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풍운 -2-
“네놈은 누구냐?”
천마존의 물음에 총사 도광생이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총사이옵니다, 지존. 이십년간 지존의 충실한 개로 살아왔던…….”
말끝을 흐리며 짓는 미묘한 표정. 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이 묻어났다.
마불천마존은 순간 깨달았다. 총사 도광생이 자신의 휘하에 있었던 세월을 미칠 듯이 아까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건 굳이 도광생의 말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가공한 기세. 천하에 이런 고수가 몇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패황 연무종과 무림맹주인 무황 사도헌 외에는 그 누구도 적수로 인정치 않았던 마불천마존.
그런데 그들에 못지않은 고수가 지척에 숨어 있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상황이 이쯤 되면 몇 번은 더 일어났어야 할 마존들이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이미 중독의 기미를 깨닫고 운공에 몰두하는 것이리라.
마불천마존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총사 도광생을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이 정도의 고수가 어찌 이십년 간 자신 밑에서 충견 노릇이나 하며 지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성을 두세 개쯤 차지하고 있는 방회의 지존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 아닌가.
총사 도광생이 허리를 쭉 편 채 좌중을 스윽 둘러보았다.
마치 태산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하루를 자고 나면 어제의 선비가 아니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한순간에 태산이 되어버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마불천마존은 내심 탄성을 터뜨렸다.
이런 고수가 수십 년간 신분을 속이고 뭔가를 도모해 왔다면 천하에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10할의 자신이 있기에 거사를 일으킨 것이리라.
“너는 누구냐?”
천마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정기가 충만해 있어 전혀 중독 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건 그가 외부에 있을 수하들을 부르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내공을 실어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화답한 것은 대전의 벽에 막혀 다시 돌아온 메아리뿐이었다.
총사 도광생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천마존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의 경멸과, 적당한 비웃음이 실린 눈빛이다.
순간 마불천마존은 수하들이 즉시 달려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손을 써 둔 모양이구나.”
총사 도광생이 뒷짐을 진 채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천마존에게 다가가 섰다.
손을 뻗어도 맞닿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고수들에게 있어서는 지척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마불천마존을 일별한 후 입을 열었다.
“독기를 몰아내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건 독이 아니다.”
내공으로 독기운을 몰아내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천마존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른 자신을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이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도광생이 가볍게 냉소를 친 후 다시 말했다.
“천일향(千日香)이라는 마취제다. 무색무미무취하니 당하기 전까지는 결코 눈치 챌 수가 없지.
설사 신이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어.”
말을 마친 그는 품속에서 양가집 규수들이나 쓸법한 작고 예쁜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는 거기에다 코를 대고는 몇 차례 킁킁거리더니 뒤로 휙 집어던졌다.
이 모습을 본 천마존이 냉소를 쳤다.
“흥! 네놈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오년이 걸렸지.”
도광생이 잠시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조금씩 적응해 중독되지 않기까지 말이야.”
천마존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본교에 숨어 들어온 목적은 무엇이지?”
도광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좌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겠지만 알려줄 수 없군. 아니, 곧 죽을 목숨들이니 알려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귀찮아서 말이야. 하지만 한 가지만은 가르쳐 주지. 당신을 비롯한 마존들은 모두 이 자리에서
한 줌의 핏물로 녹아버리겠지만 얼굴 가죽은 남겨두겠네. 요긴하게 쓸 데가 있거든. 흐흐흐흐”
순간 천마존은 흠칫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황을 보니 누군가를 자신과 마존들로 변장시킨 후,
교를 통째로 들어먹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실로 경천동지 할 일이었지만 천마존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냉소를 쳤다.
“흥! 어리석구나. 껍질만 바꾼다고 해서 속일 수 있을 것 같은가? 본 교가 그렇게 호락하게 보였던가?”
“10년이야.”
총사 도광생은 짧게 대답한 후, 천마존과 마존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결코 가짜라 분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데 걸린 시간이지.”
천마존은 뭔가 섬뜩한 것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도광생의 의도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항상 천마존과 마존들 곁에서 대소사를 함께 관장해 왔기에 마교에서
그 누구보다도 수뇌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그러나 대전안의 대기는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팽배하는 듯 했다.
총사 도광생이 품속에서 소도를 꺼냈다.
마존들을 죽이고 얼굴 가죽을 벗기려는 심산이었다. 그의 우수가 천천히 천마존의 심장을 향했다.
그때 갑자기 천마존이 입을 열었다.
“자네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인정해 주지.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군.”
도광생의 우수가 일순 멈칫 했고, 천마존의 우수에서는 붉은 섬광이 튀었다.
펑!
