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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神秘思想과 佛敎와의 對話
- 神性의 空性과 超脫의 普遍的 宗敎性 -
김 용 표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한국불교학 제72집, pp.7-56.
서울:(사)한국불교학회, 2014.12.31.
Ⅰ. 문제와 해석의 준거
Ⅱ. 종교 간 대화의 공동기반으로서의 신비주의
Ⅲ. 에크하르트의 話頭와 突破解釋學
Ⅳ. 에크하르트 신비사상과 불교의 접점 해석
Ⅴ. 에크하르트와 종교 간의 대화
Ⅵ. 맺음말
내가 神을 보는 눈은 神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나의 눈과 神의 눈은 하나의 눈이다.
하나의 봄, 하나의 인식, 하나의 사랑이다.
~ Meister Eckhart 설교13 (DW I:12)
Ⅰ. 문제와 해석의 준거
본 연구는 중세 독일의 신비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9~1328 경)의 신비사상과 불교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사상이 함축하고 있는 보편적 종교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에크하르트는 사후인 1329년에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심판받은 후, 600여 년 동안 소수의 전승자 외에는 잊힌 존재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와서 그의 신비 사상은 독일 낭만주의의 등장과 함께 재조명받기 시작하였고, 현대 대화 문명 시대를 맞아 에크하르트는 범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다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다양한 차원을 지니고 있으므로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 에크하르트 연구가들은 그를 ‘이단사상가’, ‘스콜라적 신비사상가’, ‘신플라톤주의자’, ‘동양적 그리스도인’, ‘인본주의 신학자’, ‘독일종교의 창시자’, ‘신비적 무신론자’, ‘중세서양의 大禪師’, ‘익명의 불교도’, ‘비범한 그리스교인’, ‘서양의 獨修聖(스스로 힘으로 無我 緣起와 空의 이치를 이해하고 깨달은 성자)‘ 등의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들은 그의 일부만을 보는 관점일뿐 에크하르트의 참된 면목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과연 에크하르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본 논고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본질적 지향점이 ‘超脫을 통한 인간의 보편적 宗敎性 실현’에 있었다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에크하르트의 저작과 설교집에 나타나고 있는 근본정신은 ‘人間과 神의 同一性 發見’에 있었으며, 이를 위해 ‘解釋學的 突破’를 통해 기존의 전통과 도그마의 껍질을 깨뜨리고자 하였다. 돌파(Durchbruch)란 모든 我性에 대한 집착, 인간에 대한 집착, 그리고 神에 대한 집착마저도 떠나서 ‘神性으로 뚫고 나감(Durchbruch in die Gottheit)’을 의미한다. 그것은 깨뜨림과 해체를 통하여 超脫(Abgeschiedenheit)의 空性을 실현하는 일이다.
에크하르트는 비록 가톨릭 전통에 소속된 수도원장이자 파리대학 교수의 신분이었지만, 그가 추구한 종교적 영성은 기독교 신비전통을 훨씬 뛰어넘어 ‘神人合一 宗敎’의 새 지평을 열었고, 가난과 超脫의 가르침을 통해 모든 종교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종교의 본질이 제도나 교리나 전통에 있지 않고 인간의 내면 근저에 있는 神性의 빛과 無我의 空性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통찰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의 깊은 종교성에 기반을 둔 대화의 지평을 크게 열어주고 있다.
에크하르트 사상은 불교를 비롯한 인본주의적 동양종교 사상과 매우 가까운 지평에 도달해 있었다. 비록 그의 사상이 實體論的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대승 空사상과 이를 실천체계로 발전시킨 禪佛敎와 매우 유사한 실천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神性과 絶對無, 超脫과 無執着, 無願, 無所有, 無知, 신의 아들, 고귀한 인간 등의 가르침은 無相, 無念, 無住의 삶을 가르치는 대승 空思想과 그 지향점이 매우 유사하다.
에크하르트의 求道的 삶의 旅程과 철저한 超脫사상은 전통적 唯一神論에 기인된 종교 간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神(Gott)’과 ‘神聖(Gottheit)’의 구분을 통해 三位一體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肉化의 唯一回性論을 비판하며 누구나 神과 아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리하여 ‘永遠한 現在’ 속에 항상 창조하는 자유의 삶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현전하는 ‘독일어 및 영어 논고와 설교집’은 여러 차례 편집 출판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도 에크하르트 저작과 관련 번역서가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에크하르트 연구사는 저작의 진위에 관한 서지학적 연구, 스콜라 철학적 연구, 그리고 역사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최근에는 불교를 비롯한 비교종교사상적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진면목을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의 근원에서 조망하여, 그 인류정신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아직 미진하다.
신비주의는 교리나 제도화된 종교전통보다도 내적 종교체험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신비주의는 종교 간의 외적 장벽을 넘어서는 심층적 대화의 공동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차원에서 불교와 기독교 신비주의 간의 대화의 일환으로, 에크하르트 신비사상에 대한 대승 空觀的 해석을 통하여 그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밝히고. 나아가 그의 초탈사상이 지닌 종교성의 가치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에크하르트가 단순한 혁신적 신비사상가가 아니라 인류종교사에 ‘세계를 포섭하는 정신’과 ‘보편적 종교성 교육’의 길을 열어 준 聖者였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Ⅱ. 종교 간 대화의 공동기반으로서의 신비주의
1. 신비주의의 논쟁점
종교 신비주의(mysticism)의 물줄기는 동서의 여러 종교에서 발견된다. 동서양 종교신비주에 대한 최초의 비교연구서를 저술한 루돌프 오토 (Rodolf Otto)는 “신비적 사색과 영적 삶은 모든 종교의 근원적 요소로서 동서간의 종교를 만나게 할 수 있는 인간 영혼의 심층과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하폴드(F.C. Happold)도 신비주의는 모든 종교의 근원이며 고등종교는 신비적 표현(mystical expressions)을 지니는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신비주의는 종교 간의 이해를 단절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는 교리와 종교공동체의 전통을 초월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루돌프 오토는 인도종교 연구가답게 신비주의의 어원을 梵語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비(mysterium), 신비적(mystes), 신비주의(Mystik)이라는 말들은 범어의 ‘mus’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는 어간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mus’란 말은 ‘감춘다’, ‘숨긴다’, ‘비밀리 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속인다’거나 ‘몰래한다’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신비주의’라는 용어는 종교에 따라 그 정의가 다르고, 또한 분야별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의 개념은 교리나 의례보다는 신앙의 대상 또는 궁극적 실재와의 직접적 접촉이나 융합체험을 중시하는 유형의 종교를 말한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신비주의는 궁극적 실재인 신과의 교통과 합일을 추구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신비주의는 지식체계라기보다 하나의 종교경험이며, 신이나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경험이라는 것이다. 틸리히는 신비경험의 내면적 요소, 즉 영혼 안에 있는 궁극적 실재에의 참여를 통한 주객의 동일성 경험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로 신비주의를 정의할 경우, 에크하르트를 신비주의 사상가 또는 신비가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른바 셈계의 종교(semetic religion)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도 신비주의 전통은 면면히 흘러왔다. 유대교의 카발리즘(Kaballism)이나 하시디즘(Hasidism), 이슬람교의 수피즘(Sufism), 그리고 기독교에서도 바울(Paul) 과 요한(John)의 신비주의, 플라톤주의(Platonism)와 프로티누스(Plotinus), 중세 교부들의 신비주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성 버나드(St. Bernard) 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등 실로 다양한 신비주의의 흐름이 이어져왔다.
현대의 서구 신비사상은 힌두교와 도교,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동양종교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비주의가 그 구조와 성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월터 스테이스(Wallter T. Stace, 1886~1967)는 신비주의를 ‘외향적 신비주의’와 ‘내향적 신비주의’로 구분한다. 외향적인 길은 자신의 바깥에서 一者를 발견하는 것이고, 내향적의 길은 내적으로 자기를 관찰하여 인간성과 자아의 근저에서 一者를 발견하는 것이다.
