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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인생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 (시103:1–5)
서론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 할 줄은 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에는 감사할 줄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다급할 때는 도와달라고 잘도 외치는데 정작 도움을 받은 후에는 그 은혜를 잊는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원수진 일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것을 흐르는 물처럼 쉽게 다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 구원하였습니다. 정말 죽을 목숨인데 생명을 걸고 뛰어든 한 사람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은 사람은 생활도 넉넉하고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생명을 걸고 뛰어 든 사람은 가진 것이 궁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가만히 보니 구원받은 사람이 전혀 감사의 표를 하지 않는 것 같아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물에 빠져 죽어갈 때에 생명을 걸고 당신을 구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답하면서 어떻게 감사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당신을 구한 사람은 생활이 어려우니 생활에 도움이 되게 백만원 정도 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구출 받은 부자가 난처한 듯이 '50만원만 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왜 50만원만 주겠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사실 그 사람이 나를 구출하였을 때 나는 이미 반은 죽어 있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반은 죽어 있었으니 반만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구출 받은 후에는 따지려고 하고 인색하게 구는 경향이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은 받은 은혜가 많고 또 헤아릴 수 없는 복을 주셨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말씀1-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을 송축하며 기억하고자 했던 그 “모든 은택”의 핵심
이 바로 본문 3절에서 5절에 등장합니다.
첫째. 죄 용서와 치유의 은혜 기억하라 (3절)
3절“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는 누구나 회복과 치유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는 건강의 회복을 원합니다. 마음의 상처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는 평안을 원합니다. 관계가 깨어진 이는 화해를 원하고, 오랜 시련으로 영혼의 기력이 다한 이는 다시 일어설 힘을 구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상한 인생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1) 치유의 근본은 죄의 용서와 관계의 회복입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다윗은 치유의 은혜를 노래하면서 가장 먼저 무엇을 언급합니까?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다윗은 육체의 병을 말하기 전에 ‘죄의 용서’를 먼저 선포합니다.
성경이 파악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비극은 단순히 몸이 아프거나 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두려움, 수치와 고통, 그리고 온갖 질병과 탄식이 역사 속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을 단순히 ‘몸이 아픈 존재’로만 보지 않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존재’로 진단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가장 첫 번째이자 위대한 치유는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정죄 아래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롬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 구속의 진리를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죄악을 단번에 속량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참된 전인적 치유가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 고통과 탄식을 깊이 아십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선포합니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가 육신을 입고 겪는 고통과 질병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서 '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타할루아임' 인데 동일 용어가 사용된 신29:22; 대하 21:19; 렘 14:18; 16:4 등의 문맥을 고려할 때 육체적 질병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복수형으로 '모든 육체적 질병'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어거스틴(Augustine)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어요. '죄 용서함 받은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신체를 이끌고 다녀야 한다...죽음(사망)이 완전히 삼키움을 당하지 않은 까닭에 육체는 아직도 불완전에서 해방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 육체에 거하는 영혼은 유혹과 시험으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 우리는 질병들을 너무 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되신 하나님은 그 질병보다 더 중한 (큰) 분이시다. 전능하신 그 의사에게 못고칠 질병이란 없다. 그의 손을 뿌리치지 말라. 인간의사는 때때로 실수를 범한다. 왜? 그것은 인간 의사는 자신이 치료를 수행하고 있는 그 환자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환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만드셨다. 그는 그가 창조하였던 자를 재창조하는 법을 아신다. 그는 자신이 형성하였던 자를 재형성하실 수 있다. 그 의사의 손아래 너 자신을 맡기라...그의 손을 의지하라. 모든 그의 은택들을 잊지 않음으로 그분을 송축하라. 그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이고 바른 신학적 균형을 붙들어야 합니다.
“모든 병을 고치신다”는 약속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의 모든 질병이 우리가 원하는 때와 방식으로 즉시 완치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도 평생 육체의 가시(질병)를 지니고 살았으며(고후 12:7–9), 신실한 사역자 디모데도 자주 나는 위장병이 있었고(딤전 5:23),
에바브로디도 역시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로 겨우 회복되었습니다(빌2:27).
따라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믿음은 “하나님이 내 병을 지금 당장 고쳐주셔야만 한다”고 조건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날 고치실 능력이 있으시며, 그 때와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으며 설령 지금 내가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초자연적 역사로 고치시기도 하고, 의사의 의술과 약품, 수술과 시간을 통해 치료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병을 지닌 채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나의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내 모든 병도 주님은 고치실 수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3) 최종적이고 완벽한 치유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치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몸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영혼만의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육신으로 부활하셨듯이, 성도 역시 마지막 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고전 15:42–44a)
이 땅에서의 치유와 건강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 부활의 맛보기(맛봄)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쇠하여지고, 병들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의 약속대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치유의 완성'을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신 은혜를 기억하라(4절)
4절 상반절“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여기서 '파멸'은 단순히 삶의 실패나 무너짐을 넘어, 죄의 결과로 마주하게 되는 영적 죽음, 절망의 구덩이, 그리고 하나님과 단절된 파국을 뜻합니다.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즉, 죽음, 음부, 지옥 등의 위기로부터 생명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보호를 의미합니다.
'속량(贖良)'은 값을 지치고 건져내어 구원한다 즉, ‘값(몸값)을 치르고 죄인이나 노예를 사서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죄와 죽음의 웅덩이(파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가장 고귀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가 조상이 전하여 준 헛된 행실에서 속량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피)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죄의 종노릇 하던 자리에서 완전히 해방(속량)되었음을 뜻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멸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치르신 사랑의 가격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셋째.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우시며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기억하라.(4절)
4절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세상은 우리 머리에 실패의 면류관, 죄책감의 관, 혹은 질병과 한계라는 열등감의 관을 씌우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인자(헤세드,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와 ‘긍휼(레하밈,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불쌍히 여김)’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헛된 탐욕이 아니라, '가장 참되고 좋은 것(Good Things)'으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구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최고의 것으로 우리 삶을 채우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넷째,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기억하라(5절하)
5절하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지치고 상한 영혼을 위로하시고, 가장 좋은 은혜로 우리의 삶과 마음을 만족하게 채워주시며, 독수리가 묵은 깃털을 털어내고 새 깃털을 얻어 하늘 높이 오르듯, 하나님은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는 성도에게 초월적인 은혜와 생명력을 공급하십니다.
고후 4:16b“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 40:31a“오직 여호와를 망앙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지치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새 힘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자원이 다 소진되어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새 힘, 새 은혜, 새 출발을 허락하십니다.
결론
오늘 다윗의 이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은 유효기간이 있지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영원합니다. 오늘 어떤 아픔과 상처를 안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죄 사함의 은혜를 붙드십시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내 영혼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 겸손히 치료를 구하십시오.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주님 앞에 솔직히 아뢰십시오.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온전히 회복시키실 영원한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십시오. 인생의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내 힘으로 날아가려 애쓰지 마시고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바람을 타십시오. 주님께서 마침내 여러분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억하며, 내 영혼이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찬양합시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편 103편의 말씀을 통해 상한 인생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셔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신음하는 성도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사 아픈 몸과 마음을 만져 주시고, 의료진의 손길과 치료의 과정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단지 육신의 치유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신앙의 깊이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오늘도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낙심한 심령마다 독수리 같이 새 힘을 더하여 주시고, 장차 다가올 완전한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치유자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