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품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철없이 빨리 시집간 나는
삼십 초반에 다시 부모님 품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일 때문에 대구로 가시게 되면서 여동생의 권유로 여동생 근처로 와서 이웃해 살게 되었는데,
여동생은 내겐 친구 같고 언니 같고 남편 같이 든든한 언덕이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 놓고 동생과
하루종일 붙어 지내며 늘 골골대는
나를 일으켜 싫어하는 운동도 하게 하고 산에도 끌고 가고 쇼핑하며
맛난 것도 같이 먹으러 다니곤 했다.
그랬던 여동생이 이 언니를 홀로
두고 18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
버렸다.
동생이 가고 나니 한편으로는 고통 없는 하늘나라 그분 곁에서 이젠 편하겠지 하면서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 듯 우울도 동반되어서 한동안 산 송장처럼 두문불출했었다.
눈 뜬 그 하루가 길기만 했고,
아무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는데
물론 남동생 둘과 올케 둘이 있었으나 그땐 마포에 살고 있어서
나를 돌아 봐 줄 수 있는 거리가 안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풍족함은 주셨으나 보수적이고 엄하기만 해서 늘 어렵고 무서운 손님 같았다.
약골인 나는 학교 다니는 것조차
숨 찾고 사춘기부터는 혼자 엎드려
염세적이고 우울한 글만 끌 적이 곤 했는데, 딱히 되고 싶은 꿈도 없었다.
재수를 했으나 원하는 대학도 아닌 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더 무기력
해져 갔다.
그러다 나 좋다는, 졸업을 앞둔 남자와 만난 지 6개월 만에 2학년 12월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돈은 쓸 줄만 알았지 벌어 본 적도 없지만 경제관념이라곤 전혀 무지한 철부지가 사랑이 뭔지도 채 알기도 전에 오로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 생각 하나로 서두른 결혼이었다.
재수하면서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피아노 전공으로 이대 음대에 떨어지고 재수하면서 나랑 절친이 된 친구였는데, 같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유일하게 서로의 집에서 잠도 잘 수 있게 허락된 친구였다.
배우 뺨치게 예쁘고 잘생긴 친구였고 내가 결혼 후
그 친구가 미국유학을 갔을 때에도
연락이 오고 갔는데,
딸부잣집 막내딸인 친구는 인사성도 남달라서
우리 집에 오면 늘 어머니 아버지께 반절로 인사를 드려서
아버지가 많이 칭찬했던 친구였다.
미국에서 같은 학교 유학생과 연애를 하더니 졸업하고 바로 서울 와서 결혼을 했는데,
친구의 시아버지는 청와대 고위 관료 출신이라며 위세가 대단한 분이라 했다.
친구는 결혼해서 압구정 현대아파트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친구는 도도하고 잘난 시어머니를 무척 무서워했었기에 숨 죽이며 살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전화로 하소연도 하며 시어머니 몰래 만나기도 했다.
2년 후 남편에게 내가 모르는 돈 문제가 생겼고
눈덩이처럼 커지니 나도 알게 되었다. 어떻든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액수였다.
엄니께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아버지의 노발대발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도저히 친정에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반대한 결혼이었기에 더더욱 친정에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다 못한 나는 부잣집으로 시집간 그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한 번도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했고
많이 망설였지만
그 친구만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찾아 간 그 친구는 전혀 망설임도 없이
'너네 집 부자 잔아 아버지께 말하면 금방 해결되잖아'였다.
그걸 몰라 내가 친구에게 왔을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일어나니
그 친구는 미국에서 남편이 사가지고 왔다며 딸아이 장난감이랑 옷과 이것저것 내게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일어서는 와중에 친구 시어머니가 오시는 소리가 들렸는데
친구는 황급히 나를 작은 방으로 숨기고 시어머니가 집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걸 확인한 후 나를 현관으로 안내했다.
비참해진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친구는 너무나 평온하게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면 바로 해결
될 거야'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 집을 나오자마자 친구가 들려준 쇼핑백 두 개를 나는 그 아파트 쓰레기통에 다 구겨 넣어 버리고
무너진 자존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합정동 친정으로 갔다.
결국 나의 동아줄인 엄니는 아버지 몰래 해결해 주시며
내 근심을 덜어주셨다.
그건 시작일 뿐이었지만....
그 일이 내가 친구를 다 손절해 버린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은 좋을 때만 친구인 것 같았다.
그러나 단 하나 남겨 둔 중고교 내내 단짝이었던 다른 친구의 어려움에는 마음이 아파서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빌려 준 돈도 받지 못한 채 어이없게도 내가 손절당했다.