셈계 종교의 유신론적 신비주의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절대타자(wholly other)인 신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하여 신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신비적합일(mystical unity)’ 체험의 유형이다. 둘째는 신과 인간이 본래 하나라는 神人合一의 신앙아래 자신이 곧 신이 될 수 있다는 ‘신비적 동일성(mystical identity)’을 믿는 유형이다. 전통적 동양의 신비주의 유형인 ‘梵我一如’사상은 대표적인 동일성 유형의 신비사상으로서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梵과 神我가 합일되는 종교체험을 목표로 한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사상도 인간이 신과 동일함을 주장한다. 東學에서 시작된 天道敎의 ‘人乃天’ 사상은 한국적 ‘天人合一 思想’으로 ‘각자의 몸 안에 모시고 있는 하느님(한울)을 스스로 깨달으면 자신이 곧 하늘이 된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에크하르트의 신인합일 사상과 그 내적 구조가 유사하며, 스테이스의 내향적 신비주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 公敎와 密敎의 宗判論
영원주의 철학(perennial philosophy)은 세계종교는 본래 하나라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주장한다. 하나의 보편적 진리가 각 종교별로 심리적, 지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 다르게 수용되어 나타났을 뿐이라고 본다. 각 종교의 핵심에 살아있는 하나의 보편적 진리는 종교의 창시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신비가들의 영감에 의해 재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비가 슈온(Frithjof Schuon, 1907~1998)은 세계의 종교를 公敎(顯敎, exoteric teaching)와 密敎(esoteric teaching)로 구분하는 특이한 종교 敎判論을 제안하였다. 公敎는 공개된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종교의 표층적 측면인 교리와 제도, 의례 등을 가리킨다. 이에 반하여 密敎란 교리나 언어를 통하지 않고 비밀리 전수한 가르침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以心傳心)’ 전해지거나, 또는 비밀리에 특정인에게 전승되는 종교를 말한다. 이는 마치 불교의 일파인 밀교권에서 佛法을 현교와 밀교로 구분하는 교판과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세계종교를 불교, 기독교, 힌두교, 유교, 이슬람교, 도교 등과 같이 수직적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영원주의에서는 종교를 수평적인 구분, 즉 ‘公敎的 신앙인’과 ‘밀교적 신앙인’으로만 구분하며, 이러한 종교현상은 모든 역사적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불교에 현교와 밀교가 있듯이, 기독교인 중에도 공교인과 밀교인이 있고, 이슬람, 유대교에도 이러한 구분이 가능하다.
슈온의 이러한 종교교판의 의도는 오직 밀교적 종교에서만 모든 종교의 공동기반이 되는 ‘보편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여러 종교에 속한 밀교인들은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의 진리를 공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밀교인의 보편적 진리를 슈온은 ‘초월적 통일(the transcendent unity)’이라고 부른다. 세계의 二元的 요소를 不二性(non-duality)으로 통찰하는 것이 초월적 통일이다. 그것은 絶對者와 有限者 사이, 涅槃과 無明 사이, 브라만과 아트만, 에크하르트의 신과 영혼 사이,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그것(it)과 너(Thou) 사이 등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二元 的 差異 속에서도 이를 초월하는 동일한 통일성이다. 여기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반대의 일치의 논리, 즉 ‘不二的二元論(non-dualistic dualism)’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신비주의 체험은 밀교적 종교에 속한다. 외형적으로는 매우 다른 종교 속에서도 단일성과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슈온의 통찰은 에크하르트의 신비신학이 지닌 종교적 보편성을 논증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논리가될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문자적 의미인 공교 외에도 종교의 본질적이고 핵심인 밀교적 차원이 있다는 메시지는 종교다원주의에 새로운 비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라다크리슈난(Radhakrishnan)은 “종교가 인간정신의 자연스러운 추구라면, 모든 종교가 어떤 공통점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석가와 예수, 두 성인이 내세웠던 무아와 자기희생은 두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통된 사실이다”라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여러 신비주의의 가르침은 그 개념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合一(unity)’이라는 개념은 신비주의의 핵심 주제어이다. 神人合一, 自然合一, 天人合一, 道通 등의 이념은 대상과 주관의 二元性을 극복하고자 한다. 붓다의 정각 체험이나 예수의 성령 체험, 道法自然, 梵我一如 등의 체험은 우주적 실재나 그 원리 또는 궁극성과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공통성이 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교리적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는 성숙된 종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종교성에는 平和, 智慧, 사랑, 調和, 感謝, 淸淨, 慈悲, 自他一體, 喜悅 등의 특징이 있다. 여기에 신비주의가 종교적 보편성과 종교-이념 간 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Ⅲ. 에크하르트의 話頭와 突破解釋學
1. 해석학적 상황과 異敎徒 사상의 수용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다. 독일에서 태어나 15세쯤 도미니코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후에 파리 대학 교수와 관구 수도원장으로 집필과 교육과 설교에 일생을 보낸 학자이자 설교가였다. 에크하르트는 신플라톤학파를 계승한 독일신비주의 전통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신비사상은 제자인 타울러(Johannes Tauler, 1300~1361 경)와 수소(Heinrich Seuse, 1296~1366) 등을 통해 비밀리에 전승되어, 19세기부터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과 연결되었고, 현대에 와서 그의 사상은 영성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크게 부활하고 있다.
에크하르트를 둘러싸고 있던 종교해석학적 상황은 크게 다섯 가지 요소로 기술할 수 있다. 첫째, 삼위일체설을 중심으로 성립된 정통 가톨릭 교의와 율법적 상황이다. 둘째, 당시 신학계를 지배하던 스콜라철학적 전통이다. 셋째, 에크하르트가 개인적으로 수용한 기독교 신비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이다. 넷째, 이교도 사상인 아랍과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이다. 다섯째, 라인지방의 베긴회(Beguines) 중심의 독일 신비주의이다. 이러한 다섯의 물줄기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체험과 융합되어 새로운 신비해석학의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에크하르트 당시의 종교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1274)계의 스콜라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 430)계의 신플라톤주의(Neo Platonism)가 주류였다. 에크하르트가 속한 도미니크 수도회는 스콜라 신학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라틴어 '삼부작 (Opus Tripartitum)'들은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의 형식을 따라 집필되기도 하였다.
에크하르크 이전의 기독교 신비주의는 헬라사상을 헤브라이즘과 결합시킨 필로(Philo of Alexandria, BCE. 20~CE.50)가 신비적 성서해석을 강조한 데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필로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숨겨진 신의 뜻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후 바울과 요한의 신비주의 전통을 계승한 다양한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나타났다. 에크하르트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실제로 그의 사상의 기본 구조는 플로티노스의 신비사상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위-디오니우스(Pseudodionysius)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도 지대했다. 에크하르트는 신플라톤주의 신비언어의 특징인 直觀과 詩的 표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3세기 후반에 라인지방을 중심으로 급진적 종교공동체가 출현하였고 에크하르트는 베가르회(Begards)와 베긴스회(Beguines)와 같은 수도단체에서 독일어로 설교하면서 그 신비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표출하였다. 에크하르트는 베긴회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긴회는 평신도 수도단체로 절제와 금욕, 가난과 순결, 노동과 자선을 실천하려는 신앙운동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고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에크하르트의 종교사상 사적 중요성은 전통 신학에 대한 저항과 타종교 사상의 수용과 개방성이다. 그는 스스로 이교도의 가르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초탈에 대하여'라는 설교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이교도 스승들의 저서와 예언자들의 저서들, 그리고 신약ㆍ구약 성서도 많이 읽어왔다.
