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정 朴○○ (1930 ~ 2021)】 "안중근의사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 별세"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이자 안정근 선생의 며느리인 박태정(91)씨가 지난 10월 23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12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는 안중근 의사의 유족 중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던 박태정 여사가 23일 이대 서울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부고를 전했다.
발인은 25일(월)이며 박 여사의 장지는 용인공원묘원으로 유족으로는 딸 기려, 손녀 우성하 씨가 있다.
두 딸과 손녀와 신월동 시영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던 박 여사는 고령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지난달부터 이대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아왔다.
안중근 집안의 며느리로 시집간 박 여사의 일생은 말 그대로 드라마와도 같은 삶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이후 안중근 의사 일가는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만주 등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뤼순 감옥에서 형 안중근의 유언을 들은 안정근은 1910년 봄 온 가족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라 연해주에 머물다가 1919년 늦가을, 중국 상하이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하며 임시정부 내무차장과 대한적십자회 최고 책임자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 북간도 파견위원으로 선임돼 독립군 통합운동에 힘썼다. 청산리전투에 참전한 것도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다. 1922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이던 안정근은 이후 지병으로 쓰러져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1949년 상하이에서 눈을 감았다.
안정근의 둘째 아들이자 박태정 여사의 부군인 안진생(1918∼88) 전 콜롬비아 대사는 이탈리아 제노아 공대를 졸업한 한국인 최초의 조선공학 박사로 18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1955년 해군 사관후보생 20기로 입대, 해군 조함병과 장교로 복무하며 해군 함정 건조에 일익을 담당하고 1958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러다 1980년 외교안보연구원 본부 대사로 일하던 안 대사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된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박태정 여사는 안 대사의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서울 여의도 아파트를 팔아 병수발을 하였다.
안정근 선생은 1987년이 돼서야 독립장 서훈을 받았다. 그의 차남 안진생 전 콜롬비아 대사가 “아버지는 후손들 연금 받으라고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다”라며 서훈 신청을 미뤘기 때문이다. 안 전 대사는 88년 사망하기 전까지 단 1년간 독립유공자 자제로 보훈연금을 받았다. 1973년 개정된 독립유공자법에 따르면 광복 이전에 사망한 독립유공자는 손자들까지 연금을 받게 돼 있고, 1945년 이후 사망자의 경우엔 직계 자녀에게만 연금 혜택이 돌아간다.
안 대사가 8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사망하면서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이후 박 여사는 창동의 월세 아파트를 거쳐 신월동 시영아파트에서 곤궁하게 살아왔다. 지난 3월 9일에는 딸인 기수 씨를 먼저 떠나보내는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박태정 여사는 지난 2014년 하얼빈의거 105주년을 맞아 MBC에서 방영한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박 여사는 “평생 남에게 베풀며 청렴하게 살아왔다”며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 어르신들과 남편이 나라에 기여하셨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물론 상하이에서 사망한 시부 안정근의 유해를 발굴해 한국으로 송환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속만 태울 따름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