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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DZepBYToyA?si=5TD_FNbuTzLpmjGD
네 병거 [스가랴 6장 1~8절]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 셋째 병거는 흰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7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면류관과 평화의 의논 [스가랴 6장 9~15절]
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4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15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 구리 산(1절) ‘놋쇠로 된 산’(표준새번역)이다. 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한다.
* 네 바람(5절) 하늘의 천사, 즉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천사를 말한다.
*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12절) 메시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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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스가랴는 두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멘 말 환상을 봅니다.
말들이 땅에 두루 다니며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합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고 싹이라는 사람이 돋아나
성전을 건축하고 다스릴 것이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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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병거 [스가랴 6장 1~8절]
여덟 번째 환상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관한 것입니다. 말들이 끄는 네 병거가 구리로 된 두 산 사이에서 나옵니다. ‘병거’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의 위엄과 권세를 상징합니다(합 3:8). ‘두 개의 구리 산’은 솔로몬 성전 입구에 세운 구리로 만든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을 떠올리게 합니다(왕상 7:15), 따라서 환상 속 병거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직접적인 일하심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환상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두루 살포 보라고 사신을 보냈다면(1:~10), 마지막 환상에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십니다. 기억하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여덟 번째 환상에서 ‘병거’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내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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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과 평화의 의논 [스가랴 6장 9~15절]
면류관은 존귀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스가랴가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웁니다(11절). 성전을 건축할 ‘싹’(순, 우리말 성경)은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을 가리키며(12절), 그 역시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여호수아(종교 지도자)와 스룹바벨(정치 지도자)을 세우십니다. 두 사람은 ‘평화의 의논’(13절)을 통해 귀환 공동체를 재건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 공동체는 은과 금을 모아 성전 건축을 지원했고, 귀환자들은 성전 건축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성전 건축과 이스라엘의 회복은 많은 사람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의 동역을 통해 완성됩니다.
☎ ‘성전을 건축할 싹’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사람들과 협력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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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은 이렇다. 로마 제국이 온 세계를 점령해 나가다 게르마니아의 마지막 지역을 점령하고자 전쟁을 시작한다. 로마 군대가 칼과 창과 활을 들고 서 있다. 건너편에서는 게르마니아 군이 전열을 갖추고 있다. 전투 전에 침묵이 흐른다. 잠잠한 가운데 막시무스 장군이 말을 타고 나와 로마 군대에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서 행하는 이 모든 일은 영원토록 메아리칠 것이다." 그 순간 로마 군대가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죽기 위해서... 세상은 전쟁터다. 주님은 우리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인 동시에 우리의 사령관이 되신다. 그분은 우리를 마지막 시대에 군사로 부르신다. 그리고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신다. 끝까지 싸워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내는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을 허락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순간 우리는 "와!"하고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중에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 사욕을 채우기 바쁘고, 허탄한 삶을 분변하지 못하고 쫓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복음을 주신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방법은 동행이다. 주님은 이 한 가지를 원하신다. "네가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니? 나를 얻기 위해서 희생하기를 원하니?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니? 그렇다면 나와 동행하자." 그런데 주님과 함께 가는 길에는 고통과 아픔과 희생과 가난과 외로움과 때로는 죽음의 장막이 덮친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은 예수님이 선택하시고 가신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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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절 묵상
6장 10-11절 |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을 통한 결론이 바로 여호수아를 통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로잡혔던 자들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서 금과 은을 모아서 면류관을 제작하여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고 유다를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세울 사람들을 통하여 그분의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비록 지금은 이방에 의하여 압제 받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면 그 모든 압제를 물리치고 여호수아가 다시 회복된 유다를 만들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하시는 가가 가장 중요함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삶 10월 19일 기도문
하나님,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도 친히 찾아오셔서 제 삶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있기에 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합니다! 하나님, 이제 제 곁에 붙여 주신 믿음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힘을 모아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 가게 하소서.
스가랴 6장 1~15절 설교 요약 명언
하나님의 통치는 혼돈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 찰스 스펄전
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현실로 옮기는 다리다. - 존 스토트
주의 뜻을 행하는 자는 세상의 권세보다 강하다. - 마틴 루터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세상을 바로 세우시고, 순종을 통해 구속을 완성하신다. - A.W. 토저
왕관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씌워 주시는 것이다. - 토마스 아 켐피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쓰신다. - 오스왈드 챔버스
진정한 권세는 섬김 속에 있다. - 디트리히 본회퍼
주의 영이 가는 곳마다 새 질서가 세워진다. - 워치만 니
‘성전을 건축할 싹’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신 분이십니다. 나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 사람들과 협력하며, 사랑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는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스가랴 6:13)
우리는 눈은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창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의 눈보다 영안(靈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단순히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조용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1. 네 병거의 환상 —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신다”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였습니다(1절).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시내산에서 율법이, 모리아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구원이,
시온산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 산 사이에서 네 병거가 나옵니다.
천사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 (5절)
‘바람’은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온 땅을 감찰하시며,
인간의 역사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주관하십니다.
룻기에서 모압 땅의 작은 시골 여인들의 대화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평범한 순간조차 하나님의 영이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고백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행동, 심지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까지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영 앞에서 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의 바람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스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2. 여호수아의 면류관 —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권위”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명하십니다.
“은과 금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 (11절)
면류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준과 통치의 상징, ‘사명을 감당하라’는 명령의 표식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성전 재건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적 권위를 주심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곧 오늘날 우리에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영적 책임과 부르심을 뜻합니다.
진짜 권위는 자기주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만이 그 권위가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압니다.