에크하르트의 설교에는 그가 영향을 받은 이교도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와 이슬람과 유대의 신비사상의 개념이 많이 동원되고 있다. 그는 때로는 “위대한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말로 그의 설교를 시작할 때가 있다. 이때 위대한 스승은 異敎徒 聖者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이교도 스승’들과 ‘예언자’, ‘위대한 스승’의 저서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신약과 구역 성서를 제외한 책들은 가톨릭 전통 밖의 타종교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나 靈知主義(Gnosticism),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5~1204)와 같은 유대교 신비가, 또는 아랍의 아비센나(Avicenna)의 저술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도 또는 동양의 어떤 신비종교나 철학 텍스트를 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에크하르트 이교도의 서적과 성서에 대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인간이 가장 최고로 신과 결합되게끔 하고 신적 본성을 지닐 수 있게도 해주는, 그리고 창조 이전에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이 신과 인간의 형상을 일치하게 해주는 최고의 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추구해왔다”고 술회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가르치는 ‘신과 인간을 일치하게 해주는 최고의 덕’을 찾는 것이 求道者 에크하르트의 치열한 話頭였음을 알 수 있다.
스즈키는 아난다 쿠마라스와미(Ananda Coomaraswamy)의 글을 인용하여 에크하르트의 사유구조가 인도적 사고와 매우 유사함을 논증하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놀랍게도 인도적인 사고방식에 매우 유사하게 표현한다. 몇 개의 완전한 구절, 그리고 많은 단순한 문장들은 산스크리트를 직접 번역한 것처럼 여겨진다. (…) 물론 유럽의 전통에 선 플라톤적이고 아랍적인 근원에서 나온 동양적인 요인들이 얼마간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인도적인 요소들이 실제로 에크하르트의 저술에 나타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추에 의해서 증명된 것은 한 사상체계가 다른 사상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세계와 모든 시간에 있어서 형이상학 전통의 일치이다.
에크하르트가 인도적 사유와 유사한 사상을 지녔다는 것은 그가 인도-유럽어족이 공유하고 있는 아리안 정신의 계승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에크하르트는 교단적으로는 가톨릭 전통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의 성서 해석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만일 에크하르트가 당시에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사상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梵我一如의 가르침이나 般若 空思想, 禪의 無相, 無執着, 無住, 無念의 가르침을 접했다면 아마도 그가 말하고 싶었던 神性의 源泉을 발견하고 틀림없이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2. 神性의 發見과 突破解釋學
에크하르트의 저작과 설교집에 나타나고 있는 그의 사상의 일관된 지향점은 ‘인간의 神化’를 향한 ‘突破(Durchbruch)’였다. 그의 ‘突破解釋學 (Hermeneutics of Breakthrough)’의 핵심 주제는 혁신적 神論에 있었다. 그는 ‘神을 넘어선 神’을 발견하고 ‘神(Gott, God)’과 ‘神性(Gottheit, Godhead)’을구분하였다. 神은 인격적 존재이나 神性은 이를 넘어서는 無의 深淵이었다. 에크하르트에 있어서 돌파란 純粹한 絶對無인 ‘神性으로 뚫고 나감 (Durchbruch in die Gottheit)’을 의미한다. 인간의 인식과 개념을 넘어서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적 구속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이것이 超脫(Abgeschiedenheit)이다. 神性은 기존의 三位一體(聖父-聖子-聖靈)의 神觀을 초월하는 영혼의 ‘單純한 根柢(einfaltiger Grund)’이다.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神性의 발견은 곧 인간이 스스로 신과 동일함을 선포하는 일로 이어졌다. 이러한 급진적인 신관은 당시에나 현재나 전통적 신학의 禁忌를 완전히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일까? 에크하르트는 이 경계를 과감하게 돌파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동등한 관계임을 천명했다. 에크하르트 설교집을 英譯한 브래크니(Raymond B. Blakney)는 신성의 발견이 에크하르트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이라고 하였다.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와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에 대해 발견한 것, 바로 이것이 그가 원했던 선물이었고 실제로 그가 가장 풍요롭게 선사한 것이었다. 분명히 그는 모든 편협한 개념들 너머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끌어올렸으며, 여러 형태로 표현된 보편적이고 높은 영성운동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면적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에크하르트는 ‘낱알을 원한다면 당신은 그 껍질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Blakney, 설교 11)이라고 했다. 잘못한 허상을 깨뜨리고 생명의 진수를 찾아내려면 미망과 무명의 장막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돌파는 마치 金剛石과 같은 견고한 보석으로 모든 미혹과 번뇌를 단번에 깨뜨리는 ‘能斷金剛般若’와도 같다. 執着과 無明을 단번에 切斷하는 智慧라는 뜻이다. 金剛(Vajra)은 본래 벼락이라는 뜻도 있는데 그 기능은 능히 切斷하는 데 있다. 에크하르트의 돌파도 能斷金剛과 같이 我性에 기인된 二元的 槪念과 執着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깨달음의 개념은 ‘깨짐’의 의미로 해석된다. 완벽한 깨짐은 깨달음의 필수 요건이다. 무엇이 깨뜨려지는 것인가? 그것은 정확하게 我執이다. 자기라는 것에 집착되어 있는 모든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체계 들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본래의 不二的 實相을 왜곡하는 분별심을 내게 하는 인간의 침전된 사상을 깨뜨리는 일이다.
에크하르트의 돌파는 ‘깨짐을 통해 깨침’을 가르치는 禪家의 話頭 打破와 유사하다. 돌파는 전통과 언어의 장벽으로 한정된 진리의 해방이었다. 그는 파괴와 해체를 통해 영혼의 深淵에서 순수한 근원인 ‘적막한 사막’의 초연한 빛을 보았다. 니시다니 게이지는 에크하르트의 돌파를 절대부정을 통한 허무의식의 돌파로 해석한다. 인간은 絶對無에서 절대죽음을 체험하며, 이 죽음의 돌파를 통해 虛無의 심연을 초월할 수 있다. 大死一番의 돌파는 我執을 해체하고, ‘영혼 안에서 신의 아들’을 동시에 탄생시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초탈과 탄생과 돌파의 시간적 상관관계에 관한 문제가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 세 개념 사이의 관계는 ‘破邪 즉 顯正’이라는 中觀學의 논리로 볼 때 선후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깨짐(destruction)이곧 깨침(enlightenment)’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초탈은 곧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되는 근원적인 수행인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설교는 외적 언어만으로는 그 내면에 있는 신성의 거대한 힘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가 신성의 광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듯이, 그의 신비언어 해석은 역설성과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문자적 해석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신비체험은 부정과 역설적 언어로 흔히 표현되며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와 양극의 조화를 동시에 수용하는 논리 파괴도 흔히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에크하르트의 언어 해석을 위해서는 원저작자의 체험을 역으로 체험하여 그와 동일한 정신적 경지를 체험하는 相卽相照의 심층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작자의 심층적 내면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작자의 심리와 의도해석이 중요하다. 심리적 해석이란 독자가 저자의 의도로 다가가는 해석학으로 언어의 내부에 숨어 있는 저자의 심리에 대한 추체험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슐체 마이치어(Schulze Maizier)도에크하르트의 내면의 심연을 통찰할 것을 주문한다.
마치 용암과 같이 모든 인간의 껍질 아래 잠자고 있는 거대한 힘을 통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에크하르트 설교의 고요함과 온화함 속에 폭풍처럼 일고 있는 거대한 무엇인가를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저작이나 설교의 출발은 항상 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이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의 주석은 전통과 관습과는 아주 판이하게 전개된다. 성서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 근저가 확연히 달랐다. 그는 문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유롭고 독창적 해석을 전개한다. 이러한 태도는 “의미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依於義 不依語)”라는 불교의 ‘四依法’의 해석학적 준칙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텍스트를 이해함에 있어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그 언어의 배후에 있는 의도와 심리적 근원을 보라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보다 신비적 독법으로 해석해야 하며 문자 이면에 숨겨져 있는 眞意(artha)를 파악하는 의도해석을 중시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성서해석학의 입장에 대해 프랭크 토빈(Frank Tobin)은 첫째, 설교자가 청중을 놀라게 하려는 열망에 고무되고 있었으며, 둘째, 철학과 신학의 경계를 없애려는 경향, 셋째는 주석의 목적이 종교적인 삶과 실천적 유용성에 있다는 점이었다고 지적하고 한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기만 한 성서구절 안에 들어있는 사변적이며 신비한 본질에 대해 전혀 예기치 못한 의미나 때로는 숨을 죽이게까지 하는 자극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능력이 있었다.
