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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담) 2008년 가을 '장충동 족발집 모임'과 꾀꼬리 대나무숲을 형성하던 시절
*蘇塗廳 14 -48 幇派(우의적 카페, 2016.10.29. 현재) 現況
신비한 약초세상(약 10만 회원), 한류열풍 사랑(약 25萬 회원), 뉴빵카페(회원 116萬명), 아이러브사커(회원 136萬명), 쭉빵카페 (회원 165萬명), 열린바다(34만명), '너에게로 가는 카페'(회원수 8만여명), 왕실과 황실의 역사(회원수 8천여명),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약 1萬 회원), 자비의 꽃(9千 회원), 모놀과 정수(1만 6천 회원), 민족반역자처단 협회(약 2만 회원), 종합정보 카페 광장(약 2천 회원), 검도사랑(3만 회원), 이종격투기(5萬 6千 회원), 진병태극원(3천 회원), 택견 매니아(6천 회원). 동천 백산 유술회(4천), 우리 무예연구회(1천), 대한 봉술협회(2천), 국기원태권도시범단(5천 회원), 뮤직태권(2천 회원), 안양 킥복싱, 와코짐(3천 회원), 센 찜[훈 마차도](3천 회원), 꾀꼬리 대나무숲, 하늘 땅 사람(7만 회원), 우주가을 후천개벽(2만 5천 회원), 개벽 타임머신(2만 7천), 장사의 쌍절곤 배움터(3만 회원), 태권도 사범님들의방(4천 9백 회원), 취업뽀개기(150만 회원) 산수산악회(4萬 회원), 독서클럽(9萬 회원), 통키타운(6萬 회원), 전원과 귀농이 있는 엔돌핀 마을(8만명), 꽃의 의미(1만 4천), 친환경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3만 8천명), 한국종자나눔회( 2만 5천), 여민락(1만 4천 회원), 나무사랑연구회(1만 회원), 도사모(회원 3천여명), 우리산하(회원 6천여명), 세븐당구동호회(회원 1만 9천명), 공수모(26만 회원),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회원 6萬명),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회원 5萬), 도라지와 하수오를 사랑하는 사람들(회원 6천), 전원주택을 만드는 사람들(회원 8천), 귀농사모(회원 18만명), 돈 안드는 전원생활 배우기(회원), 팝스월드(1만 2천), 대전충일산악회(5만회원), 수원백씨동호회, 고대법대 85동기회, 농협 약 10여만 , 동호회 두루네, 네이버 부흥(약 5萬 회원), 선재문수, 송암사람들, 금일 현재 약 800萬명 규모임. 고려연방국 紅帝
회고담) 2008년 가을 '장충동 족발집 모임'과 꾀꼬리 대나무숲을 형성하던 시절
'利在田田 業務'의 施行도 앞두고 있고, 48 幇派의 명단도 다 나온 마당이라... 인민들이 '도대체 누가 누가 소도청을 이끌었나' 궁금증도 증폭된 모양이라, 현재의 소도청과 소도구역의 전신이던 '꾀꼬리 대나무숲(원래 명칭은 민주주의 민족회의임)'을 형성했던 이유과 그 시절을 얘기하여 소개 좀 해야 하겠소.
세간의 일부에서는 본인이 왜 '강단에서 뛰쳐나와'.... 2008년 무렵 민주주의 민족회의를 만들었는가 아는 인물도 있겠소만, 모르는 인물이 더 많으니, 관련 자료 일부를 위에 소개하고... 2008년 가을에야 '2006년 모친 사망건'을 두고 나서게 된 경위등을 좀 자세히 내보내도록 하겠소..
현재는 '2008년 가을 장충동 족발모임' 4인방 중... 박사로 국가연구기관에 있는 후배는 백작 작위로 일종의 보호조치 겸하여 '작'이 낮고, 나머지 2인은 '공작공'으로 몇번 대외에 이름도 나간 바 있는 정상호 공작(한신대 사학과 졸), 은정태 공작(서울대 역사교육과 졸, 현재 박사학위 과정 중) 그리고 동국대 출신의 이모박사등 3인을 '장충동의 족발집'으로 불러 모은 게 2008년 10월 말이었고... 그 배경은 '모친의 사망건'(2006년 9월)도 화가 난 입장인데, 더 중대하게는 그로부터 1년후인 2007년 여름 치루 4차 수술 중 '3차 수술' 직후 발생한 '모호한 도발'을 겪고는 '공론화'를 해야겠다 결론내린 후, 그해 연말까지 ''치루수술 치료'에 집중하느라 아무거도 할 수가 없었고.... 2008년 상반기 'MB정부측' 과의 조용한 협의(협의의 핵심내용은 재산환수법 제정 직후의 봉선사 다원모임의 합의사항 즉 '1/3 통일기금론'의 실현을 위해 협의를 한 바 있음)도 무산되고, 그래 '조용한 해결방안'이 막힌 時點이었기에, '2008년 가을에야' 공개적 대응을 위해 '민주주의 민족회의'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해당 인물들이 여러 학교 출신이라, 혹 대외에서 뭔 또 '거창한 지하조직'이라 여길 인물들이 잇을까 하여 '인물 소개'부터 좀 해야지 싶소.