3.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2절)
‘싹’은 새 생명을 의미하며, 예언서에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렘 23:5).
스가랴 시대에 눈에 보이는 성전을 세운 사람은 여호수아였지만, 참된 성전을 세우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하셨습니다(요 2:19).
그분의 말씀처럼, 이제 성전은 돌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 그리고 그분 안에 지어지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엡 2:21-22).
🍀 나의 묵상과 적용
영안이 열린 사람은 눈앞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세상의 풍경 속에서, 사람의 말 속에서, 심지어 나의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읽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안 대신 감사로 살고, 낙심 대신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으며기대함으로 견디며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순간이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영원한 성전의 한 조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어 가십니다.
사람을 세워가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장은 스가랴가 본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환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와 회복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스가랴는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봅니다. 두 산은 구리로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나오는 병거들은 각각 다른 색의 말들이 끄는 모습이었습니다. 구리는 견고함과 하나님의 심판의 권위를 상징하며, 네 병거는 하나님의 영이 온 세상에 나아가 행하시는 심판과 통치를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감찰하시며, 어느 민족도 그분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 환상 후,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금관을 씌우라고 명하십니다(9~11절). 이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여호수아는 '싹이라 불릴 사람'(12절)을 대표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존귀를 얻고, 제사장 위에 앉아 다스리리라”(13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확신을 줍니다.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는 멈추지 않는다는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자신의 뜻을 따라 역사를 다스리시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회복과 평화를 이루실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가랴의 마지막 환상을 통해 다시금 소망을 붙듭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그분의 계획과 손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주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날에 여호와의 전이 완성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리가 붙잡아야 할 믿음의 확신입니다. .
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은 예고하신 심판을 반드시 실행에 옮기십니다. 악한 열국을 심판할 사자들인 네 병거,
즉 하늘의 네 바람이 온 세상의 주 앞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세상의 사방으로 퍼져 나가
인간 역사를 뒤흔듭니다. 북쪽은 대적, 특히 바벨론의 거처인데, 역사의 주권자가 일으키시는
소용돌이에 완전히 제압됩니다. 사로잡힌 하나님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오고,
몇몇 사람의 은금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울 면류관이 준비됩니다.
이는 오실 메시아와 그분의 나라를 예비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심판 중에도 평화와 공의의 통치자인 메시아에게 소망을 둡니다.
- 묵상 질문: 면류관을 쓰고 영광을 얻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연상시키나요?
- 적용 질문: 가정 혹은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가 회복되어야 할 영역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스가랴가 본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으로 구리로 된 두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가 사방으로 나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흩어져 두루 돌아다니는 병거는 하나님의 통치가
특정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온 땅에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고 예수님이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도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이 아니라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육신의 제한을
받는 이 세상에서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의 자리로 옮겨 가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는 예배당 안에서 예배드릴 때뿐만 아니라 성도의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것이며 나아가 불신자들 세계까지도 통제하시는
주권자 이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
하나님은 포로지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성전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단지 물리적인 성전재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섬기며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혹시 다른 일에 분주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가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마음과 생활의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궁극적인 계획
하나님의 사역은 단지 개인의 삶을 구원하고 그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새로운 싹이신 예수님을 통해 성전을 세우시고 우리와 우리 가정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믿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세상으로
흘러가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주일에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이 베풀고 섬기는 모범적인 가정,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가정을 세워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네 병거 이상입니다 네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입니다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슥6:1~5)
하늘의 네 바람은 세상 바벨론을 쳐서 무너뜨릴 천사들입니다(히1:7)
그래서 북방 땅 바벨론으로 향한 병거가 그들을 쳐서 주의 영으로 편안하시게 하였습니다(슥6:6~8)
그러나 주의 땅에는 평화로운 성전이 굳게 설 것입니다 누가 이 성전을 세울까요?
여호와께서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와 요시아에게서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가 건축자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6:9~12)
여기서 "싹"은 히브리어 "צמח"(쩨마흐)인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 가지로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צמַח)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33:15)
또한 "자기 곳"은 히브리어 "תחת"(타하트)로 ~아래란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낮고 낮은 곳에서 돋아나 굳게 서실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성전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이 영화롭게 되신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주의 영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영으로 우리 안에 성전을 세우시고 왕권과 제사장권 두 권세로 통치하시는데, 두 권세의 합력으로 평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슥6:13)
여기서 "의논"은 히브리어 "עצה"(에차)로 충고, 결의란 뜻도 있으므로 "평화의 결의"라 해도 무방합니다 성전 건축자이신 주 안에서 유대인 뿐만 아니라 먼 데 사람 이방인들도 와서 성전을 세울 것입니다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슥6:14~15)
그래서 성전이신 주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로 연결 되어 한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참으로 미쁘신 주께서 우리의 성전을 완전케 하사 평화의 의논, 평화의 결의가 충만하게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나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스가랴가 본 힘찬 말들처럼 나의 걸음을 굳세게 하시고,
주의 부르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이같이 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나의 욕심보다 주의 계획을 따르고,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로 세워 주시고,
여호와께서 보내신 자들이 온 세상을 순찰하며 평안을 전한 것처럼,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평강과 영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세상 속에서 주의 이름이 높임 받을 그날을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성령을 보내어 저의 걸음을 살피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육의 눈으로만 보지 않게 하시고,
영안을 열어 모든 일의 뒤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옵소서.
세상의 큰 산과 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믿으며,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이 세우실 영원한 성전의 한 부분으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 안에 주의 영을 부으셔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권위를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