에크하르트의 라틴어 저작은 추상적 개념을 지적으로 정교하게 논리화하는 스콜라철학적 방법을 따르고 있으나,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 설교집에는 보다 자유로운 감성이 힘차게 약동하는 신비적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에크하르트의 언어들은 청중과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찬 매력이 있다. 에크하르트의 언어는 영혼의 근저에서 신성과의 합일체험에서 나오는 힘찬 약동이 지적 논리와 함께 표출되는 특징을 보인다. 때로는 침묵의 심연에서 오는 시적 직관에서 나오는 신비적인 창조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의 신비언어는 ‘말없는 말’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마치 禪家에서 有言에서 無言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려는 것과 같은 설법방식이나 마음으로 경전언어와 계합케 하는 ‘觀心釋’과 같은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설교의 기본정신과 주제는 항상 아래의 네 가지 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내가 설교할 때 버리고 떠나 있음(超脫)에 대해 항상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둘째, 사람은 단순한 善인 神으로 되돌아가 그와 하나의 형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신이 인간의 영혼 속에 불어넣어 준 위대한 고귀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를 통해 인간은 신에 도달할 수 있다.
넷째, 신적 본성의 순수성과 그 안에 자리 잡고있는 광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에크하르트의 전체 설교내용을 세분해 보면, (1) 신과 인간의 동일성 (3) 신성에의 돌파와 영혼 안에서 신의 아들 탄생 (3) 가난과 초탈의 수행 등 세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에크하르트가 전통 신학에 던진 도전적 명제들이다. 첫째는 인간과 신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존재이다. 인간은 신이며 神化되어야 한다. 둘째, 신의 육화는 예수에게만 일어난다는 肉化의 唯一回性論을 부정하고 누구나 신의 아들로 태어나 신의 아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초탈의 덕은 사랑이나 겸손이나 자선보다 수승하며, 인간은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초탈중심주의이다. 이 세 가지 명제는 에크하르트 당시의 교회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크하르트의 설교는 그 내적구조가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전통신관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원적 신학을 계승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이를 변증법적으로 부정하며 神人一致의 사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크하르트를 해석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하게 그 설교의 의도와 深淺의 차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세간적 언어와 궁극적 의도를 상호순환으로 이해해야 하고, 眞과 俗의 변증법적 이해를 통해 그가 지향하고 있는 無의 深淵에 함께 동참하는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3. 신비적 동일성과 이단논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입장은 전통적 기독교 신비주의 ‘신비적 합일’을 뛰어넘는 ‘신비적 동일성’에 있었다. 그는 가톨릭 교회에 소속된 수도원 관구장 신분이었으므로, 신의 ‘절대 타자성’을 부정하고 汎在神論이나 ‘人間의 神化’를 주장하는 일이 당시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신의 은총과 교회의 전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신과 인간의 동일성과 합일의 메시지를 밝히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기소하였으며, 에크하르트에 대한 재판과 변론은 그의 마지막 생애의 2~3년간 계속되었다. 그의 사후 교황은 이단으로 정죄하는 칙령을 내렸고 아직도 그 판결은 유지되고 있다. 교황 요한 22세 칙서(1329년 3월27일) 「In agoro dominio (주님의 밭에서)」는 “주님의 밭에 사악한 씨앗을 속아내고 오류의 가시덤불을 뿌리채 뽑아 가톨릭의 진리의 씨앗이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에크하르트의 28개의 설교중 17개 항목에 오류와 이단 성격이 있고, 나머지 11개는 이단혐의가 있다고 판시했다.
설교형제수도회(도미니코회) 소속의 성서학박사이며 교수인 에크하르트라는 독일 출신 사람이 최근에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고자 하여 신앙의 기준과 깊이 있는 숙고에 상응하지 못했으므로 참으로 고통스럽게 공지한다. 이는 그가 진리로부터 귀를 막고 지어낸 이야기로 향했기 때문이다. 오류로 들어선 이 사람은 진리의 빛 대신에 감각의 어둡고 가증스러운 어둠을 확산시키기 위해 빛의 천사로 가끔 둔갑하는 거짓 교부들에 그릇 인도되어 신앙의 밝은 빛에 반하여 주님의 밭에 가시덤불과 잡초를 뿌리고 해로운 엉겅퀴와 독초를 열심히 가꾸기 위해 많은 사람의 마음에 참된 신앙을 가리는 수많은 명제를 퍼트려 왔다.
에크하르트의 혁신적 성서 해석은 당시의 교회의 교의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단으로 정죄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그의 설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신경을 쓰지 말라. 왜냐하면 인간이 이 진리와 같아지지 않는 한 그는 이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신의 심정에 직접 매개 없이 도래하는 감추어지지 않고 드러나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을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누가 이단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자신의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오히려 이단이 될 수 있을 것임도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오류로 간주했다는 곳이 그들의 오류이다. 그들은 모든 오류를 이단으로 간주했다.
여기에서 에크하르트는 의지적으로 그가 참된 예수의 정통자임을 확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神人의 同一性이 예수의 참된 가르침이며 교회의 정통 교설이 되어야 함을 믿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저항정신과 그가 설한 진리에의 확신은 다음의 독백으로 명백해진다.
신이 이 진리에 등을 돌린다면, 나는 진리에 매달리고 신을 떠나기를 원할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이단 심판에 대한 ‘변론’의 결론에서 그가 주장해온 ‘신의 씨앗론’, ‘영원한 현재의 창조론’, ‘신인합일론’, ‘피조물의 無論’, ‘인간의 신의 행위가능론’ 등에 대한 심판자들의 오류를 신약성서에 근거한 인용으로 반박하였다. 이 변론에서 에크하르트가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문헌에는 ‘요한복음’의 인용이 많은데, 이는 그가 ‘요한복음’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 철학과 영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이 복음서는 그리스적 로고스 철학을 신학에 도입하여, 기존 공관복음서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론을 형이상학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해석학도 로고스 사상에서 출발하여 靈知主義 및 신플라톤주의와 결합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신학을 플라톤주의적 전통과 결합하면서도 신과 신성에 대한 신앙의 근원을 성서의 정통성에다 연결시켜 그의 사상을 정통신학으로 확립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재판과정에 나온 논쟁이나 심판위원들의 주장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관료주의적 재판과 철학적 신학적 논쟁은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 논쟁에서 제기된 해석학적 문제가 에크하르트 설교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냐’이냐 아니면 ‘의도적 해석’이냐 하는 문제였다는 점이다. 에크하르트는 설교의 의도를 강조하려 했고, 심판위원들은 문자에 나타난 이단성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그의 설교와 신념에 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전통 제도권을 변혁시키려는 행동적 종교개혁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비사상은 수소(Heinrich Seuse) 등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Ⅳ. 에크하르트 신비사상과 불교의 접점 해석
1.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의 에크하르트 재발견
불교적 관점에서 처음 에크하르트의 가치를 재발견한 이는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였다. 그의 저서 ‘기독교와 불교 신비주의 (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는 비록 체계적인 학술서는 아니지만 선불교의 입장에서 에크하르트의 위상을 해석한 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스즈키는 에크하르트를 ‘비범한 그리스도인(extraordinary Christian)’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에크하르트의 사고방식이 禪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으며, 특히 에크하르트가 지닌 심원한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사상은 불교적 명상에 나온 것과 같음을 밝히고자 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몇 편의 설교를 읽었을 때, 그 가르침들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어떤 고대나 근대의 기독교 사상가도 그러한 대담한 사상을 품을 수 있다고 결코 기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밝혀진 생각들은 불교사상에 밀접히 접근했으며, 또한 결정적으로 불교적인 명상에서 나오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추측할수 있는 한 에크하르트는 비범한 기독교인으로 확신한다.