그 친구도
혹시 이곳 카페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만난다면 금방 알아볼 것 같다.
예쁜 친구였기에 지금도 여전히 예쁘고 곱게 나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 두꺼운 앨범들을 정리하면서 그 친구와 찍은 20대 때 풋풋하고 예쁜 모습 사진을 한 장 남겨두었다.
내 딸도 그 옛날 사진을 보더니 너무 예쁘다고, 헤어스타일도 옷스타일도
7,80년대 예전 사람 같지 않고 세련되고 귀티 나는 예쁜 얼굴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당연히 자기가 도와주지 않아도 내 부모님이 도와 줄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그만한 돈을 빌려 줄 만한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 나는 거절당했다는 모멸감이 컸고 내 치부가 들킨 것같이 자존심도 상했다.
돌아와선 그 친구의 전번도 지워 버렸다.
아들만 둘을 둔 그 친구는
이젠 어디서 사는지 조차 알 수 없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예쁜 내 친구 그 친구가 가끔씩 보고 싶다.
첫댓글
나이드니 노란색이 좋아지는 건 긴 겨울 이겨내고 눈속에서 환하게 핀 노란복수초 때문 같기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아요. 아주 오래전 일이니 이젠 다 이해가 됩니다.
그당시는 그러셨겠네요...
인정 많고 친구, 사람 좋아하던 저도
한번 큰 홍역을 치루고는
사고방식이 달라 졌어요..
내가 줘도 후회안할 정도만,,,
있을수록 움키는 사람들이 더 많고요,
있다고 다들 주는건 절대 아니죠.
다들 말하듯이 돈잃고 사람 잃어요..
사랑, 정, 그거 너무 사용하고 베풀면
내인생에도 스크레치가 심하게 오더라구요
어쩌면 그 친구는 풍요로운 시댁 이지만,
돈관리를 맘대로 하지 않을 시기 일수도 있을거예요.
시댁 때는 뭐든 눈치 보면서 어르신들 모시면
여쭈어 보고 행동하고 쓰잖아요.
그래도 친구라고 미국서 가져온 선물을 주었을텐데,,,
위로 드려요...
리진님이 제일 맘 아푸고 아쉬울 테니,
여튼 아쉬움이 남네요...
좋은 친구의 우정에 멀어 진 사건이 아쉽네요...
그땐 아직 이십대였으니 서로 생각이 깊지 못한거죠.
그친구는 자기도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거고 저의 친정부모님도 잘아니까 그리 말한거에요.
저는 제 생각만 한거죠.
아마 지금이라면 절대 친구에게 가지 않았겠죠.^^
예..보고 싶을 때는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비워가는 나이..하지만..그리움은 남는 것이고..
저는 근간에 학창시절 앨범들을 불태웠는데..
그런다하여 마음 속 옛 추억과 옛 친구들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그립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그렇더군요..ㅎ
흑백 사진 속의 아련한 이야기들..
그속에는 제가 군생활 했던 대구도 나오고..
추억의 서울 합정동도 등장하고..고맙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그 친구가 제일 궁금하고 보고싶어요. 나름 찾아봣지만 못찾았죠.
주로 신촌,연희동,서교동,살다가 합정동에서 십년 살았어요. 강도가 들어와서 아파트로 이사갔지요.
그때에 친구분과 그런일이 있었다고 리진님 인생열차의 노선이나 목적지에 대해서는 달라지는게 없으니 그 친구분은 잠시 열차의 승객이었고요. 친구들이라는 승객님들이 내린후에 이웃님들이 타고 또 내리고 누군가는 또 오고가고 그러는거죠. 추억이 만들어 지고.. 지금 이 댓글을 읽고 계시는 순간엔 도깨비불이라고 불리는 희한한 놈이 창밖에서 윙크하고 혀 내밀면서 키스쇼를 하고 연애편지도 흔들어주고 그랬으니 이걸 또 새 추억으로 만들고 웃음으로 바꿔서 그 추억을 덮으시라.. 끝을 맺으며 창 멀리 사라지어요.
역시 예상 밖에 뎃글로 웃게 해주시네요.
이젠 그 인생열차도 종착역이 가까워 오는데 내리기전에 도불님 같은 이웃 젊은이가 윙크도 해주고 웃겨주시니
내 심심한 인생 중에 조미료 같으십니다.
감사해요.
정말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떠나면 누군가가 나타나고
끝없는 우연과 인연의 순환에서
악연도 되고 필연도 되고...
