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왼쪽그림은 아르메니아(Armenia) 화가 예기셰 타데보샨(Yeghishe Tadevosyan, 1870~1936)의 1909년작 유화 〈천재와 군중(Гений и толпа; The Genius and the Crowd)〉이다.
위오른쪽그림은 미국 소설가·시인·문학비평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1923년판 《단편소설집(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에 수록된 1840년작 단편소설 〈군중 속의 남자(The Man of the Crowd)〉를 압축하여 묘사한 아일랜드 화가 해리 클라크(Henry Patrick Clarke, 1889~1931)의 1923년작 삽화이다.
☞ 시, 산문, 시인 거장 요한 볼프강 괴테, 월터 새비지 랜더, 쟈코모 레오파르디, 프로스페르 메리메, 에머슨, 리하르트 바그너, 조르주 비제, 프리드리히 니체, 카르멘
☞ 에머슨의 超越主義(Transcendentalism) 철학
미국 철학자·시인·에세이스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1843년작 에세이 〈시인(The Poet)〉에서 “시인은 대표인간이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아르투어) 쇼펜하워(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도 《세계는 의지이고 표상이다(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4부 제51장에서, 에머슨과 흡사하게, “시인은 인류의 거울이다”고 단언한다.
거의 동시대에 살면서도, 어쩌면 서로를 몰랐을뿐더러, 심지어 거의 상반된 관점에서 삶과 세계를 이해했던 에머슨과 쇼펜하워의 시인관(詩人觀)이 이토록 흡사하다는 사실은, 그들이 몇 가지 유사점을 더 겸비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시인 겸 철학자 니체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 때문에도 주목될 만하다.
특히 니체에게 파급된 에머슨의 영향은 쇼펜하워의 영향보다 더 각별하며 중대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미국 철학자 조지 스택(George J. Stack)은 1992년작 저서 《니체와 에머슨: 선택적 친화관계(Nietzsche and Emerson: An Elective Affinity)》에서 “니체는 에머슨한테서 ‘운명이라는 문제’를 상속받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영어문학자 데이빗 미킥스(David Mikics)도 《에머슨과 니체의 개인주의적 낭만(The Romance of Individualism in Emerson and Nietzsche)》(2003)에서 스택의 평가를 주목했다.
프랑스 철학자 샤를 앙들레(Charles Andler, 1866~1933)는 1920년작 저서 《니체의 인생과 사상(Nietzsche, sa vie et sa pensee)》 제1권에서 “에머슨은 … 니체의 모든 이론을 예비하지는 않았어도 수립할 수 있는 계기를 니체에게 마련해주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다니엘 알레비(Daniel Halevy, 1872~1962)의 《프리드리히 니체의 일생(La vie de Frederic Nietzsche)》(1909),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Elisabeth Forster-Nietzsche, 1846~1935)의 1912년작 저서 《청년 니체(Der junge Nietzsche)》, 미국 철학자 줄리언 영(Julian Young, 1943~)의 “니체의 인생과 철학을 가장 포괄적으로 조명한 평전”이라고 평가받는 2010년작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평전(Friedrich Nietzche: A Philosophical Biography)》에서도 증언되듯이, 니체는 열여덟 살이던 1862년에 에머슨의 저작을 처음 읽고 감동받았을뿐더러, 이후에도 평생에 걸쳐 탐독하고 재독할 정도로 에머슨을 애호하고 존경했다.
비단 쇼펜하워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철학자·역사학자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과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도 니체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지만 에머슨보다 더 오랫동안 니체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2013) 제11장 제2절에서도 니체는 도중에 결별한 쇼펜하워나 바그너와 다르게 “에머슨은 끝까지 나와 함께 남았다”고 단언한다.
줄리언 영은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평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881년 초여름에 니체는 에머슨의 저작들을 다시 탐독했다.
그리고 니체는 1882년에 출간한 《즐거운 학문(Die frohliche Wissenschaft)》 제1판의 표지에 에머슨의 에세이 〈역사(History)〉(1841)에서 선택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했다.
“시인과 현자에게 모든 사물은 다정하고 신성하며, 모든 체험은 유익하고, 모든 날은 거룩하며, 모든 인간은 신성하다.”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의 기운을 자아내는 이 문장은 스피노자주의자(Spinozist)의 세계긍정관념을 암시한다.
… 1881년 7월 30일에 니체는 스피노자주의자로 자처했다.
그리고 니체는 같은 해 8월 1일에 피라미드를 닮은 거대한 바위 옆에서 영원회귀사상을 생각해냈다.
