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위험·저수익·저투자’ 창업 아이템 날씬해졌다
스몰비어·퓨전분식 뜨고 닭강정·유럽과자 지고
올해 국내 생활형 창업시장은 경기침체와 소비 둔화, 수익성 악화의 삼중고를 겪었다. 불황의 파고에 휩쓸려 간판을 내린 가게가 쏟아져 나왔고 한편 소비자의 욕구를 잘 읽어 승승장구한 점포도 적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재계·학계·연구소 등 각계의 전문가 10명에 자문해 올해 창업시장에서 뜨고 진 아이템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최고 아이템으로 스몰비어, 퓨전분식, 소형 커피전문점, 세탁편의점, 도시락전문점을 들었다. 최악 아이템으로는 닭강정, 유럽과자점, 육회전문점, 짬뽕전문점을 꼽았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생계형 영세 창업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포화 상태인 치킨을 비롯한 일부 업종은 ‘은퇴 창업자의 무덤’으로 꼽힐 정도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2월에 발표한 치킨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개업하고, 5000개가 파산했다. 치킨집의 80%는 10년 안에 문을 닫았다. 숱한 실패를 거치면서 단련도 됐다.
이런 과포화 초경쟁을 이기기 위해 아이템을 세분화하고 전문성을 키운 것이다. 치킨 브랜드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미국·중국·남미 등지에 진출한 배경이다.
올 한 해에도 수많은 아이템이 명멸했다. 전문가들은 2013년 창업시장의 특징으로 소자본 창업을 꼽았다. 2~3년 전만 해도 상대적으로 목돈이 드는 호프·커피전문점·레스토랑 창업이 활발했다. 올해는 경기침체로 여건이 어려워지자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수익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창업 부담을 줄이는 소자본 아이템이 각광을 받은 것이다.
기존 창업 공식에서 벗어난 창업전략도 등장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대로변 1층 같은 입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상업지구 뒷골목이나 주택가 골목길, 지하 1층이나 지상 2~3층에 매장을 내는 사례가 늘었다. 임대 비용을 아끼며 장기적인 승부를 노리는 전략이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장은 “돈 벌 생각은 일단 뒤로하고, 안 쓰고 아끼며 버텨야 한다”며 “단기 승부를 피하고 자리 잡는데 최선을 다해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부 안 한 무작정 창업 여전해
이런 큰 흐름을 미리 잘 읽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예비창업자들이 창업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창업 아이템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한다. 한정된 정보만 믿고 일을 벌이면 자칫 유행이 지난 아이템을 선택하는 악수를 둘 수 있다. 윤성만 한국프랜차이즈마케팅연구소장은 “성공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아이템은 없지만 트렌드를 읽으려는 노력 없이 성공하긴 어렵다”고 조언했다.
그는 “창업 전에 파악하고 준비할 게 태산처럼 많은데 한국의 예비창업자들은 너무 성급한 감이 있다”며 “하다 못해 소상공인진흥원 홈페이지(www.seda.or.kr)에 들어가 창업 관련 인터넷 강의라도 챙겨 들어야 한다”고 권했다. 창업 전문가 10인은 올해 최고 아이템으로 스몰비어·퓨전분식·소형 커피전문점·세탁편의점·도시락전문점 등을 꼽았다.
이들이 꼽은 아이템은 대부분 매장 크기를 줄이거나 간결한 인테리어를 적용해 초기 투자비용을 줄인 소자본 아이템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며 매장 일손을 줄여 운영비용을 절감하거나, 투자비용 회수가 빠른 테이크아웃 매장이 주목 받았다. 매장 크기가 작으면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창업 전문가들은 스몰비어를 올해 최고의 아이템으로 꼽았다. 모두 다섯 명의 전문가가 올해의 성공 아이템으로 꼽았다. 주요 브랜드로는 봉구비어·용구비어·바보비어 등이 있다. 저녁 먹고 간단하게 2차를 가는 사람이나 데이트 때 마지막 코스로 맥주 한잔을 즐기려는 연인을 겨냥했다.