중요한건 내가 나를 소중하고 귀히 여기면
떠나고 만나는 것에서 가벼워지는걸 느껴요
신포도의 합리화처럼
뭐 나랑 안맞는거지...난 역시 운이 좋아...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두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주면 될듯해요. 꼭두새벽에 깨어 오늘 영화 소풍을 보기로 했는데
약속 못지키겠다는 친구의 톡을 확인하곤
잘됐다 했어요...또 다른 일이 생길 기회인가? 이러면 친구의 거절이 섭섭하지 않거든요
나는 소중하니까요~
리진님의 글을 읽고 저도 손절한 혹은 손절당한 사람들이 생각났는데...잘 살겠거니 합니다.
우리의 봄이 또 새로울거라 믿으며~^^
쿨한 긍정소녀 몽연님 답습니다.
그런 일 이후로는 친구나 사람에게 연연하지는 않으려고 했지요.
특히 타인은 언제고 헤어질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지요.
원체 인간관계도 좁은편이고 혈육과만 어울리다보니 상처도 받을 일도 없더군요.
아마도 누구나 저처럼 손절하거나 손절 당하기도 하며 살아왔겠죠.^^
몽연님 댓글이 정답 같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날엔 그런
관계의 사유에 대해서 모르지요 우선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게 되지요
다들 그렇게 리진님처럼 상처 받고 관계 끊어지고
다시 새로운 관계에 그 경험을 대비 하며 살아가지요
인간 관계도 경험이고 아픔이고 종내는 대처라고
여깁니다 나이들면 심신이 약해져서 주변에 많은 이들을
두지 못합니다 가족과의 시간도 지치게 되거든요
더 나이들면 곁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다 한 때 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관계에만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운선님처럼 내공이 깊질 못한 저는 거의 우물안 개구리였지요.
좋게 말하면 온실안 화초 같아서 세상보는 이해의 폭도 좁았지요.
그리 미워했던 아버지를 나이가 오십줄이 되니 사랑이었다고 이해하고 감사해하고 죄송해 했답니다.
이젠 이 나이가되니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을 만큼 조율도 할 줄 알게 되는것 같아요.
그래도 저를 제일 잘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이들은 저에겐 형제들이라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친구도 리진님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특히 요즘같이 흐린날의 연속일때는...
거두어 들인 손 다시 내밀었으니
봄과 함께 훈훈한 소식 들려올 겁니다
그럴까요?
혹시나하고 그 친구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봣는데 그냥 주부로만 살았는지 아무것도 안나오더군요.
어디서든 잘 살고 있으면 된거에요.^^
저도 속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요,,,,누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친구하자고 하면 손사례를 합니다
그저 아무개님,저무게님 정도로 하고 맙니다.
사람에게 대이면 그렇게 될거에요.
저는 그일 이후는 거의 친구들도 끊고 형제가족들과 만 어울렸기에 상처 받을 일도 더는 없었어요.
혹 살면서 만나는 일들도 웃으며 인사만 하는 정도만.^^
@리진 살갑게 다가와도,,,한번 데이고 난 후로 친구는 안사귑니다.
엮히지 않으니 만고강산 심사가 편합니다.ㅎ^^
친구를 찾아가기 전까지 얼마나 망설이셨을까요
그러나 친구도 시부모님과 같이살면서 경제적으로 눈치를 보는거 같네요
돌아보면 이런저런 사연으로 소원해진 친구들의 안부가 궁굼해진 나이가 된듯 합니다
그랬죠.
참 아쉬운 말 한다는게 누구든 쉽지 않겠죠.
그후론 그런일은 없었지만 그친구의 눈치보는 시집살이가 그정도 일 줄은 몰랐답니다.
그런 생활에 그 친구도 돈 문제는 맘대로 할 수 없었을 거에요.
친정은 그냥 보통인 가정이라 시댁에비하면 많이 기울기는 했으니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초등학교는 네번 전학,
마지막 고학년 땐 연남동인가 성산동인가 경성고등학교 정문 큰길 가가 집이였어요.
합정동은 19살때 이사가서 십년 살고.ㅎ
이기심보단 자존심은 있었겠죠.
또 철이 없는 나이라서.^^
일단~내 안에 들어오면~
물건도 버리지 못하는데...
사람이야 오죽 했을까요?
알고 친해진 사람들과 한번도 멀리 한 적은 없어요
다만~살다보니~만남이 덜해지고...
대신~연락은 하고 지낸답니다.
그러나~카페 생활을 시작하면서~
몰랐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처음과 다른 이면에서의 실망감으로 ~
손절하게 된 사람이 두명이(남1.여1) 있답니다.
