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읽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츄어 분들이 생각하는 수읽기와 우리 프로들이 생각하는 수읽기에는,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는 과연 몇 수 앞까지 읽을 수 있습니까?"
흔히 듣는 말인데,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가장 난처합니다. 일일이 설명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설명하더라도 이해해 줄지 어떨지 알 수 없어서 약간 무책임하기는 하지만 '한눈에 20수'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힐끗 모양을 보고 5초나 10초에 대충 20수 정도는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복잡하지 않은 공방전이나 사활이라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 '읽는다'라기보다 '본다'라는 편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프로기사인 이상 누구든지 이런정도의 수련은 쌓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읽기가 이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전개되어 있는 전국(戰局)을 기초로 하여 여러가지 구도를 그려 봅니다. 단순히 구도를 그려 보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어느 게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인가를 판단합니다. 이렇게 구도를 판단하는 것이, 정확한 의미의 수읽기입니다. 돌의 사활이라든가, 수상전의 공방을 확인하는 것도 수읽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본래의 의미에서 말한다면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외길을 단순한 추리와 기억력만으로 더듬는다는 것은 수읽기이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수읽기가 아닙니다.
알기 쉽게 수읽기에 관해 말한다면, 우선 제일감으로 떠오르는 수가 수읽기의 기초가 됩니다. 앞에서 말한 '좋아하는 수'입니다. 자신의 수에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상대방의 여러가지 응수에 대하여 일단락될때까지의 수순을 진행시켜 구도를 그려 봅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제일감을 다른 곳에 옮겨 제2, 제3의 구도를 만들어 봅니다.
이렇게 하여 몇 가지 구도가 만들어지면, 이번에는 그것을 비교, 검토합니다. 제일감의 구도가 최선이고, 그것으로 자신이 확실히 우세하면 문제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구별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구도를 지워 버리면, 마지막에 '이것이라면'하는 하나만이 남게 됩니다. 이 때 비로소 돌을 손에 쥐게 되는데, 한수마다 상대방의 응수가 몇 가지나 되며, 그 하나 하나에 이 쪽의 응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려운 국면에서는 한수에 몇십 수, 몇백 수의 수읽기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수읽기라도, 의외의 응수를 당하게 되면, 모처럼의 수읽기가 헛수고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수에 대한 대비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수읽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도를 그리기에 앞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집차지로 가느냐, 두터움으로 가느냐? 순하게 받느냐, 강하게 반발하느냐? 순하게 응수해도 나쁘지 않으면 온당하게 받는 것이 보통이고, 그렇게 해서는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강하게 맞서게 됩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판단 위에 서서 구도를 생각하고, 많은 구도 가운데 최선의 것을 고릅니다.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사람의 기풍이며, 과거의 체험입니다. 수읽기란 기력이 극도로 압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마베 도시오(山部俊郞)9단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타니선생의 수읽기는 '거기까지 읽고 계십니까?'하고 탄복하는 수읽기고, 사까다씨의 수읽기는 '그런 수까지 읽고 계십니까?'하고 감탄하는 수읽기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수읽기의 양과 질에 관한 말로서, 흥미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까지'라는 것은 수읽기의 깊이, 즉 양의 문제이고, '그런 수까지'라는 것은 수읽기의 종류, 폭의 넓이, 그러니까 질의 문제입니다.
우리 전문 기사들은 대국이 끝나면 그때까지 둔 바둑에 관하여, 대충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수가 나빴다. 끊고 싸울 곳이었다'라든가, '이렇게 두었다면 어떻게 받으셨겠습니까?'라는 등, 주로 반상에 나타나지 않은 변화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복기라고 하는데 기타니9단의 복기는 심오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경탄케합니다. 선생께서는 보통 사람들이 읽는 수의 앞의 앞까지 정확하게 읽고 계십니다. 이에 대하여 저의 복기는,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수가 많으며, 변화가 복잡하여 '그런 수도 있었던가?'하고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적이 많습니다.