대부분 33㎡(10평) 크기의 매장을 내고 골목상권을 공략하며 확장했다. 번화가 대로변이 아니라 뒷골목에 자리 잡은 것도 특징이다. 안주도 단순하다. 보통 5개 내외다. 주방 일손을 최소화해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맥주 품질을 높였다. 마른안주에 맛있는 맥주 한 잔 마시는 장소다. 고객은 평균 2시간 머문다. 테이블 회전률이 일반 주점보다 높은 편이다.
2년 전 부산에서 처음 등장한 스몰비어는 현재 전국에 400개 넘게 생겼다. 이진우 창업뱅크 팀장은 “소자본 창업으로 리스크를 줄였고, 한국 술 문화의 틈새를 적절히 파고 든 덕에 선전했다”고 평가했다.
미니 호프집 ‘스몰비어’의 도약
전문가 세 명이 꼽은 퓨전분식도 올해 주목 받은 사업거리다. 주먹밥·컵밥·밥버거 등의 아이디어 상품을 앞세워 성장했다. 저렴한 가격에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대학가나 고시촌에서 인기다. 김밥천국 같은 기존 분식집과는 아이템과 인테리어에서 차이가 난다.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으로 고객의 흥미를 끌어냈다.
청소년이나 20대가 반찬이 많은 찌개나 정식 메뉴보다 간편하게 즐기는 패스트푸드형 식단에 끌린다는 점에 착안했다. 카페분위기가 나는 깔끔한 인테리어로 젊은 여성 고객도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퓨전분식집은 초보자도 손쉽게 배워 시작할 수 있어 초보 창업자는 물론 시니어 창업자, 주부 창업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인기를 끌었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컵밥이나 밥버거는 유행성 아이템이다.
단기간에 주목 받은 만큼 인기가 빠르게 사그러들 수 있다. 한 퓨전한식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아이템을 꾸준히 소개하며 기존 분식과 차별화하는 동시에 김밥이나 떡복기 같은 대표적 분식아이템을 제공하며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 년간 창업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소형 커피전문점은 올해에도 유력 아이템이었다. 창업 전문가 세 명이 추천했다.
창업 전문가들은 소형 커피전문점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점포 위치를 꼽았다. 10m2(약 3평) 규모로 창업할 수 있고 추가비용도 적게 든다. 여기에 혼자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음식점이나 주점에 비해 경영이 수월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단기교육만 받으면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 투자 대비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일단 자리만 잡으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시장이 포화상태라 치열한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주요 도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아직 창업할 장소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유동인구와 입지 정보를 잘 파악하면 도전할 만한 아이템이다.
장정용 한국창업경제연구소장은 “입점을 생각한 가게 앞에서 몇 달 정도는 매일 지나가는 사람 수, 성별, 나이를 파악하는 발품을 팔라”고 조언했다. 그는 장소가 성패를 좌우하는 아이템인 만큼 시작 단계에서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탁편의점은 전문가 두 명이 추천한 아이템이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벌이 부부가 늘며 각광받고 있다. 프랜차이즈 세탁편의점은 세탁 관련 전문 지식이 없어도 창업할 수 있어 많은 예비창업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소자본 창업 아이템이다.
가맹점은 세탁물 접수와 납품만 하고 매장에서 수거한 세탁물을 세탁 전문공장에서 세탁한 후 고객에게 배송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범돈 크린토피아 대표는 “일반 세탁소는 세탁·다림질·수선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지만 세탁편의점은 이런 부담 없이 창업할 수 있는데다 정교한 고객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불황일수록 뜨는 세탁소·도시락점
불황형 아이템으로 꼽히는 도시락전문점도 두 명의 창업 전문가가 꼽은 성공 아이템이다. 저렴한 가격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락은 1인 가구 수 증가, 간편한 식사 선호 등의 사회·경제적인 변화로 사업 전망이 밝은 아이템이다.
