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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쓰다가 중단한 글을 여기에 올려서 보완한다.
조선조 왕정사이기에 자료가 무척 다양할 터.
야사(野史)같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1.
오늘은 2026. 5. 19. 화요일.
오후에 큰딸이 친정에 와서 영화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큰딸 지아, 아내, 나 셋이서 송파구 잠실 롯데건물 3층 영화관에 걸어서 갔다.
<왕과 사는 남자>
나는 귀 어둬서 영화 대사를 거의 듣지 못했고, 그저 숨가쁘게 움직이는 화면으로만 눈으로만 보았다.
눈 시력이 나빠서 화면이 2중으로 겹치기도 하고.
내 집으로 돌아온 뒤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아래 줄거리를 읽고서야 영화 스토리를 다시 조금이라도 다시 기억하며, 보완하기를 계속 한다.
2.
꾸민 야사같은 영화 '단종애사(端宗哀史)'
이씨조선조 제6대 단종(이홍위, 노산군으로 강등)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 ....
영화 줄거리 1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계유정란이 조선을 뒤흔들고 어린 왕 이홍위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오게 해야지”. 한편,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먹고 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촌장이 부푼 꿈으로 맞이한 이는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였다.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으로서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홍위가 점점 신경 쓰이는데… 1457년 청령포,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
*계유정란 : 1453년 10월 10일 벌어진 수양의 쿠데타
영화 즐거리 2
왕 이홍위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권력의 핵심 인물 한명희는 그를(단종)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기 위해 먼 곳으로 유배 보내기로 결정한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 산골짜기에는 가난한 마을의 촌장 엄홍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한 유배된 양반을 모셔 번영하게 된 이웃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도 귀한 신분의 유배자가 온다면 마을이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주민들을 설득한다.
험하고 외딴 곳이라는 이유로 엄흥도의 마을이 노산군(폐위된 단종)의 유배지로 선택된다. 노산군은 충직한 궁녀 매화와 함께 마을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그의 정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지만, 엄흥도가 앞장서서 그들을 진정시킨다.
노산군은 왕위를 빼앗기고 충신들이 처형된 기억에 괴로워하며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다. 결국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 하지만, 엄흥도가 가까스로 그를 구해낸다. 그 무렵 또 다른 숙부 금성대군이 비밀리에 연락을 보내와 왕위를 되찾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린다.
어느 날 엄흥도는 노산군이 또다시 목숨을 끊으려 한다고 오해하고 크게 꾸짖는다. 그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위협한다. 노산군은 활을 들어 호랑이를 쏘아 죽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산군은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고,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과도 점점 가까워진다. 그는 엄흥도의 아들 태산에게 글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명회는 금성대군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고, 결국 복위 음모를 알아차린다. 어느 날 태산이 허락 없이 노산군의 거처에 들어가자 군사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한다. 노산군이 이를 막으려 하지만, 한명회는 그를 공개적으로 조롱한다. 그 굴욕은 노산군이 마침내 거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거사가 일어나는 밤, 노산군은 거처를 빠져나와 금성대군과 합류하려 한다. 엄흥도는 처음에는 이를 막으려 하지만 결국 그를 약속된 장소까지 호위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명회의 군사들이 이미 매복하고 있었고, 충성스러운 병사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붙잡히고 만다. 노산군은 엄흥도와 마을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를 배신자로 몰아세운다. 결국 금성대군과 그의 추종자들도 체포되며 거사는 실패로 끝난다.
노산군과 금성대군에게는 사약이 내려진다. 노산군은 적의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며 엄흥도에게 직접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처형의 날, 엄흥도는 눈물을 흘리며 활줄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죽인다.
노산군의 시신은 강물에 버려지고, 궁녀 매화는 그 자리에 몸을 던져 뒤따른다. 왕의 시신을 매장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건져 장례를 치른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홍위는 죽은 지 242년이 지난 뒤 단종으로 복위되었다고 밝힌다. 또한 엄흥도는 충성과 의로움을 지킨 인물로 길이 기려지고, 오늘날에도 두 사람의 무덤은 같은 곳에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유해진: 엄흥도 역
박지훈: 이홍위 역(왕) : 단종은 만16살 어린 나이로 살해(교살)됨.
영화 속의 왕은 나이가 제법 많은 청년 얼굴(영화 관람자인 내 시각)
유지태: 한명회 역
전미도: 매화 역
김민: 엄태산 역
안재홍: 노루골 촌장 역
오달수: 윤 노인 역
이준혁: 막동 아재 역
김수진: 막동 어멈 역
이준혁: 금성대군 역
박지환: 어세겸 역
왕(단종)과 엄홍도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이다. 단종은 1457년 여름 서강의 끝자락인 영월 청령포 주변에서 홍수가 나 관풍헌에 와 있다가 여기서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동헌의 동쪽에는 단종이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戶長)이다. 호장은 향리들의 우두머리다. 엄흥도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에 안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삼족을 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흥도는 세 아들을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엄흥도도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엄흥도는 관련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다. 영화 ‘왕사남’에서도 엄흥도 아들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 숙종과 정조 시기에 와서 사육신과 생육신도 복권된다. 엄흥도의 명예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어쨌든 엄흥도의 충성심과 의리는 기릴만하다. 엄흥도 캐릭터를 ‘왕사남’이 잘 활용했다.
