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된장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신들의 만찬’은 한국 최고의 한식당인 ‘아리랑’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극 중에서 한국을 방문한 스페인 대통령을 위한 한식을 준비하다 모든 재료들이 상해버린 난감한 상황이 나온다. 자칫 외교문제로도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아리랑 대표인 성도희 명장은 원래 계획했던 ‘최고의 만찬’이 아닌 ‘유일한 만찬’을 계획한다. 성 명장이 이용하는 재료는 단 세 가지뿐. 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된장이 그것이다. 그녀는 스페인 대통령에게 “스페인의 속담에 ‘인내와 시간이 오디를 비단으로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며 “이 세 가지 장의 나이 합이 100년이 넘는데 그 긴 시간의 인내와 정성이 아리랑의 맛이며 대통령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한 뒤 ‘유일한 만찬’을 대접한다. 이에 스페인 대통령은 아주 흡족해했다. 우리 나라 전통 발효식품인 ‘장’이 크게 부각된 에피소드였다.
된장이나 고추장, 청국장 등의 발효식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균 중에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가 있다. 박테로이데스는 소화하기 힘든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렇게 분해된 식이섬유들은 비피더스 균의 먹이가 되어 우리 몸을 이롭게 한다. 최근 연구에서 박테로이데스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데 바로 비만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네이처에 발표된 워싱턴대 고든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박테로이데스가 비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연구팀이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분포를 비교한 결과,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의 박테로이데스 비율의 차이가 확연한 것이 드러났다. 즉, 마른 체형일수록 박테로이데스 균의 조성 비율이 높고, 뚱뚱한 사람이라도 저지방의 낮은 칼로리 식단을 섭취함으로써 박테로이데스 균의 비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대사능력이 높은 장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 균의 비율을 높이면 비만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비만 쥐와 보통 쥐 두 그룹에서 각각 장내 미생물을 추출해 그 균을 장 내에 아무 균이 없는 무균 쥐에게 각각 주사했다. 그 후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양의 먹이를 줬을 때 놀라운 차이를 보였다. 비만 쥐에서 추출한 장내 미생물을 투여 받은 무균 쥐들의 체중이 보통 쥐에게서 투여 받은 무균 쥐보다 두 배 이상의 몸무게로 불어난 것이다. 이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비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결과이다. 그리고 그 균은 발효식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박테로이데스라는 게 점차 밝혀지고 있다. 물론 과식, 운동부족과 같은 생활 습관과 유전적인 이유가 주된 비만의 원인이지만, 분명한 것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사람’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원인으로 장내 미생물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장 속의 세균 전쟁
우리의 장 속에는 500여 종, 100조 마리의 균들이 살고 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의 수가 60조 개인 것으로 보면 엄청난 수라 할 수 있다. 아직 체감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당신의 장 속 미생물의 무게는 총 1kg이다! 이렇게 큰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는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즉 채식을 하면 식물을 그 먹이로 하는 균들이 증가하고, 지방 식을 하면 지방을 먹이로 하는 균들이 증가하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농촌건강장수마을 거주자와 도시지역 거주자의 장내 미생물 분포를 분석한 결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산균의 조성 비율의 차이가 크게 난다고 발표했다. 주로 발효식품을 섭취하는 장수마을과 현대식을 먹는 도시지역에서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나 락토코커스(Lactococcus) 등 유익한 균들은 최대 5배까지 장수마을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유해균으로 알려진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이나 살모넬라(Salmonella)균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식약청은 이 연구를 발표하며 “몸에 유익한 균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 채식과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김치, 치료제가 되다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를 이용하여 아토피를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작년 4월 미국알레르기•천식•면역학회지에 발표됐다. 연구는 김치에서 얻은 유산균을 이용하여 어린이 아토피 환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투여함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김치에서 유래한 유산균을 먹은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비교군 대비 최대 238%까지 아토피가 호전되는 것을 밝혀냈다. 현재 아토피 치료제로는 스테로이드제나 항히스타민제, 항생제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들 의약품은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김치를 이용한 유산균 치료는 이 같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유산균을 통한 아토피 치료는 이 뿐만이 아니다. 생후 1년의 아토피 유아를 대상으로 유산균을 투여한 군과 그렇지 않은 군으로 나눠 실행한 연구에서 유산균을 투여한 군은 1년 후에 18%만이 증상을 갖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군에서는 40%가 아토피 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연구들은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들에 풍부한 유산균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외국에도 이와 유사한 연구결과가 있다. 핀란드의 한 대학 연구팀은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알러지 질환의 원인이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연구에서 이들은 아토피 증상이 심할수록 비피더스(bifidus) 유산균의 비율이 낮았다고 한다. 이 연구들은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들에 풍부한 유산균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국민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는 김치와 된장, 고추장 등의 발효식품과 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KBS의 코너인 ‘1박 2일’에서 여행 중에 한국을 찾았다가 우연히 접한 한식에 매료되어 여행을 멈추고 한식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는 미남 프랑스 요리사가 소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게 소망”이라고 하며, 1등을 한 출연자에게 코스요리를 대접하고, 하위권의 한 출연자에게는 밥에 고추장을 듬뿍 얹어주어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고추장비빔밥, 김치 등의 발효식품을 선호한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표 식품인 김치가 사스(SARS)나 조류독감(AI)에도 효능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더욱 주목 받는 계기도 됐다. 이렇듯 발효를 그 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한식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세계에 알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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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이엠생명과학연구원님에 의해 2012-04-21 15:15:41 Diet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