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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기업화 성공사례 공모전 수상작’ 시리즈 ⑤ 드림콘
"세계 최고는 꿈 꾸는 자의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The world best color contact lens maker’. 나는, 아니 우리 드림콘은 지금 이 꿈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고 목표는 끊임없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꿈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객에게 가장 아름다운 눈, 가장 매혹적인 빛’을 제공하겠다는 모토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이미 그 꿈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상 발문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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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한 출발
‘The world best color contact lens maker’. 이것이 나(김영규 대표)의 꿈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DREAMCON(드림콘)’으로 정하고 달려온 지 어언 6년, 나는 지금 나의 꿈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회사를 처음 설립할 당시 나는, 20여 년 동안 국내 콘택트렌즈 업계 전체에 콘택트렌즈 제조에 필요한 기계들을 개발하고 공급해 왔다. 또 콘택트렌즈 업계와 제조공정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고 많은 인맥까지 갖추고 있었다. 자연스레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을 시작해 제품만 나오게 되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충분히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2007년 3월 회사 설립신고를 마치고, 매입한 공장을 리모델링하면서 기본 시설들을 구축해 가는 두 달여 동안, 직원 한 명 없는 공장에 혼자 나와 수십 번도 넘게 레이아웃을 그리고 고쳐가며 이 공장에서 생산될 제품이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제품이 될 것이라는 벅찬 꿈에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5월 17일 함께하기로 한 엔지니어 3명과 작업자 5명이 첫 출근했다. 작업자들을 교육시키는 동시에 생산을 위한 제반설비의 셋업(Set-up)이 진행되었다. 설비들은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던 설비들이었으므로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마침내 시험생산에 들어갔다.
불량의 연속
그런데 이럴 수가! 품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렌즈의 형상이 찌그러지기도 하고 칼라렌즈는 색이 빠지기도 했다. 동일한 기계로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같은 공정을 거쳐 생산했으나 환경의 변화, 미세한 조건의 차이로 불량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기계 전공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화학적 불량현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3개월여. 엔지니어들은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고, 작업자들은 열심히 생산한 제품이 계속해서 폐기되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전부 서울과 대구가 집인데 회사가 양산이어서 원룸을 구해 생활하고 있었다. 퇴근 후 숙소에 가나 회사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이들은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회사 초기 그 시기를 함께한 직원들 중에 지금 함께하는 직원도 있고 개인 사정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간 사원들도 있지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GMP 승인 획득
생산 공정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무렵, 그동안 동시에 추진해오던 GMP 승인을 획득했다, 콘택트렌즈는 의료기기이므로 GMP 승인을 획득하지 못하면 판매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GMP 승인을 획득함과 동시에 국내영업망 구축에 착수하여 서울/경기 지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그동안 개발한 기술과 특허 등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인정을 획득하였다. 그렇게 2007년은 저물고 있었다.
우리의 주무대는 세계시장이다
그러나 내수시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국내 콘택트렌즈 시장은 글로벌 콘택트렌즈 기업인 바슈롬이나 존슨앤존슨의 아큐브가 장악하고 있었고, 국내 기업들 간에는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국내의 콘택트렌즈 유통구조는 심각한 위탁판매의 관행이 굳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위탁판매는 신제품이 개발되면 수많은 안경원에 무상으로 위탁제품을 세트로 공급하고 팔리는 만큼 대금을 결제받는 형태이다. 일정기간 팔리지 않은 제품은 고스란히 회수해 폐기해야 했으므로, 메이커 입장에서는 경영악화의 주요인이었다.
2008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드림콘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명확히 정립하였다. 첫째는 드림콘이 수출주도형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내수시장을 버릴 수는 없지만 우리의 주무대는 세계시장이어야 하고, 그 시장에서 이길 수 있다면 나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는 차별화된 우리만의 기술을 가져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결심은 이후 드림콘이 세계 최초로 전제품 유효기간 7년을 인정받은 것이나 세계 최초 항균성렌즈개발, 플루시어 공법 개발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수출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국제 수준에 맞는 품질시스템의 구축과 인증이었다. GMP를 획득하였기에 기본품질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ISO9001, ISO13485, CE를 동시에 획득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수출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제품을 팔기 위해서, 그리고 유럽시장 판매를 위해서 CE 획득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2007년부터 준비해 오던 것을 2008년 들어 TFT를 구성하여 집중한 결과, 3개월만인 2008년 3월에 CE, ISO13485, ISO9001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다.