한 도시락전문점 관계자는 “소규모 점포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본사에서 제공하는 조리시스템으로 한 두 사람만 있으면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테이크아웃 판매가 많기 때문에 작은 매장에서도 충분히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창업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서울 강남과 경기 일산·분당 등지에서 인기인 와플전문점과 부산에서 열풍을 일으킨 호떡 전문점,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네일샵 등도 올해의 최고 아이템으로 꼽았다.
창업 전문가들은 사업 전 철저한 준비와 차별화된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철 지난 아이템을 가려내는 안목도 중요하다. 창업 아이템은 주기가 있게 마련이다.
정세창 한국창업지원센터 팀장은 “창업 단계에서 브랜드가 인기를 얻는 전성기를 지나면 황혼기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철 지난 아이템을 피하라는 조언이다. 서민교 맥세스컨설팅 대표는 “2~3년 차근히 힘을 기른 브랜드가 요즘 힘을 쓰는 것”이라며 “반짝 아이템이나 지금 전성기를 달리는 아이템은 한번 더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창업 전문가들은 황혼기를 맞기 시작한 아이템으로 닭강정·유럽과자점·육회전문점·짬뽕전문점 등을 꼽았다. 모두 네 명의 창업전문가가 닭강정 창업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틈새 시장을 파고 들어 반짝했지만 닭강정 요리에 흥미를 잃은 고객이 다시 기존 치킨으로 돌아선 영향이 크다. 닭강정 아이템의 원조격인 치킨 시장이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오션이란 단점도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대박을 친 독일 과자전문점도 시들하다. 얼마 전까진 달랐다. 33㎡(10평) 크기 매장에서 하루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날도 있다. 입소문을 타고 강남의 주요 백화점과 압구정동·청담동 일대에 유럽식 과자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후발 주자 대부분 고배를 마셨다. 유럽 과자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며 찾는 사람이 급감했다. 유럽 과자전문점을 기피업종으로 꼽은 한 창업 전문가는 “눈 앞의 성공만 보고 시장 조사도 없이 사업을 따라 시작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고령·1인 가구 주목해 아이템 골라야
육회전문점도 한때 번창했다 최근 찾기 어려워진 아이템이다. 안심·등심·갈비 같은 구이집에 비해 더 나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업종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0년에 1500곳을 넘어선 육회전문점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위생문제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조사에서 위생 규정을 위반한 업소가 속출했고, 이게 알려지자 소비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육회에 대한 불안감이 아직 남아 있어 최악의 창업 아이템으로 꼽혔다.
지는 아이템을 꼽는 데에 부정적인 전문가들도 있었다. 모두 네 명이 답변을 거부했다. 창업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특정 아이템만으로 성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꾸준한 고객관리, 상권의 특성, 시장 변화에 대한 빠른 대처가 생존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당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불황이다. 경기침체로 지갑을 닫는 소비자가 늘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불황을 뛰어넘을 아이템으론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회구조 변화에 주목한다. 노인인구 증가로 실버 아이템 수요가 늘고 있다. 일본에서 성공한 실버 아이템에 주목하는 이유다. 노인용 도시락 배달 서비스, 치매노인을 위한 보조용품, 장례서비스 사업 등 일본에서 자리잡은 아이템이 한국에서 유망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용 아이템도 전망이 밝다. 1인 가구가 해마다 증가해서다. 이미 발 빠른 식당에선 1인용 식탁 비중을 높였다. 포장 단위도 소포장 단품 포장이 늘고 있다. 김갑용 소장은 1인 가구 상대의 기술 창업이 유망하다고 전망했다. 창업 준비 기간이 요식업에 비해 길지만 시장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어 노력하는 만큼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1인 가구를 위한 청소·세탁·집안 개·보수 시장이 커질 것”이라며 “이런 분야는 경험에 비례해 고객군을 늘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 자료출처 :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