실제로 스즈키는 불교와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고, 이는 후대의 학자들로부터 지나친 ‘過單純化’이라는 비판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즈키의 이해는 禪師의 안목에서 볼 때, 그 종교체험의 지향점이 같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교학적 용어나 맥락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철학적 태도와는 달리 스즈키는 종교체험의 심층적 일치를 우선시한 심리적 해석으로 에크하르트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스즈키가 선택한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주제별로 요약하고, 이에 대한 그의 해석을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시간과 창조: 영원한 현재에 신은 독생자를 탄생시킨다(Blakney, p.212). 창조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에 항상 일어나고 있다. 창조는 끊임없이 계속되며, 신의 작업은 언제나 절대 현재에 행해 진다(Evans, p.209). 58)
(2) 존재-삶-작업: 존재는 신이다. 神과 存在는 동일하다. 창조는 無로부터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다(Blakney, p.278). 우리의 전 삶은 존재이며 신이다. 존재로서 신 안에 현재 있는 것은 천사의 지식보다 수승하다(Evans, p.206).
(3) 죽음과 존재-신: 어느 누구도 완전히 죽은 사람만큼 신을 소유하지 못한다. 죽음은 그들에게 존재를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으로 존재를 부여받았다. 존재를 갖는 만큼 신과 그만큼 가까워진다(Evans, p.206; Quint, 설교 9, DW18, Pf82).
(4) 신-존재-사랑: 신의 모든 존재를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사랑한다(Blakney, pp.224~25).
(5) 신과 나의 동일성: 나는 오로지 神이지 않으면 안 되며, 神은 나이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래 완전히 하나여서, 내가 행하는 일이 곧 신의 일이다(Evans, p.247).
(6) 삶과 신의 존재: 신의 존재는 나의 삶이고, 나의 삶이 신의 존재란 무엇인가? 신의 존재가 있음은 나의 존재가 있음과 같다. 나는 신과 동일하여 더 높지도 더 깊지도 않다(Blakney, p.180). 62)
(7) 神과 神性: 신(God)과 신성(Godhead)은 땅이 하늘과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신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일하고 활동적이며 모든 시간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神性은 부동한 채 초연하다. 신성은 인간이 지닌 모든 분별심을 모두 無化시킨 신과 인간의 본성이다.
(8) 완전한 분리와 초탈(Abgeschiedenheit) 64) : ‘超脫’은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진실이다. 완전한 분리는 생각을 끊은 것이요, 낮고 높음, 사랑과 미움을 떠나 온갖 사물을 평등하게 그대로 놓아둔다. 그러므로 초탈은 신성의 본성으로 사랑보다 높고, 겸손보다 높으며, 자선보다 높은 경지이다.
이상과 같이 스즈키의 에크하르트 이해는 超脫과 神性의 空性에 집중되고 있다. ‘超脫(Abgeschiedenheit)’은 純粹無, 絶, 無執着, 放下着, 離言絶慮, 心行處滅의 경지와 같다. 스즈키는 초탈을 산스크리트의 ‘anabhinivesa (絶)’, 또는 ‘asaṅga(無着)’과 유사한 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神性의 개념을 순수무로 전개할 때 불교의 공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단언한다.
여기에서 스스키는 神性의 純粹無的 성격을 空사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를 네 주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空은 모든 二元論을 초월한다. 불교의 공은 없음과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空은 相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과 객관, 생과 사, 神과 세계, 有와 無, 긍정과 부정 등의 모든 상대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둘째, 空은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충만한 제로(零)’이며, 아무리 써도 다시 솟아나는 샘물과 같이 ‘비워질 수 없는 공허’이다. 셋째, 순수한 공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返照하는 마음이다. 마음을 텅 비웠을 때만 如如한 마음이 될 수 있다. 心月은 빛과 그 경계마저 삼켜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그 안에 무한한 빛살을 간직하고 삼라만상을 삼킨다. 넷째, 공은 분별식과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얻을 바가 없는 지혜(無得智)이다. 無得智는 언어를 초월하여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스즈키의 해석은 에크하르트의 신성과 불교의 공을 완전하게 하나로 보는 관점인데, 이러한 해석은 엄밀한 철학의 입장에서는 무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에크하르트는 신플라톤주의적 실체론이나 가톨릭 신학의 실체론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는 실체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염원했지만 실제로는 실체론적 언어와 사고 안에 그 초탈을 염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先理解의 影響史가 그에게 준 어쩔 수 없는 해석학적 한계였다.
스즈키가 에크하르트를 재발견한 이후, 일본에서는 이른바 ‘교또학파(京都學派)’를 중심으로 에크하르트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니시다니 게이지(西谷啓治, 1900~1990)와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 1926~ )는 교또학파의 중요 핵심어인 ‘絶對無(Absolute Nothingness)’의 개념으로 에크하르트의 否定神學을 해석한다. 이들은 스즈키와 마찬가지로 에크하르트의 神性을 空觀과 대비하고 있는데, 그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니시다니 게이지는 에크하르트의 神性의 絶對無性과 초탈을 통한 주체적 인간성 확립에 주목하였다. 그는 에크하르트가 절대무로 표현한 신성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도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절대부정은 절대죽음이며 이 죽음을 통해 참된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다. 니시다니는 절대무와 신성의 일치에서 불교와 에크하르트는 일치하며,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심연에 놓여 있는 虛無도 절대무의 체험에 의해 극복된다. 에크하르트의 돌파는 바로 이 허무의 돌파이며 절대 죽음의 돌파이다. 이 돌파는 내부의 我性의 해체를 통해 영혼 안에서 신의 아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예수의 聖肉身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간에게는 ‘신의 탄생’이었지만 에크하르트는 그 사건을 단지 인간 내면의 영적인 문제로 보았던 것이다.
우에다 시즈테루는 스즈키와 니시다니와는 달리 에크하르트의 神性은 空사상에 비하여 철저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두 사상의 상부구조는 일치하지만 선불교에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신학에 있는 하부구조인 인격적 신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에다는 불교의 공사상이 에크하르트의 신성보다 더 심원한 근원성과 온전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야의 공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우에다의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공사상을 우열 비교에 적용하는 것은 공관을 다시 상대화하는 것일 뿐이다. 우에다는 공사상의 절대화나 공사상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가난(無願-無知-無所有)의 수행
에크하르트는 神人合一의 방법으로 가난(Armut)과 초탈의 수행을 제시하였다. 그의 가난에 관한 설교는 ‘마태복음’ 5:3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에 근거하고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외적 가난이 아니라 내적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가난은 ‘無願’과 ‘無知’와 ‘無所有’였다. 이 세 가지 가난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난한 사람은 어떤 것도 원치 않고(nichts willen)
어떤 것도 알지 않고(nichts wissen)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nichts haben) 사람이다.
첫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참회와 외적 신앙 행사 가운데 여전히 아집(selbstishen Ich)에 빠져 있다. 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의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한 그런 사람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가난을 갖지 않았다. 내가 최초의 원인 가운데 서 있었을 때, 나는 어떤 神도 갖지 않았다. 거기에서 나는 나 자신이었다. 거기서 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갈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였고, 진리의 향유 가운데 나 자신을 인식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는 신과 모든 사물에서 벗어나 있었다. 피조물로 신 가운데서는 신만큼 높은 존재의 서열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자신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처럼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아야 참된 가난이다.