서울대 역교과 출신의 은정태공작과 동국대 출신의 이모박사를 만난 것은... 본인이 석사학위를 마치고, 좀 늦게 외부의 학술단체에 첫발을 디딘 게 '1995년 가을'인데, 그 학술단체(약칭 '한역연')는 지금도 공동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아는 바, 당시에는 좀 거창한 뜻도 갖고는 '신입생 교육''을 한학기 내내 하기로 유명했던 학술단체기도 했소. 당시.... 본인이 좀 늦게 나간 편(여타 대학은 석사학위 과정부터 와서 공부한 경우가 많았음)이라, 매번 신입생 교육 후 '술자리'가 열리면 '늦깍이축'인 본인과 정공작이 늦게까지 남아 '술자리'를 파하느라 고생은 좀 했소만, 그때 후배격인 은公爵과 이모 伯爵이 '잘 따르던 후배들'이라... 그 관계가 좀 오래 간 거요.. 그래 그후에도 '종종 모여서' 홉스붐도 보고... 그러면서, 잘 어울린 인물들이오,
왜 하필 그 인물들과 '민주주의 민족회의'를 만들었는가 하면, 실상 '학문세계에 발을 깊이 들여 놓으면'... 사회생활과는 유리되고, 人脈은 다 끊어져서... '학술판' 인물만 주변에 남게 되니, 하는 수 없이 '그 3인방을 불러서'... 본인이 '억울'도 하고, 시민사회의 合議物이니, '좀 공론화를 하여 지킬려고 하니' 도와들 달라 부탁하는 자리였소. 다들 '흔쾌히' 동의하여.... '장충동 족발집 모임'(2008년 가을) 후, '민주주의 민족회의'를 만든 것이고... 그때의 약속을 잘 지킨 편이라 '종종' 어려울 때 도움도 받고 하여, 그 신세를 갚느라 '공작공'에 봉해 버린 것이오.
그리고 당시까지 '모친의 죽음 과정'이라든가, '치루 수술 후 3차에 발생한 모호한 사건(2007.7월 발생사건)'을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고... 처음 '장충동 족발집 모임'에서 털어 놓고.... 도움을 청해던 자리기도 했소. 그 소리에 '다들 놀라' 어안이 벙벙해 하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오. 그래도 '학계에서 같이 공부도 좀 했고'...민간연구소에서 '친일청산 뭐'를 벌리던 인물들이 벌린 일(이른바 투서사건 및 치루 수술 와중의 모호한 도발행위)이라 '저으기' 놀랄 수밖에 없는 노릇들 아니었겠소.
본인이 본래 '남 비방같은 것'도 싫어하고 하여, 사실 '처음 공개한 자리'고... 또 그들이면 '함게 해볼만하겠다' 믿음도 갔으니, 부른 자리였고... 그 자리의 모임이 '오늘을 나은 모양' 같소.
그리고 현재처럼 '300명' 가까운 인원이 된 것은 그나마, 2010년 다시 '강단'에 복귀하면서, 그때는 '고소사건'을 추진하면서.... 해당 고소건에 '도움' 좀 받을까 하여, 매 학기 '민족운동사' 강의를 하면서, 꾀꼬리 대나무숲을 통해 '강의 운영'을 진행한 덕택이오. 대략 매학기 100명 가까운 수강생중 아마 30% 정도씩은 학기 종류후에도 남아서... '事案의 進行(처음에는 단순 刑事 고소事件이었고 2010년 가을 소도구역 선포 後에는 國際的 性格이 가미된 것임)'도 관심을 두고 그래 이 정도의 규모나마 만들게 된 것이오(왜 애초에 단순 '형사사건'이 국제적 사안으로까지 비화했는가는 위의 백서 자료등과 일화방의 몇몇 자료들 참조토록 하오).
이제와서 결과적으로 돌이켜 보면, 해당 투서음해등의 사안이 그해(2006년 가울) 모친의 死亡과 직결되었던 점과 歷史學者로서 '歷史意識'이 좀 투철한 편인데 '시민사회의 合議物(봉선사 다원모임에서의 통일기금론)'이 유심됨을 보고는 '끝까지' 사안을 붙잡고 있었기에 오늘에 이른 것이라 말할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소.
첨부: 읍고문서(48 방파 판본), 방파 봉작공은 일부만 정리된 상태임도 밝혀 놓는다.
