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Man with a Hat, 1888, oil, on canvas, 47 x 39 cm, Private Collection
테오에게...
파리에서는 나 자신을 피폐하게 하는 일밖에 배우지 못했다. 요즘은 인상파 화가들을 알기 전에 시골에서 지낼 때 품었던 생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오래 지나지 않아 인상파 화가들이 내 작업방식에서 잘못을 발견한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요즘 작업하는 방식은 인상파 화가들보다는 들라크루아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즉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복제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더 임의적으로 쓰고 있다.
최근에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화가의 초상화를 그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으며, 천성적으로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듯 작업하는 친구다.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우선은 그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림의 목적은 아니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색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의 금발을 과장되게 강조하면서, 오렌지색, 황토색, 흐린 노란색 톤을 활용할 것이다. 그림의 바탕도 누추한 아파트의 벽 색깔을 그대로 칠하는 대신에, 무한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한 가장 선명하고 강렬한 파란색으로 배경을 칠할 것이다. 선명한 파란색 바탕에 대비되어 빛나는 금발의 단순한 조합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처럼 신비스러운 느낌을 줄 것이다.
농부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했다. 물론 농부를 그릴 때는 파란색의 무한한 하늘에 창백한 별 하나가 신비롭게 반짝이는 것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내가 그리려는 훌륭한 농부가 찌는 듯한 한낮의 열기 속에서 곡식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빨갛게 달궈진 다리미처럼 빛나는 오렌지색과 황금색의 반짝이는 톤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사랑하는 동생아, 높은 양반들은 이런 과정을 봐도 단지 서투르게 모방한 탓으로 생각하겠지. 그러나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우리는 <대지>와 <제르미날>을 읽은 사람이다. 농부를 그린다면, 우리가 읽은 작품이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888년 8월 11일
첫댓글 우리가 읽은 작품이
우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