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아래 글을 보았기에 퍼서 <한국국보문학카폐>에도 올린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볼 수 있는 생활일기이다.
이처럼 글로 쓰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면 훗날에는 소중한 기억과 추억이 된다.
시골생활이 두려운 농사꾼
1.
지난 2016년 8월 17일 오후에 시골(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로 내려갔다.
다음날인 18일, 19일 이틀간 충남 보령지방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경영마케팅 3차 교육을 받았다.
자동차를 모는 아내도 참석했는데 아마도 많이 졸았을 게다. 전업농사꾼이 핸드폰 등으로 마케팅하는 기법을 배웠으니 나도 아내도 이해 불능.
그래도 농사꾼들을 만나서 사귀었다.
교육이 없는 8월 20일, 21일에는 그간 밀렸던 텃밭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지난 7월 28일 서울로 올라왔기에 방치한 밭은?
오랜 가뭄으로 밭작물의 상황은 화가 날 정도로 폐농 직전이었다.
예컨대 100개의 호박 구덩이.
늦게사 씨앗 심었기에 늦게서야 밭에 이식한 호박모종은... 오랜 가뭄 피해로 다 깡그리 말라죽었고, 채 영글지도 못한 호박덩어리가 허옇게 들어난 채 맨땅 위에 나뒹굴었다. 호박 뿌리까지도 다 말라죽었으니 호박농사는 완전히 포기. 나 뒹구는 호박덩어리가 즐비했으나 단 한 개도 걷어들이지 않았다.
또 있다. 완전히 실패한 산나물.
올봄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모판을 사가다 시골로 가져가서 이식했던 곤달비, 곰취도 깡그리 말라죽었다.
무덥다는 구실로 서울에서 20일이 넘도록 머물렀더니만 시골의 밭작물은...
잡초가 너무나도 무성했다.
강아지풀, 쇠비듬, 비름 등 잡초 씨앗이 잔뜩 맺어서... 하도 많아서 베어낼 낼 엄두도 없었다.
생명력이 강한 돼지감자는 제 세상을 만난 듯 무성하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돼지감자를 증식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는데 이제는 지겹다. 너무나도 많이 번지기에...
어제는 서울로 올라왔다.
아내가 "시골에서 일주일쯤 더 머문 뒤에 산소 벌초를 끝낸 뒤에 서울 올라가자"고 조르는데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이 가지 않는 고향이 되어간다. 사그라지는 고향이기에.
이번 주말에는 도로 시골로 내려가 벌초해야 한다.
조상 산소. 그거 돈도 안 생기는 작업이다. 올 봄에 선산을 더 크게 확장해서 집단묘지화해서 여러 군데에 흩어진 묘소들을 파묘하여 한 군데로 집중했다.
내 고향에서는 최씨네 산소는 3곳. 내가 종손이니... 큰당숙과 사촌동생은 별도의 산소가 있다. 친척끼리 한데 어울러서 산소의 풀을 깎아야 할 터.
이런 작업도 힘이 든다. 특히나 사회생활에 바쁜 젊은 층들은... 객지에서 시골로 내려와 벌초한다는 게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일 게다.
내 경우.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이번 주말에 동행하려는 지가 의문스럽다. 내가 말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자식들이 주말에 시골 다녀왔으면 좋으련만...
내 시골동네는 거의 다 늙은들이 산다.
일꾼 구하기가 어려워서 타지 인부를 불러야 한다.
해마다 그랬으니까.
앞으로는?
글쎄다. 산소 봉분을 깡그리 없애야 하는지. 벌초할 일이 없도록...
누가 풀 깎아 주랴?
나는 자식한테 유언해야겠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그 재를 아무 곳에나 뿌려서 깨끗이 없애버리라고.
산소 매장하는 것도 어렵다. 상여 매고, 매장하는 인부 주선하는 것도 어렵고, 또 해마다 봉분을 관리하는 작업도 많을 터. 모두 쓸데없는 짓이다.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깔끔히 없애는 게 훨씬 나을 게다.
우선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후손들에게 빚을 남기지 말아야겠다.
어제는 '일반산업단지 관리사무소'에 들러서 토지수용되는 논 경작보상금과 산소 비석 이전 보상비를 신청했다.
비석류도 곧 이전해야 할 터.
고향의 경관이 우습게 변할 게다.
9월 말부터는 대형 포클레인 중장비가 줄지어서 고향의 앞산과 앞뜰을 깔아뭉갤 게다
아쉽게도 1/4쯤만 남는다. 뱀꼬리처럼 남녁과 북녁의 산 아래만 남는다.
공장이 들어서면? 얼마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릴까? 공장지대가 되는데...
2.
그저께는 8월 21일.
