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역병인 코로나가 우리들의 소통과 발길을 가로막은지 3년이란 세월로 접어들었다. 코로나는 변이가 확산되어 그리스어로 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로 이어졌고, 지금은 15번째인 오미크론(Ο)에 이르렀다.
그러한 순서에 따라 변종 코로나의 낯선 이름들이 우리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마스크, 거리두기, 팬더믹, 위드코로나에 이어 백신패스란 단어들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우리들을 환자아닌 환자로 만들어 마음의 고통을 준다. 생업 또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어 이겨내지 않으면 파멸의 길로 향하기에 오늘도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머니께서 작은 형님 집으로 떠나신 후 다락방에서 내려와 작은 방에 기거를 한다. 창문가까이 다가 앉으면 눈앞에 보이는 백화점과 버스터미널, 그리고 산언덕 동네 풍경과 멀리는 낙동강변 부산의 승학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가끔씩 텔레비젼을 본다. 예전엔 다락이란 격리된 공간에서 오로지 휴대전화 하나로 버티던 겨울밤을 이곳에선 그나마 조금 여유있는 마음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년이면 100세에 접어드시는 어머니의 채취를 느끼며,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보다나은 환경이 주는 위안(慰安)의 차이를 맛보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텔레비젼을 통하여 뉴스라든지 오락 프로는 거의 보지 않는다. 기껏 보는 것이래야 20여년 전 유행했던 '전원일기'의 재방송 정도랄까. 어쩌다 채널을 돌리면 한때 시청률이 높았던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최불암과 김혜자가 출연했고, 여행 중 일부러 몇번 찾았던 언덕위에서 바라다보는 시원한 동해바다와 서둘러 떠난 생기발랄한 최진실의 얼굴이 클로즈업(close-up) 되었다.
4차산업혁명이 시작되고 AI가 진료를 담당하고, 소설을 쓰는 첨단과학 시대에 무슨 캐캐묵은 아나로그의 잔재물이냐?고 고개를 가로저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온통 찢어지고, 비생산적인 느낌의 파괴문명 영상들보다야 백번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이들 드라마에서 느낀 것...이러한 순수 담백하고 시청율 높은 드라마에는 종교 이야기가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생과 사의 제일 중요한 연결고리인 종교가 왜 빠졌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의 실제 삶과 종교관을 비추는 거울이 다르므로 체감의 간극(間隙)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여생을 반성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게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닐 것이라는 쪽에 마음을 걸었다. 왜냐면 도서관을 갈때면 고전서가 보다는 새로운 문명영역쪽에 눈길이 먼저 가기에 그렇다는 변명이다. 그리고 가끔은 영상속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나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다 보곤한다. 나는 왜 나만의 꿈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았을까?
엇그제 이발소를 갔었더니 그곳의 낡고 조그만 화면에서도 전원일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나만 옛 향수를 그리워 하며 사는 것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비스듬히 자리를 잡았다. 겨울에 접어든 건너편 버스터미널엔 불빛마져 희미하게 을씨년스럽고, 짙어지는 도로위를 달리는 차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남녁하늘을 막아선 마천루 옥탑 불빛위로 공항을 갓 이륙한 여객기가 바쁘게 불빛을 깜빡여댄다. 이밤에 그 어느 낯선 곳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일까?
가끔은 둥근 지구의 반반쪽 밤하늘을 바라보면 마음 가난해지는 글이라도 쓰보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일었다. 그러나 거친 세파의 산물로 비정제된 감정 표현된 단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같은 두려움에 애써 외면해 버리고 만다.
텔레비젼을 켜니 채널에서 두번째로 자주보는 '자연인' 프로가 나타났다. 숲속의 로빈손 크루소... 그게 일부는 연출된 것이란걸 뻔히 짐작하면서도 때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장면을 보다가 전원일기 방영 채널로 옮겨갔다.
마루에서 복길 할머니와 김회장댁이 얌전하던 이웃 대곡면 이회장댁 며느리가 감쪽같이 바람을 피운지 3년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들통이 났다며 야단스레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당에서 동서들과 채소를 다듬던 큰며느리 은영에게 우편물이 왔다.
은영은 궁금해하는 동서인 순영에게 보여주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궁금증 많아 뒤따라간 순영에게 은영은 대학 선배가 보내온 책을 내보이며, 젊은 날 꿈꾸었던 문학의 길을 걷지 못한걸 후회한다. 농촌으로 시집을 와서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랐지만, 어느 듯 중년의 여인이 되고 말았고, 자신의 뇌리속에서 자신이 잊혀져감을 서글퍼했다.
젊은 시절을 겪은 여느 사람치고, 문학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마는, 문학을 전공했던 은영으로서는 남다른 회환(悔恨)이 있는 것이다.
용진과도 동아리활동을 함께했던 책을 보내온 선배는, 책갈피에 서울에다 학원을 내었다며 은영에게 운영을 도와달라고 썼고, 내용을 남편인 용진에게 말했더니 화를 내며 반대를 한다. 다투는 소리를 들은 시부모들이 아들 부부를 불러앉혔고, 김회장은 찬성을 하는데, 시어머니는 끝내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아버지를 닮은 듯 은근히 가부장적인 용진, 발랄하고 부지런한 새침데기 순영, 4대 가정의 중심으로 산전수전 다겪은 시어머니의 각자 개성이 튀는 순간의 화면들이 눈에 더 각인(刻印)되었다.
은영은 다음날 시아버지의 후원을 빌미로 서울로 가서 선배의 학원에 들렀고, 선배는 아내의 빈자리로 일이 많다고 말하며, 한달동안은 매일 출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어머니는 맏이인 은영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선배는 늦은시간 은영을 붙들고 찻집에서 옛추억을 되살려낸다. 용진이 은영의 의견을 반대했던 이유가 은근히 묻어나는 장면이다. 혹시 끝나지 않은 삼각관계(?)라는 것...
은영의 귀가가 늦어지자 가족들은 갈등이 생겨났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대놓고 못마땅해 했고, 김회장도 일주일에 몇일씩 집을 떠나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차리리 읍내에다 일자리를 잡으라고 말한다.
실의에 빠진 은영에게 순영은 소신대로 하라고 응원하고 나섰지만, 은영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못다이룬 꿈, 현실에 부딧치는 벽사이에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 몰라하는 은영은 별빛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모두가 마음이야 젊은 시절로 돌아가 꿈꾸는 인생을 살고 싶지만 현실과의 괴리(乖離)가 너무 크다. 그게 젊은 날의 초상(肖像)에 그치고 만다. 스크린은 다음 회를 예고하며 점차 돈벌이 광고화면으로 바뀌어 갔다.
* 코로나를 이겨내고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