둘째, 나는 때때로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도 진리를 위해서도, 그리고 신을 위해서도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말을 하려 한다. 즉 자신과 진리와 신을 위해 산다는 것도 모르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아는 것에서 아주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하여 신이 자기 안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 가운데 살고 있는 모든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럴 때 인간은 참된 가난을 소유한다.
셋째, 내가 생각하는 무소유는 물질적인 의미가 아니다. 신이 활동할 자리가 인간 속에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가난한 것이 아니다. 신과 인간의 모든 작용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한다. 나는 인간은 신이 작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떤 자리도 갖지 않을 만큼 가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로 하여금 신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청한다. 모든 존재와 차이성을 넘어서 있는 그런 神性에 나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의 원인이다. 그 때문에 나는 태어나지 아니했고, 태어나지 않음의 방식에 따라 나는 결코 죽을 수도 없다(不生不滅). 나는 영원하였으며, 지금도 영원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스승은 인간의 復歸的 突破가 인간의 始原的 流出(Ausfließen)보다 더 고귀하다고 말했다. 이 복귀적 돌파에서 나와 신은 하나라는 것(daß ich eins)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나는 不增不減이다. 이것이 가장 본래적인 가난이다.
이 가난에 관한 설교는 초탈을 통해 신성의 자리에 들어간 이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잘 밝히고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에크하르트의 이 설교를 소개하면서 소유보다 존재의 삶이 더 고귀함을 논하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아무것도 원치 않아야 한다는 ‘無願으로서의 가난’을 의지작용의 소멸로 해석하고 있다. ‘자기 의지 작용의 소멸’은 ‘渴愛’의 소멸이 바로 열반이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갈애는 의지적 욕망으로 신에 무엇을 원하는 종교의식도 포함된다. 이것에서도 벗어나야 참된 가난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초탈한 이는 기도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어떤 것을 신으로부터 갈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심정을 비웠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초탈한 경지에서는 어떤 기도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無知로서의 가난’은 空性의 인식론적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참된 법은 얻을 바도 없고 설해야 할 진리도 없다. 인식의 주체와 객체가 모두 그 실체가 없으므로 不可得空이라고도 한다. 깨달아야 할 진리가 따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깨달음을 실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공은 진리의 실재가 아니다. 궁극적 진리의 본체인 眞如나 열반 등의 개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최고의 진리도 사실은 공하다[第一 義空]. 진리의 실상에 집착을 일으키면 법을 관념화하게 되는 것이다.
‘無所有로서의 가난’에서 에크하르트는 인간 생명은 본래 더함도 덜함도 없고(不增不減), 나고 죽음도 없는(不生不滅)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경지가 최고의 가난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無願’과 ‘無知’와 ‘無所有’의 설교는 점차 그 단계를 올리는 向高性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다 높고 깊은 정신세계를 향하여 앞의 설교를 부정하며 더 높은 지평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설교법은 空觀의 ‘四句否定法’이나 禪家의 ‘上向一路’의 문답법과도 유사하다.
에크하르트의 ‘無願’과 ‘無知’와 ‘無所有’의 설교는 불교의 ‘三空門(三解脫門)’과 대비할 수 있다. 대승에서 세 가지 空門은 (1)空解脫門 (2)無相解脫門 (3)無願解脫門이다. 제법의 실체가 없음을 관하는 空門, 제법의 차별상이 없음을 관하는 無相門, 그리고 의지적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無願門을 닦는다는 의미에서 ‘三三昧 修行門’이라도 한다.
첫째, 空解脫門은 일체법이 모두 다 空함을 관조하는 선정 삼매이다. 일체법에 실체가 없다고 관한다는 것은 因緣으로 생겨난 법은 본래 自性이 없다고 보는 지혜이다. 이는 존재론적 공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공은 초기불교의 연기법의 재해석과 같다. 모든 법은 실체(substance)가 없다는 실체론의 부정이다. 無常한 존재는 그 실체가 없으므로 緣起한다.
둘째, 無相解脫門은 모든 존재의 분별상을 떠나는 수행문이다. 男과 女의 相·一相과 異相 등 온갖 차별상이 본래 不可得함을 아는 것이다. 모든 차별상이 본래 실재하지 않음을 관조하는 것이다.
셋 째, 無願解脫門은 이 세상에서 더 원하고 구하는 마음이 없는 선정이다. 즉 의식적인 노력이나 욕망을 떠나는 것이다. 이를 無功用이라고도 한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연기법과 함께 사는 삶이다. 단지 그 법칙과 계합하기만 하면 되지 조작하고 願求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선정에 의해 연기법 그 자체와 완전히 일체가 된 상태를 中道라고 한다. 無願이므로 自由自在하다. 그러므로 無願門을 無作門, 또는 無欲門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空의 세 가지 해탈문은 에크하르트의 가난과 초탈(Abgeschiedenheit)과 상응되는 수행문이다. 그가 설하는 神性과 초탈사상에서 대승 공사상이 가르치고 있는 공의 여러 의미를 다 발견할 수 있다.
3. 超脫(無相-無住-無念)의 덕
에크하르트는 ‘초탈에 대하여?’라는 설교의 첫머리에서 “내가 모든 저서들을 (이교도 스승들과 예언자, 신약, 구약 등을 말함) 철저하게 파헤쳤을 때, 나는 ‘순수한 초탈(버리고 떠남)’이 모든 것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초탈이야말로 세계의 영적 진리를 가르친 모든 성인들의 핵심 가르침이며, 더 위없는(無等等) 가르침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말한 ‘Abgeschiedenheit’은 ‘超脫’, ‘버리고 떠나있음’, ‘無執着(detachment)’, ‘放下着’, ‘無念’, ‘無心’, ‘무관심(disinterest)’ 등의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내려놓아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것을 초탈이라고 하였다. 에크하르트는 초탈은 그동안 기독교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친 ‘사랑(Minne)’과 ‘겸손(Dēmüeticheit)’과 ‘자선(Barmherzicheit)’보다도 훨씬 수승하다고 설하고 있다.
‘내가 비록 무엇을 행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성 바오로가 말했듯이 스승들은 사랑을 지극히 찬양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랑보다도 초탈의 덕을 찬양한다. 그 이유는 첫째, 사랑의 최상은 내가 신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반면에, 초탈은 신이 나를 사랑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영원 속에서 나의 축복은 내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랑은 내가 신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도록 하는 것에 반해, 초월은 내가 신을 받아들이는 것외에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도록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초탈은 무엇보다도 零(無)에 가깝다. 초탈한 마음에는 단순하고 순수한 신외에는 아무것도 머물 수 없다.
에크하르트는 이와 같은 논리로 많은 스승들이 찬양하는 겸손의 덕보다 초탈의 덕이 더 수승하다고 찬양한다. 그 이유는 초탈은 무이기 때문에 완전한 겸손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은 자신을 낮춘다는 의지가 있지만 초탈은 피조물 위에도 아래에도 서고자 하지 않는다. 초탈은 항상 그냥 존재하는 것 이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초탈은 모든 시비분별에서 떠나 있으므로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선보다 초탈을 높은 덕으로 본다. 그 이유는 자선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동료 인간의 결합으로 나아가는 것에 불과한 까닭에 우리의 심정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초탈은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머물며, 항시 자기 자신에 거주한다.
에크하르트는 이슬람 철학자 아비체나(Avicena, 980~1037)의 말을 인용 하여 “초탈에 이른 마음의 경지는 매우 고결하고 위대하기 때문에, 이 마음으로 통찰하는 것은 참되며, 그것이 바라는 것은 성취되며, 그것이 명하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초탈한 마음에서만 인간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될 수있는 길은 초탈이며, 신은 초탈한 텅 빈 마음에 다가와 거주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神人合一의 경지를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가 神을 보는 눈은, 神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나의 눈과 神의 눈은 하나의 눈(ein Auge)이다.
하나의 봄(ein Sehen), 하나의 앎(ein Erkennen), 하나의 사랑(ein Liebe)이다.
