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8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1)"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35 : 20 – 22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가서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기 영으로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중의 성막을 짓기 위한 그 모든 공사와 거룩한 의복을 위하여 주의 예물을 가져왔으니 곧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남녀가 다 오고 그들이 팔찌와 귀고리와 반지와 납작한 보석과 온갖 금 보석을 가져왔더라. 예물을 드린 모든 사람이 주께 금으로 예물을 드리니라.
(And all the congregation (of the children of Israel departed from the presence of Moses. Then everyone came whose heart was stirred, and everyone whose spirit was willing, and they brought the LORD'S offering for the work of the tabernacle of meeting, for all its service, and for the holy garments. They came, both men and women, as many as had a willing heart, and brought earrings and nose rings, rings and necklaces, all jewelry of gold, that is, every man who made an offering of gold to the LORD.)”
임마누엘!!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남의 처소인 성막 건설을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를 세우셨고, 그를 중심으로 성막에 갖춰야 할 품목들을 아주 상세하게 열거해 주셨습니다.
그 품목과 그 영적인 의미들을 비교적 자세히 말씀 탐구를 하여 보았습니다. 제가 탐구한 말씀보다 여러분들은 더욱 깊은 말씀 탐구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그 부피를 측량할 수없을 만큼 깊고 오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본문 중에 '마음'을 말씀 탐구하고자 합니다.
첫째 ‘마음’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마음’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만큼 중요합니다.
'마음'은 히브리어 'leb(레브)'. ‘마음(heart)’, ‘이해(understanding)’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관해 생각하다” 혹은 “원하다”라는 뜻의 “…에 희망을 걸다”, “…을 탐내다”의 경우와 같은 관용어에서 사용됩니다.
레브(leb)의 실제적인 의미는 내부 기관과 유사 신체 기관을 말합니다. 그러나 추상적인 의미에서 “마음”은 인간 내부의 총체 혹은 영적인 본질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성경 용어입니다. 성경 문학에서 이 단어는 성경에서 실제로 인간의 모든 영적인 기능이 “마음”에서 기인되기 때문에 기능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용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적인 인격 기능에 대한 가장 빈번하게 사용돠고 있습니다.
레브(leb)의 소수 용법은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나발(삼상 25:37)과 요람(왕하 9:24)의 사망 기사는 신체 기관을 언급합니다. 그 신체 기관은 아론의 흉패 위치에 한정됩니다(출 28:29). 시 38:9은 아마 신체 기관의 박동을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신체의 “내적인 부분”은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키고(출 15:8), 시내산의 불이 하늘에 “충천”하였습니다(신 4:11).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절대적인 원리에 대한 “마음”의 용법은 욥 34:14-15이 가장 적절한 실례일 것입니다(“만일 그가 친히 부여하신 심상을 거두실진대”, 성경 본문의 의역임).
레브(leb)이 대부분 용법은 일반적으로 내적인 본성 혹은 영적인 본성을 언급하거나 또는 인격의 전통적인 세 가지 기능, 즉 감정, 생각, 의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본성을 언급함에 있어서 레브(leb)는 비교적 불명료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인간 존재의 보다 공공연한 측면과 대조시킵니다. 그것은 외적인 인간의 내적인 반영으로 간주되는 것같습니다(잠 27:19; RSV “마음”). 꿈의 의식은 아가서(아 5:2)에서 그의 몸이 잠잔다고 할지라도 여주인공의 마음이 깨어 있는 경우의 의미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옵 15:12)와 같은 언급은 마음을 그 사람의 나머지 신체 기관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문맥에서 마음은 인간 본성과 인격 전체, 즉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을 모두 표현하고 있습니한다(왕상 8:23; 시 9:1)
앞의 언급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레브(leb)는 ‘인격의 강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조: 유사한 용법으로 네페쉬[nepesh], 에쳄['etsem]등). 재앙이 내려지되, 바로에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 바로의 마음에 내려진 것입니다(출 9:14). 따라서 야곱이 라반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은 야곱의 간특함 보다는 야곱의 행동의 대상으로서 라반을 강조합니다(창 31:20; 참조: RSV, “야곱이 라반을 속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론의 가슴에 붙인 판결 흉패는 신체적인 위치 뿐만이 아니라 판결의 담당자로서의 아론을 강조합니다(출 28:29). 이러한 용법의 변형은 재귀적인 용법으로 “마음”을 취급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다”이라는 구절은 “당신 자신들을 쾌할케 하라”는 의미로(창 18:5),그리고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라는 구절은 “(음식으로) 그대 자신을 강화시킨 후에”라는 의미로(삿 19:5)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감정의 전체적인 스펙트럼(spectrum)은 마음에서 기인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감정의 실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나의 마음은 여호와를 갈구하는 자들처럼(대상 16:10) 즐거웠습니다(삼상 2:1). 사랑은, 들릴라가 자기에게 마음을 주지 아니한 삼손을 원망할 때처럼(삿 16:15), 마음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민족의 충성심을 자신에게로 돌렸습니다(삼하 15:6).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의 흥분을 못이겨 야곱은 어리둥절해 하였습니다(창 45:26). 위로를 받아들임은,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창 34:3; 사 40:2)라는 구절을 “위로하라”라는 말로 해석되는 관용어에서와 같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경우에 슬픔은 “마음의 악”입니다(느 2:2; RSV. “마음에 근심”). 사울의 옷을 잘라내는 다윗의 비탄과 암담한 의식은 “다윗의 마음이 찔렸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삼상 24:6; 참조: 삼하 24:10). 인간의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의 심중에서 일어났습니다(창 6:6). 상한 마음은 압박을 동반합니다(시 34:18). 경멸(삼상 6:16)과 투기(잠 23:17)와 분노(잠 19:3)는 마음의 모든 작용입니다.
