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on The Highway
하이웨이 위의 유령
4
늦은 밤에 도착한 홀로우 배이는 한없이 펼쳐진 늪지대가 끝나는 곳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검은 하늘에 반사된 성성한 불빛으로 보아 인구 2000명 정도의 조그만 해안 타운으로 짐작했다. 고객은 홀로우 뉴스 익스프레스 지역 신문사의 인쇄창고였다.
아름드리 종이 롤을 클램프 지게차로 하차하는 직원에게 슬쩍 말을 던졌다.
“와! 안개가 대단했어!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
“홀로우 배이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을 하지.”
“그렇게 두꺼운 안개는 난생 처음이었어!”
그가 돌연 지게차를 멈춰 세우고 내게 가까이 오더니 마치 중요한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봤어? 너도 봤지?”
예기치 않은 그의 질문과 행동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어물거렸다.
“봤구나!”
그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계속 질문했다.
“진짜로 트럭에 매달렸어? 창문으로 네 얼굴을 들여다봤어? 들어오려고 창문을 두드렸어?”
그는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이 공통적인 한 가지 사실은 그 창밖의 여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헛것을 보았거나 일시적인 착시현상이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그 그림자 사내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여기 지게차 운전수는 실제 보지는 못한 것 같고 소문만 들은 것으로 여겨졌다.
“대체 창밖의 여자 이야기는 뭐냐? 왜 다들 유령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아하, 당신은 소문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여기 트럭 운전사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괴소문이 떠돌고 있어. 안개가 잔뜩 낀 날 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여자, 지나가는 트럭 창문에 매달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여자이야기는 이미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 되었지. 그냥 소문이 아니야. 여기 홀로우 뉴스에서도 정식으로 보도한 사실이야.”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손짓 몸짓을 해가며 신나게 떠들었다. 나는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한 소문에 내가 휘말리는 것이 싫었고 이 곳 사람들이 트럭 운전사들을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소문이 나돌지?”
내가 시침을 떼고 물었다.
“나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소문이 있어.”
확실한 소문이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소문은 원래 근거 없이 떠돌아야 소문이 되고 세상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법이다.
“소문은 지난 20년 동안 계속 됐지. 여자는 안개 낀 밤에만 나타나서 지나가는 트럭에 매달려 운전사의 얼굴을 확인하는 거래.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거야!”
“이유가 뭐지?”
“복수하려고!”
그의 말에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복수라면 누군가가 여자에게 큰 죄를 저질렀거나 해코지를 한 것이 분명하다. 그게 트럭 운전사라면 나도 해당되는 것인가? 창밖에 여자가 나타나 나의 옆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동시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왜 하필 트럭 운전사지?”
“20년 전, 666번 도로에서 어느 트럭 운전사가 길을 걷고 있던 한 여자를 치었어. 우연한 사고였지. 운전사는 그녀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 마음이 변한거야. 여자가 죽은 것 같고 아무도 본 증인도 없고, 시체만 숨기면 감쪽같이 모두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는 여자의 시체를 늪에 유기하고 도망쳤어. 여자가 살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야.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라. 왜냐하면 그 여자의 시체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거든. 그날은 바로 안개가 지독하게 깔린 밤이었다는 거야!”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끔찍한 이야기이었다. 소문이길 바라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묻혀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안개가 낀 밤마다 유령이 된 그 여자가 지나는 트럭마다 매달려 얼굴을 확인한단 말이지? 원한을 갚으려고!”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가 곁눈으로 본 산발한 머리칼에 피투성이의 유령은 진짜였다. 떠도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이 진짜 유령이었는지 증명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물 하차를 마치고 나는 고민했다. 이 밤중에 다시 666번 도로로 돌아간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더구나 괴담을 듣고 나니 유령이 무서워졌다. 결국 홀로우 배이에서 자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은 창문에 커튼을 꼼꼼하게 내리고 잠을 청했다.
다음으로
첫댓글 "나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소문이 있어."
확실한 소문이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소문은 원래 근거 없이 떠돌아야 소문이 되고 세상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법이다.
-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에도 이런 언발란스한 언어의 조합을 집어주는 센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