잇단 국제전시회 참가
수출주도형 기업이 되기 위하여 선택한 전략의 핵심은 해외전시회 참가였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매년 4개 이상의 해외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해외마케팅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목표를 정한 후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시간이 없었다. 해외전시회 참가경험이 전무한 드림콘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부족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신제품 디자인의 샘플준비였다. 1월 갓 입사한 디자이너가 휴일도 없이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조팀에서 신모델 샘플을 제작하여 검토하는 과정이 연초부터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3월 대구 국제광학 전시회(DIOPS)에 드림콘의 부스가 설치되고 드림콘이 세계무대에 첫 등장하게 되었다. 비록 첫 참가 전시회가 국내에서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 대구 국제광학전을 시작으로 4월 New York Vision Expo 참가, 5월 세계 최대 광학전시회인 MIDO Show(밀라노 국제 광학전시회) 참가, 11월 러시아 광학전시회 참가로 이어지며 연초 목표한 국제전시회 4회 참가의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국제 광학전시회 참가 첫 해, 많은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시회에 참가한 그 힘이 이후 현재까지 총 26회의 국제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오늘날 수출 500만 달러 달성과 수출 비중 70% 이상의 수출주도형 기업으로서의 드림콘을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또한 2008년에는 KOTRA의 지원을 받아가며 인도와 러시아 지역 지사화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미래 잠재시장 선점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수출 첫 해인 그 해에 18만 달러의 실적을 거두었다. 아쉬운 실적이었다. 그러나 연말에 경상남도 수출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기술개발과 수출증대에 박차를 가하다
2009년은 드림콘의 또 다른 전략방향인 기술개발에서 큰 성과를 이룬 한 해였다. 2008년부터 준비해온 기술개발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술개발의 중심이 되는 부설연구소가 1월 정부로부터 공식부설연구소로 승인을 받았고, 5월에는 이노비즈기업(기술혁신형 기업) 인증을 받음과 동시에 소프트렌즈 전 제품에 대하여 유효기간 5년 승인을 획득하였다. 이는 업계 최초의 성과로 이전까지의 제품들은 유효기간이 3년에 불과하였다.
또한 중소기업청과 기술혁신 선도과제 협약을 체결하여 부산대와 공동으로 2년에 걸친 개발 프로젝트(Project)를 추진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이후 세계 최초의 항균성 나노렌즈의 개발과 특허등록으로 이어졌다.
기술개발에 주력함과 동시에 수출에도 애써, 3월에 중기청 주관 ‘수출중소기업 500’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5년 동안 500개 수출중소기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국가에서 집중 육성할 가치가 있는 수출기업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었다.
2009년의 수출실적은 46만 달러로 전년 대비 150% 이상 신장한 실적이었다. 절대금액으로는 여전히 아쉬웠지만 성장세를 인정받아 연말 무역의 날에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수상하는 기쁨도 있었다.
2010년은 조직적으로 성장한 한 해였다. 디자인팀이 연구소에 편입되며 더욱 전문화되었고, 해외영업팀이 지역별 전담체제를 구축하여 더욱 체계화된 바이어 대응과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거대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던 중국 허가를 획득함과 동시에 중국 국적의 해외영업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중국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섰다.
2010년은 기술개발 측면에서도 큰 성과를 이룬 중요한 한 해였다.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데이터의 축적을 통하여, 2010년 3월 세계 최초로 전제품에 대한 유효기간 7년 승인을 식약청으로부터 받게 된 것이다. 이로써 드림콘 제품은 타사 제품 대비 두 배 이상의 유효기간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경영성과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내수시장에서는 국내 최대 안경점 체인인 다비치안경 체인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제품의 공동개발 및 공동마케팅을 전개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세계 최초의 남성용 콘택트렌즈 출시로 이어졌다. 중국시장 공략과 러시아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요소인 SFDA 허가와 Gost-R 허가를 획득한 것도 2010년의 성과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0년의 수출 실적은 108만 달러로 전년 대비 130% 이상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우리 드림콘으로서는 최초로 수출 100만 달러를 돌파한 의미 있는 한 해였고, 나 스스로 우리 드림콘이 수출주도형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수출실적 집계 기준에 의해 ‘100만불탑’ 수상이 다음 해로 미루어진 것은 아쉬웠다.
2011년은 그동안의 개발성과와 해외 마케팅활동의 결과, 그리고 신생산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수출에서 큰 성장을 이룬 한 해였다. 2008년 6개국 8개 바이어에 불과했지만, 2011년에는 45개국 65개 바이어로 늘어났다.
동남아 최대시장으로 부상한 태국 FDA 승인을 획득했고, 중동지역으로의 수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한 중동지역 수출을 위해 해외영업팀장인 이종미 부장은 출장가방에 늘 차도르를 넣어 다녔다. 아직 싱글인 탓에 멋진 중동남자들의 구애가 집중되는 가운데서도 “나는 드림콘과 결혼했다”며 구애를 뿌리치고 영업하느라 힘들었다고 늘 이야기한다.