그러므로 니체가 스피노자-에머슨의 범신론에 아주 심취하여 영원회귀사상을 생각해냈다고 추정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 스피노자와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니체는 범신론으로 접근해갔다.◀
당연하게도, 에머슨의 영향은 니체에게만 파급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언론인·여성권리운동가 마거릿 풀러(Margaret Fuller, 1810~1850), 현대 생태주의를 준비했다고 평가되는 자연론과 인간론을 설파한 《월든(Walden)》(1854)의 저자로서 유명한 자연주의철학자·시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시인·에세이스트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 1819~1892),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 Pragmatism)의 확립자로서 유명한 심리학자·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에게도 에머슨은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도 여태껏 한국에서 에머슨은 전직 유니테리언파(Unitarianism) 교회목사, 자연주의(Naturalism)와 초월주의를 표방한 사상가, 에세이스트, 노예해방을 지지하고 미국 지성계의 자주독립을 주창한 강연자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근래에는 전직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 2009~2017 재임)가 에머슨의 에세이 〈독립독행(Self-Reliance)〉을 애독했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 가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과 미국 기업경영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도 에머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소식마저 한국에 타전되자, 에머슨이 세속적 명리욕구(名利欲求)에 아부하는 자기계발서나 속류 처세서의 저자처럼 보이게 착시(錯視)되어 반짝 주목받는 기현상마저 발생했다.
특히 한국에서 “버락 오바마의 애독서”랍시고 찔끔 유명해진 “에세이” 〈독립독행(獨立獨行)〉은 에머슨의 1841년판 《제1에세이집(Essays: First Series)》에 수록되어 초판되었고, 1903년판 《랠프 월도 에머슨 전집(The Complete Works of Ralph Waldo Emerson)》 제2권에도 수록되었다.
이 에세이의 제목은 한국에서 여태껏 〈자기신뢰(自己信賴)〉, 〈자립(自立)〉, 〈자신감(自信感)〉, 〈자시론(自恃論)〉, 〈자기신념(自己信念)〉 따위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에머슨이 강연문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1837)에서 “자기신뢰(self-trust)”라는 표현을 따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감안되면 에세이 〈Self-Reliance〉의 한역제목은 “독립독행”이 더 추천될 만하고 “자의독행(自依獨行), 자뢰독행(自賴獨行), 자주독행(自主獨行)”도 후보군에 거론될 만하다.
물론 에머슨도 〈운명(Fate)〉과 〈권력(Power)〉을 포함한 에세이 아홉 편을 묶은 《처세론(The Conduct of Life)》을 1860년과 1876년에 펴냈다.
공교롭게도 그 저서는 에머슨의 저서들 중 가장 많이 판매되었지만, 아무래도, 속류 처세서로 분류될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독자의 세속적 명리욕구에 아부하거나 영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욕구를 경계하고 다스리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초월하려는 에머슨의 실천철학을 제시한 정신철학적 처세서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시중에서 떼몰이로 흥행하는 속류 처세서는 대체로 착잡한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독자의 현실감각을 교란하거나 마비시키며 독자를 현실에 순응시키는 부작용을 조장하기 십상이라서 독자의 처세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거나 망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만약 에머슨의 《처세론》이 속류 처세서나 속물교양서에 불과하다면, 예컨대, 그런 책들에만 입맛을 다시는 교양속물(敎養俗物; Bildungsphilister; Culture-Philistine)을 지극히 혐오한 니체에게 그토록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문화속물(文化俗物)”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교양속물”이라는 비칭(卑稱)은 니체의 1876년작 저서 《반시대적 고찰(Unzeitgemasse Betrachtungen)》에 수록된 1873년작 에세이 〈다비트 슈트라우스: 고백자 겸 문필가(David Strauss: der Bekenner und der Schriftsteller)〉 제2절 마지막 단락에서 사용되었다.
어쨌거나, 당연하게도, 모든 처세론이 세속적 명리욕구에 부응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모든 철학은 실천을 도모하므로 처세론을 직간접으로 산출하기 마련이다.
이런 정신철학적 처세론에는, 예컨대, 쇼펜하워가 감동하여 직접 독일어로 번역했고 니체도 격찬한 에스파냐 철학자·산문작가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1601~1658)의 1647년작 《처세론(Ora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도 포함된다.
그래서 관건은 처세론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처세론의 내용과 성격이다.
(2018.03.08.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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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그림은 독일 화가 칼(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 1808~1885)의 1839년작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이다.