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이라는 장르의 내면은 거친 자연 속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 생명 그 자체와 싸우는 인간의 고독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대개척 시대에 질병과 기후, 서로의 존재와 싸우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흘러갔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더 홈즈맨>의 서부는 너무나도 혹독하고 차갑습니다. 냉정한 청교도 윤리 속에서 여성들은 가족이란공동체의 완성을 위해 아기를 낳는 도구로,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를 만들기 위한 퍼즐조각 하나로 소비되기 일쑤입니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세 명의 여인들의 사연들은 이 영화의동기이자 주제입니다. 아이들이 전염병으로 모두 죽어버린 <시어>, 아이를 낳기 위한 애정없는 섹스, 지속적인 성적 학대에 시달리던 <스벤슨>, 혹독한 환경 속에서 마음이 무너져 자신의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만 <벨크냅>, 이 세 여인은 동부 출신으로, 모두 서부의 남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동부에서 서부로 시집온 가련한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모범적인 청교도이자 자립적인 여성상 <커디>가 있습니다. 커디는 마을의 어느 남자 못지 않은 살림꾼이고, 교회에서 독실한 신자이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공동체의 일원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집착하며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남자들을 갈구하는 모순된 인격이지요.
책임감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지니게 된 커디. 정신병자가 된 세 명의 여인들을 동부로 돌려보내기 위한 임무를 마을의 남자들이 거부하자. 그녀는 지역사회의 자랑스럽고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서 분연히 일어나 그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브릭스>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옛 서부극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인간 쓰레기 졸개 악당 캐릭터로서, 본능에 충실하며 미련을 남기지 않는 캐릭터죠. 말그대로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더 홈즈맨은 커디라는 자주적인 여성상을 내세워서 페미니즘 영화의 변주인 척 하지만, 사실 커디는 조금 더 복잡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디의 자주성은 전력으로 체제에 순응함으로서 나오는 적응력입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청교도 사회의 서부에서 가장 신실한 청교도인으로서 획득한 커디의 자주성은, 그 청교도 사회의 무고한 피해자인 백치 여인들의 입을 빌어 비난당하죠.
신의 번개가 커디를 때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미친 여자의 말에 커디가 알듯 모르는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커디 자신도 스스로의 모순성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커디의 자살이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그런 고리타분한 상징을 넘어, 좀더 깊은 회한의 영역까지 이야기를 끌고 들어갑니다. 보잘것없는 소악당 브릭스가 커디의 죽음에 감화를 받아, 커디가 지고 온 짐- 세 명의 백치 여인들- 을 동부로 데려가기로 결심한 거죠. 브릭스는 커디의 무덤을 파며 백치 여인들이 없었더라면 커디는 죽지도 않고 아이를 낳고 잘 살았을 거라고 일갈하지만, 백치 여인들에게는 커디 또한 무고한 피해자중 하나였기에 그저 알수없는 웃음만을 지을 뿐입니다.
커디의 죽음이 브릭스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든채 영화가 끝날 듯 보였지만, 커디가 브릭스에게 준 돈이 은행의 부도로 쓸모없어진 것처럼, 브릭스의 삶위에 켜켜이 쌓인 소악당의 때는 그리 쉽게 벗겨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동부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일도, 브릭스에게는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일탈에 불과했던 것이죠. 서부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브릭스는 허공에 총을 쏴제끼며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감을 천명하면서, 혼자서 춤을 춥니다. 흥겨운 음악 속에 쓸쓸한 춤사위가 계속되고, 브릭스가 연민속에 만들었던 커디의 비석은 무관심 속에 강아래로 가라앉고 말죠.
그리고 강은 계속 흘러갑니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띄고 커디와 브릭스, 세 여인의 여정을 관조하며 폭력과 남성 중심적인 종교와 자본의 외면 속에 서부의 여인들, 아니 우리의 여인들이 얼마나 무관심과 무지 속에 버려져 왔는지 보여줍니다.
제임스 스페이더가 단역으로 나온 호텔에서의 에피소드는 반가웠습니다. 어느 시대에 어느 장소에 제임스 스페이더를 가져다 놔도 제임스 스페이더는 제임스 스페이더죠.
유명 배우들이 단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메릴 스트립의 분통터지는 순수한 연기가 아주 일품이더군요.
역시 서부극 <트루 그릿>(국내 개봉명 더 브레이브)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어느새 훌쩍 커서 비슷한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부로는 절대 오지 말라는 토미 리 존스의 충고에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힐러리 스웽크와 토미 리 존스의 연기 호흡은 정말 역대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입니다. 사실 배트맨 포에버에서의 일로 토미 리 존스를 좋게만은 보고있지 않았는데, 좋은 영화인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토미 리 존스의 연기는 정말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또한 토미 리 존스이죠.
더 홈즈맨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