이제는~
사람에게 정을 주고 받는 것에 더욱 신중해지려고 할 뿐입니다.
지나간 것은 다 지나간대로~~~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리디아님은 성격이 둥글둥글 해서 모두 잘 지내는거죠.
저는 사회성 부족. ㅋ
누구든 쉽게 사귀지 못하고 여럿이 두루두루 어울리는게 쉽지 않아요.
그게 단점이죠.
또 피곤해하고 귀찮아 하기도 해요.ㅎ
이젠 좀 둥그러 졌겠죠.
꼭 돈문제가 아니더라도
나이먹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새로 친구들이 생기기도 하구요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친구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
그 들을 정리하게 되는 건
리진님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차분한 글 잘 읽고 갑니다
긴 인생살이 중 많은 인연이 왔다가 가고 하겠죠.
저도 아무리 형제들 울타리에서 살아왓어도 이런저런 스치는 인연이 있었겠죠.
그러나 그리 마음에 남는 인연은 없으니
차라리 잘된거 아닌가 싶네요.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인생에서 친구와 가족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누구나가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해선지 더 공감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도 아물고 그때 너무 좁게 생각했을수도 있다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실 그친구와의 일화를 계기로 더이상 몇 안되는 친구들과도 연을 끊었는데,
제게는 저의 모든 허물도 감싸주는
이들은 부모 형제들 뿐 같아요. 오히려 자식들 보다는.
부모형제 복은 많은것 같아서 감사 할뿐입니다.
우수가 지났는데
하얀눈이
쌓였습니다
사연이 ᆢ
저도 겪어보니
지나가면
또 짠하지요
빌려주지 않는 친구
빌려가고 갚지않는 친구
다들 사연이 있겠지요
하고
있습니다
저는 ᆢ
그 친구를 찾아간 것은 저의 잘못된 판단이었죠. 그 친구 말대로 부모님은
두말 않으셨으니.
제일 안타까운건.
저를 손절한 친구죠.
저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주면서 당부했어요.
형편되면 주고 혹 안줘도 되니 나랑
연락 끊으면 안된다고.^^
사람 살아가는 글의 내용이구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속에 우리네 마음도
허전함이 채워지고 다시 허전해지고...
그저 자신이 스스로 건강하고 묵직하게
살아나가야함을 느끼면서...화이팅~!!
남은 삶이라도 건강하게 화이팅합시다.ㅎ
저도 사회에서 만난 친군데 단기간에 너무너무 친해졌어요 친구의 배신된 행동으로 완전손절하고 돌아섰어요 돌아설때 모진말도 했어요
세월 지나서 그게 뭐시라구 하면서 만났어요
너무 서먹하고 예전의 공감대는 사라지고 없더군요 그후 한번도 안 만났어요그래서 저는 한번 멀어진 사람 다시 재회 안합니다
그친구분이 그때 돈 빌려줄 처지가 안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말이라도, 우짜노? 내가 돈이 없는데? 어디서 빌릴수있을까 같이 생각해보자 하면서 진심어린 우려와 의논이라도 했음 님이 분개 안했을지도
다 시절인연입니다 그친구분과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나 봅니다 그리워마세요 지금 만약 만나도 절대 옛날 정은 없을겁니다
둘다 이십대 어렸으니 생각이 짧았죠.
그러니 그런 배려의 말은 생각못했을겁니다.
친구도 형편 안되고
또 제 부모님이 충분히 해줄텐데 왜 자기한테 그럴까 했겠죠.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이해 안되는건 없더군요.
시절인연 ...딱 맞는 말입니다^^
심사의 일단을 짐작할만 하겠네요.
그래도 잘 살펴가면서 사로 좋은 인연을 가꿔나가야겠지요.
그 친구와의 인연은 거기까지 인가 봅니다.^^
인감도장과 돈거래는 형제지간에도 하면 안된다를 옛날에는 가보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요
형제자매간이라도 내가 돈이 있어야 설 자리가 있고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모두 내맘같지 않더군요
몇십년 전 당장 50만원이 없으면 망신당할 일이 있어서
몇시간 고민하다가 우리 언니에게 (돈놀이했음) 부탁을 했더니 한시간후 에 없다고 거절을 하더군요
남도 아니고 친언니라서 지금은 우애를 지키지만 그때의 서운함은 죽을때까지 남아 있을겁니다
그 친구는 잘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심성은 그대로일겁니다
가끔 생각이 나시면 그저 잘살고 있겠지~~하세요
리진님
요몇일 비가 계속 내리네요
마음이 차분하다못해 착잡 해 집니다 ㅎ
다행이도 제 형제 자매들은 서로 어럽다면 돕습니다.
