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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새해가 시작됐다. 모두 새해를 맞아 묵은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다짐한다. 하지만 새해에도 묵은 때를 벗지 못하고 길거리에 늘어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다. 길거리에 우후죽순 걸려 있는 정치 현수막들이다.
2022년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은 정당의 정치활동 보장을 위해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수량과 장소에 제한받지 않고 게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개정으로 인한 무차별적인 현수막 난립은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특권의 민낯이 되고 말았다.
일반 소상공인들이 영업을 위해 현수막을 하나 게재하려면 행정기관에 이를 신고해야하고 부착기간에 따라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반면에 정치인들이 현수막을 게재하는 것은 무사통과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현수막들에 적힌 문구가 가관이란 사실이다. 비속어는 말할 것도 없고 비아냥, 비난으로 도배돼 있다. 이를 보는 시민들은 짜증을 내다 못해 혀를 찬다. 그런데 심지어 학교 앞에도 이런 현수막들이 버젓이 걸려 있다. 이런 현수막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줄까. 학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을 짜증 나게 하는 이런 우후죽순의 현수막과 그에 적혀있는 적나라한 문구들은 학생들이 정치인들과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지 않을까.
올해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따라서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시민들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모두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과연 정치인들의 이런 방기를 묵과하는 게 옳은 일일까. 많은 시민들이 “언제까지 이런 저급한 현수막에 찌들어 살아야 하느냐”고. 되묻고 있다. “우후죽순 현수막을 제작하는 대신 그 제작비로 지역구의 불우한 학생과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시민의 리더가 아니냐”고 다그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정치인들의 홍보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홍보를 하면서 언제까지 납세자에게 민폐만 끼칠 건가.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홍보 수단이 보다 선진화돼야 한다. SNS를 통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 보다는 어르신 무료 급식소에 깜짝 나타나 묵묵히 봉사활동을 한 뒤 사라진다고 치자. 그런 소문이 쫙 퍼지면 눈 수만 통 날리는 것보다 훨씬 더 지역민들에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시민들은 현수막으로 하는 정치보다 가슴으로 다가서는 정치를 바라고 있다. 가슴과 행동으로 정치를 실행해 존중받는 정치인들이 전 세계에 무수히 많다. 지난 2024년 미 민주당 뉴저지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한국계 미국인 앤디 김 상원의원이 좋은 예다. 그는 지난 2021년 1월 발생한 의회 난동 사건 이후 홀로 의사딩에 버려진 쓰레기를 묵묵히 청소하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도시의 환경과도 직결되는 현수막은 이제 멀리하고 몸으로 움직이고 가슴으로 마음을 전하는 진정한 시민들의 리더가 필요하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도심지 곳곳이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다. 도로 주변 횡단보도까지 정치인들의 구호가 줄줄이 걸려 있다. 선거는 아직 5개월 이상 남았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현수막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다. 그럴수록 시민들의 이맛살만 찌푸려지고 정치 혐오감만 누적된다.
법이 허용했다고 해서 무차별적으로 현수막을 부착하는 것은 그들이 만든 법의 틈새를 이용해 국민의 생활권을 침해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치적 자유 보다 시민들의 안전과 도심의 품격이 먼저라는 접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행정 당국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안전과 통행을 방해하는 현수막 설치를 규제해야 한다. 정당 현수막이 허용된 것은 정당의 정강 정책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표현물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따라서 원색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거나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제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