마음을 두려움 및 용기에 관련시키는 관용어는 분리하여 따로 다룰만큼 수효가 많습니다.
두려움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정신(혼)이 나가다,’ 혹은 ‘떠나다(창 42:28 ; KJV, RSV는 “fail”)’, 마음이 “낙담하다”(삼상 17:32; RSV는 “fail”), 용기를 꺾는다는 것은 마음을 방해한다는 의미입니다(민 32:7, 9). 마음이 그 주인을 떠나거나(시 40:12[13]; KJV는 “낙담시키다) 혹은 “녹게 될” 때(수 14:8),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마음의 떨림은 심판 아래 놓인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낙담으로부터(신 28:65; 참조: 삼상 28:5) 하나님의 언약궤의 안전에 관한 엘리의 염려에 이르기까지(삼상 4:13)를 포함하는 감정을 묘사합니다. 다른 한편, “사자 같은 자의 마음”은 용기에 대한 표현입니다(삼하 17:10).
사고(思考)의 기능은 마음에서 기인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정신” 혹은 “사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에게 마음을 두다”라는 것은 “…에게 주의를 기울이다”(출 7:23) 혹은 “중요하게 생각하다”(삼하 18:32)를 의미합니다. 창조적인 사고는 마음의 기능입니다. 사악한 책략도 마음에서 일어납니다(창 6:5). RSV는 “솔로몬의 심중에 어떻게 만들고자 한 것”이라는 구절을 “솔로몬이 계획한 모든 것”으로 번역한합니다(대하 7:11).
지혜와 사려는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왕상 3:12; RSV는 “지혜있는 심정”으로 번역함)과 “지혜로운 자의 마음”(잠 16:23)이 언급됩니다. 이러한 관용어는 너무 강력한 의미로 느껴져 “마음”이 실제로 “정신”(대하 9:23; RSV) 혹은 “분별력”(잠 11:12; RSV)에 대한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마음(즉, 엘리사의 예지력 있는 본성; RSV는 “영”)이 게하시의 행위를 감지하였을 때와 같이(왕하 5:26), 마음은 지각과인식에서 작용합니다. 생각과 지성의 자리인 마음은 미혹받을 수 있습니다(사 44:20; RSV는 “정신”).
마음은 의지의 자리입니다. 결심은 마음을 '정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대하 12:14, “오로지하다”). “나의 마음이 아닌(not of my heart)”은 '나의 의지가 아닌'으로 표현합니다(민 16:28). 세겜 사람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습니다(삿 19:3). 결정하는 능력의 제거는 마음을 완강케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출 10:1; 수 11:20). 앞에 언급한 것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도덕적 책임의 자리로서의 마음에 대한 언급입니다. 의는 “온전한 마음”입니다(창 20:5). 도덕적 개혁은 “마음을 바로 정하는” 것입니다(욥 11:13). 마음은 또한 도덕적 죄악의 자리로 묘사됩니다(렘 17:9).
인간성의 성향은 다소 영구적인 성격 유형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몇가지 성향은 관대함(“마음에 원하는”; 출 35:5), 교만(“마음이 교만하여”; 대하 26:16), 믿음(“심령은 충성”; 시 78:8)으로 나타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