단종 이씨조선조 6대왕 생존(1441 ~ 1457년) 만16살에 살해됨(교살, 밧줄로 목을 옭아 졸라매서 죽임)
왕위 재위 기간 3년 1452 ~ 1455년)
조선 제 6대 왕이자 문종의 아들로 이름은 이홍위.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죽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병약했던 문종은 자신이 죽기 전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다. 짧은 재위 기간 중에도 <고려사>를 비롯한 다수의 서책을 반포했다.
그러나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군국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1455년 한명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유배지 영월 청령포가 홍수로 갇혀지자, 단종을 영월 관아 관풍헌으로 이송되어, 여기에서 지내다가 결국 살해당했다.
단종 유배지(한반도의 지형을 닮았음) : 3면은 강이고, 1면은 높은 산이다.
유배지는 청령포
살해 장소는 영월부 관아 관헌정
* 단종 :
- 출생 1441년 8월 18일(음력 7월 23일),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즉위 1452년 6월 14일(음력 5월 18일),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사망 1457년 11월 16일(음력 10월 21일, 향년 16세)
* 단종이 명예를 회복받는 데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숙종 7년(1681), 숙종은 그를 일단 노산대군으로 추봉한 뒤 숙종 24년(1698) 정식으로 복위했고, 묘호를 단종으로 종묘에 부묘했으며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 단종 사망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단종, 세조 편
단종의 사망원인에 대해서 '거짓말'로 썼다!
* 단종이 사약을 먹고 죽었다고 기술했으나 사실은 밧줄로 목을 옭아낸 뒤 줄을 힘껏 당겨서 죽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도 상당부분 거짓 짝퉁으로 전개했다.
"영화는 영화이잖아요" 하면서 영화를 같이 본 아내가 남편인 나를 달랜다.
<한국국보문학카페> '세상사는 이야기방' 2235번(2019. 8.7)에 게재된 '동강은 말한다 '를 참조 바람.
1999. 6. 7. 강원도 영월 청령포 동강을 관광한 여행기에 단종애사에 대한 글이다.
이씨조선 왕조실록 기록은 때로는 짝퉁?
내 글에서 조금만 인용한다.
......
조선왕조실록(통권 1,893권, 888책'이 제대로 기술했을까요?
17살 어린애가 스스로 사약을 마시고 죽을까요?
- 드라마, 만화, 소설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영월관사에서 하급관리가 활 줄로 노산군의 목을 옭아서 죽이고는 영월 강물(청령포)에 내던졌을 터.
수십 년 동안 그 시신은 어떻게 했을까요?
왕의 시신조차도 이렇게 처리했는데 하물며.. 왕비를 제대로 대접했을까요?
- 1457년 10월 24일 살해
엄홍도는 강물에 떠다니는 시신을 건져서 자기네 선산에 암장하고는 피신하여 도망쳤고.
그때 목숨을 걸고 단종임금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엄흥도(嚴興道, 1404-1474)입니다.
그 뒤 엄흥도는 어명을 어기고 단종임금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러준 일로 평생을 숨어 살았습니다.
조선왕조는 1516년에서야(59년, 60년만에서야) 시신이 어디 있는가를 확인했고,
시신 유골을 수습해서 ... 영월에 장릉을 세우고...
이게 현실이다!
인터넷으로 '단종의 비'를 검색하니....
※ 대부분... 단종이 사약을 마시고 죽은 것으로 표현...
에잇.. 가짜, 짝퉁, 사기, 엉터리..
화살-줄 (시위)로 목을 옭아서 죽였는데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약을 먹고 죽었다고?
역사기록의 조작이다.
남편인 노산군이 살해당했는데도 조선조는 단종의 비를 '부인'으로 대접했다고?
사육신을 처형한 세조가... 노산군의 비(조카 며느리)를 극진하게 우대했을까?
'조선조 관직'에 따르면 '비' 정1품 ~ 정3품'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상상도 못할 최상급이다
역적으로 몰아서 살해한 노산군의 아내를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했을까?
엉터리 사기극, 짝퉁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직급이다.
독자 의견 :
단종이 청령포에 거주한 것은 6~8월이다. 8월 홍수 때 관풍헌으로 옮겼다. 단종이 사약을 받은 곳도 이곳이다.
하지만 영화는 청령포를 무대로 삼았다. 단종의 죽음에는 주장이 많다. 교살설, 자살설, 사약설 등이다.
어느 죽음의 방식도 엄흥도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이 지점이 가장 충격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몰입했다. 충성스러운 엄흥도가 집행하는 단종 죽음을 보며 슬프게 경험했다.
내 의견 : 낭인이 밧줄로 옭아서 졸라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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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교 여자 친구의카페에는 내 글 '단종애사'에 관한 내용이 열댓개 쯤이다.
1997년부터 강원도 영월지방을 여행하면서 청룡포, 단종묘소인 장릉 등을 방문했다.
그만큼 이씨조선조 왕조에 대한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는 뜻
자자 밤 12시 30분.
내일 오전에 병원 가야 하는데...시간이 벌써.
나중에
이미지 사진과 자료 등은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보다 정확해야 한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거짓 속임수 등으로 숨기고,감추고,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
사진과 이미지 자료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보다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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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6. 5. 20. 수요일.
아침에 아내가 말한다.
"오늘 비가 내린다기에 병원 예약을 취소했어요. 다음에 가요."
다행이다. 눈 어리버리하고, 등허리뼈 굽혀져서 쓰릿쓰릿하며 힘들게 걷는 나.
미끄럿운 빗길에 넘어질 수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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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왕과사는 남자>라는 영화 보
았어요.참 재미 있던데요.저도 영화
를 엄청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