2011년 수출은 전년 대비 207% 성장한 331만 달러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2008년 18만 달러 이후 4년만에 18배의 수출신장을 이룩한 쾌거였다. 전년 7월부터 당해년 6월까지의 실적을 기준으로 하는 수출탑 시상규정에 의해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데 그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2011년은 우리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그런 한 해였다.
공멸의 위기감 확산
2012년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불어 닥친 유럽발 경제위기의 여파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장기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모든 산업계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콘택트렌즈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산 칼라 콘택트렌즈의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이 수입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주요 수출국으로 하던 많은 업체들이 상품을 내수시장에 쏟아냈고, 해외시장에서도 출혈경쟁이 격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TV에서는 중국산 저가렌즈와 일부 국내업체의 품질미달 제품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식약청의 불시점검과 시장제품의 회수검사로 8개 업체가 제조정지 처분되었다. 업계에서는 공멸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국내 콘택트렌즈 업계의 발전을 위하여 2009년 주도적으로 결성한 ‘한국 콘택트렌즈 제조협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보도는 합당하지 않았고, 잘못된 보도내용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신뢰 받는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협회차원의 품질인증마크 제정 등의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시장에서 제기되던 품질에 대한 우려의 핵심은 칼라 콘택트렌즈의 색소가 밖으로 배어 나와 눈에 해롭다는 지적이었다. 그 증거로 알코올을 적신 면봉으로 렌즈의 인쇄면을 강하게 문지르는 실험이 재현되었다. 이러한 실험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승인 받지도 않은 실험 방법이었다. 그러나 많은 바이어나 고객들은 이 자극적인 실험결과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선정되다
위기는 기회였다. 근본적으로 색소용출을 막을 방법을 찾기로 했다. 3월부터 TFT를 구성하여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기본 아이디어를 즉시 특허 출원하고 직접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 공정조건 개발에 착수했다.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후 마침내 9월 칼라색소의 용출을 완벽히 차단한 플루시어공법이 완성되었고, 10월에는 플루시어공법의 특허등록이 완료되었다.
그 사이 양산시 우수기업 선정, 사우디아라비아 허가 획득, 필리핀 허가 획득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2012년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가장 의미 있던 일은 이노비즈협회에서 주관하여 선정한 ‘2012년 취업하고 싶은 중소기업’ 중 하나로 우리 드림콘이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원 모두가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아울러 코트라 글로벌 브랜드 사업으로 우리 드림콘이 선정된 것도 보람된 일이었다. 2012년의 수출실적은 수량면에서는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지만 금액면에서는 전년과 동일한 수준인 330만 달러에 그치고 말았다. 연말 무역의 날에는 3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였다. 대부분의 회사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상황에서 나름 선전을 한 것이지만, 2008년 이후 매년 두 배 이상의 수출증가를 달성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만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2012년은 재도약을 위한 개구리의 움추림과 같은 시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제품력이 요구되는 일본시장과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 진출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했다. 또한 전제품에 플루시어공법을 적용하여 색소용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였으며, 생산량 증대를 위한 신생산 시스템의 2차 투자를 그 해 완료했다.
한계를 넘어......
2013년 우리 드림콘의 슬로건은 ‘Go! Beyond’이다. 한계를 넘어 나아가자는 뜻이다. 모든 분야에서 100% 이상의 신장을 이룩하는 게 목표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본 바이어와 대규모 공급계약이 진행 중이며, 이를 위한 일본 후생성 승인은 4월에 완료되었고, 이미 회사 내부에 바이어를 위한 검사시설과 장비 셋업이 완료되었다. 중국시장은 중국내 최대 안경체인과의 공급협상이 진행중 이고, 태국/말레시아에서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물량의 공급계약이 체결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공략을 위한 미국 FDA승인은 최종심사가 완료되어 6월말 경 승인 예정이다. 수출 실적도 5월말 현재 무역협회 집계기준(전년7월~금년6월) 5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The world best color contact lens maker’. 나는, 아니 우리 드림콘은 지금 이 꿈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고 목표는 끊임없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꿈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객에게 가장 아름다운 눈, 가장 매혹적인 빛’을 제공하겠다는 모토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이미 그 꿈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나의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나는 나의 이 꿈을 우리 드림콘의 모든 가족들과 나누고, 그 꿈의 크기를 더욱 크게 키워가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드림콘 가족 모두와 행복한 꿈을 공유하고 싶다. ‘The world best color contact lens maker’라는 우리의 비전은 드림콘 가족 모두가 같은 꿈을 가장 행복하게 나눌 때 달성 가능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