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9일(일요일).
속리산 : 충북 보은군.
▣산행코스 : 속리산주차장-목욕소-세심정-비로산장-법주사-속리산주차장.
▣산행시작 : 속리산주차장 10시 42분.
▣산행종료 : 속리산주차장 14시 36분.
▣전체거리 : 약12.2km.
▣전체시간 : 03시간 53분.
▣운동시간 : 03시간 12분.
▣휴식시간 : 00시간 41분.
▣누구하고 : 횃불산악회.
10 : 42 속리산주차장.
11 : 55 목욕소.
12 : 01 세심정.
12 : 16 비로산장.
13 : 50 법주사.
14 : 36 속리산주차장.
▲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길에..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1리에서 바라본 속리산 상모봉.. 상학봉 능선.
▲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15m, 가슴둘레 4.5m, 총면적은 1158.3㎡에 이른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2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여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을 섬기는 등..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10시 42분 : 속리산주차장.
▲ 오늘은 속리의 주봉(문장대..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이 아닌 산책로 수준의 법주사 세조길을 걸어려 한다.
▲ 속리산 향토음식거리..
▲ "속리산 오리숲길"..
오리숲길 이라는 이름은 속리산 향토음식 상가거리부터 법주사까지의 거리가 10리(4킬로미터)의 반인 2킬로미터 정도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 법주사 매표소.. 한때 입장료 문제로 잦은 실랭이가 벌어져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매표소다.
▲ 제비꽃.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무려 수십 종이 넘는다. 책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에 의하면 분류가 분명한 제비꽃만 32종으로 한국의 야생화 중에 종류가 제일 많은 꽃이라고 한다.
▲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일가람이라 되어 있다.
호서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관개용 저수지인 의림호의 서쪽에 있는 지방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 법주사 부도전.
▲ 법주사 갈림길에서.. 오른쪽 세조길을 먼저 걷고 돌아올때 법주사를 들릴 것이다.
▲ 세조길..
역사속의 인물을 보면.. 그 인물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하는 인물이 있고... 과학이나 예술등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한 인물도 있고.. 자기의 부귀영달과 권력을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게한 인물도 있다. 그런 인물들 중에 하나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다.. 별로 반갑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 세조가 걸었다는 길을 걷는다.
▲ 목욕소..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깨끗히 나았다는 곳이다.
▲ 목욕소 유래..
▲ 세조길 출구를 나서면.. 바로 세심정 갈림길이다.
▲ 세심정 갈림길..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세조가 머물렀다는 복천암으로 가는길인데.. 별로 반갑지 않은 인물이라 오른쪽에 있는 비로산장까지 다녀 오기로 한다.
▲ 도불원인(道不遠人),,,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인원도(人遠道),,,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비이속(山非離俗),,,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리산(俗離山),,,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유명한 시다.
▲ 12시 15분 : 비로산장... 입구의 목교 사립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1965년 문을 연 비로산장이다. 이 산장의 탄생 뒤에는 한 남자의 슬픔이 있다. 산장을 처음 설립한 고故김태환씨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속리산에 왔다가 산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다. 그는 그길로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 땅을 팔아 속리산에서 기념품 사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 속리산은 설악산과 더불어 수학여행 일번지로 꼽힐 만큼 최고의 관광지였다. 그는 사진이나 배지 같은 여러 기념품을 납품하는 큰 도매상을 차렸다. 장사경험이 없었던 그의 사업이 순탄할 리 없었다. 서울 충무로까지 가서 공들여 기념사진 앨범을 만들었지만 짝퉁 복사본이 더 불티나게 잘 팔렸다. 외상으로 납품한 물건들은 수금을 제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쫄딱 망했다. 종갓집 종손이었던 그는 동네 사람 얼굴 보기가 창피해 차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법주사로부터 허락을 받아 속리산 금강골에 있던 표고버섯 재배용 움막에 기거했다. 속리산에 놀러 온 사람들이 지나며 움막을 들르게 되었고, 그렇게 움막은 산장이 되었다.
김태환씨는.. 서각과 서예 재주가 뛰어나 붓글씨를 받으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는 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생전에 비로산장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의 휘호로 유명한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 후로 많은 정치인과 명사들이 다녀 갔다. 지금 비로산장을 관리하는 사람은 김태환씨의 막내딸 김은숙씨다.
▲ 다시 세심정을 지나서.. 법주사로..
세심정(洗心停)은... 문장대에서 냉천골로 내려오는 길과 신선대에서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곳인데.. 마음을 닦는다는 이름과는 달리 막걸리.. 파전을 파는 곳이다.
▲ 돌아갈때는 세조길을 버리고 도로를 따라 내려 간다.
▲ 탬플스테이를 경유하여 법주사로..
▲ 12시 15분 : 법주사 경내.
▲ 팔상전(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 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 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청동미륵대불..
▲ 석등과 법주사 대웅보전(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法住寺)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義信) 조사가 천축으로부터 귀국할 때 나귀에 경전을 싣고 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금산사 창건주인 진표(眞表) 율사가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속리산에 들어가 길상초(吉祥草)가 난곳을 택해 절을 짓고 교법을 펴라고 지시했다. 진표율사의 제자들이 사찰을 중창한 것은 신라 혜공왕12년. 이때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었던 금산사를 따라 법주사도 미륵불을 모시는 도량이 되었다.
▲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 팔상전 내부..
▲ 청동미륵대불..
▲ 잘 보존되어 있는 당간지주.
▲ 석연지(石蓮池).
연꽃은 더러운 물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發)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살면 내세에 극락세계에 태어 난다는 불교의 윤회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다.
▲ 추래암..
▲ 마애불..
석면에 법주사 창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추래암.. 신선의 노여움을 받아 수정봉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전설을 지닌 바위다.
▲ 묘봉에서 관음봉.. 문장대.. 비로봉.. 천왕봉까지 기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그림같은 풍경을 뒤로 하고...
▲ 14시 36분 : 속리산주차장.
▲ 램블러 정리하고..
▲ 말티재 넘어가는길..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박석 돌을 깐 것이 시초가 되었고…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타고 이 고갯길을 넘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 2022년 2월 27일에 지나온 말티재.
▲ 18시 47분 : 대구 칠성교에서..
오늘 걸었던 속리의 세조길.. 겨우 13년의 재위를 하려고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조선의 7대 임금 세조.. 겨우 51년을 살고 죽었다. 말년에 피부병에 걸려 살려고 찾아 온 길.. 반갑지 않은 인물이 걸었다는 길.. 역사속 아픈 길이지만..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첫댓글 햇불에서 속리산 새조길 밥주사로 즐거운 하루였어요
세조길도 의외로 괜찮은 코스였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