檀紀 4345年 開天節을 맞아 諸 先輩 檀君 諸位께 揖 告함( 48 幇派 판본)
諸 先輩 檀君 諸位시여!
後生 백동현(白東鉉)이오.
비록 미천하나 先輩 檀君 諸位께서 補祐하심과 가르침(숫자 6개 선몽과 各守爾典 以承天休라는 8字 經文 선몽)에 힘입은 바, 2010년 가을 숫자 6개(2,4,6,7,11,12)로 '蘇塗區域'을 낳게 역사하시었으며, 소도*역 宣布 이후 한반도 역내가 극도의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各守爾典 以承天休'라는 8字 經文을 내리셔서 늦게나마 깨달아 2012.3.13.자로 蘇塗區域 책임지위를 '檀君制度'로 선포하고 2千하고도 數百餘年만에 先輩 諸位들의 뒤를 이어 48代 檀君됨을 표방하게되어 感愷가 無量한 바요.
諸 先輩 檀君 諸位의 補祐하심으로 '檀君制度'를 마련함으로써, 2012.6.30.자로 그간 만들어놓고도 실현할 엄두를 못내던 '高麗聯邦國體制' 발효조치까지 진행하고 연이어 封爵公 310여분을 내었음을 告하는 바요.
특히 고려연방국체제 발효조치 이후에도 제 선배 제위의 가르침과 보우하심에 힘입어 548분의 封爵公을 내기로 예정(남측 323, 북측 135, 합 548분)하고, 오늘 현재까지 310여분의 封爵公과 70여 公職者 封土公과 12,000여 利在田田公을 이루게 되어 感愷도 無量하며 限量없는 感謝의 人事를 거듭 告하는 바요.
이에 특히 高麗聯邦國體制의 棟梁이 될 封爵公들과 公職者 封土公들의 이름을 올리니, 諸 先輩 檀君 諸位들의 補祐하심과 또한 우리 高麗聯邦國體制의 앞길을 無窮 世世토록 補祐하옵기를 仰望하는 바요.
<封爵公 명단과 公職者 封土公 명단>
* 이하 ()속의 인물은 봉토 실현 후 昇爵預定者임
자작 조세희, 백낙청, 김용옥, 정태헌, 오종렬, 정광훈, 한충목, 혜민스님, 왕소영, 전재국, 이건희, 김우중, 김용균, 홍명보, 김연아, 정해구, 양운덕, 한상구, 김영철, 김은진, 조성인, 윤강열, 남해경, 윤강욱, 문만기, 김승교, 박지순, 박준식, 이주환, 문성준, 허역, 김주현, 이재환(장자), 조덕원, 강여찬, 이완구, 김문수, 박원순, 이인영, 오영식, 정명수, 박상용, 허남식, 홍준표, 김관용, 안희정, 김철민, 최성, 이석우, 김성환, 추재엽, 성장현, 문병권, 박보생, 박영순, 남측 국방부장관(2014년 재임자), 연방군사평의회 초대 남측수석대표, (공) 부천지부장(오승호), (공)양천지부장(정문원), (공)동래지부장(유재전), 정차석(공노조, 진주), 신세승(공노조, 강릉), 이문행(공노조, 공주), 공노조 청주지부장, 공노조 경주지부장, 박원기, 이창기, 한호석, 이두수, 손철배, 고영남, 백장원, 서경석,이재정, 장휘국, 민병희, , 최교진 , 조희연, 이상식, 서명일, 김소영, 지천태(한류열풍사랑 카페지기), 혁명가(민처협 카페지기), 들꽃향기(자비의 꽃 카페지기), 김용만(역사문 카페지기), 쇼메(검도사랑), redmaster(이종격투기), 바람(진병원태극원), 풍운(택견매니아), 민노총 현임 경기본부장(송정현), 이충무공 직계적장자손, 최치원의 직계적장자손, 정몽주의 직계적장자손, 강증산의 직계적장자손, 이서구의 적장자손, 송구봉의 직계적장자손, 최익현의 직계적장자손, 허위의 직계적장자손, 신채호의 직계적장자손, 손 병희의 직계적장자손, 안중근의 직계적장자손, 김창숙의 직계적장자손, 홍범도의 직계적장자손, 허헌의 직계적장자손, 최제우의 직계적장자손, 전봉준의 직계적장자손, 나철의 직계적장자손, 윤관의 직계적장자손, 강감찬의 직계적장자손, 김종서의 직계적장자손, 중봉 조헌의 직계적장자손, 성삼문의 직계적장자손, 이종휘의 직계적장자손, 유득공의 직계적장자손, 문익점의 직계적장자손, 조지훈의 직계적장자손, 신동엽의 적장자손, 김수영의 적장자손, (송수현), (송양섭), (최봉석), (이상 무순)
<11..16. 靑林府 비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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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고려국
紅帝(48대 檀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