기풍이나 감각의 차이에 의해, 상대방이 쉽게 보는 수를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평범한 수읽기에서 나온 수가, 상대방에게 아주 의외의 수가 될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상식 외의 수가 발견되는 예가 많은 것은, 다소 다른 사람과 감각이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필자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수읽기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알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전문적인 데로 치우친 것 같습니다. 프로의 수읽기는 이정도로 해두고, 아마츄어인 여러분에게는 '세 수의 수읽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이 '세 수의 수읽기'라는 말은, 일본 장기 연맹 회장인 하라다8단이 아마츄어 장기 팬을 위해 언젠가 역설한 것인데, 수읽기의 기본적인 태도로서 바둑에도 통용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빌어 아마츄어의 수읽기를 설명하자면, '어쨌든 세 수 앞까지만 수읽기를 하십시오!'가 됩니다. '이렇게 두면, 이렇게 응수하겠지. 그러면 이렇게 두겠다'입니다. 이것이 세 수 수읽기입니다.
'이렇게 두자'하고 자신의 첫수를 결정하면, 바로 돌을 놓지 말고 상대방의 응수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이 수를 두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을 것인가? 또 그 밖의 다른 수를 두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을 것인가? 그리고 상대방의 응수에 나는 어떻게 응할까?'를 결정한 다음 착수해야 합니다. 무작정 '우선 두어놓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다름없으며, 수읽기고 힘이고 간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 수 수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그러면 이렇게 두겠다'를 읽는 것입니다. 세째 수를 읽어두지 않으면 긴요한 첫 수가 뜻이 없습니다. '이렇게 두면, 이렇게 응수하겠지'에서 수읽기를 끝내면 안됩니다. 그리고 세째 수를 둘 때에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 수 수읽기를 다시 합니다. 다시 말하여, 한 수마다 세수 수읽기를 되풀이합니다. '그까짓 세수 쯤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막상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수읽기의 습관이 붙게 되면, 눈에 보이게 기력이 향상됩니다. 이것은 제가 보증합니다.(저는 보장 못함...ㅡㅡ)
수읽기를 하고 둔 수는, 에누리없이 여러분의 수입니다. 수읽기가 쌓여 승리한 것은, 분명히 여러분의 힘이 상대방의 힘을 제압한 것입니다. 무턱대고 둘 경우에도, 상대방의 급소에 돌이 찾아가 이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고, 진짜로 이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읽기를 습관화하여, 수읽기의 힘으로 이겨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세 수 수읽기'를 실행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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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사까다9단의 자신감이랄까 그런걸 볼수 있는 글 같습니다..ㅋㅋ 자기를 기타니9단과 비교한셈이나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사까다9단이라면 인정할만 합니다. '타개의 사까다'라는 별명을 얻으려면 수읽기가 뒷받침이 되지 않곤, 얻을 수 없는 별명일테니까요.
솔직히 바둑계의 기여를 차치하고 기량으로 본다면 전성기의 기타니선생보다 전성기의 사까다 선생이 더 낫지 않습니까? 기성 오청원선생과의 대국도 전성기의 기량을 비교하면 대등할 것이라 봅니다. 조치훈 9단이 전성기 때의 오청원선생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사까다 선생 뿐입니다. 라고 한 적도 있구요.
첫댓글 유익한 글 잘읽었습니다.
수읽기와 형세판단은 어떤 상관이 있는지요.. 사까다가 오청원 기성한테 처참하게 진 대국을 보면, 국부적으로는 극묘한 수를 냈지만, 전체를 그르쳤을 경우이었습니다. 형세판단이 좋으면, 웨만한 수읽기는 불필요한 것이 아닌지요..
글쎄요.. 형세판단의 밑받침엔 결국 수읽기가 바탕이 되는게 아닐까요?
솔직히 바둑계의 기여를 차치하고 기량으로 본다면 전성기의 기타니선생보다 전성기의 사까다 선생이 더 낫지 않습니까? 기성 오청원선생과의 대국도 전성기의 기량을 비교하면 대등할 것이라 봅니다. 조치훈 9단이 전성기 때의 오청원선생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사까다 선생 뿐입니다. 라고 한 적도 있구요.
'바둑 명언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한권이지요. 기억력에 의하면 139페이지 근처에 재미있는 글도 있습니다.
그렇군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감사..
세 수의 수읽기...앞으로 노력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