 유대교를 개혁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리아 그리스인들로부터 유대를 "해방"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유대교 가치를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
유대 헬레니즘주의자들은 첫 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분리주의(separatism)를 넘어 그리스 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유대교에 동화시키고자 했습니다. 마카비 상권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무렵 이스라엘에서 불법한 자들[유대 헬레니즘주의자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설득하여 이르되, '우리가 가서 우리 주변 민족들과 조약을 맺읍시다. 우리가 그들과 갈라선 이후로 우리에게 많은 재앙이 닥쳤습니다.'"(마카비 상권 1:11)
또한 유대 헬레니즘주의자들은 세속적인 권력 구조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먼저 야손(Jason), 그리고 메넬라오스(Menelaus)는 금전적 뇌물과 다른 술책을 통해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로부터 대제사장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유한 유대 귀족과 사제들이 헬레니즘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마카비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해방자(liberator)는 일반적으로 외세의 지배로부터 나라를 해방하는 사람이지만, 마카비는 내전(civil war)이라는 맥락에서 충성스러운 유대 대중을 헬레니즘 유대인들과 그들의 시리아 그리스 동맹군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카비 해방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헬레니즘주의자들을 배교자(apostates)로 보는지, 아니면 그리스적 방식을 받아들인 유대인으로 보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가 엘리아스 비커먼(Elias Bickerman)에 따르면, 야손과 메넬라오스는 보편적인 신과 같은 그리스 이상에 부합하는 유대교의 측면은 보존하고 싶었지만, 유대인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는 유대교 관행의 일부, 즉 코셔 식사법, 안식일 준수, 할례 등을 제거하고 싶어 했습니다.
일부 헬레니즘주의자들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계속 숭배했지만, 예배를 야외 성소로 옮기고 돼지를 제사 동물로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반헬레니즘적 저작으로 여겨지는 제2마비서에서도, 티레(Tyre)에서 5년마다 열리는 경기[고대 올림픽의 형태]에 예루셜라임을 대표하여 파견된 사절들은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대신 그들은 배를 만들어 티레에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제2 마카비서 4:18-20). 이 헬레니즘주의자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할 의향이 있었지만, 토라의 율법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겁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카비 가문의 역할을 평가할 때, 마카비 가문과 그 지지자들이 배교자로 간주했던 이 헬레니즘 유대인들이 유대교 관습을 주변 그리스 문화에 동화시킬 권리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마카비 가문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했고, 결국 메넬라오스가 안티오쿠스를 설득하여 모쉐 율법을 금지하는 칙령을 제정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판단은 확고해졌습니다. 안티오쿠스의 칙령으로 인해 토라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은 사형에 처해졌고, 이교 신 숭배가 요구되었습니다.
마카비 투쟁은 사회 계급 문제에서도 비롯되었습니다. 부유층, 즉 사제들이 이끄는 도시 지배 계급과 대지주들만이 시민이었기에, 헬레니즘화된 예루샬라임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무력했던 대다수의 유대인들을 억압했습니다. 안티오쿠스 박해(Antiochan persecutions) 이전에도 전통 신앙의 열광자들, 즉 도시 장인과 마을 주민들과 자유 사상을 가진 헬레니즘주의자들 사이에는 사회적 적대감이 존재했습니다. 이는 마카비 지지자들이 해방자였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사리사욕에 의해 움직였음을 시사합니다.
광신을 통한 정당화(Legitimization Through Zealotry)
일부 현대인들은 마카비가 헬레니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마카비서는 마타티아스(Mattathias)가 동료 신자들을 향해 보인 열광적인 태도를 칭찬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열광적인 태도를 이용하여 마카비 왕조를 정당화합니다. 마카비서에서 마타티아스는 토라에 나오는 다른 열광적인 태도의 전통을 따라 모딘(Modi’in)에서 왕의 관리가 요청한 이교 제단에 제물을 바치러 온 동료 유대인을 살해합니다.
이 배교한 유대인이 제단에 다가가자, 마타티아스는 그와 정부 관리를 죽인 후 제단을 허물어뜨립니다. 마타티아스는 "율법을 사랑하고, 언약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따르라"(마카비서1 2:27)라고 선언합니다. 모쉐가 금송아지 앞에서 직면했을 때의 말을 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며, "여호와를 따르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출애굽기 32:26)며, 마카비서는 마카비 열성주의(Maccabean zealotry)의 정당화를 시작합니다.
마카비서 전반부는 마타티아스를 우상 숭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부족 지도자와 미디안 동료를 죽인 성경 속 인물 핀하스(Pinchas)와 명확하게 비교하면서 계속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제사장직의 "브리트 샬롬"(ברית שלום)을 받았습니다. (민수기 25장).
이는 마타티아스가 이러한 광신적인 행위, 즉 유대인 공동체의 지속적인 존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 따라 법을 자기 손으로 집행한 행위에서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타티아스는 자신이 세속 권력과 하나님의 법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행동한다고 여겼지만, 그의 행위는 외부에서 보면 정치적 테러 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큰 선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유다(Judah)는 마타티야가 시작한 싸움을 이어가며 적극적으로 배교를 공격했습니다. 우상 숭배 제단을 파괴하고, 강율법 준수를 강제하며, 갓난 아이들에게 할례를 시행하고, 율법 위반자이자 배교자들을 살해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카비 지지자들의 이기심은 또한 그들이 광야에서 함께 숨어 지내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정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토라 법을 재해석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카비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권한으로 법을 해석함으로써 스스로를 반대 정부로 내세우며, 현직 대제사장의 특권을 침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카비서의 본문은 유다를 해방자로, 그들의 열심이 토라와 유대 민족을 보존하는 데 필요했다고 보았지만, 후대의 랍비 주석가들은 그러한 열심에 못마땅해했습니다.
개인이 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자신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규범적인 유대교 법은 "합법적인" 열심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까지로 제한합니다.
열심당원은 신성모독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여 선제적으로 행동하거나, 신성모독이 완료된 후에도 처벌을 내릴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는 살인자로 간주됩니다. 열심당원은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신성모독자는 자기방어를 위해 열심당원을 죽일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랍비 법원은 열성파들이 행동하거나 열성주의를 가르치는 것을 허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결국 마카비파는 해방자이자 광신도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처럼 이 외경의 영웅들은 다층적이며, 그들의 의미는 각 세대가 자신들의 필요와 경험에 따라 풀어나갑니다. 오늘날 우리는 동화(assimilation)와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맞서 유대교를 보존하려는 마카비파의 투쟁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유대인끼리 서로를 적대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는 종교적 광신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By Michele Alp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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