한동안 남동생이 사업적으로 어려웟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버지 모르게 막내도 저도 집을 담보로 억대로 대출을 해 주었는데,
잘되서 다 값았었죠.
저는 못 받을 각오로 빌려 주었어요.
제가 착해서가 아니고 죽은 여동생이 저를 넘치게 보살펴 주었기에 비록 여동생은 없지만,
저도 동생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다행이 잘되서 지금은 그 동생이 여행갈 땐 어디든 늘 누나를 데리고 간답니다.
그러니 저는 친구보다 부모 형제들 복으로 산다고 하지요.
서울은 비가오더니 오늘은 폭설로 온통하얗습니다.
베렌다에서 보이는 북한산 백운대랍니다.
가리나무 님처럼 저도 친언니한테
돈이야기 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니 언니가 안 빌려준 게 다행이었다
싶기도 해요.
남편 사업을 위한 돈은 안 빌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빌린 그 돈으로 사업이 복구되면
괜찮은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동생 분 먼저 떠난 이야기가 넘
가슴 아프네요.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이 먼저 떠난
그 슬픔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요.
리진 님, 어려움 이기고 참 잘 살아 오셨습니다.
형제간의 돈 거래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만, 저는 남동생의 부탁을 거절 못하겠더군요
제가 힘들때 동생들이 늘 옆에서 힘이 되었기 때문이죠.
여동생이 빨리 저 세상에 간 것은 아깝고 또 아깝답니다.
삶이 다 어려요. 지금은 편하게 삽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고해( 苦海)와 같다고 하겠죠.
저도 오랜 친구 한 명과 멀어진 일이 있는데
제 불찰이 더 컸던 경우였기에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나이 드니 세월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진 벗들도 많고
지금 이 나이에 곁에 남은 몇 명의 벗들과는 남은 생을 함께 갈 듯합니다.
리진님께 상처를 준 그 친구분은
떵떵거리는 집안의 며느리는 됐을지언정
그 당시엔 본인 스스로가 편안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벗들도 평생 갈 인연과 시절 인연이 따로 있는 듯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거죠.
시모의 며느리 무시는 말로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내친구도 그저 순종만하는 다소곳한 친구는 아닌데,
과연 지금도 그 결혼생활이 유지 됐을까 살짝 의문도 드는건 사실입니다.
미국의 큰언니 오빠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기도합니다.
친구도 인연은 따로있다 생각하지요
저도 손절한 친구가
몇~ 있긴한데
가끔은 보고싶긴 해요~
친구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맺어 온 인연들도
좋을 때만 좋은 것 같아요
안 좋을 때도 곁에 있어 준
인연이 찐 인연인듯요~^^
누구나 그런 인연 그런 친구가 있을거예요.
인간관계가 다 좋을수만 없으니요.
이제서야 돌아보니 후회도 아쉬움도 살짝 들기도 합니다.
아마 친구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었을 듯합니다.
어려울 때 도와 주는 친구가 진정한 벗이라고 하지만..
못 도와줘 안타까운 심정으로 친구를 그냥 보내야 했던 벗의 마음도..
아팠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 보다 도..
딸에 대한 애정이 남 다르신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연락처를 모르신다니 어쩔 수 없겠지만..
부디 그 친구에게 먼저 손 내미는 용기를 가져 보심이 어떨지요.
글 잘 읽었어요.
그 친구는시댁의 위세에 눌려 숨죽여 사는 형편이더군요.
제가 갔을때도 아무리 시부모님과 살아도 제가 온걸 들킬까봐 방에 숨기는걸 보고 한편으로 놀랐습니다.
결혼전의 친구는 당당했고 자신만만하고 막내라 사랑받으며 어디 하나 꿀릴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결혼으로 시모가 친구 친정을 많이 무시 하는 발언도 수시로 했다고 속상해 했어요.,
그 당시 저는 저의 힘든상황만 생각하고 그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거죠.
친구가 큰돈을 가지고 있을리도 없고,또 제 친정을 잘 아니까 충분히 친정에서 도와줄거라 생각한거에요.
제 자존심에 친구를 버린거죠.
흔치 않은 성씨라서 찾아보기도 했어요.수소문도 해보고.못 찾았죠.
며칠전에도 동생이 그친구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만큼 제집에도 자주 놀러왔던 친구라 형제들도 기억하는데,
사회생활을 했으면 인터넷으로도 찾을텐데 전혀 나오지 않았어요.
이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보고싶기도 하고, 또 동생도 그누나 연락 안되냐고 묻기도 해서 글을 써봣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결혼 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