시골집 주변 도로에는 내 땅이 위 아래가 들어 있다. 밭을 화망마을 안길로 확장했던 터라 길섶의 풀은 내가 풀을 깎아야 했다. 동네사람들은 깎을 생각조차 안 했다. 길 두둑이 남의 땅이라는 구실로.
자연스럽게 나만 해마다 여러 차례 풀을 깎아야 했다.
그그저께도 무거운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는 풀을 깎았다.
시멘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뜨기운 열기, 대빗자루로 깔끔히 쓸어내는 작업이 참으로 지겨웠다.
뜨거운 폭염 아래서 몇 시간째 작업을 했다.
미친 짓이다. 마을안길 나 혼자만 다니냐?
오늘은 8월 23일. 서울이다.
점심 때에 외출했던 아내가 귀가해서는 내 목덜미를 문뜩 보고는 기겁했다.
오른쪽 목덜미가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우둘우둘 돌기가 생기면서 부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시골집 마을안길섶의 풀을 혼자서 깎을 때였다.
길섶에 심은 외국 선인장의 날카로운 잎사귀에 작은 벌이 날아다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난 봄철에도 예초기로 풀 깎다가...
오른손등을 쐬어서는 한 열흘 넘도록 고생했기에.
이번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벌집이 있었다.
집에서 에프킬러 모기약을 가져와서는 벌집에 뿌렸다. 작은 벌 몇 마리를 죽였다.
그런데 문득 오른쪽 목아지가 군실거려서 손을 들어서 만지는 순간 무엇인가 달라붙었다. 작은 벌로 여겨졌다.
무거운 예초기(풀 깎는 농기계)를 등에 짊어졌기에 내 행동도 둔했기에 벌이 목에 달라붙은 줄도 몰랐으니...
작은 벌 독이 이토록 센가? 아니면 잔털이 많은 나방이 계열의 애벌레였을까?
아내가 기겁하면서 치료받으라고 강권했으나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벌 쐰 거? 이번 시골에 내려가서는 벌써 세 차례나 쐬였다. 다행히도 장수말벌이 아닌 작은 벌이다. 옵바시라고 한다. 나나이벌보다 작다고 해도 맹독성 벌이다.
맹독성 벌의 종류도 참으로 많다.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눈에 잘 띄이지 않을 벌부터 새끼손가락 두 마디 쯤 크기의 장수말벌(왕탱이), 땅벌 등이 있다.
특히 내 밭 주변에는 벌이 많다. 왜? 나무들이 우거지고, 농약 한번 안 치고, 잡초만 무성한 텃밭이기에 야생동물이 다양하게 산다.
작은 벌 한 마리가 쐈을 것 같은데. 오늘로서 사흘째. 두두러기가 더 커지고 많아졌다. 알레르기 현상. 다행히도 심각하지 않으니까 참을 만하다.
며칠 뒤 시골에 내려가서 선산에서 무덤 풀 깎을 때에는 특히나 조심해야겠다.
조상 산소 풀 깎다가 벌에 쐬여서 죽는 사람들이 이따금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니까.
조상 묘를 풀 깎다가 죽는다? 그럼 조상의 영혼을 없는 거여?
영혼이 있다면 자손들이 벌에 쐬지 않도록 해야 할 게다.
맹독성 벌에 쐬어서 죽게끔 방치하는 조상이란...
그런 묘는 파묘해서 깔끔히 없애야 할 게다.
요즘 시골에서는 이상한 벌레(해충)와 요상한 잡초(잡목)가 무척이나 많이 번진다.
모두 수입품. 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나방이류의 애벌레도 무섭다. 잔털이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데...
올해에는 모기의 극성이 덜했다.
모기알이 깰 무렵부터 가물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모기는 늘 있게 마련. 오후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4시부터는 모기들은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가 밭일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모기는 극성스럽게 옷깃을 파고 들어서 피를 빨아대고, 모기한테 물리면 살갗이 부르트고 며칠간 가렵고. 나는 모기 물린 흔적이 벌써 두 달째이다. 가렵다. 그만큼 내 피부가 알레르기가 심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면서 겪는 애환이 어디 한두가지랴?
나는 지금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 근처의 상처를 쓰담았다. 무척이나 아프다.
묵직한 낫으로 나뭇가지를 힘껏 후려친다는 것이 낫날이 빗나가서 발가락 틈새를 찍었다.
상처가 아물었는데도 통증과 가려움증은 아직도 지속한다. 앞으로 얼마쯤 더 지나야 통증과 가려움증이 가시려나.
시골에서 살자면 뱀, 말벌, 지네, 모기 등한테 물리고 쏘이고, 또 풀독도 있게 마련이다. 동물과 식물한테 당하는 괴로움도 크고 많지만 농기구 연장을 잘못 다루어서 생기는 상처도 숱하게 마련이다.
이런 것들이 나한테는 힘이 든다. 어설픈 촌늙은이기 때문에 생기는 고생거리이다.
2016. 8. 23. 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