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기념사업회(회장 金斗錫)가 최근 곡성 영귀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존재 위백규 선생을 친견하고 고유례를 올렸다고 밝혔다.
영귀서원은 곡성군 겸면에 있는 서원으로 1694년(숙종 20) 지방유림의 공의(公議) 결과 김인후(金麟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729년(영조 5)에 유팽로(柳彭老)와 신이강(辛二剛), 1797년(정조 21)에 허계(許繼), 1846년(헌종 12)에 허소(許紹), 1965년에는 위백규(魏伯珪)를 추배해 총 6위가 배향되어 있다.
존재사업기념사업회 영귀서원 친견 고유례 제관분정
헌관 김두석
집례 위인환
공축 위성석
찬인 이해춘
좌집사 위공선
우집사 지영마
서점 위인환
원
갑진년 존재기념사업회
오늘은 단군기원 4357년 ㅇ월 ㅇ 일입니다. 존재사업회회장 김두석은 문정공 하서 김 선생을 주벽으로 현인 여섯 분의 신위 전에 엎드려 감히 고합니다. 이곳 영귀서원은 하서 선생께서 당쟁으로 얼룩진 조정을 떠나 옥과현감으로 재직하시면서 향촌사회의 계몽과 학문을 장려하여 그 공이 지대함으로 지방유림의 공으로 그 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이후에 유 팽자 노 선생, 신 이자 강 선생, 허 계자 선생, 허 소자 선생, 존재 위 백자 규 선생을 추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서원입니다.
오늘 존재기념사업회에서 영귀서원을 친견한 것은 모셔진 여섯 분의 학덕을 기리고 특히 존재 선생을 알묘하기 위함입니다.
선생께서는 1727년 관산 방촌의 계춘동에서 아버지 영이재 어머니 평양오씨 사이에서 팔남매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어려서부터 총명하시어 제자백가의 여러 서책을 두루 섭렵하셨고 천문, 지리, 복서, 율력, 의학 등을 꿰뚫었던 하늘이 내리신 인재로 호남 실학의 삼걸이셨습니다.
홀로 글공부에 정진하시다 25세에 성리학의 거두이신 문헌공 병계 윤병구 선생을 만나 수학하시어 학문연구와 향민 교화에 노력하셨습니다. 삼벽의 궁지에서 과거와는 인연이 없어 벼슬을 접으시고 향리에서 은거하시며 영면의 날이 가까워 오던 만년 69세에 정조대왕의 부름을 받으시고 만언봉사를 올리시어 대왕의 유일 천거시으로
옥과현감을 제수받아 공의 이상정치인 향약과 애민의 태평성대를 펼쳐보려 하셨으나 풍비를 앓아 결국 큰 뜻을 다 펴보시지 못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셔셔 와병 1년여만에 영면하셨습니다. 우리 후학들은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는데 진력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영귀서원을 친견한 존재기념사업회 회원들은 문정공 하서 김선생님을 비롯한 여섯 분의 학문과 덕행을 궁구하고 탐구하며 배우고 익혀서 더 큰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진력을 다하겠사오니 보듬어 주시기를 공경히 고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