여기에서 신과 나는 완벽하게 일치된 삶 속에 함께 있게 된다. 나의 눈은 곧 신의 눈이며, 나의 삶은 곧 신의 삶이다.
그러면 초탈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크하르트는 “그 어떤 덧없는 애착이나 슬픔이나 명예나 비방이나 악에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초탈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不動의 초탈이 우리를 신과 닮게 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超脫思想은 초기 대승경전인 ‘金剛經’의 중심교설인 ‘離一切相’의 가르침과 그 의미가 유사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一切 모든 相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諸佛이라 한다.
‘金剛經’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용어는 ‘相’이다. 相이란 외적 대상에 대한 개념 작용을 일으켜 여기에 이름을 붙이는 작용을 말한다. 대상을 개념화하면 집착이 생기고, 이 집착은 바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수반하게 된다. 慧能(六祖, 638~713)은 ‘金剛經’은 相이 없는 것(無相)을 宗으로 삼고, 머무름이 없는 것(無住)으로 體를 삼으며, 妙有로써 用을 삼는다”고 이 경의 대의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己和(涵虛得通, 1376~1443)는 다음 같이 說誼하였다.
반야의 신령스러운 근원이 확 트여 모든 상이 없고, 넓고 커서 머무름이 없으며, 비어서 있지도 않으며, 맑아서 앎이 없도다. 지금의 一經이 이것으로 宗을 삼고 體를 삼아서 앎이 없지만[無知] 알지 못함도 없고 [無不知], 있지 않지만[無在] 있지 않음도 없으며[無不在], 住함이 없으되 住하지 않음도 없으며, 相이 없으되 모든 相에 걸리지 않으니, 이것이 妙有로써 用을 삼는 까닭이다.”
‘金剛經’에는 ‘相’을 四相으로 구분하여 설한다. 四相에의 집착은 실상을 왜곡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수보리에게 일체상을 떠나 無上正等正覺을 구해야 하며, “어떤 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不動하라”라고 가르친다. 己和는 ‘金剛經五家解說誼’에서 “四相을 떠나서 초연히 걷는 것, 四相이 본래 空함을 了達하여 멀리 떠남은 稀有한 일이다. 모든 부처는 상을 떠난 존재이므로 우리도 부처와 같이 一切相을 버리고 떠나는 稀有한 수행을 닦아야 한다”고 주석한다. 慧能은 “四相을 떠남이 곧 實相이며 佛心”이라고 해석했다. 傅大士(雙林, 429~570)는 모든 相을 떠난 이는 法王의 居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에크하르트는 스스로 神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超脫은 신을 비롯한 모든 진리에 대한 개념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超然 (Gelassenheit)하게 모두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집착에는 크게 나에 대한 집착(我執)과 진리에 대한 집착(法執)이 있다. 唯識學에서는 제7말나식(manas)에서 일어나는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我癡, 我見, 我慢, 我愛 등의 번뇌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空은 我執과 法執, 無明과 戱論을 ‘能斷하는 金剛’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공의 효용성을 空用이라고 한다. ‘일체법이 공함’을 비추어 본 이는 무한 자비의 보살행을 하게 되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은 無住心으로 절대 자유의 창조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부처의 형상에 집착하고 경전언어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고자 하거나
말과 글로써 나를 구하려 한다면
그는 삿된 길을 수행하는 것이니
끝내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慧能은 相으로 부처를 觀하거나 소리 가운데 法을 구하는 것은 “마음에 生滅이 있어서 여래를 깨닫지 못한다”고 진단하였다. 마음에 生滅心을 떠나야 正見이 나타날 수 있다. 己和는 한 차원 높여, “부처는 色과 聲에 있지도 않고, 이들을 떠난 데도 있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볼 수 있겠는가?”하는 話頭를 던진다. 불교전통에서 가장 철저한 空의 실천수행은 禪家의 公案에서 찾을 수 있다. 공사상을 실천수행으로 전개한 禪家의 전통에서는 끊임없는 否定으로 向上一路의 길을 제시한다. ‘神은 초탈한 마음 자체’라고 본 에크하르트와 ‘모든 상을 떠남이 부처’라는 ‘金剛 經’의 교설은 모두 버리고 떠남의 덕과 무념의 삶에서 참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Ⅴ. 에크하르트와 종교 간의 대화
1. 불교와의 차이점에 대한 대화
지금까지 논의해 온 에크하르트와 기독교 신비사상은 그 내적 구조와 종교체험의 차원에서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종교 간의 대화를 진행함에 있어서 어떤 공동기반을 미리 상정하기보다는 상대와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공동기반이 있다고 예측하는 것은 종교-이념 간의 특징을 희석시키고 추상적인 결론만을 유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교리적 차원에서 볼 때, 불교와 에크하르트 설교의 배경이 되고 있는 기독교와의 대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관의 차이일 것이다. 기독교는 만물을 창조한 신을 創造主를 主宰神으로 신앙하는 실체론적 종교이며, 二元論的인 세계관을 지닌 종교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초자연과 자연, 신과 인간 사이에는 존재론적 단절이 있다. 신과 인간은 전혀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으며, 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경우는 예수에게만 적용된다. 이에 반하여 관계론적 사유체제인 불교에는 創造神과 主宰神의 개념이 없으며, 부처와 중생, 涅槃과 生死, 菩提와 煩惱를 둘로 보지 않는 不二論的 종교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수 있다. 기독교는 궁극적 실재인 신이 인격적 존재이지만, 불교는 궁극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법성, 공, 열반 등의 개념이 있다. 이러한 법의 실상은 비인격적인 원리로 인식된다. 이러한 실재관의 현격한 차이는 두 종교 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 되어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독교의 실체론적 세계관을 일부 수용하고 있는 에크하르트 사상은 불교와 구조적인 유사점을 보이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차이점도 발견하게 된다. 첫째, 가장 큰 차이점은 에크하르트의 신과 영혼의 실체성 문제에 있다. 에크하르트의 神人合一 사상은 불교보다는 힌두교의 梵我一如 사상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신과 영혼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연기론을 제창한 붓다의 근본 교설에서 보면, 에크하르트는 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붓다는 신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생로병사의 괴로움과 그 원인이 되는 貪瞋癡의 消滅이 붓다의 일차적 관심사였기 때문에, 신의 존재 유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 에크하르트의 실재관은 신플라톤주의와 유사한 일종의 汎在神論 (panentheism)으로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는 차이가 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을 만물의 근원이자 귀착지로 본다. 만물은 신으로부터 출원(exitus) 하여 다시 그 근원인 신으로 환원(reditus)한다. 신은 자기 안에서 왔고 그 안에 있다. 汎神論(pantheism)은 ‘모든 존재(pan, all)가 곧 신(theos, God)’이라는 뜻이다. 신은 우주 만물에 내재하므로 본질적으로 모든 자연 만물이 신과 동일시된다. 이에 반하여 汎在神論은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all in God)’는 명제를 전제로 하는 신관이다. 신은 우주의 삼라만상 안에 내재하면서도 초월하는 존재이며, 일체의 존재를 모두 그 안에 품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多神論, 汎神論, 無神論, 非神論, 唯一神論, 交替神論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에크하르트 사상을 汎在神論의 일종으로 볼 때, 모든 종교의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다양한 명칭들도 범재신론 중심적 다원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道, 天, Dharma, Logos, 하느님, 天主, 上帝, 야훼, 天地神明, 天理 등도 신과 신성의 한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여래장이나 불성, 자성청정심도 물론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汎在神論은 실재중심적 다원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범재신론도 불교의 공사상이나 연기론과는 차원이 다른 실체론적 세계관의 한 부분이다.