천마존의 우수에서 터져 나온 강맹한 장력. 바로 아수라파천장이었다.
총사 도광생은 급히 장을 맞받아 쳤으나 창촐지간에 쳐낸 일장인지라
천마존의 내공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주르르 밀려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마존이 서서히 일어섰다.
“나 같았으면 우선 죽이고 볼 일이었다. 주둥아리를 놀릴 시간에 말이다.”
도광생은 일장의 교환으로 다소 충격을 받은 듯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사마황공이로구나. 팔성을 넘기지 못한 것으로 알았는데…, 십성이라니…….”
불사마황공(不死魔皇功). 천마지학의 하나로서 오직 천마들만이 익힐 수 있는 세 가지 무공들 중 하나다.
말 그대로 한줌의 진기만 남아있으면, 아니 진기가 사라져도 스스로 잠력을 끌어올림으로서
아무리 심한 부상을 당하더라도 다시 회생시킬 수 있다는 말 그대로 불사의 신공이다.
게다가 이 무공의 효능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마지학과 가장 잘 어울리는 내공이라 같은 무공을 펼치더라도 불사마황공의 내공을 근간으로 하게 되면
그 위력은 크게 달라진다. 그야말로 천마지학의 정수가 이 신공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불사마황공이 팔성에 이르면 만독불침이 되고, 십성을 넘어서면 정파의 신공들처럼
선천지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선천지기란 천하에 그 무엇으로도 제약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한 기운이기에 천리향의 기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총사 도광생이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어차피…….”
순식간에 여유를 찾은 듯한 그의 목소리에 천마존의 두 눈이 좁혀졌다.
그의 목소리에서 내상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도광생의 말이 이어졌다.
“미향 따위를 믿은 건 아니었다.”
가공할 기세가 그의 몸에서 구름처럼 일어났다.
천마존은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몸을 뒤로 날렸다.
파스스!
순간 그가 앉아있던 태사의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도광생이 손을 쓰는 것은 보지도 못했지만 그가 쏘아 보낸 경력에 태사의가 가루가 된 것이 분명하다.
천마존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었다.
이 한수만 보아도 결코 자신에 비해 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이 정도라니…, 아직 내공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거늘…….’
그는 도광생이 검지와 중지를 모아 세운 후, 허공에다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 궤적을 따라 둥근 빛의 환(環)이 나타났다.
그 환은 서서히 천마존을 향해 다가왔는데, 일체의 사물이 모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천마존은 자신이 아는 그 어떤 무공을 펼치더라도 그 환을 피할 수 없음을 즉시 깨달았다.
그는 즉시 우수를 한번 떨쳤다. 아수라파천장의 막강한 경력이 그의 손을 떠나 환의 중심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러나 그 힘은 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마치 솜뭉치 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듯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천마존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일장으로 환을 소멸시키진 못할지라도 방향을 바꾸거나 위력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리라는
예상이 여지없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우수를 수도로 변형시킨 후, 환의 가장자리를 사선으로 베어갔다.
우르릉!
놀랍게도 은은한 뇌성이 그의 우수에서 터져 나왔는데,
바로 천마삼검의 제이초인 뇌격인(雷擊刃)을 수도로 펼친 것이다.
번쩍!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광망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콰지지지…….
환의 한쪽 사분면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뜯겨 나갔다.
그러나 환은 한쪽이 짜부라진 모습 그대로 천마존을 향해 다가왔다.
천마존은 두 눈을 감고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흐읍!
다음순간 천마존의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는 듯 하더니 온몸이 마치 현철(玄鐵)로 만든 철각동상처럼 변해버렸다.
또 다른 천마지학의 하나이자 천하제일의 강기공이라는 묵천강(墨天剛)이 발휘된 것이다.
스팟!
일그러진 환이 묵인처럼 변한 천마존의 가슴에 그대로 강타했다.
그러나 환은 천마존의가슴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고,
그는 마치 아미 일도 없었다는 듯 본래의 얼굴색을 회복했다.
이 모습을 본 총사 도광생이 짐짓 감탄스럽다는 듯 탄성을 터뜨렸다.
“호! 묵천강이로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 동안 무위를 속여 왔었나 보군.”
천마존이 냉소를 쳤다.
“흥! 속이긴 뭘 속였다는 것이냐? 보는 눈이 없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총사 도광생은 천마존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럼, 몸은 풀었으니 이제 제대로 한번 시작해 볼까?”
천마존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재미있는 무협 소설방 ☜클릭
첫댓글 즐독!!!!!!!!!!!!!!!!!!1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ㅎㅎㅎ
wmfehr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감
즐감~!
ㅈㄷㄱ~~~~~```````````````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즐독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감 하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등잔밑이 어둡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