셋째, 에크하르트의 神性과 般若空 思想과의 차이이다.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는 불교 공사상이 가장 보편적인 종교사상임을 전제로 에크하르트를 보고 있다. 그는 에크하르트가 추구하는 神의 無性은 ‘空도 역시 空하다’고 보는 반야사상보다는 철저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에크하르트의 신은 형상과 이름, 개념과 사려를 떠난 존재로 超神 또는 非神 (nicht-Gott)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도 空觀의 궁극적 의미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한 우에다의 해석은 일면 타당하다. 에크하르트 부정신학의 궁극적 지향점이 신 개념의 철저한 부정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신성의 無 안에는 아직도 신의 형상이 아련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을 위해서 신에게서 도피’하고자 했던 에크하르트도 서양철학의 전통적 실재론과 신학적 실체론에서 완전히 초탈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에크하르트의 否定神學과 불교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에크하르트의 부정의 신학은 무한부정의 길 어디선가에서 멈추고 있는 듯 보인다. 우에다의 불교 공사상 우위론은 불교 포괄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접근 방법은 공사상이 지닌 평등 무차별성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불교의 본래 입장은 ‘다원주의를 향해 열린 포괄주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空觀은 佛法의 절대화라는 생각마저 벗어나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타력 신앙적 은총의 개념 차이이다. 선불교에는 인격적 신의 개념이 없으며, 기도와 은총과 같은 타력적 요소가 없다. 에크하르트도 완전한 기도는 초탈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초탈의 경지에서 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크하르트의 모든 설교는 이러한 초탈을 성취하기 위해 신의 은총을 기원 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공사상에 바탕을 두면서도 불보살의 자비원력에 의존하는 정토신앙을 비롯한 ‘불교 타력신앙’과 깊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종교의 자력과 타력 신앙, 초월성과 내재성, 유신론과 무신론. 실체론과 연기론의 조화와 초월의 문제를 에크하르트를 통해 발견하고, 더 나아가 이에 내포된 종교성도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2. 보편적 종교성과 대화 지평의 확대
레널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종교간-이념간의 대화는 ‘실천적, 영적, 인식적(practical-spiritual-cognitive)’ 등 세 영역에서 수행될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에크하르트와 관련하여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영적 영역의 대화이다. 심층적, 영적 영역의 대화는 “상대방의 종교나 이념을 ‘그 내부로부터(from within)’ 경험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영적 차원의 대화는 심층적 신비경험을 통해 가장 잘 수행될 수 있다고 본다. 신비주의 사상은 ‘제2차 축의 시대’로 지칭되는 대화문명시대에 교리와 언어와 전통을 뛰어 넘는 공동기반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의 종교를 ‘동양적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는 길희성은 “에크하르트의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참된 인간성 실현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동양사상과의 완벽한 일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신과 인간의 이원적 질서의 극복과 그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를 발견한 에크하르트는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梵我一如, 道家의 자연주의, 儒家의 심성론에 근접하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 배타주의의 핵심교설인 예수중심의 구원관, 의례와 기도중심의 형식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신의 아들의 多身性, 신을 넘어서는 신성의 발견, 사랑·겸손·자선보다 수승한 초탈의 수행, 가난의 無願 無知 無所有的 의미를 설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神化는 본래 주어진 것임을 가르치고자 했다. 이러한 해석학적 돌파에서 에크하르트가 지닌 종교사적 중요성과 그 위상을 재발견할 수 있다. 에크하르트는 영원주의자 슈온의 밀교적 맥락에서 보면, ‘예수가 가르친 밀교의 참된 계승자’였으며, 동서 종교를 관통하는 무아 초탈의 종교적 삶을 가르친 성자였다. 에크하르트의 설교집을 영역한 브래크니(Raymond B. Blakney)는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에크하르트가 지닌 聖者性을 표현한다.
에크하르트는 높은 수준에서 우파니샤드와 수피 고전에 나타난 정신세계와 동일한 차원에서 살았다. 그가 도달한 곳까지 나아간다는 것은 노자나 석가, 그리고 예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크하르트는 바울신학과 삼위일체관을 추종하는 가톨릭 전통에서 볼때, 기독교를 철저히 비기독교화하고자 했다. 그의 신관이나 구원관에서 이른바 정통 신학의 특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크하르트는 가톨릭의 제도권 안에서 그의 신학사상을 합리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입장을 ‘진보적 정통성과 이단의 경계에 선 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에크하르트는 항상 자신의 설교가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비판하려는 자들을 무지하거나 악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스스로 진보적 정통파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혁신적 성서해석 이론이 교단에서 채택되어 기독교가 보편적 종교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에크하르트를 기독교내의 신비적 합일주의로 분류하 고자 하는 신학자들이 있는데, 이는 기존의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나고자한 그의 돌파해석학의 의도를 파악치 못한 것이다. 이부현은 ‘에크하르트는 철저히 그리스도교적이며, 그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의를 신플라톤 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일부 영성신학자 중에는 우월적 기독교 신학체제 안에서 그의 신비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김형근은 중관학파의 공성은 인과론을 초월하는 에크하르트의 신과 신성을 포용할 수 없고, 인간의 불성과 신성은 다르며, 신의 은총으로 실현되는 영혼안의 신의 아들의 탄생설도 인간의 능력으로만 성취되는 견성과 다른 차원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신성은 비존재가 아니라 신의 존재의 특성으로 보는 실재론을 고수한다. 이러한 해석은 에크하르트를 전통적 기독교인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에크하르트는 외형적으로는 교단의 체제 안에 남아있고자 했으나, 그의 진정한 의도는 교리나 전통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체험한 진실의 전승이었을 것이다. 그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돌파하고자 한 것이지 다시 그안에 계박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이 돌파를 통하여 에크하르트는 세계 종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아울러 세계를 포섭하는 정신적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Ⅵ. 맺음말
본 연구는 에크하르트 신비사상의 궁극적 지향점이 신성과 인간성이 통합된 참된 삶의 발견에 있었음을 논하였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기독교가 지닌 모순점과 신학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분투였으며, 에크하르트는 이 신학적 과제를 용기 있게 돌파한 대담한 신비사상가였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신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양자 간의 완벽한 합일을 가르쳤다. 에크하르트의 신과 인간에 대한 해석은 단순한 신과의 합일체험이 아닌 인간이 신과 동일한 존재가 되고자 함에 있었다. 또한 聖肉身은 예수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시 신의 아들로 태어나는 체험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는 일체 중생이 佛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사상이다.
그는 我性으로부터의 무집착과 참된 가난의 실천으로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頓悟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연기론을 제창하는 대승 공관에서 볼 때, 에크하르트는 비록 실체론적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신성의 絶對無性과 초탈을 통한 無執着의 실천적 수행을 가르쳤다. 여기에서 불교와 에크하르트 간의 대화의 접점과 통로는 크게 열리고 있다. 그의 가난사상이 내포한 無願-無知-無所有의 가르침에서 불교의 공삼매 해탈문과 같은 실천적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에크하르트 설교의 근본정신은 放下와 無我의 宗敎性을 실현하고자 한데 있었다. 그의 신비사상은 새로운 종교신학이나 인류의 보편적 종교성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참된 신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다는 열린 종교관은 현대의 구도적 영성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불교학자와 동양사상가들도 에크하르트의 메시지에 담긴 심층적 종교성에 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에크하르트에게서 종교란 제도나 의례에 얽매인 ‘절대 신념체계’가 아니라 절대 진리의 개념에서 벗어나, 절대무의 신성과 합일된 영원한 현재에서 누리는 절대 자유의 삶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密意 宗敎’의 상속자였으며, 세계종교의 보편적 종교성의 바탕이 되는 무아와 초탈의 삶의 길을 보여준 獨修聖이었다. 에크하르트의 진면목은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학의 혁신적 해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동 본질과 기반이 되는 인간 내면의 신성의 광휘를 발견하여 인류의 종교성 지평을 확대시킨 데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신비사상은 대화문명 시대에 종교 간의 심층적 대화와 종교다원주의 이론 전개에도 큰 기여를 하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